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안토니오 스퍼스, 퇴보인가 전진인가
# 구단 역대 최고의 시즌
2015-16시즌은 샌안토니오 역사상 최고의 시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정규시즌만 보면 말이다. 1997년 팀 던컨의 데뷔 이래 샌안토니오는 늘 강자의 입장에 있었다. 직장 폐쇄로 인해 정규시즌 경기 수가 50경기로 줄었던 1998-99시즌 외에는 모두 50승과 플레이오프 진출을 동시에 달성했다. 그 과정에서 우승도 5번 거머쥐었다. 2000년대 최고의 팀을 꼽을 때 샌안토니오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2015-16시즌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시즌이었다. 구단 역사상 최초로 8할 승률을 넘어섰으며(67승 15패 승률 81.5%) NBA 역대 통산 승률 리그 2위 팀이라는 새로운 기록도 썼다. 단 하나 샌안토니오에게 아쉬웠던 것은, 73승에 도달한 골든스테이트라는 팀이 같은 시즌에 있었다는 것이다.
샌안토니오의 2015-16시즌이 놀라운 것은 팀 시스템을 바꾸면서도 이전 시즌(55승 27패)에 비해 12승을 더 기록했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한 시즌에 총 16번의 맞대결이 배정돼 있는 사우스웨스트 팀들이 추락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이 같은 점을 감안해도 샌안토니오가 변화와 성장을 불과 한 시즌 만에 동시에 만들어낸 점은 놀랍다.
라마커스 알드리지 영입에 성공한 샌안토니오는 철저히 인사이드 중심의 농구를 펼쳤다. 팀 던컨, 데이비드 로빈슨이 뛰던 2000년대 초중반까지 가져갔던 경기 스타일이었다. 이후 10년 동안 샌안토니오는 토니 파커, 마누 지노빌리 중심의 농구를 구사해왔고, 2014년에는 그 스타일로 우승도 차지했다. 때문에 2015-16시즌 샌안토니오가 가져간 변화는 과거로의 회귀, 복고 농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 “1월이면 팀 시스템에 완벽히 녹아들 것이다”라고 장담했던 알드리지는 실제로 팀 적응을 마치고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그 기세를 몰아 올스타에도 선발됐다. 카와이 레너드-라마커스 알드리지 콤비는 샌안토니오의 새로운 중심이 됐다. 여기에 베테랑 빅맨 팀 던컨, 보리스 디아우, 데이비드 웨스트가 뒤를 받쳤다. 샌안토니오의 프런트코트는 단연 리그 최고 수준이었다.
# 거스를 수 없는 백코트진의 노쇠화
그렇게 샌안토니오는 정규시즌에 67승을 챙겼다. 그런데 플레이오프가 모두 끝난 6월 말에 보니, 샌안토니오는 우승도, 준우승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서부 결승에도 올라가지 못했다. 생각보다 너무 일찍 떨어졌다. 2라운드에서 오클라호마시티에 완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드진의 노쇠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가드진의 중추인 토니 파커, 마누 지노빌리의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 그들은 잔부상과 많은 나이의 여파로 함께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플레이를 동시에 보여줬던 지노빌리는 이제 플레이에서 역동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지노빌리는 원래부터 운동능력보다는 탁월한 센스를 바탕으로 농구를 해오던 선수이긴 했다. 하지만 그 센스도 기본적인 운동능력이 떨어지면 코트에서 올바로 구현되기 힘들다. 지노빌리가 지금 그런 상황을 맞이했다. 스피드, 유연성이 모두 부족해지고 센스만 남으니, 터프한 수비를 상대로 과감한 플레이를 하다가 실책을 저지르곤 한다. 역대 최고의 남미 선수 지노빌리도 시간의 흐름은 거스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올여름 지노빌리는 던컨과 동시에 은퇴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고민 끝에 샌안토니오와 1년 재계약을 맺고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콘리 영입에 실패한 상황에서 지노빌리의 잔류는 샌안토니오 입장에서 큰 다행일 수 있다. 하지만 내년 여름 40살이 되는 노장 가드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코트에서 가장 빠르고 날랜 움직임을 보였던 파커도 존재감이 약해지고 있다. 커리어 내내 시달렸던 크고 작은 부상의 여파, 그리고 30대 중반이 되면서 찾아온 노쇠화가 파커의 전성기를 앗아가고 있다.
