"밥 쿠지부터 크리스 폴까지" 정통파 PG 계보 ①
[루키] 편집부 = 화려한 기술을 갖춘 포인트가드는 가장 인기 많은 포지션 중 하나다. 밥 쿠지부터 크리스 폴까지, 역대 정통파 포인트가드의 계보를 정리했다.
◆ 밥 쿠지(1950~1970)
‘코트의 마술사(Houdini of the Hardwood)'로 불렸다. 밥 쿠지는(88)는 NBA 포인트가드 역사를 훑을 때 첫손에 꼽히는 위대한 1번이다. 1950년대 보스턴 셀틱스 왕조에서 ‘코트 위 감독’으로 활약하며 팀의 파이널 6회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보스턴에 몸담은 14시즌 동안 917경기에 나서 평균 18.5점 5.2리바운드 7.6어시스트를 챙겼다. 1953년부터는 8년 연속 어시스트왕에 이름을 올렸다. 올-NBA 팀에 12번 선정됐고 올스타전에도 13차례 나섰다. 팬들은 물론 동료ㆍ감독ㆍ구단주 등 많은 농구인이 사랑한 선수였다. 셀틱스를 창립한 구단주 월터 브라운은 “단언컨대 쿠지가 없었다면 우리 팀의 놀라운 업적도 다른 구단 얘기가 됐을 것이다. 그가 뉴욕에서 뛰었다면 아마 (해당 지역 야구 팀 양키스에서 활약했던) 베이브 루스, 조 디마지오만큼 유명해졌을 것이다. 쿠지는 지역과 시대를 초월한 농구 선수"라고 힘줘 말했다.
쿠지는 농구 역사상 최초로 “패스에 예술성을 더한 남자”로 평가 받는다. 패서로서 한 획을 그었다. 쿠지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포인트가드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공을 드리블해 상대 코트로 넘어간 뒤, 로우 포스트에 자리한 빅맨에게 엔트리 패스를 건네는 것에 한정돼 있었다. 그러나 쿠지 등장 이후 1번 포지션에 대한 개념 정의가 새롭게 이뤄졌다. 안정적인 양손 드리블과 속공 전개, 창조적인 ‘A패스'로 팬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그가 펼쳤던 노-룩 패스, 비하인드 백 패스는 당시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오리지널 플레이'였다. 빌 러셀이 팀 수비를 지탱하는 앵커였다면 그는 공격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였다. 이들은 보스턴 왕조를 이룩한 두 중심축으로서 세계 농구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통산 야투성공률은 37.5%에 불과하다. 하지만 쿠지가 활약하던 때는 리그 전체의 야투성공률이 40% 남짓했던 시대였다. 센터들조차 4할 초반의 야투성공률을 기록하곤 했다. 따라서 쿠지의 야투율은 당시 기준으로 전혀 흠이 되지 않았다.
쿠지는 1번 포지션의 패러다임을 바꾼 위대한 가드였다. 1954-55시즌부터 도입된 ‘24초 룰'이 신생 스포츠인 농구를 살리는 데 크게 한몫했다. 그는 이 개정 룰이 코트에서 어떠한 ’가시 효과'를 누릴 수 있는지 명확히 보여 준 선수였다. 제한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공격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포인트가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줬다.
◆ 오스카 로버트슨(1960~1974)
‘Big O' 오스카 로버트슨(77)은 장신 포인트가드의 시대를 연 선구자로 꼽힌다. 당시 가드로선 거인에 가까운 196cm, 92kg의 탄탄한 신체조건을 앞세워 코트를 호령했다. 범접할 수 없는 하드웨어는 물론 눈부신 BQ와 불굴의 투쟁심도 갖췄다.
로버트슨은 다재다능한 만능선수의 효시로 평가 받는다. 리그 역사상 윌트 체임벌린에 이어 두 번째로 25,000점을 넘어섰던 뛰어난 득점원인 동시에 통산 9,887어시스트를 챙긴 위대한 패서이기도 했다. 매직 존슨이 신기록을 세우기 전까지 최다 어시스트 기록을 보유했다.
소포모어였던 1960-61시즌에는 79경기에 출전해 평균 30.8점 12.5리바운드 11.4어시스트를 올렸다. 한 시즌 평균 트리플-더블을 기록한 역대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다. 이 해 그는 무려 41차례나 트리플-더블을 수확했다. 50년이 넘도록 단일 시즌 최다 트리플-더블 작성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신시내티 로얄스에서 10시즌, 밀워키 벅스에서 4시즌 동안 활약하면서 커리어 평균 25.7점 7.5리바운드 9.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올-NBA 팀에 11회 이름을 올렸고, 1964년엔 정규시즌 MVP를 거머쥐었다. 프로 데뷔 11번째 시즌에는 숙원이던 우승 반지를 손에 끼웠다. 1971년 파이널에서 카림 압둘-자바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통산 첫 우승 기쁨을 맛본 것. 이는 밀워키 구단의 처음이자 마지막 파이널 우승이다. 로버트슨과 압둘-자바는 파이널 네 경기에서 평균 50.5점을 합작하며 볼티모어 불리츠와의 시리즈를 싹쓸이로 장식했다.
