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케빈 가넷, 커리어 돌아보기 ①미네소타편
2016-09-25 이민재
[루키] 이민재 기자 =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케빈 가넷(40, 211cm)은 24일(한국시간) 자신의 SNS에 'Farewell(작별)'이란 글과 동영상을 올리며 은퇴를 알렸다. 1995-96시즌 데뷔한 가넷은 지난 시즌까지 총 21시즌을 코트에서 활약한 뒤 작별을 고했다.
그는 미네소타로 데뷔해 보스턴 셀틱스, 브루클린 네츠에 이어 미네소타로 돌아와 은퇴를 선언했다. 과연 그는 어떤 커리어를 보냈을까. 이번 시간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편이다.
고등학교에서 NBA로
가넷은 1995 신인 드래프트 전체 5순위로 지명되었다. 높은 관심도를 받았다고 볼 수 있을 터. 그러나 그는 사실 애매한 선수였다. 파워포워드를 보기엔 98kg의 적은 체중이 문제였고, 스몰포워드로서는 여러 스킬셋이 아쉬웠다. 고졸 출신이라는 점도 걸렸다.
그러나 당시 미네소타의 단장 케빈 맥헤일은 가넷을 높게 평가했다. 이에 따라 가넷은 1975년 이후 20년 만에 대학 무대를 밟지 않고 NBA에 직행한 선수가 되었다.
데뷔 시즌 초반, 가넷의 팀내 입지는 좁았다. 빌 블레어 감독이 그를 중용하지 않았고, 크리스천 레이트너와 탐 구글리오타에게 밀린 탓이었다. 여기서 맥헤일 단장은 블레어 감독을 경질, 플립 손더스 감독을 데려오는 결단을 내렸다. 가넷의 성장을 위한 맥헤일 단장의 선택이었다. 이렇듯 그는 구단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가넷과 함께 활약한 샘 미첼은 "가넷은 신인 시절 농구 이해도가 상당히 높았다. 하나를 알려주면 금방 이해했다. 정말 놀랐다"고 밝혔다. 그만큼 가넷은 뛰어난 농구 실력과 이해도로 무럭무럭 성장했다. 그 결과 개막전부터 1월까지 평균 6.3점 4.0리바운드 1.2어시스트를 기록한 가넷은 2월부터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14.4점 8.4리바운드 2.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데뷔 시즌을 마쳤다.
1억 2,600만 달러
가넷의 성장세는 멈출 줄 몰랐다. 코트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존재감을 뽐냈다. 미네소타는 당연히 가넷을 붙잡고 싶었다. 이에 1997-98시즌 도중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그 금액은 무려 6년간 1억 2,600만 달러. 프로 2년차에 불과한 어린 선수가 리그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게 된 것.
이는 1998년 NBA 직장폐쇄의 발단이 되기도 했다. 어린 선수가 재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거액의 연봉을 받자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구단과 선수간의 계약조항(CBA)이 발효되면서 신인 계약과 함께 연차별 최대 연봉 등이 정해졌다.
가넷은 거액의 계약과 함께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와 함께 불행의 순간도 함께 찾아왔다. 1998-99시즌, 가넷과 호흡을 맞춘 스테판 마버리가 가넷 중심의 팀 운영에 불만을 제기, 트레이드를 요구했다. 이를 통해 가넷-마버리-구글리오타의 삼각편대가 아쉽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후 가세한 터렐 브랜든은 부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여기에 가넷이 아버지처럼 따르던 말릭 실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가넷의 생일파티를 다녀가던 길이어서 충격이 더욱 컸다. 이후 2000-01시즌에는 조 스미스가 미네소타와 부정계약을 맺은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NBA 사무국은 미네소타의 드래프트 1라운드 권리를 5년간 박탈하는 등 중징계를 내렸다. 유망주 발굴에 실패한 미네소타는 그 한계를 느끼며 1997년부터 7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이라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MVP 시즌
2003-04시즌 미네소타는 라트렐 스프리웰과 샘 카셀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다. 믿음직한 득점원을 얻으며 공격력을 극대화시킨 것. 여기에 어빙 존슨, 마이클 올로와캔디, 게리 트렌트 등 단단한 빅맨진이 수비까지 해내면서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가넷은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평균 24.2점 13.9리바운드 5.0어시스트 1.5스틸 2.2블록 FG 49.9%로 내외곽을 오가면서 특유의 활동량을 선보였다. 82게임 전 경기 소화와 평균 39.4분 출전시간은 덤이었다.
