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승균의 클러치] 모자람 없었던 KGC, 3경기 만에 시리즈 정리
[루키=추승균 칼럼니스트] 정규리그 3위 안양 KGC인삼공사가 6위 부산 KT를 제압했다. KGC는 15일, 부산사직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을 가져가며 6강 플레이오프를 3경기 만에 끝냈다.
플레이오프 이전에도 KGC의 우세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 한 경기도 내주지 않고, 3차전에서 시리즈를 끝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각자의 역할에서 모자람이 없었던 KGC
우선은 선수들이 자기 역할을 얼마나 해주느냐의 충실함에서 차이가 갈렸다.
KGC는 공격에서 제러드 설린저에 대한 쏠림 현상이 있긴 했지만, 각 포지션에서 자신들이 해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놓치지 않았다. 공수에서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인 KT와 달랐다.
플레이오프와 같은 단기전은 흐름 싸움이다.
리바운드나 루즈볼 싸움 같은 궂은일을 얼마나 철저히 해주느냐, 혹은 턴오버를 아끼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경기를 마친 후 어느 정도 정비의 여유가 있는 정규리그와 는 분명히 다르다. 흐름을 잘못타면 그 영향이 다음 경기까지 직간접적으로 이어진다.
KGC는 지난 두 경기에서 필요할 때마다 중요한 리바운드와 루즈볼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다. 반면 KT는 흐름을 가져올 수 있는 상황마다 턴오버가 반복됐다.
1차전과 2차전을 판박이처럼 똑같은 형태의 역전승으로 KGC가 가져갔다. 정규리그에서 3승 3패 박빙을 보인 두 팀이지만, 안양에서의 두 경기는 한 팀에게 자신감을, 다른 팀에게는 조급함을 남겼고, 이것이 3차전에서도 결과로 나타났다.
KT는 3차전에서 너무 많은 자유투를 놓쳤다. KT는 3차전에서 31개의 자유투를 시도해 11개를 놓쳤다. KGC의 자유투 시도가 단 12개(9개 성공)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많은 자유투를 놓친 것이다.
자유투만 충실했어도 KT가 3차전은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흐름을 가져갈 수 있었던 상황에서 ‘공짜 득점 기회’인 자유투를 놓치면서, 오히려 분위기가 나빠졌다.
컨디션 문제도 있었겠지만, 자유투 불발의 원인도 조금함이었다고 본다. 심리적으로 쫓기고 급해지면 슛 밸런스가 흐트러진다. 경기 초반부터 KT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이런 조급함을 보였고, 이는 자유투에서 너무 많은 미스샷을 만들었다.
단기전의 열쇠는 역시 수비
수비의 차이도 중요한 부분이다.
단기전에서는 수비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공격에는 확률이 존재하고, 기복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수비는 다르다. 거칠고 강한 수비를 자랑하는 KGC의 강점은 이번 시리즈에도 이어졌다.
특히 KGC는 정규리그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다운 디펜스로 KT를 괴롭혔다.
KT의 에이스인 허훈은 정규리그 KGC와의 경기에서 자기 득점도 챙겼지만, 자신의 공격을 활용해 양쪽 측면의 찬스를 많이 만들었다.
그런데 KGC는 이번 시리즈에서 이 부분을 보완했다. KT의 2대2 플레이 때, 다운 디펜스를 통해 상대의 공격 타이밍을 늦췄고, 측면을 내주지 않았다.
KGC와는 달리, 수비가 고질적인 약점인 KT는 이번에도 그 아킬레스건을 극복하지 못했다.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맞춤형 수비가 필요한데, 그런 모습이 부족했다. 정규리그와 큰 차이가 없었다.
공격이 안 될 때는 수비를 통해 흐름을 찾아야 하는데, 공격이 안 되면 수비도 덩달아 무너져버리니 방법을 찾기가 어려웠다.
한 번 수비가 흐트러지면 짧은 시간에 상대에게 정신없이 실점을 했던 KT의 모습은 시리즈 초반에 기선을 제압당하는 이유가 됐다.
설린저와 브라운의 명암
외국 선수의 기량 차이는 어쩌면 양 팀의 희비가 가장 크게 엇갈린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설린저는 확실히 ‘급이 다른 선수’다.
이번 시즌, KBL에 수준 높은 외국 선수들이 많이 들어왔지만 설린저는 분명 그 보다도 높은 수준의 농구를 펼친다. 내외곽을 모두 공략하며 경기를 운영하는 선수다. 코트 안에서 스스로 체력을 조절할 줄도 안다. 긴 시간을 뛰었지만, 무리없이 안배했기 때문에, 경기 내내 지배력을 유지했다.
KT의 경우, 클리프 알렉산더는 충분히 제 몫을 했다고 본다. 팀 내 2순위 외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알렉산더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브랜든 브라운이다.
좋은 기량을 갖추고 있지만, 경기 외적인 부분, 그리고 멘탈 관리 면에서의 약점을 이번에도 드러냈다. KBL에서 4번째 시즌을 보내면서도 모두가 아는 단점을 끝내 고치지 못했다.
