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환의 앤드원] 내쉬와 댄토니의 ‘다시 만난 세계’
[루키=이동환 기자] 최근 NBA에서 감독과 코치의 역할은 꽤 명확히 구별된다.
토론토 닉 널스, 보스턴 브래드 스티븐스, 마이애미 에릭 스포엘스트라처럼 감독 본인이 빛나는 전략과 전술을 코트에서 뽐내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의 많은 NBA 감독들은 선수들을 관리하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큰 그림’에 좀 더 무게를 둔다.
선수들의 파워가 이미 커질 대로 커진 NBA다. 선수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감독은 팀에서 금세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 선수들과 함께 마음을 맞추고 선수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감독은 제아무리 뛰어난 지략가더라도 실패를 맛보기 일쑤다.
지난해 야심차게 NBA 무대에 도전했으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 단 한 시즌도 채우지 못하고 팀을 떠난 존 빌라인 감독은, 사실 미시건 대학에서만 12년을 보내며 팀을 두 차례 NCAA 토너먼트 4강에 올려놓은 명장이었다.
하지만 NBA에서도 빌라인은 클리블랜드 선수들을 마치 대학 선수처럼 다루려 했고, 이로 인해 케빈 러브, 트리스탄 탐슨 등 주요 베테랑 선수들의 신임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선수들의 외면을 받은 빌라인은 올스타 휴식기가 끝나기도 전에 내쫓기듯 팀을 떠나야 했다. 지난 8월 경질된 시카고의 짐 보일런 감독 역시 선수 관리에 대한 고루한 접근법으로 팀을 망가뜨린 케이스였다.
그래서 요즘 NBA 감독들에게는 세부적인 전술, 전략 수립보다는 선수들을 관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팀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 더 중요한 임무가 돼가고 있다.
물론 팀마다 사정이 다르고 감독에게 요구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감독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다. 앞서 언급한 닉 널스, 브래드 스티븐스, 에릭 스포엘스트라 같은 케이스도 있고 감독 스스로가 자신의 역할에 대해 취하는 스탠스도 각자 다르다. 하지만 NBA 감독의 역할이 팀 전체를 통솔하고 선수들과의 소통에 힘을 쏟는 ‘매니저(manager)’ 쪽에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이제는 부인하기 힘든 새로운 트렌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코치(assistant coach)들은 감독이 온전히 에너지를 쏟기 힘든 부분에 더 집중한다. 세부적인 전술, 전략을 수립하고 공격과 수비의 디테일을 조정하는 일이다.
감독이 팀의 전반적인 공수 콘셉트 수립, 훈련 일정 관리, 선수와의 소통 등에 신경 쓰는 동안, 코치들은 공격, 수비, 선수 육성 등 자신의 전담 파트에 집중하며 그와 관련된 의견을 감독에게 적극 개진한다. 그리고 감독은 코치들의 의견을 듣고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린다. 이처럼 감독과 코치의 관계가 수평적이고 서로의 의견 교환이 위 아래로 활발하기 때문에, 요즘 NBA에서는 경력과 나이가 거꾸로 뒤집힌 형태의 코칭스태프 구성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실제로 올해 NBA 파이널 우승 팀인 LA 레이커스에는 35년의 지도자 경력을 가진 라이오넬 홀린스가 감독이 아닌 코치로 있었다. 홀린스는 자신보다 무려 20살 어리고 지도자 생활도 16년 늦게 시작한 프랭크 보겔 감독을 도우면서 레이커스를 성공으로 이끌었다.(홀린스는 67세의 많은 나이 때문에 올랜도 버블에는 합류하지 못했다.)
2015년 파이널 우승 팀 골든스테이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30년 넘는 지도자 경력을 가진 엘빈 젠트리가 ‘초짜 감독’ 스티브 커를 도와 코치로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심지어 지금도 골든스테이트는 20년 넘게 지도자 생활을 해온 마이크 브라운이 스티브 커를 돕는 중이다.
