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WKBL 프랜차이즈 스타' 김단비②
인터뷰 에세이 ‘단편’(斷片/短篇)
WKBL이 키워낸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김단비
[루키=박진호 기자] ①편에 이어...
#5
혹독하게 자신을 단련했던 프로 초반 5년의 시간 내내, 김단비는 WKBL 챔피언 자리에 동료들과 함께 올랐다. 특히 마지막으로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2011-12시즌의 기억은 특별하다.
2011년, 신한은행은 WKBL 역대 최고의 가드로 손꼽히는 전주원과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군림하던 진미정이 동시에 은퇴를 선언했다. 여기에 ‘바스켓 퀸’ 정선민도 KB로 이적했다. 팀의 핵심 선수 3명이 한꺼번에 팀을 떠난 것이다. 통합 5연패를 달성하며 이미 ‘레알 신한은행’이라는 평가를 듣던 때였지만, 베테랑들이 일거에 이탈하며 ‘위기’라는 어색한 평가가 등장했다.
그러나 신한은행은 흔들리지 않았다. 꾸준히 선두를 지켰고 29승 11패로 정규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2위권과 5경기 이상의 차이를 유지한 1위였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정규리그 4위 삼성생명을 3승 1패로 이겼고, 챔프전에서는 KB스타즈를 3경기 만에 제압했다. 2012년은 신한은행이 ‘리빌딩’과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해였다.
“그때는 정말 힘든 시기였거든요. 언니들이 빠져나가면서 전력이 많이 떨어졌어요. 제가 막내였고, 최윤아, 하은주, 이연화, 강영숙, 김연주... 거의 6명의 선수가 대부분의 시간을 뛰면서, 정말 자랑스러운 결과를 얻어냈어요. 기억이 참 많이 나요.”
통합 6연패와 함께 리빌딩도 성공한 신한은행의 우승 역사는 그러나 여기서 마침표를 찍었다. 가장 큰 위기를 넘기며 ‘최강 신화’를 계속 이어갈 것으로 예상됐지만, 바로 왕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바뀐 제도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생각해요. 외국인 선수 제도가 생겼잖아요. 그리고 선발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우리 팀의 ‘외국인 선수 잔혹사’가 그때부터 시작된 거 같아요.”
2007겨울리그를 끝으로 없어졌던 외국인 선수 제도는 2012-13시즌을 앞두고 부활했다. 그러나 신한은행은 외국인 선수 선발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결국 아쉽게 정규리그 7연패를 놓쳤고, 플레이오프에서는 삼성생명에 패하며 챔프전에도 오르지 못하고 시즌을 마치게 됐다.
팀 성적의 하락과 동시에 김단비에게 시련이 닥쳤다.
팀의 리더였던 최윤아가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렸고, 에이스로 성장한 김단비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평균 32분 7초를 뛰었던 2013-14시즌을 제외하고는 매년 평균 34분 이상을 소화했다.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를 모두 오가야 했고, 공격과 수비 모두 김단비가 중심이었다. 김단비가 없으면 신한은행의 농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단비는 현재 10년 연속으로 30분 이상을 뛰며 평균 두 자리 수 득점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팀에 헌신하며 몸에도 이상이 왔지만 참고 뛰어야했다. 결국 최근 몇 년 동안은 부상을 달고 살아야 했다.
역할에 대한 어려움도 닥쳤다.
‘포스트 최윤아’를 찾지 못한 신한은행이 가드 포지션에서 어려움을 겪자 경기 리딩도 하게 된 것. 박정은(WKBL 경기본부장, 전 삼성생명) 이후 처음으로 ‘포인트 포워드’ 역할을 맡는 선수가 됐다. 원조 ‘포인트 포워드’였던 박정은 본부장은 당시 김단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딱하고 안됐어요. 나는 그래도 고등학교 때 가드였다가 프로에 와서 포워드를 했거든요. 그래서 리딩을 하는 게 아주 어색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단비는 고등학교 때 센터였잖아요. 그러다가 프로에 와서 포워드를 하고, 거기에 가드까지... 말이 쉽지, 이게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거거든요. 공을 몰고 넘어가면서도 내가 어디로 가야하는지부터 헷갈리고, 정말 죽을 맛일 거예요. 단비는 지금 몸도 힘들고, 머리도 아플 거예요. 벤치에서 감독님이 무슨 말을 해도 귀에 안 들어올 거고...”
