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여신] 원주에 뜬 첫사랑 기억 조작 여신, 우수한 치어리더
[루키=원석연 기자] 이번 시즌 개막전에서 데뷔한 21살 그녀는 이런 촬영이 처음이란다. 당연히 매거진 인터뷰도 처음이다. 처음 카메라를 볼 때만 해도 졸업사진을 찍는 고등학생처럼 얼어있더니만, 셔터 소리가 몇 번 들리자 이내 특유의 ‘웃상’으로 생글생글 웃는다. <월간여신> 코너를 몇 년째 진행하고 있지만, 이만한 입꼬리 미인은 또 처음이다. 상큼한 미소로 보는 이들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 조작을 유발하는 그녀, 우수한 치어리더를 <루키 더 바스켓>과 만나보자.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21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우수한 이름
그녀는 스튜디오에 일찌감치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촬영은 물론 이런 인터뷰도 처음이라며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가 그렇게 공손할 수 없다. 귀여우면서도 참한 매력이 상견례 프리패스상에, 아이돌로 치면 ‘덕몰이’도 꽤나 할 상이다. 얼굴만 봐도 좀처럼 한번 보고 잊기 어려울 듯한데 거기에 이름까지 독특하다.
“부모님이 절에서 받아 지어주셨어요. 한번 들으면 신기해서 안 까먹을 이름이잖아요? 어렸을 적에는 하도 이름으로 놀림을 많이 받아서 별로였는데, 지금은 좋아요. 특히 치어리더가 되고 나서는 더 좋아요. 팬분들도 관계자분들도 다들 빨리 기억해주시더라고요.”(웃음)
이름 얘기하는 게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내내 생글생글 웃는다. 원래 그렇게 웃는 상이냐 물으니 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단장님도 제가 처음 들어왔을 때 ‘너는 말보다 웃음이 더 많다’고. 하하. 원래 잘 웃어요.”
그녀는 올 시즌부터 원주 DB 프로미에서 치어리더를 시작한 새내기다. 햇수로는 2년째인데, 아직 한 시즌도 제대로 소화하지 않은 새내기 중의 새내기다. 그러나 하필 데뷔 시즌에 코로나19로 인해 농구장이 무관중 혹은 10% 관중으로 제한되면서 응원단상이 삭막해졌다. 팬들과 만날 기회가 줄어들었을 뿐더러 얼굴에는 마스크가 씌워져 그녀의 치명적인 무기인 ‘웃상’ 또한 가려졌다.
그러다 지난해 12월이었다. DB를 담당하는 본지 모 기자와의 인터뷰가 인터넷에 올라갔고, 모처럼 공개된 그녀의 마스크를 벗은 청량한 미모에 팬들은 그대로 취향을 저격당해버렸다. 기사는 SNS와 커뮤니티에 퍼졌고, 그녀의 인스타그램 팔로우 수는 며칠 만에 두 배가 넘게 껑충 뛰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인스타그램 팔로우 수가 엄청 늘어나는 거예요. ‘~~가 팔로우했습니다’, ‘~~가 사진을 좋아합니다’ 알람이 종일 안 없어져서 저는 처음에 해킹당한 줄 알았어요.(웃음) 진짜 그런 줄 알고 비밀번호도 바꾸고 2차 보안도 설정했다니까요. 그런데 알고 보니 기사 때문이었어요.”
치어리더가 된 계기는 원래 스포츠를 좋아했다고. 솔직히 말하면 그녀의 첫사랑은 농구가 아닌 야구였단다. 현재 소속인 그린엔젤스가 여름이 되면 응원하는 야구팀 LG 트윈스의 팬으로 스포츠에 빠졌다고.
“제가 우리 집에서 첫째예요. 둘째 여동생이 있고, 막내가 남동생인데 막내가 야구를 했어요. 그래서 동생 따라다니다가 저도 야구에 푹 빠지게 된 거죠. 그렇게 스포츠에 관심이 생겨서 이것저것 보다가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 치어리더 언니들이 보이는 거예요. 너무 멋져 보여서 바로 지원했죠.”
