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별 역대 최고의 라인업 | 댈러스 매버릭스
센터
샘 퍼킨스
206cm, 107kg
NCAA 우승(1982)
1984 LA 올림픽 금메달
미국농구협회 올해의 선수(1984)
올-루키 퍼스트 팀(1985)
구단 역대 통산 득점 8위(6,766점)
구단 역대 통산 리바운드 3위(3,767개)
구단 역대 통산 블록 6위(444개)
댈러스 매버릭스의 최고의 센터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역사상 이렇다 할 빅맨이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 성적이 가장 뛰어났던 로이 타플리는 약물 중독으로 세 시즌 이상을 허비하며 커리어에 먹칠을 했다. 숀 브래들리와 제임스 도날슨은 기량이 아쉽다.
댈러스는 1984년 드래프트 4순위 지명권으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샘 퍼킨스를 지명했다. 퍼킨스는 1984 LA 올림픽에서 미국 팀에 금메달을 안기는 등 당시 이미 스타 반열에 오른 선수였다. 지금은 마이클 조던의 대학시절 동료로 더 유명하다.
퍼킨스는 1984-85시즌부터 6년간 댈러스 소속으로 꾸준히 활약했다. 해당 6시즌 간 평균 기록은 14.4점 8.0리바운드 1.8어시스트 1.0스틸 FG 47.7%. 소포모어 시즌에는 15.4점 8.6리바운드 1.9어시스트 FG 50.3%를 올리는 등 핵심 멤버로 떠오르기도 했다. 1986-87시즌 휴스턴 로케츠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31점 20리바운드를 따내기도 했는데, 이는 오늘날까지도 프랜차이즈 역사상 유일한 30점-20리바운드 이상 경기로 남아 있다.
퍼킨스는 훗날 LA 레이커스,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거쳐 인디애나 페이서스에서 은퇴했다. 30대 들어서는 떨어지는 골밑 경쟁력을 만회하기 위해 3점슛 시도를 늘렸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아예 ‘스트레치 빅맨’으로서 활약했다. 통산 3점슛 성공률은 36.2%. 시대를 앞서간 선수 중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워포워드
덕 노비츠키
213cm, 111kg
2010-11시즌 챔피언
2011 파이널 MVP
2007 정규리그 MVP
올스타 13회 선정
올-NBA 퍼스트 팀 4회
올-NBA 세컨드 팀 5회
올-NBA 서드 팀 3회
2002 세계선수권대회 MVP
구단 통산 득점 1위(29,376점)
구단 통산 리바운드 1위(10,499개)
구단 통산 어시스트 4위(3,401개)
구단 통산 스틸 2위(1,123개)
구단 통산 블록 2위(1,179개)
댈러스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이자 역사 그 자체. ‘살아있는 전설’ 덕 노비츠키는 리그 역사상 최고의 파워포워드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98-99시즌 데뷔 후 18시즌 째 매버릭스에서만 뛰고 있다.
신인 시절만 하더라도 별 볼 일 없었다. 장신에 뛰어난 슈팅력을 갖추긴 했지만 몸싸움과 수비에 약했고, 인사이드에서 할 수 있는 것도 거의 없었다. 본인 스스로도 “그때는 경기에 나가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고 회고할 정도.
하지만 마크 큐반 구단주와 돈 넬슨 감독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곧 리그 최고의 스타로 성장한다. 2000년대 초반 댈러스의 공격농구를 주도하며 슈퍼스타 반열에 오른 것.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슈팅과 날쌘 기동력의 조합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노비츠키와 비슷한 ‘슈팅 빅맨’들이 세계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키 큰 애송이에 불과했던 노비츠키가 결국 농구의 트렌드를 바꿔버린 것이었다.
2006-07시즌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지만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2010-11시즌에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노비츠키는 절정에 오른 기량을 과시, 댈러스 구단의 유일한 우승을 이끌어냈다.