김단비는 박정은 본부장의 말이 당시 자신의 심정을 정확히 표현했다고 한다.
“좋게 말해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는 거죠. 진짜 말만 들어도 울 것 같아요. 다양한 걸 할 수 있는 게 분명히 장점이기는 하지만, 이거는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포지션 정체성에 혼란이 오더라고요. ‘대체 나는 뭐지’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던 거 같아요.”
#6
막연히 WKBL 역대 최고의 베스트 5를 뽑아달라고 하면 누구나 비슷한 답이 나온다. 그래서 김단비에게는 새로운 조건을 걸어봤다. 함께 뛴 선수 중 베스트 5를 뽑고, 또 상대팀으로 자신을 가장 괴롭힌 베스트 5를 뽑아달라고 해봤다. “질문이 신선하다”며 재미있어 하며 눈을 반짝이던 김단비. 하지만 이름을 하나씩 부르면서 난감해하고 어려워했다. 나름의 산고 끝에 그가 선정한 베스트는 다음과 같다.
함께 뛴 베스트5 : 전주원 진미정 정선민 강영숙 하은주
포지션을 조합하던 김단비는 어느 순간 “아!”라고 외치며 순식간에 5명의 이름을 불렀다. 빅맨이 무려 3명이나 포함된 조합이었다.
“벤치에서 경기를 보는데 실제로 이렇게 5명이 나간 적이 있어요. ‘무슨 센터가 3명이나 뛰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경기 스피드가 떨어진 건 사실이지만, 전주원 코치님이 리딩을 하고 (진)미정 언니가 상대 에이스를 막았어요. (정선)민 코치님은 빅맨이면서도 3번까지 소화할 정도로 내외곽이 다 됐고, (강)영숙 언니랑 (하)은주 언니가 있으니 높이도 엄청났어요. ‘농구를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만큼 인상 깊었어요.”
분명 특이한 라인업이다. 정선민 전 신한은행 코치는 “그렇게 뛰었던 기억이 나긴 하는데, 솔직히 왜 이렇게 뛰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 라인업이 오래 유지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가물거리는 기억을 붙잡으려 애썼다.
강영숙 대구시청 코치 역시 “그 멤버로 경기를 한 기억은 분명 있는데, 어떤 상황에서 그렇게 구성했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그래도 정말 좋은 선수가 많았는데 단비가 나를 베스트에 넣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한 동료였던 최윤아 BNK 코치, 김연주, 이연화 등이 빠졌음을 언급하자, 김단비는 “자꾸 그런 식으로 몰아가면 안 된다. 5명만 꼽으라고 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성을 뽑은 거다. 나도 베스트5에서 제외했지 않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한 관계자는 “당시 신한은행 멤버는 누굴 넣어도 부족함 없는 선수들이다. 단비가 아무래도 같이 뛴 언니들 중 가장 무서웠던 언니들 5명을 선발한 것 같다”며 웃었다.
나를 괴롭힌 베스트5 : 박정은 변연하 김정은 이종애 박지수... 번외도 있다!
“우선 연하언니... (김)정은 언니!”
김단비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두 명의 이름을 언급했다. 김단비는 “경기 중 벤치에서 내가 가장 욕을 많이 먹었던 게, 신세계 시절의 정은 언니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을 수비하다가 작전타임이 불리면 계속 혼나다가 코트로 복귀해야 했다는 것. 아울러 변연하 BNK 코치에 대해서는 “연하 언니를 수비하다가 들어가면 욕도 안 먹었다. 감독님이랑 코치님이 세상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시더라”며, “나를 제일 괴롭힌 선수였다”고 지적했다.
