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구장 이야기 | 멤피스 페덱스포럼
실패한 밴쿠버 프로젝트
2015-16시즌, 토론토 랩터스는 에어캐나다 센터에서 구단 최초의 50승 고지 등극을 자축했다. 빈스 카터 시절 이후 오를 듯 말 듯 했던 그들의 성적은 올 시즌 포함 3시즌에 걸쳐 무서운 상승곡선을 그렸다. 급기야 올 시즌에는 더마 드로잔과 카일 라우리를 올스타로 배출하면서 명실상부 동부의 강호로 자리하게 됐다.
그런데 토론토에 NBA 구단이 탄생할 당시, 그들과 함께 소개됐던 캐나다 프로농구팀이 있었다. 바로 밴쿠버 그리즐리스다. 데이비드 스턴 前 총재가 야심차게 출범시킨 그리즐리스 농구단은 ‘하키의 나라’ 캐나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홈구장은 밴쿠버 시내에 위치한 GM 팰리스. 2만 명이 넘게 소화가 가능한 대형 구단이었다. 당시 그리즐리스는 여러 눈에 띄는 행보를 보였는데 인터넷이 막 대중화될 시기에 공식 홈페이지를 꾸려 홍보에 활용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NBA 구단 중에서는 혁신적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리즐리스는 시작부터 안 풀렸다. 그들은 NBA 가입에 필요한 금액 50%를 1995년 1월까지 리그 사무국에 납부해야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마케팅 부서는 시즌티켓 12,500장을 팔아야만 그 금액이 충당가능하다고 봤지만, 밴쿠버 팬들은 냉정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농구팀을 위해 시즌티켓을 구매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구단이 공식 출범하기도 전에 구단주와 경영진이 바뀌는 해프닝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1995-96시즌에 참여한 그리즐리스는 익스펜션 드래프트에서 그렉 앤써니, 블루 에드워즈 등을 선발하고 드래프트에서는 ‘빅 컨트리’ 브라이언트 리브스를 지명했다. 하지만 그리즐리스는 고전에 고전을 거듭했다. 개막전에서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를 꺾는 등 파란을 일으켰지만, 첫 달부터 무려 19연패를 기록했고, 몇 주 뒤에는 23연패를 추가했다. 첫 시즌은 그래도 이해가 됐다. 팬들도 인내를 갖고 기다렸다. 평균 관중 17,183명은 NBA 14위였다.
그리즐리스는 1996년 드래프트에서 샤리프 압둘-라힘을 영입하면서 성장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 다음 시즌에도 그들은 14승에 그쳤다. 이러한 부진은 한동안 계속 됐다. 1998-99시즌에는 마이크 비비까지 가세했지만 승률은 16.0%에 불과했다. 50경기 동안 8승 밖에 못 거둔 것이다.
패배만이 실망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유망주에게 무시를 받는 설움도 있었다. 1999년 드래프트였다. 그들은 전체 2순위로 스티브 프랜시스를 선발했다. 그러나 프랜시스는 밴쿠버에 지명되자 플레이를 거부했다.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결국 그는 한 경기도 뛰지 않고 휴스턴 로케츠로 트레이드 됐다. ‘불운의 역사’는 한동안 이어졌다.
어떤 감독이 맡던, 어떤 유망주가 오든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그리즐리스의 ‘밴쿠버 역사’는 2000-2001시즌에 끝나고 만다. 23승 59패로 밴쿠버에 자리를 튼 이래 최고 성적을 냈지만, 흥행과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면서 연고지 이전을 결정하고 말았다. 그 사이 홈 관중도 16,000~17,000명대에서 13,000명 대로 추락하고 말았다. 구단주도 이로 인한 손해가 막심했다는 후문.
새 시대를 열다
밴쿠버에서 멤피스로 이전되는 과정은 꼼꼼한 조사를 통해 진행됐다. 데이비드 스턴 총재와 NBA 사무국은 두 번의 실패를 원치 않았다. 그 결과 새 연고지는 멤피스로 결정됐다. 큰 시장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도전장을 내밀어볼 만한 도시였다.