반세기 전 농구 팬들은 조지 마이칸, 윌트 체임벌린, 빌 러셀 등 명 센터가 경기를 장악하는 것은 많이 봤다. 그러나 포인트가드도 승부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이를 일깨워준 선수가 바로 로버트슨이었다.
◆ 월트 프레이저 (1967~1980)
‘침묵의 암살자'였다. 코트 위에서 결코 큰소리를 내는 법이 없었다. ‘더 글로브(The glove)' 게리 페이튼이 등장하기 전까지, 역대 최고의 포인트가드 디펜더로 유명했다. 상대 포인트가드가 빈 곳에 자리한 동료를 포착하기 위해 잠깐 틈을 보이는 사이,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공을 뒤에서 훑는 솜씨는 역대 최고였다.
통산 7차례 올-NBA 디펜시브 팀에 이름을 올렸다. 뿐만 아니라 탄탄한 수비 못지않게 준수한 공격력과 천리안 같은 시야도 갖췄다. 13시즌 동안 NBA 코트를 누비면서 825경기에 출전했다. 통산 평균 기록은 18.9득점 5.9리바운드 6.1어시스트 야투 성공률 49%.
뉴욕 닉스는 NBA 최고 명문 구단 가운데 한 팀으로 꼽힌다. 그러나 우승 횟수는 단 2회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두 번의 우승이 모두 1970년대에 이뤄졌다(1970, 1973). 그 중심에는 프레이저가 있었다. 닉스에 몸담은 10년 동안 강력한 리더십으로 팀을 하나로 묶었다.
프레이저는 정규시즌은 물론 봄 농구에서도 눈부신 경기력을 보였다. 승부를 걸 줄 알았다. 플레이오프 통산 93경기에 나서 평균 20.7점 7.2리바운드 6.4어시스트 야투 성공률 51.1%를 챙겼다. 커리어 첫 우승을 맛봤던 1970년 플레이오프에선 156어시스트를 적립해 그 해 최다 기록을 세웠다. 오스카 로버트슨과 매직 존슨 사이를 잇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탁월한 1번이었다.
◆ 매직 존슨(1979~1996)
NBA 역사상 가장 뛰어난 포인트가드로 평가 받는다. 파이널 우승 5회, 정규 시즌․파이널 MVP 3회, 올스타 12회, 올-NBA 팀 10회 선정에 빛나는 위대한 1번이다. ‘쇼타임 레이커스'를 진두지휘하며 농구를 미국 최고 인기 스포츠로 끌어올렸다. 통산 906경기에 나서 17,707점 10,141어시스트를 쌓았다. 리바운드도 6,559개나 걷어 냈다. 커리어 평균으로 환산하면 19.5점 7.2리바운드 11.2어시스트에 해당한다. 900경기 넘게 뛰면서 매 경기 트리플-더블에 가까운 성적을 뽑아냈다. 그러나 이 같은 숫자로는 그가 미친 임팩트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 업적도 대단하지만 매직은 이름처럼 ‘숫자 이상의 마법'을 부렸던 역대 최고의 야전사령관이었다.
‘골드 앤 퍼플’ 유니폼을 입은 등번호 32번은 206cm 97kg에 이르는 육중한 신체조건을 앞세워 1980년대를 호령했다. 코트 위에서 펼칠 수 있는 모든 플레이를 소화할 줄 알았다. 농구공과 양손을 가장 잘 다뤘던 선수로 평가 받는다. 완벽한 힘 조절로 동료의 입맛에 딱 맞는 패스를 뿌렸다. 상대 수비진을 단번에 허무는 바운드 패스와 속공 상황에서의 노-룩 패스가 일품이었다. 프레드 스테블리 등 나이 지긋한 원로 스포츠 기자들은 “매직의 ‘그 두 가지 패스'는 어떤 선수도 따라할 수 없다. 흉내조차 내기 어렵다. 농구공을 다루는 감각, 패싱 센스는 역대 최고"라고 입을 모은다.
카림 압둘-자바, 제임스 워디, 바이런 스캇 등과 호흡을 맞췄던 셋-업 오펜스 전개, 스스로 공격을 매조지는 확률 높은 포스트업, 큰 경기에 강했던 슈퍼스타 기질 등 커리어 내내 흠잡을 데 없는 경기력을 보였다.
‘성적이 뒷받침된' 화려한 농구는 말처럼 쉽지 않다. 매직은 그 어려운 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그것도 매우 성공적으로 딛었다. 에버트 고교 시절 그에게 ‘매직'이란 별명을 붙여 줬던 스테블리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글쟁이는 (본능적으로) 텍스트에 담을 인물을 범인과 구분 지으려고 한다. 그래야 글맛이 살기 때문이다. 그러한 욕망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게 바로 별명 짓기다. 적확한 상징을 부여해 특정 인물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매직에게는 기록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었다. 그의 뛰어난 실력을 어떤 단어로 묘사할 수 있을지 참 많이 고민했다. ‘마법(Magic)'이란 표현밖에는 없더라. 매직은 정말 마법 같은 선수였다."
2부에서 계속...
사진 = 매직 존슨 트위터(twitter.com/magicjohn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