유일한 현역 선수인 박지수에 대해서는 “너무 크다”고 명료하게 대답했다. 김단비는 “(박)지수가 몸싸움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힘으로 버티는 건 어떻게 해보겠는데, 돌아서면 답이 없다. 20cm 차이가 나는데 뭘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종애 극동대 감독에 대해서는 “지수하고는 또 다르다. 블록슛 들어오는 스피드와 타이밍을 종잡을 수 없다”고 기억했다.
마지막 한 명을 놓고는 박정은 WKBL본부장과 우리은행의 박혜진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박정은 본부장을 선택했다.
“생각해보면 (박)혜진이는 무섭진 않잖아요. 그런데 (박)정은 언니는 무서웠어요. 저는 어렸을 때, 전주원, 정선민, 박정은, 변연하 같은 선수들의 전성기를 봤잖아요. 아무래도 그 두려움이 있어요. 정은 언니는 저를 수비할 때, 제가 뭘 할지를 다 알고 있는 사람 같았어요. 눈이 딱 마주치면 그 순간 당황스러웠어요.”
그렇게 5명을 언급한 김단비는 특별한 주문을 했다. 자신을 괴롭힌 베스트 5에 넣을 수는 없지만 벤치에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코치를 꼭 넣어달라는 것.
“혜진이는 안 무섭지만 위 감독님이랑 전 코치님은 무섭죠. 혜진이랑 일대일 상황이 되면, 혜진이가 아니라 혜진이 뒤에 위 감독님이나 전 코치님이랑 싸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어요. 제가 프로에 처음 왔을 때, 기본적인 것들을 하나하나 잡아주셨던 분들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아울러 함께 뛴 베스트 5로도 뽑았던 진미정의 이름도 다시 언급했다. 자신을 가장 괴롭힌 베스트 5팀의 벤치에 꼭 앉혀달라는 것.
“어렸을 때 팀 연습을 하면 제가 상대팀(비주전팀) 에이스 역할을 했거든요. 임달식 감독님이 ‘단비가 변연하야’라고 하세요. 전담 수비는 (진)미정 언니죠. 그런데 연습 시작하자마자 휘슬이 불리고 감독님이 버럭 소리를 지르세요. ‘변연하가 농구를 그렇게 하냐’라고요. 저도 연하 언니가 농구 그렇게 안하는 거 알죠! 연하 언니처럼 할 수 있으면 제가 그러고 있겠어요? 그렇게 죽을 맛인데 그걸 다 보면서도 미정 언니는 진짜 제가 볼도 못 잡게 하더라고요. 얼마나 밉던지... 그때 저를 수비하던 미정 언니를 보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지금 제가 이 정도라도 수비를 하는 건 미정 언니 영향을 받은 게 참 많아요. 고마운 마음이 정말 크죠. 하지만 절 괴롭힌 베스트 5쪽에도 꼭 놓고 싶네요!”
#7
최고의 선배들과 최고의 전력을 갖췄던 최고의 팀에서 최고의 선수로 성장한 김단비. 그의 옆에는 최고의 동기들도 함께 있었다. WKBL 역대 최고의 드래프티로 평가받는 동기들이다.
1998년 출범한 WKBL은 이듬해 ‘WKBL 2000 신입선수 선발회’를 시작으로 신인 드래프트 제도를 시작했다. 드래프트 초대 1순위의 주인공은 동일전산 출신의 홍현희로 한빛은행(현 우리은행)이 지명했다. 이후로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WKBL은 꾸준히 신입선수 선발제도를 드래프트로 유지했다. 그렇다면, 역대 드래프트 중 최고의 선수들이 선발된 것으로 평가받는 것은 언제일까?
이는 역대 최고의 신인이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과는 궤를 달리 한다.
2003, 2004년 전체 1순위로 지명된 곽주영, 정미란은 어린 나이에 금호생명의 첫 우승을 이끌었고, 2006년 전체 1순위인 김정은은 루키 시즌부터 주전으로 뛰며 평균 11.8점 4.9리바운드 2.0어시스트를 기록해, 드래프트 출신 신인 중 역대 최고의 루키 시즌을 보냈다.