파커는 몇 년 전까지 경기당 돌파 횟수, 돌파 득점 창출에서 리그 최상위권에 위치했던 선수였다. 하지만 이제는 돌파 관련 기록에서 파커의 이름을 상위권에서 찾아볼 수 없다. 영리하고 빠른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를 찢어놓았던 돌격 대장 파커는 더 이상 ‘돌파 기계’가 아니다.
파커, 지노빌리가 버티는 백코트진의 노쇠화는 곧 에너지 레벨의 하락과 직결된다. 오클라호마시티와의 시리즈에서도 이 점이 큰 문제가 됐었다. 최대 무기인 프런트코트가 오클라호마시티에 막히자, 백코트진의 에너지 레벨이 떨어지는 샌안토니오는 자연스럽게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백코트진은 공격을 조율하고 상대 수비를 최전방에서 압박하는 구성원들이다. 골든스테이트, 포틀랜드, 클리퍼스, 토론토 등 에너지 넘치고 공격적인 백코트 콤비를 보유한 팀이 리그에 상당히 많다. 이런 상황에서 샌안토니오는 올여름 백코트진 보강이 전혀 없었다. 다음 시즌에도 상당한 핸디캡을 안고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패티 밀스, 대니 그린의 존재다. 특히 식스맨 패티 밀스의 왕성한 공수 활동량과 외곽슛은 샌안토니오 백코트진이 ‘젊음’을 유지하는 버팀목이다. 다가오는 시즌 백코트진에서 밀스의 역할과 중요성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시즌 밀스는 지노빌리보다 더 많은 평균 출전 시간을 기록한 식스맨이었다. 데뷔 후 처음으로 평균 출전 시간이 20분을 넘었다. 게임 조립 능력이 형편없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샌안토니오는 이제 밀스가 많이 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현 시점에서 샌안토니오가 가장 바라는 것은 대니 그린의 부활일 것이다. 작년 여름 재계약을 맺은 그린은 지난 시즌 심한 기복으로 큰 실망을 안겼다. 야투율이 30%대였으며, 샌안토니오 유니폼을 입은 후 처음으로 3점슛 성공률이 40% 아래로 폭락했다. 팀 내 최고의 3점 슈터가 흔들리자 샌안토니오 양궁부대의 위력은 반감됐다. 2014-15시즌까지 3점슛 부문에서 리그 중위권 이상의 기록을 꾸준히 보여줬던 샌안토니오는 지난 시즌 3점슛 시도 26위, 성공 25위를 기록하며 3점슛과 거리가 먼 팀으로 변했다. 물론 여기에는 라마커스 알드리지 영입 이후 미드레인지 점프슛, 페인트존 득점에 치중한 공격 패턴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린의 불안한 슈팅도 분명히 샌안토니오의 3점슛 기록 하락을 만들어낸 요인이었다.
결국 샌안토니오는 다음 시즌도 백코트진의 핵심 구성원을 그대로 가져간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파커와 지노빌리는 노쇠화를 막을 수 없는 입장이다. 게다가 둘 모두 올림픽에 참여하고 있어 평소보다 체력 문제에 시달릴 가능성이 더 높다. 결국 상대적으로 젊은 대니 그린, 패티 밀스가 보다 활동적이고 안정적인 플레이로 노쇠한 백코트진을 지탱해줘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샌안토니오는 오는 시즌 내내 백코트진이 엄청난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
# 그래도 믿음직한 프런트코트
노쇠화가 뚜렷한 백코트진이 골칫거리라면, 프런트코트 3인방은 샌안토니오가 가장 믿을 수 있는 무기다. 샌안토니오는 올여름 프런트코트진에 변화가 굉장히 많았다. 팀 던컨이 은퇴하고 데이비드 웨스트가 FA로 이적하고 보리스 디아우가 트레이드됐다. 빅맨 로테이션의 핵심 선수 3명이 떠난 것이다.
대신 샌안토니오는 파우 가솔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사실 가솔은 플랜C에 가까운 선수였다. 올여름 샌안토니오는 케빈 듀란트 영입전에 뛰어 들었으며, 듀란트 영입에 실패할 경우 마이크 콘리를 영입해 가드진의 세대교체를 도모한다는 계획이 있었다. 그 다음 목표가 바로 파우 가솔 영입이었다. 결과적으로 플랜 A, B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샌안토니오는 가솔을 영입하며 나름의 전력 보강을 해낼 수 있었다.