브라운은 준수한 활약을 펼쳤음에도 KBL에서 소속팀과 재계약을 한 번도 못했다. 거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나 역시 KCC시절 브라운을 데리고 있었지만, 정말 관리가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다른 지도자에게 추천하겠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선수가 브라운이다.
KT 서동철 감독도 이를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브라운을 영입하던 시점에는 여유가 없었을 것 같다. 팀이 연패 중이었고, 당장 외인 부분의 공백을 채우지 못하면 정규리그 순위 싸움이 물 건너 갈 판이었다.
긴급하게 수혈된 브라운은 연승을 이끌며 KT의 6강행에 분명히 공헌을 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힘들었다.
KT는 3차전에서 브라운보다 알렉산더를 중용했다.
어쩌면 1옵션 외국 선수는 KBL에서 팀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러나 KT는 그 1옵션 외국 선수를 3차전에서 마음껏 활용할 수 없었다. 펄펄 나는 설린저의 수준 높은 농구를 보며, KT로서는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인상적이었던 전성현과 문성곤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득점을 올리는 설린저를 이번 시리즈 최고의 선수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성현을 MVP로 꼽고 싶다.
설린저의 득점력이 대단하긴 했지만, 혼자 폭발해서 이기기는 쉽지 않다. 시리즈 내내 KGC 국내 선수들의 득점은 기복이 있었다. 하지만 1-2차전에서 고비마다 전성현이 설린저와 함께 공격을 이끌었다.
꼭 필요할 때 한 방을 꼬박꼬박 터뜨려 준 전성현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설린저의 분전 속에서도 KGC가 앞선 두 경기를 모두 역전승으로 가져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번 시리즈는 1-2차전에서 KGC가 연승을 거두면서 사실상 승부의 추가 기울었다. 설린저와 함께 그 두 경기에서 공격을 이끈 전성현의 활약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었다.
문성곤 역시 꼭 언급해야 하는 선수다.
KGC가 분위기를 가져오는 순간에는 항상 문성곤이 있었다. 단순하게 보자면 설린저의 꾸준한 지배력 속에 공격은 전성현, 수비는 문성곤이 잘해줬다.
문성곤은 적극적인 수비와 함께 결정적인 리바운드를 건져냈고, 이를 통해 KGC가 가져간 포인트는 단순히 한 골의 차이가 하니라 경기 전체의 흐름과 팀의 사기를 뒤집는 역할을 했다.
팀 선배 양희종이 과거 큰 경기에서 보여줬던 모습을 문성곤이 이번 시리즈에서 여실히 보여줬다.
반면 KT는 양홍석의 부진이 아쉬웠다.
3차전에서는 적극성을 보여줬지만, 1-2차전에서의 양홍석은 아쉬움이 많았다. KT가 전체적으로 KGC보다 선수들의 경험에서 밀렸는데, 어린 선수인 양홍석도 이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양홍석은 충분히 좋은 기량을 갖춘 훌륭한 선수다. 하지만 오른쪽을 활용하는 플레이의 빈도가 너무 높다.
플레이오프 정도 되면, 상대 키 플레이어에 대한 현미경 분석이 이루어진다. 양홍석의 플레이가 거의 오른쪽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KGC에게 충분히 파악된 상황이었다. 왼쪽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공간을 이용해 움직이면서 하는 플레이에는 강점이 있지만, 멈춘 상황에서 펼치는 일대일은 더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리그를 대표하는 젊은 선수이며, 지금도 충분히 높은 경쟁력을 갖춘 장래성 있는 선수인 만큼 이런 부분이 보완되면 앞으로 더 대단한 선수가 되리라 생각한다.
‘윌리엄스 활용’과 ‘앞선의 우위’ 필요한 KGC
시리즈를 일찍 마친 KGC는 4강 플레이오프에 선착한 울산 현대모비스의 우위를 최소화하는데는 일단 성공했다. 하지만 먼저 올라가서 경기를 지켜보며 준비하고 있던 현대모비스보다 불리한 위치해서 시리즈를 시작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는 라타비우스 윌리엄스의 역할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설린저가 아무리 노련하게 자신의 체력을 안배한다 해도 경기를 거듭하면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 피지컬에 강점이 있는 빅맨 외국 선수가 등장하는 앞으로의 승부에서는 설린저의 체력 소모가 KT전보다 심할 것이다.
아무리 설린저라 해도, KT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플레이타임과 지배력을 이후로도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윌리엄스가 설린저의 부담을 얼마나 덜어줄 수 있느냐는 KGC에게 중요한 과제가 될 것 같다.
또한 앞 선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이 나와야 시리즈에서 우위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대모비스의 이현민은 베테랑이고, 서명진은 젊은 선수다. 이재도, 변준형 등 KGC의 앞 선이 활동량과 안정감, 공격력 등 여러 면에서 이들을 괴롭혀야 한다. 그래야 KGC가 생각하는 그림이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그려지지 않을까 한다.
사진 = KBL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