“처음에는 엄청 어려웠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부터 춤을 춰 본 적이 없었거든요. 지원서를 내고 면접도 본 다음 ‘일단 한번 나와 봐라’라고 하셔서 연습실에 나갔어요. 제가 상상한 치어리딩은 이제 그런 노래들 있잖아요. <질풍가도>나 <그대에게> 같은? 그런 응원 춤만 상상하면서 갔는데, 그날 처음 췄던 춤이 제시 노래의 춤이었어요. ‘와, 이건 못하겠다’ 싶어서 말씀드리려 했는데 단장님께서 한번 해보자고 하셔서 남게 됐어요.(웃음) 지금도 춤은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어요. 특히 3쿼터 때 나오는 <승리의 약속>이라는 노래가 있거든요. DB 팬분들은 아실 거예요. 그 노래가 나오면 관중분들이 다 같이 일어나서 함께 부르거든요. 그때 관중분들이 일어나시면 저도 떨리고 가슴이 웅장해져요.”
잠깐만요. 아니, 지금 10% 밖에 없는데도 관중분들이 일어나면 떨린다고요?
“아 그럼요! 저는 많은 관중을 본 적이 없잖아요.(웃음) 10%도 저한테는 엄~청 많아 보여요. 아~ 왜 웃으세요! 진짜라니까요.”
구수한 별명
치어리더가 되고 나서 그녀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평범한 새내기 대학생이었던 그녀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앞서 말한 갑자기 늘어난 SNS 팔로워 수도 그렇고, TV나 유튜브 혹은 이 기사처럼 잡지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치어리더하고 제일 좋은 건 많은 사람을 만났다는 거? 제가 활동 반경이 좁거든요. 동네에서도 만나는 친구들도 많지 않고. 그런데 여기서 우리 팀원들만 벌써 10명을 알았고 또 팬분들도 이제 많이 알게 됐잖아요? 특히 치어리더는 경기에서 이기거나 질 때 그 감정을 주위 사람들과 함께 느낀다는 게 다른 직업들보다 더 특별한 거 같아요.”
함께 지낸 시간은 길지 않지만, 언니들로부터 별명도 생겼다. 특이한 이름 덕분에 별명도 특이하다.
“원래 친구들은 수달이라고 불렀어요. 아, 수달 닮아서가 아니라 이름 때문에 그런 거예요. (닮았는데…) 아니라니까요!(웃음) 얼마 전에는 팀에서 새 별명도 만들어 주셨어요. 저희가 안무 대형을 짤 때 위치를 숫자로 부르고 뒤에 이름을 붙이거든요. 예를 들어 1번 영현, 2번 다혜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제가 마침 9번이었어요. 부르다 보니 구수한이 되더라고요. 다들 빵 터졌어요. 그때부터 구수한이라고 불러주셨어요.”
치어리더가 되고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 대부분 치어리더가 그렇듯 데뷔전이었다고. 그녀의 데뷔전은 지난 10월 9일 열린 DB의 홈 개막전이었다.
“사실 저희가 요새는 좀 많이 지고 있긴 한데… 그때는 이겼어요. 개막전인데,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던지… 오프닝만 하고 눈 깜빡하니 경기가 끝나더라고요. 경기가 끝난 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다들 나가더라고요. (틀리지는 않았어요?) 아, 저희가 그땐 무관중이었어서 다른 공연은 없고 오프닝 행사만 했어요. (아니, 오프닝밖에 안 했는데 시간이 빨리 갔다는 거였어요?) 네… 진짜 빨리 갔는데… 아, 깃발도 흔들었어요! 깃발이 엄청 무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데뷔할 때만 해도 농구를 아예 몰라 코트 위에서 정신이 없었다던 그녀는 이제는 제법 코트에서 침착함이 생겼단다. 본인 말로는.
“이제 좀 알아요. 3점슛하고 2점슛이 다르다는 정도?(웃음) 그 심판님들이 애매한 장면에서 비디오 판독을 하시잖아요? 경기장에서 스크린에 화면이 뜨면 저도 유심히 보거든요. 그런데 눈으로 보고도 누구 공인지 모를 때가 너무 많아서 속상해요. 저도 같이 판독하고 싶은데…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제가 농구를 했었어요. 근데 그땐 농구하기 싫어서 맨날 선생님한테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졸랐거든요. 하,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열심히 배워 두는 건데.”
미간을 찌푸리고 스크린을 보고 있을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 웃기다. 잘 모르겠을 땐 스크린 말고 홈 관중들을 보라고 조언해줬다. 대충 그분들이 좋아하시면 우리 공, 조용하시면 남의 공이라고.