(*2015년 우승 이후 뉴올리언스에 감독으로 부임한 엘빈 젠트리는 최근 뉴올리언스를 떠나 새크라멘토에 코치로 합류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사실 또 하나. 젠트리는 새크라멘토 루크 월튼 감독보다 무려 26살이 많다. 월튼이 태어난 1980년은 젠트리가 베일러 대학에서 처음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던 해다. 이쯤되면 NBA는 감독과 코치 사이에 상하 관계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곳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NBA에서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는 감독과 코치의 역할 구분,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감독과 코치의 경력 역전 현상을 감안해도 최근 브루클린이 선택한 ‘스티브 내쉬 감독-마이크 댄토니 코치 체제’는 꽤나 파격적이다.
댄토니와 내쉬는 2000년대 중반 피닉스와 2010년대 초중반 레이커스에서 감독과 선수로 한솥밥을 먹은 사제지간이었다.
사실 NBA의 감독-선수 관계를 생각하면 ‘사제지간’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어쨌든 당시 댄토니는 감독으로서 팀을 이끄는 리더였고 내쉬는 댄토니의 요구와 지시에 맞춰 코트에서 동료들을 이끄는 야전 사령관이었다.
댄토니와 내쉬의 특별한 인연을 제쳐놓고 봐도, 지도자 경력만 30년에 달하고 최근까지 리그 대표 강호 휴스턴을 이끈 댄토니가 지도자 경험이 전무한 ‘초짜’ 스티브 내쉬를 코치로서 보좌하는 그림은 무척 특이하다.
여기에 피닉스에서 내쉬와 2대2 콤비로 호흡을 맞췄던 아마레 스타더마이어까지 코치로 둘과 함께 한다. 즉 브루클린에서 댄토니는 자신이 감독 시절 지도했던 스티브 내쉬를 감독으로,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를 동료 코치로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브루클린은 도대체 왜 이런 결정을 한 걸까?
일단 스티브 내쉬 감독 선임은 발표 당시에도 잘 알려졌듯 오는 시즌 팀의 에이스가 될 케빈 듀란트의 뜻을 적극 고려해 내린 선택이다
내쉬는 2015년 골든스테이트에 선수 육성 컨설턴트로 합류한 뒤 꾸준히 골든스테이트에서 시간을 보내왔다. 지난 5년 동안 내쉬는 엄연한 골든스테이트의 일원이었으며, 골든스테이트에서 내쉬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우승 반지를 얻을 수 있었다.(2017년, 2018년)
2016년 케빈 듀란트가 골든스테이트에 합류한 후, 내쉬는 듀란트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팀 훈련이 끝난 후 듀란트가 코트 안팎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존재가 내쉬였다. 경기 당일에 진행되는 프리-게임 루틴(Pre-game routine)을 도와주는 것도 내쉬의 역할이었다.
내쉬와 듀란트의 관계는 내쉬가 피닉스 소속 현역 선수이던 2010년 전후부터 이미 시작됐다는 후문이다. 당시 NBA에 막 입성한 듀란트는 리그 대표 포인트가드 내쉬와 함께 오프시즌 훈련을 하며 친분을 쌓았고, 그 관계는 골든스테이트 시절을 거치며 더욱 돈독해졌다. 이를 잘 알고 있었던 브루클린은 결국 내쉬를 감독으로 영입했다.
(심지어 2016년 여름에 듀란트가 골든스테이트행을 택한 것도 내쉬의 조언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디 애슬레틱’의 골든스테이트 전담 기자 팀 카와카미를 통해 최근 보도됐다.