이를 통해 미네소타는 58승 24패(70.7%)를 기록, 인디애나 페이서스(61승 21패)에 이어 리그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공격과 수비 효율성이 각각 5위와 6위를 차지할 정도로 균형잡힌 경기력이 돋보였다. 이를 이끈 가넷은 정규리그 MVP를 수상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가넷은 그 기세를 플레이오프까지 이어갔다. 1라운드에서 덴버 너게츠를 4-1로 이기며 1라운드 탈락 징크스를 깼다. 이후 2라운드에서 새크라멘토 킹스에 4-3으로 이긴 뒤 서부 컨퍼런스에서 LA 레이커스를 만났다. 그러나 그 벽은 높았다. 시리즈 전적 2-4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당시 손더스 감독은 "우리는 1번 시드였다. 카셀이 부상 당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레이커스를 꺾고, 파이널 무대에서 NBA 챔피언십을 따냈을 것이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실제로 카셀은 레이커스와의 6경기 중 2경기에 결장했고, 이외의 2경기도 부상으로 총 6분만 뛰는 아쉬움을 남겼다. 결국 미네소타는 다음 시즌을 기약해야 했다.
좌절 그리고 트레이드
2004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을 맛본 미네소타. MVP 가넷과 함께 우승으로 가는 길이 더욱 가까워 보였다. 그러나 문제가 다시 발생했다. 스프리웰과 카셀이 계약에 불만을 품고 태업에 가까운 플레이를 한 것. 실제로 2004-05시즌, 이들은 직전 시즌보다 평균 4점 이상 떨어진 평균 득점을 올리며 부진에 허덕였다.
스프리웰은 2004-05시즌 이후 계약이 끝나는 상황이었다. 미네소타는 그의 공헌을 인정, 3년간 2,100만 달러 연장 계약을 제시했다. 그의 시장가치를 따져봤을 때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그러나 스프리웰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엔 부족한 금액이다"며 이를 거절했다. 결국 미네소타는 스프리웰과 계약을 포기했고, 그 역시 타 팀과의 계약에 실패하며 은퇴를 선언했다. 여기에 카셀도 팀을 옮기면서 미네소타의 부흥기가 곧장 무너졌다.
그럼에도 가넷은 분전했다. 평균 20점 10리바운드 4어시스트 1스틸 1블록 이상을 꾸준히 기록하며 에이스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혼자의 힘으로는 무리였다. 전력이 약해진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기에는 무리였다. 이 당시 팬들은 가넷을 두고 '외로운 늑대'라고 칭하기도 했다.
가넷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미네소타 팀 관리에 불만도 커져갔다. 자신이 존경하던 손더스 감독이 해임되었고, 선수 영입도 시원치 않았다. 이때 가넷은 글렌 테일러 구단주에게 "나는 승리하고 싶다"고 말했고, 테일러 구단주는 "하루 아침에 좋은 전력을 갖추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며 재정적인 어려움을 표출했다.
이후 트레이드 루머가 터지기 시작했다. 결국 루머는 현실이 되었다. 가넷의 행선지는 보스턴 셀틱스가 되었다. 미네소타는 가넷을 보스턴에 내주는 조건으로 알 제퍼슨 등 5명의 선수와 2009년 드래프트 지명권 2장을 가져왔다.
보스턴은 가넷뿐만 아니라 레이 알렌, 글렌 데이비스까지 데려오면서 팀 전력을 구축했다. 이때부터 진정한 빅3(케빈 가넷, 레이 알렌, 폴 피어스)의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이민재 기자(alcind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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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NBA 미디어 센트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