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환의 앤드원] 맘바 멘탈리티는 아직 살아 있다

2020-01-28     이동환 기자

[루키=이동환 기자] 세상에 가벼운 죽음은 없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코비의 죽음은 유난히 우리의 마음을 너무 무겁게 만들었다. 이렇게나 빨리, 그리고 갑자기 찾아올 줄은 몰랐기에 더 충격적이었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1월 26일, 코비 브라이언트가 세상을 떠났다. 둘째 딸 지아나와 함께 자신이 설립한 ‘맘바 스포츠 아카데미’에서 열리는 농구 경기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변을 당했다. 원인은 헬리콥터 추락 사고. 코비와 지아나를 포함한 탑승자 9명이 전원 사망했다.

‘맘바 스포츠 아카데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경기는 모두 취소됐다. 하지만 NBA 경기들은 취소되지 못했다.

비극을 마주한 채 8경기가 열렸다.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갖지 못한 후배 NBA 선수들과 관계자들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오스틴 리버스, 타이슨 챈들러, 브래들리 빌, 스펜서 딘위디 등은 눈물을 쏟아냈다. LA 클리퍼스 닥 리버스 감독은 올랜도전을 앞두고 진행된 현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코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끝내 오열하고 말았다.

모두가 코비를 이야기했고, 모두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2020년 1월 26일은 NBA 역사상 가장 슬픈 하루로 기억될 것이다.

 

‘맘바 멘탈리티’는 시대 정신이다

현역 시절 코비 브라이언트에게는 대표적인 별명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Mr. 81’이었다. 한 경기에서 81득점을 기록한 코비의 업적을 기려 팬들과 언론이 만들어낸 별명이었다. 지금도 코비의 81득점은 NBA 단일 경기 최다 득점 2위 기록으로 남아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블랙 맘바(Black Mamba)’였다. 이는 코비 본인이 자신을 위해 직접 지은 별명이었다.

이 별명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며 지금도 많은 영화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 <킬빌(Kill Bill)>에서 유래했다.

<킬빌>에서 주인공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는 5년 전 결혼식에서 갑작스럽게 죽은 남편을 위해 잔인한 복수에 나선다. 영화 속에서 더 브라이드를 지칭하는 암호명이 있었다. ‘블랙 맘바’였다.

<킬빌>을 관람한 젊은 코비는 더 브라이드의 잔혹한 킬러 본능에 감명 받았다. 이후 그는 동료들과 지인들 앞에서 스스로를 ‘블랙 맘바’라고 부르고 다녔다. 더 브라이드 같은 강한 킬러 본능을 코트에서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직접 지은 별명을 통해 드러낸 것이다.

2016년 은퇴 경기에서 60득점을 쏟아 부으며 팀을 승리로 이끈 코비. 믿기 힘든 자신의 퍼포먼스를 목격한 뒤 한껏 고무돼 있는 팬들에게 코비가 남긴 마지막 인사에도 ‘맘바(Mamba)’라는 단어는 어김없이 들어가 있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맘바는 떠납니다!(What can I say? Mamba Out!)”

 

코비는 20년의 커리어를 통해 ‘맘바’를 자신을 위한 단어로 만들어냈다.

팬들은 코비를 ‘블랙 맘바’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했으며, 코비의 강인한 정신력을 가리키는 말인 ‘맘바 멘탈리티(Mamba Mentality)’는 어느 순간부터 지독한 승부욕과 열정을 상징하는 캐치 프레이즈가 돼 있었다.

26일 코비의 사망 소식을 접한 뒤 괴로운 마음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 경기를 뛰어야 했던 NBA 선수들은 경기 후 저마다 ‘맘바 멘탈리티’와 관련한 이야기를 꺼냈다.

보스턴을 상대로 경기를 치른 뉴올리언스의 즈루 할러데이는 “아마도 코비는 우리가 보스턴을 눌러주길 바랐을 것이다. 그래서 의미 있는 승리였다”라고 말했다. 론조 볼은 “분명 코비는 농구 역사상 가장 지독한 노력파였다”라며 코비의 죽음을 애도했다.