팀 던컨의 은퇴는 샌안토니오 입장에서 여러모로 타격이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던컨의 은퇴로 인한 가장 큰 타격은 라커룸 리더십의 공백이라고 꼽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 코트 위의 활약만 보자면, 파우 가솔이 던컨보다 나았다. 가솔은 36살의 백전노장이지만 여전히 존재감이 대단한 선수다. 굉장히 영리하며 두 시즌 연속 두 자릿수 평균 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등 높이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4개 이상의 평균 어시스트를 기록한 경험이 있는 가솔의 패스 게임은 샌안토니오 공격 시스템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가솔-알드리지의 하이로우 게임도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가솔 영입으로 높이만큼은 샌안토니오가 어떤 팀도 부럽지 않게 됐다.
또 하나 기대되는 점은 카와이 레너드, 라마커스 알드리지 콤비의 존재감이다. 이미 팀의 에이스로 성장한 레너드는 매년 공격 스킬이 성장하고 있다. 이미 레너드는 캐치앤슛은 물론이고 포스트업, 페이스업, 2대2 게임 등 다양한 방식으로 득점을 올릴 수 있는 공격수다. 특히 지난 시즌 레너드는 림에서 16피트까지의 슛 성공률이 데뷔 이래 최고 수준이었을 정도로 탁월한 슈팅 마무리 능력을 자랑했다. 3점슛 성공률 역시 44.3%로 커리어 최고 기록을 새로 썼다. 공격 효율의 ‘끝판왕’이었던 셈이다.
알드리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샌안토니오에서의 첫 시즌, 알드리지는 팀을 위해 나름의 변신을 시도했다. 보다 림 가까이에서 슛을 던졌다. 포틀랜드에서의 마지막 2년 동안 평균 슈팅 거리가 12피트가 넘었던 알드리지는, 지난 시즌엔 정확히 10.0피트로 2피트 이상 슈팅거리를 줄였다. 3피트 이내에서의 슈팅 비율을 10% 이상 높이는 등 페인트존 공략에 집중하는 대신 최대 무기였던 16피트에서의 3점슛 라인 사이에서의 미드레인지 점프슛 비율은 낮추며 효율적인 공격에 집중했다.
알드리지의 이 같은 변신 덕분에 샌안토니오는 손쉽게 공격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었다. 알드리지가 사이즈를 활용한 림 공략에 집중하면서 던컨의 득점 부담이 줄어들었고, 자연스럽게 페인트존 득점을 끌어올려 효과적인 공격을 전개할 수 있었다. 알드리지는 평균 득점은 5점 이상 감소했지만 야투율, 공격 효율 지수에서는 오히려 기록이 상승하며 더 위력적인 포스트 플레이어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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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니 기자(cutehani9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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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보와 전진의 갈림길에서
백코트는 노쇠하고 있고 프런트코트는 업그레이드가 기대되는 상황. 다음 시즌 샌안토니오가 보여줄 농구의 색깔은 분명하다. 2015-16시즌과 마찬가지로 인사이드, 포워드 중심의 느린 농구를 펼칠 것이다.
속공, 3점슛 중심의 빠르고 공격적인 농구가 각광받고 있는 현실에서 샌안토니오의 농구는 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는 ‘반역’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샌안토니오의 로스터 상황상 피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만약 현 상황에서 샌안토니오가 3, 4년 전처럼 백코트 중심의 농구를 시도한다면, 분명히 팀은 무너질 것이다. 약점은 최대한 감추고, 강점은 최대한 활용하는 농구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샌안토니오 역시 그에 충실할 뿐이다.
결국 지켜봐야 할 것은 결과물이다. 2015-16시즌에 보여줬듯 샌안토니오가 또 한 번 정규시즌 큰 성공을 거둔다면, 올여름 샌안토니오가 겪은 변화는 퇴보가 아닌 ‘올드스쿨’을 향한 복귀, 전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난 플레이오프처럼 한계를 절감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올여름 샌안토니오는 겪은 것이 퇴보였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샌안토니오의 올여름은 퇴보였을까, 전진이었을까? 새 시즌 샌안토니오를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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