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환의 앤드원] 최후의 전 경기 MVP, 코비 그리고 요키치

2021-05-18     이동환 기자

[루키=이동환 기자] NBA 정규시즌이 끝나고 플레이오프 타임이 돌아왔다.

오는 19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플레이-인 토너먼트를 통해 각 컨퍼런스의 7위 팀과 8위 팀이 가려지면, 2021 NBA 파이널 우승 트로피를 위한 플레이오프 대진이 비로소 확정된다.

동시에 현지의 각 미디어 관계자들의 손도 바빠지고 있다. 보통 NBA 정규시즌 부문별 시상을 위한 투표는 정규시즌 종료와 함께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ESPN의 간판 기자 잭 로우는 매년 그랬듯 올해도 자신의 픽을 공개해 큰 화제를 모았다. ‘뉴욕포스트’의 기자들도 이 같은 행렬(?)에 동참했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행사가 언제 열릴지는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2021 NBA 어워즈 행사에서 어떤 선수가 미소를 지을지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NBA 어워즈의 꽃은 역시 MVP다. 매 시즌 가장 가치 있는 선수를 꼽는 MVP 부문은 때로는 치열한 논쟁의 장이 되기도, 때로는 뻔한 결말을 보여주기도 했다.

2020-2021 NBA 정규시즌 MVP 부문의 분위기는 후자에 가깝다. 정규시즌 마지막 날의 워싱턴-샬럿, 골든스테이트-멤피스의 단두대 8위 가리기 매치가 모든 이슈를 집어 삼킨 것, 플레이-인 토너먼트로 스포트라이트가 온통 쏠리고 있는 것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벌써부터 정규시즌 MVP는 정해졌다는 분위기이고 MVP의 주인공에 대한 궁금증도 그리 크지 않은 상황이다. 많은 사람들이 꼽는 2020-2021시즌의 MVP는 바로 덴버의 니콜라 요키치다.

 

요키치의 위대한 시즌, 결이 다른 패싱 빅맨의 위엄

니콜라 요키치의 2020-2021시즌은 경이로웠다.

사실 요키치가 MVP 레벨의 선수로 올라선지는 이미 꽤 됐다. 요키치는 2018-2019시즌부터 매 시즌 평균 19점 9리바운드 7어시스트의 기록을 생산해왔고, 야투율과 3점슛 성공률은 매년 상승하고 있다.

2018-2019시즌부터 요키치는 올스타에 뽑히고 있으며 2019년에는 올-NBA 퍼스트 팀에, 2020년에는 올-NBA 세컨드 팀에 이름을 올렸다. 이만하면 언제 MVP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었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2020-2021시즌의 요키치는 또 다른 경지에 오른 선수라는 느낌을 줬다. 단순 숫자만 해도 이전 시즌들과 격이 또 달랐다. 평균 26.4점 10.8리바운드 8.3어시스트를 기록햇다.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모든 부문에서 대단한 기록을 만들어냈다. 지난 시즌까지의 요키치가 “슛을 너무 자제하고 패스만 하려 한다”는 논란이 있었을 정도로 폭발력에 다소 아쉬움이 있는 느낌이었다면(물론 요키치에 대한 기준 자체가 높으니 나오는 말이다. NBA에서 평균 20점을 하는 빅맨을 누군들 마다하겠는가.), 올 시즌의 요키치는 그 논란마저 완전히 잠재워버렸을 정도로 폭발력, 화려함, 안정감, 효율성을 겸비한 ‘완전체’였다.

현대농구에서 트리플 더블을 상징하는 선수는 단연 러셀 웨스트브룩이다. 웨스트브룩은 올 시즌도 평균 트리플 더블을 달성하면서 데뷔 후 4번째로 이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오스카 로버트슨의 통산 트리플 더블 기록도 결국 뛰어넘었다. 웨스트브룩의 이 같은 트리플 더블 생산력은 가드답지 않은 리바운드 능력에서 나온다. 엄청난 점프 높이와 리바운드 기회 포착 능력을 활용한 웨스트브룩의 수비 리바운드 가담은 팀 전체의 경기 템포를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빅맨들의 수비 리바운드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를 낳는다.