인디애나전을 치른 후 포틀랜드의 카멜로 앤써니는 코비와 맺은 둘만의 약속을 취재진에게 이야기했다. 주말에 있을 레이커스 원정 경기를 코비가 직접 찾아 자신을 응원해주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앤써니는 “정신적으로 너무 괴롭다. 오늘 경기는 평생 뛴 농구경기 중 가장 힘든 경기였다”라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내가 아는 코비는 오늘 내가 경기에 뛰기를 바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의 트로이 브라운은 고교 시절 나이키 캠프에서 코비를 처음 만나 코비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직접 들었던 에피소드를 말했다. “그때 코비의 이야기는 내 마음 한 곳에 강하게 박혔다. 그 이야기를 들은 경험은 내게 노력을 이어가고 꿈을 포기하지 않는 원동력이 됐다. 농구에 내가 가진 110%를 쏟아 붓는 계기가 됐다. 코비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브라운의 말이다.

애틀랜타전을 치르던 중 혼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중계화면에 잡힌 브래들리 빌. 경기 후 그는 코비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 역시 ‘맘바 멘탈리티’를 거론했다.

“농구를 대하는 코비의 마음가짐과 자신감이 너무 좋았다. 건방진 것과는 달랐다. 코비는 스스로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코비에 대해 가장 좋아했던 부분이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다들 ‘맘바 멘탈리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맘바 멘탈리티’야말로 코비 그 자체다. 코비가 그런 정신을 만들어냈다. ‘블랙 맘바’는 코비의 전부를 지칭할 수 있는 별명일 것이다. 코비의 업적은 영원할 것이다. 코비는 이 시대의 진정한 아이콘이었다.”

 

(▲코비의 소식을 접한 당일 경기를 치러야 했던 워싱턴의 브래들리 빌은 경기 중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샌안토니오의 그렉 포포비치 감독도 마찬가지로 괴로워하는 더마 드로잔의 어깨를 만지며 그를 위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샌안토니오의 더마 드로잔과 토론토의 노먼 파웰도 코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긴 마찬가지였다. 한 때 토론토에서 동료로 뛰었던 드로잔과 파웰은 코비가 우상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드로잔은 “코비는 내게 전부였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이 코비에게서 비롯됐다. 지금 내게서 코비가 준 것을 빼면 나는 여기에 있지 못할 것이다. 농구에 대한 사랑, 열정, 의지가 모두 사라질 것이다. 내 모든 것이 전부 코비로부터 왔다. 어떤 단어로도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슬픔을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코비는 농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전세계에 영감을 준 존재였다”라고 말했다.

코비를 동경해 24번을 달고 있는 노먼 파웰은 “코비는 내게 모든 것을 의미하는 존재였다. 승부사 기질은 물론이고 매일 같이 노력하고 농구를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하는 마음가짐을 코비에게서 배웠다. ‘맘바 멘탈리티’를 나 자신에게 이식하려고 했고 그를 통해서 농구와 인생 모두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하는 자세를 가지고 싶었다. 코비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가진 재능을 노력을 통해 극대화하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했다.

‘맘바 멘탈리티’에 대한 언급은 농구선수들 사이에서 그치지 않았다. NFL 슈퍼볼 경기를 앞두고 진행된 공식 기자회견에서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리차드 셔먼은 코비를 위해 승리하겠다며 ‘맘바 멘탈리티’를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코비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코비를 위해서라도 이 경기를 승리하겠다. 맘바 멘탈리티는 아직 살아 있다. 필드로 나가서 경기를 지배하겠다. 코비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셔먼의 말이다.

‘맘바 멘탈리티’는 코비를 지켜보고 동경하며 성장한 모든 선수들이 공감하고 따르려 한 것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맘바 멘탈리티’는 현 세대 스포츠 선수들이 공유하는 일종의 시대정신이 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코비를 기억하고 싶다

떠난 사람을 위해 남은 사람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을 눈물짓게 만들었던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에서 아버지를 평생 그리워한 할머니 코코를 위해 손자 미구엘이 부른 노래의 제목도 ‘Remember Me(나를 기억해줘)’였다.