2009년 전체 1순위였던 박혜진은 WKBL 최다 MVP 기록을 향해 전진하는 중이고, 2017년 전체 1순위 박지수는 역대 최고의 파급력을 과시한 선수로 기록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2007년 10월 16일 진행됐던 2008 신입선수 선발회가 역대 최고의 드래프트였다고 평가한다. 이는 배출된 선수들의 면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전체 1순위는 동주여고의 강아정. 고교 1학년 시절부터 기량을 인정받았던 강아정은 2007 U-19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WKBL 6개 구단 모두 1순위로 강아정을 의심하지 않았고,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한 KB의 품에 안겼다.
이후 명신여고 김단비(금호생명), 삼천포여고 김유경(신세계), 숙명여고 이유진(삼성생명), 숭의여고 배혜윤(신한은행), 숙명여고 이은혜(우리은행)가 차례로 1라운드에 선발됐다. 하지만 금호생명이 2007년, 강지우를 영입하며 신한은행에 신인 1라운드 지명권과 2라운드 지명권을 맞바꿔, 김단비는 2라운드 8순위로 선발된 이수진(삼천포여고)과 트레이드 됐다. 또한 신세계 역시 2006년 박선영을 영입하며 1라운드 지명권을 신한은행에 내줘 김유경과 배혜윤이 맞트레이드 됐다.
1라운드에 지명된 이들 6명의 선수들은 비교적 오랫동안 WKBL에서 활약했다. 이중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 중인 강아정(KB), 김단비(신한은행), 배혜윤(삼성생명)은 각 팀의 간판선수이며, 전현직 주장이기도 하다. 리그를 대표하는 핵심 선수들이다.
1라운드에 선발된 6명의 선수 전원이 2008년 드래프티들 만큼 꾸준히 리그에서 활약한 경우는 없다. 은퇴한 선수들의 면면도 인상적이었다.
이들 중 가장 부침이 심했던 선수는 김유경이다. 1순위 강아정이 “초등학생 때부터 코치님보다 더 무서웠던 게 상대팀 김유경”이라고 할 만큼 일찌감치 그 기량을 과시했던 김유경은 신한은행에서 전주원-최윤아를 잇는 가드로 성장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고, 2009년 인도 첸나이에서 열린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로 나서기도 했다. 부상 등 여러 악재 속에서도 선수생활을 이어나가며 팀의 백업 가드로 활약했고, 2015년 KB에서 은퇴했다.
삼성생명에 지명된 뒤, 수비형 빅맨으로 꾸준히 기대를 모았던 이유진은 FA자격을 획득한 뒤 하나원큐로 이적했고 2015년 은퇴했다. 은퇴 당시 팀에서 적극적으로 만류할 만큼 여전히 기량에 대한 믿음과 기대는 높았지만, 본인이 제 2의 인생을 선택했다.
우리은행에서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쳤던 이은혜는 이승아가 은퇴한 후에는 주전 1번을 맡아 우리은행의 통합 우승 멤버로 활약했다. 고질적인 부상으로 인해 2017-18시즌 우승을 끝으로 은퇴했고, 현재는 실업팀 사천시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에게 견줄 수 있는 드래프티 라인업은 2013 신입선수 선발회 정도다. 당시 전체 1순위였던 강이슬은 하나원큐의 에이스이자 WKBL 최고의 슈터로 자리를 굳혔다. 2순위 최은실은 우리은행에서 활약하며 동기들 중 가장 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유승희(신한은행), 구슬(BNK), 양인영(하나원큐), 김한비(삼성생명)도 부상으로 인한 부침은 있었지만, 여전히 소속팀에서 높은 기대를 갖고 지켜보고 있다. 특히 2013 드래프티에서는 2라운드 전체 7순위에 선발된 김민정(KB)과 마지막인 2라운드 12순위로 선발된 후 신인상을 거머쥐었던 김이슬(신한은행)도 그 기량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김단비는 자신들의 세대가 아직은 한수 위라고 단언했다.
“다른 해에도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왔지만, 저희 세대만큼 모든 포지션에 골고루 유망주들이 나와서 프로 입단 후에도 다들 꾸준히 역할을 해준 경우는 없는 것 같아요. 네. 저희가 역대 최고의 세대라고 생각해요.”