당시 내쉬는 골든스테이트에서 컨설턴트로 한 시즌을 이미 보낸 상황이었다. 골든스테이트 이적을 놓고 고민하던 듀란트는 평소 친분이 있던 내쉬에게 자신이 골든스테이트로 갈 경우 스테픈 커리, 클레이 탐슨 등 기존의 선수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은지에 대해 물어봤다. 이에 대해 내쉬는 별다른 의도없이 솔직하게 “골든스테이트 선수들은 모두 이타적이고 자존심이 세지 않다”고 답했다고 한다. 내쉬의 이 대답에 듀란트는 마음의 짐을 덜고 결국 골든스테이트행을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5년 동안 내쉬를 옆에서 지켜본 골든스테이트의 밥 마이어스 단장은 내쉬가 현역 스타 플레이어들이 귀를 기울일 만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내쉬의 소통 능력과 성공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스티브 내쉬는 코트 안으로 걸어 들어가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즉시 케빈 듀란트, 스테픈 커리, 클레이 탐슨 같은 선수들의 리스펙트를 받을 수 있는 친구였다. 전 세계를 통틀어 봐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내쉬는 슈퍼스타들과 무척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소통하는 사람이다.”
“내쉬가 슈퍼스타들에게 전해주는 작고 디테일한 조언은 그 자체로 엄청난 가치가 있다. 사실 슈퍼스타들은 더 이상 배울 게 별로 없는 선수들이다. 예를 들어 스테픈 커리는 점프슛에 대한 웬만한 사람의 조언에는 귀를 기울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내쉬는 델 커리를 제외하고 커리가 점프슛에 대한 조언을 듣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이다.”
한편 스티브 커 감독에 따르면, 골든스테이트에서만 5년 동안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내쉬는 한 팀이 시즌을 치르는 동안 지도자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팀을 만들어 가는지 꼼꼼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비록 정식 코치 경험은 없지만 내쉬가 실질적으로는 지도자로서의 경력을 어느 정도 쌓아가고 있었던 것과 다름없지 않냐는 이야기가 선임 당시에 현지에서 나왔다.
다만 아무리 골든스테이트에서 볼 꼴, 못 볼 꼴(?)을 다 본 내쉬에게도 감독 자리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법. 내쉬는 선수 시절 자신이 인연을 맺었던 인물들에게 S.O.S를 요청했고, 이것이 결국 아마레 스타더마이어(피닉스 시절 동료)와 아담 해링턴(댈러스 시절 동료) 같은 인물들을 코치로 영입하는 계기가 됐다.
더불어 젊은 지도자로 현장에서 주목 받고 있었던 이메 유도카 필라델피아 코치를 영입하고(유도카는 지난 시즌 NBA 코치 연봉 1위였다.) 지난 시즌부터 브루클린에 육성 코치로 있었던 티아고 스플리터(전 샌안토니오 선수)도 코칭스태프에 합류했다. 올랜도 버블에서 감독 대행으로 브루클린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던 자크 본은 코치 중 가장 큰 권한을 가진 어소시에이티드 코치(associated coach)로 팀에 남게 됐다.
그리고 여기에 감독 시장에서 FA로 남아 있었던 마이크 댄토니까지 코치로 오면서 브루클린은 코칭스태프 구성을 마침내 완료했다.
사실 댄토니의 코치 부임은 당초 브루클린 구단조차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9월 중순 휴스턴과 결별한 이후 댄토니가 감독 시장에서 꾸준히 대어로 꼽혀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댄토니는 브렛 브라운 감독을 경질한 필라델피아와 계약 성사 직전까지 갔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LA 클리퍼스가 닥 리버스를 갑자기 해고하면서 상황이 급속도로 바뀌었다.
‘필라델피아 인쿼러’의 식서스 전담 기자 키스 폼페이는 지난 10월 3일자 보도에서 “마이크 댄토니는 스티브 발머 LA 클리퍼스 구단주를 탓해도 된다. 발머가 리버스를 해고하지 않았다면 댄토니가 필라델피아의 새 감독이 됐을 것이다. 클리퍼스에서 경질된 후 몇 시간 안에 리버스의 대리인이 엘튼 브랜드 단장과 접촉했고, 레이커스와 마이애미의 NBA 파이널 1차전이 열리는 날에 리버스의 필라델피아 감독 면접이 진행됐다. 그리고 그 다음날 리버스는 필라델피아의 감독직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며 댄토니에서 리버스로 방향을 급선회한 필라델피아의 감독 선임 과정을 설명했다.