코비의 죽음이 알려진 후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코비를 회상하고 기억하려고 애썼다. 더불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보가 전해지자마자 수천 명의 LA 시민들이 길거리로 나와 밤새도록 코비와 그의 딸 지아나를 추모했다. 코비가 설립한 ‘맘바 스포츠 아카데미’와 LA 레이커스 구단 연습 체육관 앞에도 팬들이 모여들었다. 시카고 시민들은 유나이티드 센터 앞 보도블럭에 코비를 그리워하는 글귀를 적어서 남겼다.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시카고의 윌리스 타워, 메디슨스퀘어 가든, TD 가든, 샌프란시스코 체이스 센터, LA 시청, 이스턴 켄터키 대학 체육관, LA 국제공항, 애틀랜타의 메르세데스-벤츠 스타디움, 오레곤 컨벤션 센터, 세인트루이스의 페리스 휠 등 수많은 랜드마크의 조명이 코비가 평생 입었던 레이커스 유니폼의 색깔인 ‘퍼플 앤 골드(Purple and Gold)’로 바뀌었다. 코비를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다.

 

 

NBA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코비를 추모했다. 비통함 속에서 경기를 치러야 했던 선수들은 첫 공격의 8초와 24초를 번갈아가며 그냥 흘려보냈다. 코비의 등번호였던 8번과 24번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더마 드로잔, 도노반 미첼, 마이크 콘리, 루카 돈치치 등 많은 선수들이 신발에 코비의 이름과 글귀, 사고 희생자들의 이름을 적어서 코트에 나섰다.

28일 열린 코네티컷 대학과 미국 여자농구 대표팀의 친선전에서도 뜻깊은 추모 행위가 있었다.

코네티컷 대학에 진학한 후 WNBA 선수가 되기를 꿈꿨던 코비의 딸 지아나를 위해 코네티컷 대학 선수들이 코트사이드의 한 좌석에 지아나를 위한 유니폼을 걸고 조화를 둔 것이다. 유니폼에는 지아나가 평소 달았던 등번호 2번이 적혀 있었다.

이날 미국 대표팀 선수로 경기장을 찾은 WNBA의 전설 다이애나 터라시는 코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코비는 도시 LA에 정말 많은 것을 의미하는 존재였다. 코비가 보여준 경쟁심은 정말 대단했다. 모두가 코비의 그 모습을 가슴에 품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코비의 팬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ESPN도 코비를 위해 특별한 결정을 내렸다. 그가 죽은 다음날인 27일 저녁에 코비의 은퇴 경기를 내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날 유타 재즈를 상대로 코비는 승부를 결정짓는 위닝샷을 포함해 60득점을 쏟아 부었다. NBA 역사상, 아니 스포츠 역사상 이보다 위대한 은퇴 경기 퍼포먼스는 없었다.

무려 4년 전에 열린 NBA 경기가 NBA 전문 방송 채널인 NBA TV가 아닌 ESPN을 통해 재방송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것도 NBA 시즌 중에 말이다. 하지만 많은 팬들은 ESPN의 결정을 반겼다. 코비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코비를 존경했으며 가까운 사이로 지냈던 르브론 제임스는 비보가 전해진지 하루가 지나서야 인스타그램에 긴 글을 올려 애도를 표했다. 슬픔이 너무 컸기에 애도를 위해 마음을 가다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불운한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하루 전 르브론은 코비를 제치고 NBA 통산 득점 역대 3위로 올라섰다. 경기 후 라커룸에서 르브론은 취재진과 긴 시간동안 코비와 처음 만난 날, 코비가 자신에게 끼진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르브론은 코비의 축하 전화를 라커룸에서 직접 받았다. 당시 르브론은 스피커 폰 모드로 코비와 대화를 나눴고 함께 라커룸에 있던 모든 레이커스 선수들이 코비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목소리는 르브론을 포함한 레이커스 선수들이 들은 코비의 마지막 목소리가 됐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아직 미처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라며 글을 시작한 르브론은 “앉아서 무언가를 계속 쓰려고 했지만 시도할 때마다 계속 눈물이 나고 당신이 떠오른다”라고 말했다.

