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의 깔깔농구] 23년 전 오늘, 조던은 왜 은퇴했을까
[루키] 이승기 기자 =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3년 전, '농구황제'가 최정상의 자리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1993년 10월 6일(이하 현지시간)은 스포츠 팬들에게 굉장히 충격적인 날로 기억된다. 최전성기를 누리던 '농구의 신' 마이클 조던(53)이 돌연 은퇴를 선언한 날이기 때문이다.
당시 조던의 나이는 만 30세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조던은 대체 왜 갑작스레 은퇴를 발표한 것일까. 조던의 첫 번째 은퇴 23주년(23은 조던의 등번호이기도 하다)을 맞아, 당시를 조명해봤다.
파이널 MVP 3회 : 1990-91, 1991-92, 1992-93
정규리그 MVP 3회 : 1987-88, 1990-91, 1991-92
올-NBA 퍼스트 팀 7회 : 1986-87 ~ 1992-93
올-NBA 세컨드 팀 1회 : 1984-85
올-수비 퍼스트 팀 6회 : 1987-88 ~ 1992-93
득점왕 7회 : 1986-87 ~ 1992-93
스틸왕 3회 : 1987-88, 1989-90, 1992-93
올해의 수비수 : 1987-88
올스타전 9회 출전 : 1985 ~ 1993
올스타 MVP 1회 : 1988
슬램덩크 대회 우승 2회 : 1987, 1988
AP 올해의 운동선수 3회 : 1991, 1992, 1993
1. 동기부여의 결여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은 당시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며 은퇴의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그랬다. 조던은 만 30살의 나이로 이미 모든 것을 이룬 상태였다. 당시 기준으로, 조던이 데뷔 후 9년 동안 이룬 내역들이다.
NBA 3년 연속 우승 : 1990-91, 1991-92, 1992-93
파이널 MVP 3회 : 1990-91, 1991-92, 1992-93
정규리그 MVP 3회 : 1987-88, 1990-91, 1991-92
올-NBA 퍼스트 팀 7회 : 1986-87 ~ 1992-93
올-NBA 세컨드 팀 1회 : 1984-85
올-수비 퍼스트 팀 6회 : 1987-88 ~ 1992-93
득점왕 7회 : 1986-87 ~ 1992-93
스틸왕 3회 : 1987-88, 1989-90, 1992-93
올해의 수비수 : 1987-88
올스타전 9회 출전 : 1985 ~ 1993
올스타 MVP 1회 : 1988
슬램덩크 대회 우승 2회 : 1987, 1988
AP 올해의 운동선수 3회 : 1991, 1992, 1993
이처럼 조던에게는 더 이상 증명할 것이 남지 않은 상태였다. 이때 이미 조던은 '역대 최고의 선수'라는 찬사를 듣고 있었다. 항상 무언가에 도전해 온 조던이었지만,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어지자 의욕을 잃게 된 것이었다.
2. 아버지의 죽음
1993년 6월 23일,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이 일어났다. 마이클 조던의 아버지인 제임스 조던이 고속도로에서 두 명의 무장강도를 만나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조던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조던은 누구보다 아버지를 믿고 따랐던 아들이었다. 이들의 관계는 매우 돈독했다. '멘토'였던 아버지의 사망에 조던은 좀처럼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은 사실이지만, 한 가지 루머도 있었다. 당시 강도들이 조던의 아버지를 살해한 이유가 바로 '마이클 조던의 농구화'를 사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조던이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생각하며 좌절했다는 것.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자책감과 농구에 대한 회의감 등을 느낀 조던이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는 소문이었다.)
3. 도박 파문
조던은 평소 도박과 골프를 즐겼다. 지나친 승리욕 때문에, 농구를 하지 않을 때에도 항상 뭔가에 집중할 것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도박과 골프에 더 탐닉하게 됐다.
심지어 플레이오프 기간에도 도박을 즐겨 물의를 빚었다. 1993 플레이오프 도중 『뉴욕 타임스』는 조던이 얼마나 도박에 빠져 살았는지를 보도,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를 두고 당시 여러 가지 소문이 돌기도 했다. 조던이 승부조작 및 불법도박을 했다는 이야기, 마피아 관련설 등 각종 루머가 창궐했다. 당연히 모두 근거없는 낭설이었다.
이 도박 스캔들 또한 조던의 은퇴에 영향을 미쳤다는 가설이 나오기도 했다. 극성스러운 언론과 세간의 관심에 시달리자, 심신이 지친 조던이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는 것이다.
4. 도전정신
조던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고교시절 키가 작다는 이유로 농구팀 엔트리에서 탈락했을 때가 시작이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던 조던은 피나는 훈련을 거듭했고, 엄청난 기량 향상을 이뤄냈다.
NBA에 입성한 후에도 조던의 도전은 계속됐다. "이기적"이라는 비판을 듣자 포인트가드로 변신해 신들린 패스를 선보이는 등 트리플-더블 머신으로 거듭났다, "수비가 약하다"는 비판에는 '올해의 수비수' 수상으로 응수했다. "조던은 우승할 수 없다"는 비판에는 '리그 3연패'로 대답했다.
이렇게 조던은 모든 것을 이뤄냈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더 이상 농구계에서는 이룰 것이 없었다. 더 농구를 해야할 의욕을 잃은 조던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바로 야구였다.
조던은 어린 시절 야구와 농구를 병행했다. 농구선수가 아니라 야구선수가 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한 적도 있다고 한다. 조던의 아버지 제임스 조던 또한 마이클 조던이 야구선수가 되길 바랐다는 후문.
조던은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계약한 후,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다. 평생을 농구만 하던 사람이 마이너리그에 데뷔한 것은 그의 스포츠 재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물론 불스의 구단주인 제리 레인스도프가 화이트삭스의 소유자이기도 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던은 야구로는 큰 재미를 못봤다. 하지만 실력 대비 역사상 유래가 없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분명하다. 모두가 그를 취재하기 위해 안달이 났다. 당시 조던 때문에 마이너리그 경기가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기도 할 정도였다.
1994년, 메이저리그 파업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조던은 1995년 3월 5일, 야구를 그만뒀다. 야구를 시작한지 1년 26일 만의 일이었다.
★ I'm Back
그리고 조던이 돌아왔다. "I'm Back"을 외치며.
조던은 야구판을 떠난지 정확히 2주만에 농구 코트에 복귀했다. 1995년 3월 19일, 조던은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원정경기에 출전해 팬들을 열광시켰다.
조던은 복귀전에서 19점(FG 7/28, 25.0%)으로 부진했다. 하지만 감을 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복귀 후 다섯 번째 경기에서 55점을 폭발시키며 팀 승리를 주도, '농구황제'의 부활을 알렸다.
이후는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조던은 1995-96시즌부터 시카고를 이끌고 리그 3연패에 성공, 그야말로 신화를 이룩했다. 이후 1997-98시즌 종료 후 두 번째 은퇴, 2001-02시즌 복귀한 뒤 2002-03시즌을 끝으로 최종 은퇴를 선언했다.
조던은 농구라는 스포츠를 넘어 '글로벌 아이콘'이자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군림했다. 이후 그 어떤 스포츠 스타도 조던만큼의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우리가 조던을 그리워하는 이유다.
이승기 기자(holmes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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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나이키
일러스트 제공 = 홍기훈 일러스트레이터(incob@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