그들이 처음부터 페덱스 포럼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첫 3시즌간 그들은 피라미드 아레나(Pyramid Arena)를 사용했다. 1991년에 지어진 이곳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상케 하는 구조가 눈에 띄는 구장이었다. 이 도시의 랜드마크와도 같았다. (한때 멤피스 도시를 나타내는 사진에는 늘 피라미드 아레나가 있었다.)
2만 명 이상 수용 가능한 대형 구장이었지만 시설 자체는 그리 훌륭하지 않았다. 1980년대에 설계되어 1991년에 완공됐던 만큼 2000년대 NBA가 요구하는 ‘수익’을 위한 구조는 아니었다. 그리즐리스 구단은 이곳을 새로 단장하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조사 결과,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시설을 뜯어고치는 비용이나 새 구장을 마련하는 비용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들은 페덱스 포럼 건설에 투자하기로 하고 완공되는 2004년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 사이 그리즐리스는 조금씩 성장세를 보였다. 파우 가솔, 셰인 베티에, 그리고 훗날 트레이드로 가세한 제이슨 윌리엄스, 제임스 포지 등 젊은 핵심이 팀 색깔을 바꿔갔다. 이에 앞서 그들은 LA 레이커스의 전설, 제리 웨스트를 신임 단장으로 임명했는데, 이것이 신의 한 수였다. 웨스트는 2002-03시즌 휴비 브라운을 신임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체질 개선에 나섰고, 덕분에 그리즐리스는 2003-04시즌 창단 이래 첫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대 쾌거를 끌어냈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 승리까지 꽤 시간이 걸렸지만, 3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은 멤피스 시장에서 그리즐리스 입지를 다지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물론 가솔 이적 후 한동안 또 다시 고전해야 했지만 말이다.
페덱스 포럼은 새 시대를 함께 하는데 있어 최적의 입지조건과 시설을 갖춘 구장이었다. NCAA 디비전 I에 소속된 멤피스 대학도 함께 사용한 이곳은 2억 5천만 달러의 대자본이 투입된 구장답게 팬들과 구단이 원하는 모든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코트사이드에만 1,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고, 그 중 27석은 말 그대로 대부호들만 사용할 수 있는 초특급 좌석이었다. 상층부에도 80개의 스카이박스가 마련되었다. 또한 지하에도 그리즐리스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풀코트 사이즈의 체육관이 있었고, 대규모 주차장도 마련됐다. 페덱스 포럼을 다녀온 팬들은 ‘블루스 음악’과 깊은 연관이 있는 멤피스답게 내부 인테리어도 눈길을 끈다고 입을 모은다. 로비부터 식당까지 가는 길에서 음악의 정취를 많이 느낄 수 있다.
‘FAN FIRST’가 우리 모토
2011년 올랜도 센티널 신문은 ‘NBA 최고의 구장’ 순위 7위에 이곳을 올려놓았다. 당시 기사를 작성한 자쉬 로빈스 기자는 “입구부터 장관이다. 꼭 체육관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보행자들의 발걸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내부의 스카이박스도 값어치를 한다. 코트와 가까이 있어 보기에 대단히 수월하다. 또 어느 좌석에서든 NBA 경기 관람이 매우 편하다. 그만큼 경사가 잘 되어 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로 편할 것이다”라며, “페덱스 포럼의 가장 큰 장점은 스코어보드와 계시기다. 어디서든 시야에 확 들어오며 관람에 있어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경기장 주변도 편하다. 경기 전후로 식당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도시의 정체성도 팬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또, 그리즐리스와 페덱스 포럼, 그리고 지역 언론의 관계는 대단히 좋은 편이다. 덕분에 세 곳이 연계한 이벤트도 자주 개최된다. 팬 편의를 위한 장비도입은 물론이고, 식당 메뉴도 꾸준히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페덱스 포럼의 고객에게 제공되는 저녁 식사는 지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레스토랑으로부터 공수해오고 있다. 지역 특산물, 지역 대표음식 등도 마찬가지다.