“평소 특별히 시간을 내서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면서도 김단비는 동기들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또한, “지금 현역으로 뛰고 있는 (강)아정이와 (배)혜윤이는 프로에서 한 번도 같은 팀에서 뛴 적이 없다. 하지만 대표팀에서 만나면 특별히 뭘 해보지 않아도 손발이 정말 잘 맞는다”고 설명했다.
강아정과 배혜윤 역시 김단비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역대 WKBL에서 가장 좋은 선수들이 많이 배출된 동기들이라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 했다. 그래서 현재 현역에 남아있는 3명(김단비, 강아정, 배혜윤)에게 조금도 진지하지 않은 질문 몇 개를 던져봤다.
Q 세 명 중 가장 돈을 많이 번 선수는 누구일까요?
김단비(이하 ‘김’) : 셋 다 비슷하죠. 같이 프로에 들어왔고, 같이 선수 생활을 했고, 비슷하게 운동을 했기 때문에, 별 차이가 없을 거 같아요.
배혜윤(이하 ‘배’) : 김단비요. 우승을 몇 번 했는데요? 보너스를 받아도 몇 번을 더 받았겠어요? 무조건 제일 많아요.
강아정(이하 ‘강’) : 혜윤이 말이 맞죠. 비슷할 수가 없어요. 지금 모아둔 돈이 비슷하다면, 그건 그만큼 썼다는 거죠.
Q 대표팀에서 선배들이 가장 시끄러운 선수가 김단비-배혜윤-강아정이라고 했는데, 인정하나요?
김 : 저는 진짜 피해자에요. 혜윤이랑 아정이가 정말 말이 많고 시끄럽거든요? 그런데 동기니까, 옆에 있다가 언니들한테 같이 싸잡혀서 취급받은 거예요...
배 : 아니, 이건 진짜 억울해요. 단비가 그렇게 말했다니 뭐 그렇다고 치자고요. 그럼 누군가 사람이 말을 하는데 듣는 사람도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저는 듣는 역할이에요. 아정이가 말하고, 저는 듣고. 그런데 같이 시끄럽다니요? 듣기만 했다니까요!
강 : 이래서 이런 건 마지막에 답하면 안돼... 예.. 예...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제가 혼자 다 떠들고 시끄러워서, 둘은 억울하게 수다쟁이가 됐네요. 그랬나 봅니다. 제가 다~ 잘못했네요.
Q 셋 중 누가 인기가 가장 많나요?
김 : 농구 선수로서 인기는 저 아닐까요? 올스타 투표를 보면 딱 나오잖아요! 그런데 여자로서 인기는 아정이가 1등이고, 그 다음이 혜윤이, 제가 꼴찌죠. 그래서 저는 얼른 한 명한테 올인하고 결혼했잖아요. 결혼해서 너무 좋아요. 딱 좋을 때에 한 거 같아요. 둘은 결혼 빨리 못해요. 눈이 높거든요. 특히 아정이는 진짜 지나치게 높아요.
배 : 음... 그래요. 단비 말이 맞는 거 같아요. 그런데 전 결혼할 거예요. 남자만 생기면 바로 할 거니까 기대하세요. 항상 청첩장 받을 준비하시고요. 아정이는 쉽지 않을 거예요.
강 : ... 아니... 그래서 나한테 남자나 한 번 소개해 줘보고 그런 말들을 해야지... 단비 결혼은 그러려니 했는데, 혜윤이도 시집가면 그때는 데미지가 좀 있을 거 같긴 하네요.
Q 셋 중 누가 가장 오래 선수 생활을 하게 될까요?
김 : 혜윤이가 제일 오래할 거 같아요. 적어도 우리 중에 몸은 제일 좋잖아요. 크게 아픈 데가 없으니까 오래 할 거 같아요. 저랑 아정이는 누가 먼저 은퇴할지 눈치싸움 할 거 같고...
배 : 아... 내가 아픈 데가 없었구나. 얘들, 깜짝 놀랄 수도 있겠는데요?