“그때 경기가 열렸던 필라델피아를 떠나기 전에 전화로 나눈 대화가 우리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가슴이 찢어지고 너무 충격이 크다. 코비 당신을 사랑한다. 당신의 업적을 이어가겠다고 약속하겠다. 우리 모두에게 당신은 의미가 큰 존재이고 레이커스 구단에는 더 특별하다. 이 비보를 뒤로 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책무다. 천국에서 나를 지켜보며 힘을 달라.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지만 아직 갈 길이 남았기에 참겠다.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기다려 달라.” 르브론이 적은 글이다.

 

코비와 코트 안팎에서 시간을 함께 보낸 선수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드러냈다. 드웨인 웨이드는 인스타그램에 코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영상을 직접 올렸다. 영상 속에서 웨이드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웨이드는 코비의 죽음에 대해 “코비는 내가 늘 쫓으려고 노력했던 존재다. 이건 정말 악몽 같은 일”이라며 슬퍼했다. 크리스 보쉬 역시 트위터에 코비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아예 경기를 결장한 선수들도 있었다.

코비가 죽은 당일 뉴욕 원정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던 어빙은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비보를 접한 뒤 경기장을 떠났고 결국 경기에 뛰지 못했다.

어빙은 평소 코비를 무척 존경해왔던 선수였다. 둘은 가장 가까운 친구 사이이자 멘토와 멘티로 지내고 있었다. 2016년 파이널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뒤 어빙이 코비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던 일화는 팬들 사이에서도 꽤 잘 알려져 있다. 생전 코비는 당시 일에 대해 “영상 통화를 정말 싫어한다. 하지만 그 전화는 받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크리스 폴도 27일 열린 오클라호마시티와 댈러스의 경기에 결장했다. 오클라호마시티의 빌리 도너반 감독은 “폴과 대화를 나눴다. 그 내용은 공개하고 싶지 않다. 폴은 지금 괜찮다. 다만 폴을 위해 오늘은 배려를 해줘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폴은 코비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함께 뛰었던 대표팀 동료였다. 이후 둘은 더 가까워지며 절친한 사이가 됐다. 2016년 코비의 은퇴 경기 후 폴은 드웨인 웨이드, 카멜로 앤써니와 함께 특별한 저녁 파티를 준비해 코비를 직접 초대하기도 했다. 당시 코비는 넷플릭스 구독권, 속옷, 독서 안경, 지팡이를 셋에게서 은퇴 선물로 받았다. 선물의 면면만 봐도 코비와 폴이 얼마나 친근하고 가까운 사이였는지 알 수 있다.

코비의 죽음으로 인해 경기가 취소되는 일도 벌어졌다. 29일 열릴 예정이었던 LA 레이커스와 LA 클리퍼스의 시즌 세 번째 LA 더비가 아예 연기됐다. 레이커스 구단에 충격을 받은 관계자가 너무 많았고, 사무국이 이런 상황을 배려해 내린 결정이었다. 상대 팀은 클리퍼스 역시 아무런 반대 의견 없이 이 결정을 따랐다.

LA 레이커스 관련 최고 소식통으로 꼽히는 라모나 쉘번 기자는 “코비는 레이커스에서만 20년을 뛰었다. 대부분의 레이커스 구단 직원들이 코비와 가깝게 지냈고 이번 소식에 충격을 받은 상태”라며 레이커스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 글이 쓰이고 있는 지금도 전세계 농구 팬들이 코비의 죽음에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필자도, 여러분들도 당분간은 코비의 이름을 머릿속에 계속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코비는 위대한 농구선수였으며 꿈꾸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위대한 선구자이자 멘토였다. 이제는 그의 모습과 목소리를 과거의 영상을 통해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플 뿐이다. 하지만 코비가 코트 안팎에서 보여준 ‘맘바 멘탈리티’는 앞으로도 위대한 유산이 되어 다음 세대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천국에서 딸과 부디 평안히 지내길. 
R.I.P, 코비 빈 브라이언트(Kobe Bean Bryant).

 

 

사진= 로이터/뉴스1 제공, 트위터 영상 및 사진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