‘정책’도 길을 함께 한다. 그들의 모토는 ‘FAN FIRST’다. 팬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관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는 의지다. 예컨대 2014년에는 그리즐리스 뿐 아니라 모든 티켓 발매 서비스를 티켓 마스터에 위탁했다. 페덱스 포럼을 찾는 팬들의 편의를 위해서다. 2015년부터는 NBA 기준의 보안검문 시스템을 도입했다. NBA는 4대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검문이 철저하다. 공항은 저리가라 할 수준이다. (경기 중에는 한 번 체육관 밖을 나가면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곳도 많다.) 페덱스 포럼은 이 시스템을 NBA 뿐만 아니라 모든 이벤트에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만큼 서로 소통이 원활하고 벤치마킹도 잘 되고 있다는 의미다.
또한 2015-16시즌을 앞두고는 대형 전광판도 최신식으로 교체하였는데 이 역시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이러한 긍정적인 요소들 덕분인지 페덱스 포럼은 최근 시즌티켓만 11,000장 이상씩을 팔고 있다. 이처럼 홍보가 잘 된 덕분에 페덱스 포럼이 누리는 부가 이익도 있다. NCAA 토너먼트뿐 아니라 다양한 스포츠 이벤트가 이곳에서 개최되고 있는 것이다. 2015년의 경우 프로레슬링과 콘서트 등 100개의 이벤트와 회담이 개최되었다고 한다. 유치를 위한 노력에 앞서 페덱스 포럼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잘 알려졌다고 분석할 수 있다.
물론 시카고, 댈러스, 뉴욕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라 할지 모르겠다. 클리블랜드는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때 전체 관중 13,000명 넘기기도 힘들었던 상황임을 감안하면 그리즐리스의 행보는 대단히 긍정적이다. 어느 도시든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적이다. 그리즐리스 역시 아직까지는 성적에 희비가 엇갈리는 편이다. 그러나 뉴욕이나 시카고 정도가 아닌 이상 어느 도시나 다 겪는 현상이다. 올 시즌을 치르면서 그리즐리스도 정체성에 있어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더 오랫동안, 더 많은 팬들을 유치할 수 있는 방법은 코트 안팎에서 프런트와 선수들이 함께 뛰는 것이다. 포스트 ‘잭 랜돌프-마크 가솔’ 시대를 준비하는 멤피스 그리즐리스와 페덱스 포럼의 행보를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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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X | 멤피스의 돋보이는 커뮤니티 활동
잭 랜돌프는 그리즐리스에 합류하기 전까지만 해도 NBA에서 알아주는 악동이었다. 그런 선수가 멤피스 합류 후에는 팀의 기둥이 되고, 더 나아가 도시의 농구영웅이 됐다. 팬들의 따뜻한 환대 덕분이었다. 그는 그리즐리스에서 사회봉사활동을 가장 많이 하는 선수 중 하나다.
그리즐리스 문화 자체가 그렇다. 연고지에 뿌리내리기 위해 팬들과의 스킨십을 대폭 활동했다. 세인트 주드 아동병원은 그들의 활동의 본거지(?)와도 같다. 명절뿐 아니라 주기적으로 선수들이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한다. 마이크 콘리의 경우 이곳에서 볼링 대회를 개최했다. NBA 데뷔 후 한 번도 빼놓지 않았다. 토니 알렌은 노래자랑을 개최하며, 마크 가솔은 홍보대사로서 발로 뛰고 있다. 랜돌프의 경우 도움이 필요한 가정을 위한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교육쪽에서도 활동이 활발하다. 학교를 찾아가 공부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책 읽어주기' 행사를 통해 독서를 장려하기도 했다. 또한 'GrizzFit'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정기적으로 피트니스 행사도 갖고 있다. 한마디로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전수하는 것이다. 그 외에 멘토링 시스템, 유소년농구단 등도 그리즐리스와 멤피스 팬들을 가깝게 해주고 있다.
| BOX | 멤피스 그리즐리스 기록들
홈 최다연승_ 14연승(2013-2014시즌)
한 달 최고승률_ 100%(2012년 4월, 9전 전승)*
한 경기 최다 점수차 승리_ 47점차(2003년 12월 13일 vs 네츠, 110-63)
한 경기 최다 뒤집기_ 26점차(2014년 11월 13일 vs 킹스, 26점차 역전)
한 경기 최다득점_ 144점(2007년 1월 3일, vs 골든스테이트)
한 시즌 최다 관중_ 17,329명(2014-2015시즌, 매진 16회)
* 1달 최저승률은 0%로 1996년 3월에 7전 전패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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