강 : 뭐, 이거는 처음으로 단비가 제대로 말한 거 같네요.
각 팀의 주축. 에이스. 주장 혹은 주장을 역임한 선수. 부정할 수 없는 핵심자원으로 성장한 동기들이다.
“어렸을 때, ‘우린 언제까지 농구해야되냐’고 넋두리를 주고받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됐네요. 동기에 대한 애정은 누구나 그렇듯이 당연한 거 같아요. 작년에 혜윤이가 외국인 선수 없이 경기를 뛸 때 너무 마음이 아팠고, 아정이가 무릎을 다쳤을 때는 눈물이 날 뻔 했어요. 허리랑 발목도 성치 않은 애가 무릎까지 다치면... 우리 팀이 꼴찌일 때도 아정이랑 혜윤이가 걱정을 정말 많이 해줬어요. 제 동기들이지만, 얘들 둘 다 정말 농구 잘해요. 그리고 오랫동안 리그를 뛸 자격이 있는 훌륭한 선수들이에요. 팬들이 사실 여자 농구 선수들이 돈을 쉽게 번다고 하시는 데, 농구 선수라는 직업은 정말 여자가 하기 힘든 직업이거든요. 그렇게 힘들지만 우리가 정말 좋아했던 이 일을... 이제는 할 수 있는 날도 얼마 안 남았잖아요.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다치지 않고 행복하게 농구했으면 좋겠어요.”
#8
신한은행은 지난 6월 열린 3X3 트리플잼에서 김연희를 잃었다. 경기 도중 상대 선수와의 볼 경합 과정에서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다. 이번 시즌, 팀의 주전 센터로 많은 역할을 해주리라 기대했던 김연희의 이탈은 큰 충격이다. 정상일 신한은행 감독도 “한동안 멘붕에 빠졌었다”고 할 만큼 뼈아픈 손실이다.
그러나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인 김단비의 건재는 신한은행이 아픔을 딛고 새로운 준비를 할 수 있는 근간이 된다. 정상일 감독은 “김단비의 몸 상태나 훈련 예후가 좋아서 큰 위안이 된다”고 한다.
“아무래도 감독님 입장에서는 제가 병원이나 대표팀에 안 가고, 계속 감독님 눈앞에서 훈련을 꾸준히 하고 있으니까 좋아 보이시는 게 아닐까요?(웃음) 항상 대표팀 들락날락하고, 발목 수술을 한 적도 있고... 재활을 했던 적도 많았으니까요... 확실히 이 맘 때에 지금 같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는 건 지난 몇 년을 돌이켜 봐도 ‘비교적 좋은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지난 시즌이 코로나19사태로 조기 중단 되면서 아쉬움도 많았지만, 리그가 일찍 끝난 만큼 충분히 쉬고, 또 일찍부터 새 시즌 준비에 들어갔기 때문에 몸을 만드는 데 여유가 있는 건 사실이니까요.”
이번 시즌에도 김단비는 팀의 에이스다. 여전히 공격과 수비에서 중심이며, 해결사다. 앞서 말했듯, 여차하면 골밑도 지켜야 한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9년 만에 없어진 것도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
“외국인 없이 진행됐던 마지막 시즌에 저희가 우승을 했었죠. 사실 이 부분은 반반이에요. 농구에서는 센터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데, 센터 없는 팀이 많아서 재미가 반감될 수도 있을 것 같고, 반대로 국내 식스맨 선수들에게는 기회가 많이 갈 테니, 그런 부분은 좋은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가끔씩 4번으로 포스트 역할도 하게 될 텐데 그 부분의 부담은 그렇게 크지 않아요. 지금 WKBL에 박지수나 혜윤이를 제외하면 확실한 5번이라고 할 수 있는 주축 선수는 없으니까요.”
신한은행의 영광 재현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단비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김단비도 어느새 ‘베테랑’이라는 수식어가 너무나 익숙해졌다. 종횡무진 코트를 누비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시한부에 돌입했는지도 모른다.