“처음에는 정말 하~나도 몰랐는데, 이제는 뭐랄까 정이 많이 붙었어요. 농구랑. 동생이 학교 체육 시험에 농구 문제가 나오면 저한테 물어보거든요? 문제를 보면 분명히 경기장에서 들은 건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답은 못 맞히고 그냥 안다고만 해요.”(웃음)
“그래도 좋아하는 선수도 있어요. 저는 이용우 선수가 좋아요. 등번호가 30번이신데, 저도 30번이거든요. 원래 30번을 달던 두경민 선수를 좋아했는데 번호를 바꾸셨어요.(웃음) 그리고 저도 올 시즌부터 팀에 왔는데, 이용우 선수도 올해 입단한 신인이에요.”
무관중으로 삭막한 코트에서도 이렇게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나름의 재미를 찾고 있는 새내기 그녀. 그러나 우수한 치어리더에게도 역시 힘든 점은 있다고.
“아무래도 친구들 만나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좀 힘들죠. 친구들이랑 저녁 한번만 먹어도 저희끼리 ‘소확데(소소하지만 확실한 데이트)’라고 좋아했는데, 치어리더를 하니 그 ‘소확데’ 한번 하기가 정말 어렵더라고요. 게다가 최근에는 거리두기 때문에 다들 9시에 문을 닫아서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들어요.”
소확데를 가장 확실하게 즐기는 법은 역시 먹는 것이란다.
“제가 먹는 걸 좋아하거든요.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랑 쭈꾸미? 매운 걸 못 먹는데 또 좋아해요.(웃음) 아, 아이스크림도 많이 먹어요. 아이스크림 선물 받을 때가 기분 제일 좋아요. 싫어하는 건 콩이요. 콩으로 만든 건 다 안 좋아해요. 두부나 그런 것들. 팥도 싫어요. (팥빙수도 안 먹어요?) 네. 과일 빙수 먹어요.(웃음) 아니면 친구들이랑 같이 먹을 땐 꼭 팥을 따로 달라고 해요.”
친구들과 만나기 어려운 요즘 같은 때는 집에 있는 것도 좋아한단다. 좋아하는 게임도 있다.
“코로나가 아니어도 사실 원래 휴일에는 거의 집에 있는 편이에요. 제가 집이 파주라서 팀 언니들이랑 만나기도 어렵고… 동네 친구들도 많이 없고 다들 제가 쉴 땐 바쁘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집에서 핸드폰으로 루미큐브하고 그래요. 그런데 이게 외국 어플이라서 외국인들도 많거든요? 하, 그런데 외국인들을 만나면 꼭 제한시간 60초를 꽉꽉 다 쓰더라고요. 마음 급한 한국인들은 1초 만에 딱딱 하는데.(웃음) 그래서 방에 들어갈 때 ‘제발 한국인 만나라’하면서 들어가요.”
정말 소소하지만 확실한 루미큐브 꿀팁 감사합니다. 그렇게 루미큐브를 하다가 게임이 질리면 곧장 유튜브를 켠다. 최근 그녀가 푹 빠져 있는 유튜브는 ‘로하’라는 채널이다.
“로하라고 20대 주부의 브이로그 채널이 있어요. 집안일 하고 일상 나오는 그런 채널이에요. (벌써 결혼에 관심 있어요?) 아니 아니요! 그런 게 제가 안 하는 일이다 보니까 신기하더라고요. 저랑 같은 20대가 저런 걸 척척 한다는 게 재밌고 계속 보게 되더라고요. (집안일이 신기하면 오늘 집 가서 엄마 아빠 집안일 도와주세요) 그렇죠… 하면 되는데… 하하.”
마냥 스포츠가 좋아서 덜컥 시작한 치어리더지만, 어느새 그 첫 시즌도 반환점을 돌아 막바지에 다다르게 됐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고 웃으면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일에 대한 욕심과 고민도 많아진다고 고백하는 그녀.
“저는 사실 춤이나 무대가 좋아서 치어리더를 시작한 게 아니라 그저 스포츠가 좋아서 시작한 거라 처음에는 뭐 어떻게 되겠다, 누구처럼 되겠다 그런 욕심은 없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계속해서 코트 위에 서고, 연습을 하다 보니까 더 잘 되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것 같더라고요. 팬분들을 가까이서 만나긴 어렵지만, SNS로 응원 메시지가 늘어날 때마다 힘도 더 나요. 이런 팬분들을 경기장에서 많이 뵙지도 못했는데 벌써 시즌이 끝나간다는 게 너무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남은 경기들은 더 열심히 하려고요.(웃음) 꽉 찬 경기장에서 마스크 벗고 제대로 인사드릴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팬 여러분! 그때까지 제 이름 잊지 말고 꼭 기억해 주셨다가 경기장에서 불러주세요~”
사진 = 이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