리버스의 등장에 갑자기 ‘낙동강 오리알’이 된 댄토니는 마찬가지로 감독직이 비어 있었던 뉴올리언스, 인디애나, 오클라호마시티로부터도 부름을 받지 못했다. 휴스턴도 댄토니의 마음을 다시 붙잡기보다는 다른 인물을 물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대로라면 댄토니는 감독 시장에서 미아가 될 수도 있었던 상황. 그런 댄토니에게 접촉한 것이 내쉬의 브루클린이었다.
어차피 댄토니로서도 더 이상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당초 바랐던 감독직은 아니었지만 피닉스와 레이커스에서 감독과 선수로 함께 팀을 이끌었던 스티브 내쉬와 함께 하는 건 그에게도 매력적이었을 터.
내쉬는 31일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각자의 개성이 강하고 코트 안팎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인물들로 코칭스태프를 구성했다. 이렇게 만든 코칭스태프가 나와 선수들에게 훌륭한 토대가 되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며 댄토니가 합류한 코칭스태프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내쉬 감독과 댄토니 코치는 브루클린에서 어떤 농구를 보여줄까?
일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브루클린이 선수 개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팀을 만들어갈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3월 케니 앳킨슨 감독이 브루클린에서 갑자기 경질된 이유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디 애슬레틱’의 알렉스 쉬퍼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브루클린이 앳킨슨을 경질한 핵심 이유 중 하나는, 앳킨슨이 이전부터 자신이 추구해왔던 농구를 케빈 듀란트와 카이리 어빙의 합류에 맞춰 적절하게 바꿔가지 못했던 점이었다고 한다.
2018-2019시즌까지 앳킨슨의 브루클린은 선수들 전원이 볼을 만지는 농구를 추구하던 팀이었다. 디안젤로 러셀이라는 올스타 가드가 있었지만 조직적인 움직임을 우선시하는 앳킨슨의 농구 색깔은 무척 확실했다.
하지만 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인 듀란트와 어빙이 온 이상 앳킨슨도 그에 맞게 팀 스타일과 문화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앳킨슨은 이 부분에서 시즌 내내 실패를 거듭했고, 결국 이것이 갑작스러운 경질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골든스테이트에서 듀란트와 함께 한 내쉬는 스타 플레이어가 더 많은 볼을 만지면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농구에 익숙한 인물이다. 본인이 선수일 때도 포인트가드로서 볼을 많이 만지면서 공격을 주도했고, LA 레이커스에서는 코비 브라이언트, 파우 가솔, 드와이트 하워드와 함께 하며 ‘슈퍼 팀’이 시즌을 치를 때 코트 안팎에서 어떤 문제들을 마주하는지도 몸소 경험했다.
마이크 댄토니는 피닉스 시절은 물론 휴스턴 시절에도 스타 플레이어 중심의 농구를 펼쳐왔다. 스티브 내쉬, 제임스 하든 같은 1류 가드들의 역량을 코트에서 극대화하는 농구를 통해 성공을 거뒀다. 때문에 듀란트, 어빙 중심의 농구를 구상하고 코트에서 만들어가는 것은 댄토니에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내쉬와 댄토니에게 반가운 부분 하나는 프런트의 지지와 경험 많은 코치들의 도움을 받는 ‘초짜 감독’이 리그에서 성공을 거두는 사례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는 점.
골든스테이트의 스티브 커 감독, 토론토의 닉 널스 감독은 감독 데뷔 시즌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지난 시즌에는 멤피스의 타일러 젠킨스 감독이 첫 시즌부터 훌륭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최근 클리퍼스에 부임한 터런 루 감독 역시 클리블랜드 부임과 동시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지금 NBA는 경력이 많고 적음에 따라 지도자의 성공 가능성이 달라지는 리그가 아니다.
한편 내쉬 부임 이후 약 두 달 동안 코칭스태프 구성에 만전을 기울인 브루클린은 곧 시작하는 이적시장에서 대어 영입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워싱턴의 브래들리 빌, 샌안토니오의 더마 드로잔이 그 후보로 거론되는 중.
파격적인 지도자 구성으로 화제를 모은 브루클린이 이적시장에서는 어떤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