“언제쯤 은퇴를 해야겠다는 것도 생각해봤죠. 그런데 말 안할래요. 저 2년 뒤에 FA에요. 마지막 FA일거고, 나름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은데, 지금 여기서 은퇴시기를 말하면 제가 뭐가 되겠어요?(웃음) 마음속으로 언제쯤이라고 설정한 목표와 시기는 있어요.”
고민도 있다.
“솔직히 예전과 제 몸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요. 몇 년 동안 부상을 달고 뛰었고, 무리하게 경기를 소화하기도 했거든요. 혹사라면 혹사인데, 결국 제가 선택한 거였어요. 저는 그렇게 해도 될 줄 알았는데... 안 되더라고요. 이제는 몸이 저한테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기적이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안 다치고, 안 아프고 농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제일 커요. 몸이 멀쩡해야 경기도 뛰는 거고, 그렇게 뛰어야 성적이든, 기록이든 따라오는 거니까요.”
그래서 김단비에게 올 시즌 가장 큰 목표는 부상 없이 시즌을 완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뛸 수 있다면 올림픽 무대에 서고, 아시아 정상에 올라선 일본에게 이겨보고 싶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제가 일본이랑 경기를 뛰어본 지가 좀 됐어요. 나이가 더 들고, 몸이 더 아프기 전에, 그리고 대표팀에서 내가 뛸 수 있을 때, 일본에 승부를 걸어보고 싶은 마음은 당연히 있어요. 일본은 국가대표도 세대교체가 빠르잖아요. 거기는 20대 선수들이 더 많은데, 저희는 지수를 제외하면 30대인 선수들이 더 주축이고... 그래서 나이를 더 먹기 전에 정말 승부를 한 번 내보고 싶어요.”
막내로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 무대를 밟았던 김단비가 이제는 국가대표 10년차다. 일본을 누르고 중국과 아시아 정상을 겨루던 시절부터, 우리나라와 일본의 위치가 역전된 지금까지, 김단비는 여자농구 대표팀의 현대사를 꾸준히 함께 했다.
“팬들에게는 정말 늘 감사해요. 특히 국가대표로 뛸 때는 팬들의 반응이 더 크게 느껴져요. 응원을 받을 때는 정말 큰 힘이 되고, 욕을 먹을 때는 정말 세상이 끝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래서 일본한테 질 때는 늘 힘들고, 또 팬들한테도 많이 죄송해요. 이제는 일본이 여자농구에서 아시아 정상에 있다는 걸, 많은 분들이 아시잖아요. 하지만 일본한테 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열세라는 건 알지만 그거랑은 다른 문제잖아요. 당장의 실력은 물론이고 저변이랑 선수 숫자에서도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지고 싶은 선수는 없거든요. 그리고 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일본은 그런 조건을 갖추고도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 10년 이상을 계획하고 준비했잖아요? 우리도 그런 준비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끔 국제대회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냈을 때, 져서 속상한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대회에 나설 수 있는 준비를 못한다는 게 속상했던 적도 많았거든요. 선수들도 열심히 할 테니, 한국 농구도 일본처럼 꾸준히 계속 준비를 하고, 팬들도 끝까지 응원하고 지켜주셨으면 좋겠어요.”
충만한 자신감으로 공수표를 던지기보다 냉정하게 판단을 해야 하는 위치.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입장을 대변하야 하는 것. 막내였던 김단비는 그의 자랑스러운 선배들이 그랬듯, 13년의 세월을 건너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미완의 대기’로 프로에 입단, 치열한 프로 초년생 시절을 거치며 챔피언의 DNA를 계승한 에이스로 성장했고, 팀의 추락과 함께 바닥까지 내려앉는 좌절도 경험했다. 하지만 팀의 자존심이자 에이스로서 매 시즌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됐다.
아직까지 단 한 번도 MVP의 영광을 누리지 못했지만, 신한은행 팬들에게 김단비는 이미 ‘가장 가치 있는 선수’의 첫 머리에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코트에서 뛰는 내내, 그리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김단비’라는 이름은 신한은행을 응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MVP와 똑같은, 어쩌면 그보다 더 큰 무게로 존재할 것이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20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WKBL FIBA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