웨스트브룩이 가드의 범주를 벗어난 리바운드 능력을 가졌다면, 요키치는 빅맨의 범주를 벗어난 어시스트 능력을 가졌다.

사실 NBA 역사에서 뛰어난 패싱 능력을 갖춘 소위 ‘패싱 빅맨’ 혹은 ‘포인트 센터’는 종종 등장했다. 2000년대 이후를 기준으로 보면 도만타스 사보니스의 아버지 아비다스 사보니스부터 올 시즌을 앞두고 새크라멘토 사장직에서 경질된 밀레니엄 킹스의 블라디 디바치, 당시 디바치와 함께 호흡을 맞췄으며 2021 명예의 전당 입성이 최근 확정된 크리스 웨버가 있었다. 2010년대 이후부터는 드레이먼드 그린도 패싱 빅맨으로서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아웃렛 패스로 카테고리를 한정하면 케빈 러브가, 킥아웃 패스로 카테고리를 한정하면 샤킬 오닐, 팀 던컨, 케빈 가넷 역시 패스 센스가 좋았다. 데뷔할 때는 야생마 같은 빅맨이었다가 갈수록 포워드스러운 선수로 바뀐 블레이크 그리핀도 시즌 평균 어시스트가 5개를 상회할 정도로 패싱 게임에 능했다.

하지만 요키치는 이들과도 궤를 달리하는, 차원이 다른 패싱 빅맨이다.

요키치의 패스는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는다. 패스가 나올 것 같지 않은 각도와 타이밍에 패스가 나오고 그 패스는 곧잘 득점으로 연결된다. 농구도사 같은 요키치의 패스 게임은 곧 덴버의 게임 플랜에도 영향을 미쳤다. 요키치의 존재로 인해 굳이 패싱 게임이 되는 가드나 포워드가 없어진 덴버는 요키치를 2대2 게임의 핸들러로 활용하기도 했고, 핸드오프 게임의 컨트롤 타워로 활용하며 그 능력을 극대화했다.

올 시즌 덴버는 자말 머레이를 비롯한 가드진 핵심 자원들의 부상, 부진으로 고민이 많았다. 시즌 초반에는 적지 않은 로스터의 변화로 인해(메이슨 플럼리, 제라미 그랜트 등의 이적) 수비 조직력이 흔들리며 어이없게 패하는 경우도 많았다. 시즌 중반에는 자말 머레이가 전방십자인대 파열로 시즌아웃돼 버렸다.

하지만 요키치의 존재로 인해 덴버는 서부 3위라는 훌륭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칠 수 있었다. 머레이의 부상 직전에 이뤄진 애런 고든 트레이드, 마이클 포터 주니어의 후반기 대폭주 등이 긍정적인 영향을 준 변수였지만, 궁극적으로는 니콜라 요키치의 압도적인 퍼포먼스가 덴버의 선전과 서부 3위 등극의 기반이었다. 자말 머레이의 시즌 아웃 이후 치른 24경기에서 덴버는 단 5경기만 패했다. 요키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후의 전 경기 MVP, 니콜라 요키치 그리고 코비 브라이언트

니콜라 요키치가 조엘 엠비드, 스테픈 커리 같은 다른 MVP 후보들에 비해 내세울 수 있는 확실한 기록이 또 하나 있다. 바로 72경기 출전이다.

물론 전 경기 출전은 MVP 수상의 조건이 아니다. MVP는 개근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MVP는 기본적으로 개인 성적이 뛰어난 상황에서 팀 성적까지 받쳐줬을 때 수상 가능성이 생긴다. 전 경기 출전과 MVP의 상관 관계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올 시즌 NBA가 상상 이상의 빠른 시즌 개막으로 인해 부상자가 속출하고 실제로 대부분의 슈퍼스타들이 부상을 안고 뛰거나 부상으로 결장하는 경기가 많았던 점을 고려하면 요키치의 72경기 전 경기 출전은 매우 특별하게 다가온다. 심지어 요키치는 지난해 플레이오프에서 서부 결승까지 시리즈를 소화하면서 오프시즌을 그리 여유롭게 보내지 못한 상태였다. 요키치의 지난해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는 9월 27일이었고, 불과 세 달 뒤 NBA는 2020-2021시즌을 공식 개막했다. 혹자는 요키치가 짧은 오프시즌과 터프한 일정에도 별다른 부상 없이 건강하게 시즌을 소화할 수 있었던 비결을 체중 감량으로 꼽기도 한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어쨌든 요키치의 72경기 출전은 다른 후보들(엠비드 51경기, 커리 63경기)에 비해 확실히 메리트가 있어 보이는 대목이다.