어느덧 만 37세의 노장이 된 노비츠키. 그는 늘 “댈러스에서 은퇴하겠다”고 말한다. 노비츠키는 댈러스가 낳은 최고의 스타로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스몰포워드
마크 어과이어
198cm, 105kg
우승 2회(1989, 1990)
올스타 3회 선정
1980 네이스미스 올해의 대학선수
1980 AP 올해의 선수
구단 통산 득점 3위(13,930점)
구단 통산 리바운드 6위(3,244개)
구단 통산 어시스트 2위(4,494개)
드폴 대학의 마크 어과이어는 압도적인 실력을 바탕으로 상이란 상을 다 쓸어 담고 다녔다. 대학 3년간 평균 기록은 24.5점 7.9리바운드 FG 54.6%. 그야말로 적수가 없었다.
어과이어가 1981년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의 주인공이 됐음은 당연했다. 그를 데려가는 행운을 누린 팀은 신생팀이나 다름없던 댈러스. 어과이어는 1980년대 매버릭스의 에이스로 맹활약했다.
그는 첫 시즌부터 평균 18.7점을 올리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두 번째 시즌에는 24.4점, 세 번째 시즌에는 무려 29.5점(2위) 5.9리바운드 4.5어시스트 FG 52.4%로 탁월한 기량을 뽐냈다.
어과이어는 1986-87시즌 평균 25.7점 5.3리바운드 FG 49.5%를 올리며 댈러스를 서부 컨퍼런스 2위(55승 27패)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1라운드에서 7번 시드 시애틀 슈퍼소닉스에 1승 3패로 덜미를 잡히며 망신을 당했다.
1987-88시즌 댈러스는 53승 29패를 거뒀다. 이번에는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했으나 7차전 접전 끝에 LA 레이커스에 아쉽게 무릎을 꿇었다.
어과이어는 1988-89시즌 도중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로 이적했다. 이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어과이어는 특유의 득점력을 앞세워 피스톤스의 우승에 일조했다. 이듬해에는 키 식스맨으로 변신, 다시 한 번 챔피언에 등극했다.
한편, 어과이어는 댈러스에서의 8시즌 동안 평균 24.6점 5.7리바운드 3.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슈팅가드
롤랜도 블랙맨
198cm, 86kg
올스타 4회 선정
구단 역대 통산 최다출전 4위(865경기)
구단 역대 통산 득점 2위(16,643점)
구단 역대 통산 어시스트 6위(2,748개)
구단 역대 통산 야투 성공 2위(6,487개)
구단 역대 통산 자유투 성공 2위(3,501개)
노비츠키가 등장하기 전까지 매버릭스 구단 역대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는 롤랜도 블랙맨이었다. 그는 1980년대 최고의 슈팅가드 중 한 명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날카로운 돌파와 정확한 중장거리 슛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어 막기가 쉽지 않았다. 단순히 받아먹기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 던질 줄도 알았던 빼어난 득점원이었다.
블랙맨은 댈러스 구단의 초창기를 함께 했던 선수다. 1981-82시즌부터 11시즌 동안 댈러스 소속으로 평균 19.2점 3.6리바운드 3.2어시스트를 올렸다. 야투성공률 또한 49.7%에 달했다. 마크 어과이어, 데릭 하퍼와 호흡을 맞추며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또, 총 865경기를 뛰었는데 이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파울아웃 당한 적이 없다. 그만큼 반칙 관리에도 능했다.
1984-85시즌부터는 3년 연속 올스타전 무대를 밟았다. 이 시기 댈러스는 약팀에서 강팀으로 도약하는 시기였는데, 당시 블랙맨의 역할이 컸다. 1989-90시즌 다시 한 번 올스타로 선정되기도 했다.
블랙맨은 1992-93시즌 뉴욕 닉스로 이적해 두 시즌을 소화한 뒤 은퇴를 선언했다. 댈러스는 2000년 봄, 블랙맨의 등번호 22번을 영구결번하며 그의 업적을 기린 바 있다.