니콜라 요키치가 2020-2021 정규시즌 MVP를 수상하면 요키치는 13년 만에 NBA에 등장한 전 경기 출전 MVP가 된다. 요키치 이전의 마지막 전 경기 출전 MVP는 2007-2008시즌의 코비 브라이언트였다.

2000년대 중반 기량이 절정에 오른 코비는 2007-2008시즌에 82경기에 모두 출전해 평균 28.3점 6.3리바운드 5.4어시스트 야투율 45.9%를 기록했다. 코비의 활약 속에 레이커스는 서부 1위를 차지했고, 2004년 이후 4년 만에 NBA 파이널 무대도 밟았다. 바로 다음 시즌인 2008-2009시즌에도 코비는 82경기를 모두 출전했고, 파이널에서 꿈에 그리던 에이스로서의 첫 우승을 맛봤다.

 

‘로드 매니지먼트’라는 단어가 등장해 논란의 중심에 설 정도로 리그 전체에 관리를 위한 결장 선택이 만연해 있는 NBA다. 올 시즌은 플레이-인 토너먼트 제도 도입으로 그 정도가 다소 약해졌지만,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각 팀은 에이스들의 체력과 부상 위험을 관리한다는 명목 하에 전미에 중계되는 빅매치에도 에이스를 빼버리는 선택을 거리낌 없이 했다. 슈퍼스타를 볼 수 있다는 설렘을 안고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실망하는 일이 잦아진 것은 당연했다.

때문에 요키치가 전 경기 출전 MVP로 이름을 올리는 것은 그 자체로 꽤나 신선하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적어도 요키치는 올 시즌 경기장을 찾은(코로나 19로 제한이 많긴 했지만) 팬들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이것이 요키치가 MVP를 수상해야 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와 별개로 상당히 특별한 일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요키치는 심지어 시즌 성적과 무관했던 17일 포틀랜드와의 정규시즌 최종전에도 출전했다. 모든 경기에 출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때마침 17일에 열린 2020 명예의 전당 연설 행사에서 故코비 브라이언트의 부인 바네사 브라이언트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남겼다. 바네사는 ‘최후의 전 경기 출전 MVP’ 코비가 갖은 부상에서도 결장하지 않고 빠짐없이 경기에 출전했던 사연을 이렇게 설명했다. 관리의 시대를 살아가는 일부 선수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는 코멘트다.

“이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야기입니다만, 코비가 수많은 부상과 통증 속에서도 경기에 모두 출전했던 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코비는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선수(마이클 조던)를 직접 보기 위해 아버지와 경기장 맨꼭대기층 좌석에 앉아 경기를 관람했던 추억을 잊지 않고 있었어요. 코비는 팬들을 실망시키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자신을 보기 위해 돈을 모아서 300번 섹션(경기장 맨꼭대기 구역)의 좌석을 예매한 어린이 팬들을 말이죠. 코비는 그 어린이들이 어린 시절의 자신과 똑같은 흥분을 안고 경기장에 왔다는 걸 잘 알고 있었어요.”

“한 번은 제가 코비한테 말했어요. 그렇게 부상이 고통스러운데 왜 결장하지 않냐고요. 코비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내 플레이를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돈을 모아서 오는 팬들은 그럼 어떡해?’ 코비는 팬들을 절대 잊은 적이 없어요. 팬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코비는 48분을 모두 뛰었을 사람이에요. 코비는 팬 여러분을 정말 사랑했습니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