포인트가드
데릭 하퍼
193cm, 84kg
수비 세컨드 팀 2회(1987, 1990)
구단 역대 통산 최다출전 3위(872경기)
구단 역대 통산 득점 4위(12,597점)
구단 역대 통산 어시스트 1위(5,111개)
구단 역대 통산 스틸 1위(1,551개)
댈러스의 역사에는 좋은 포인트가드가 많았다. 구단 통산 최다출전 2위(883경기)에 빛나는 브래드 데이비스, 2000년대 초반 댈러스의 돌풍을 이끈 스티브 내쉬, 2011년 창단 첫 우승에 기여한 제이슨 키드까지 말이다. 하지만 그 어떤 가드도 데릭 하퍼만큼 오랜 시간 꾸준히 활약하지 못했다.
하퍼는 올스타전 출전 경험이 없다. 하지만 홈팬들에게만큼은 누구보다 큰 사랑을 받았다. 안정적인 경기 운영, 적재적소에 올려주는 득점력, 강력한 수비력까지 모두 갖춘 덕분이었다. 그는 포지션 대비 큰 신장을 십분 활용했는데, 덕분에 엔트리 패스도 안정적으로 넣어줄 수 있었다. 간간이 터트리는 3점포도 일품.
하퍼는 댈러스에서 12시즌을 보내며 14.4점 5.9어시스트 1.8스틸 FG 46.9%를 기록했다. 또, 구단 통산 어시스트와 스틸 부문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이에 마크 큐반 구단주는 2013-14시즌 도중 하퍼의 등번호 12번을 영구결번할 계획임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직까지도 하퍼의 유니폼이 홈구장 천장에 걸리지 않아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한편, 하퍼는 1993-94시즌 도중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 됐다. 하퍼는 닉스의 파이널 진출을 도왔으나 우승에는 실패했다. 7차전에서 휴스턴 로케츠에 아깝게 졌기 때문. 하퍼는 끝내 우승 반지와 연을 맺지 못한 채 1999년 은퇴하고 말았다.
식스맨
마이클 핀리
201cm, 102kg
우승 1회(2007)
올-루키 퍼스트 팀(1996)
올스타 2회 선정
구단 역대 통산 최다출전 5위(626경기)
구단 역대 통산 득점 5위(12,389점)
구단 역대 통산 리바운드 5위(3,245개)
구단 역대 통산 스틸 4위(748개)
구단 역대 통산 3점슛 3위(870개)
매버릭스의 역사를 논할 때 마이클 핀리를 빼놓을 수는 없다. 핀리는 한때 댈러스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1990년대 후반 매버릭스의 암흑기를 홀로 버텨내기도 했다.
핀리의 별명은 ‘코트 위의 철인’이다. 강철 체력을 바탕으로 세 차례나 리그 평균 출장시간 1위에 올랐다. 40분씩 뛰는 것은 예사였다. 1999-2000시즌에는 평균 42.2분간 코트를 누비며 22.6점 6.3리바운드 5.3어시스트 3점슛 성공률 40.1%를 올리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데뷔 이후 첫 6시즌 동안 단 한 경기도 결장하지 않는 등 빼어난 내구성을 자랑한 바 있다.
기량 또한 출중했다. 특히 중장거리에서의 해결능력이 좋았다. 상대 빅맨의 머리 위로 내리찍는 ‘인 유어 페이스’ 덩크는 핀리의 전매특허. 승부처에서도 숱한 클러치슛을 책임졌을 만큼 강심장이기도 했다.
핀리는 2000년대 초반 덕 노비츠키, 스티브 내쉬와 함께 ‘빅 3’를 결성, 리더로서 활약했다. ‘더 맨’ 자리를 노비츠키에게 내어준 뒤에는 부상으로 인해 서서히 노쇠화를 겪기 시작했다.
이에 댈러스는 2005-06시즌을 앞두고 사면 조항을 이용해 핀리를 방출했다. 9시즌 간 이끌었던 팀에 토사구팽 당하자 화가 났던 것일까. 핀리는 라이벌 구단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이적했다. 스퍼스는 2006-07시즌 우승을 차지했는데, 핀리 역시 이에 일조한 바 있다.
댈러스에서는 총 626경기에 출전, 평균 19.8점 5.2리바운드 3.8어시스트 1.2스틸을 올렸다.
이승기 기자(holmes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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