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환의 앤드원] 작전판: 클리퍼스는 루카 돈치치를 어떻게 봉쇄했나
[루키=이동환 기자] 댈러스의 루카 돈치치는 올 시즌 초반 가장 뜨거운 활약을 펼치고 있는 영건이다.
개막 16경기에서 돈치치는 평균 30.6점 10.1리바운드 9.8어시스트 3점슛 3.3개 야투율 49.4% 3점슛 성공률 34.7%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주 치른 4경기에서는 평균 37.0점 8.5리바운드 11.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서부지구 이주의 선수에 선정됐다. 댈러스 소속 선수가 이주의 선수에 선정된 것은 2016년 4월 J.J. 바레아 이후 3년 7개월여 만이었다.
돈치치가 MVP급 활약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27일(이하 한국시간) 열린 댈러스 매버릭스와 LA 클리퍼스의 경기가 팬들의 관심을 모은 것은 당연한 일. 카와이 레너드, 폴 조지 등 정예멤버가 총 출동한 클리퍼스를 상대로 돈치치가 어떤 활약을 펼칠지 이목이 집중됐다.
결과는 돈치치의 완패였다. 이 경기에서 돈치치는 22점 8리바운드 6어시스트로 3점슛 0개로 스탯 볼륨부터 최근 페이스에 비해 크게 내려갔다. 슈팅 효율은 더 안 좋았다. 총 14개의 슛을 던졌는데 이중 단 4개만 적중했다. 3점슛은 8개를 던져 모두 실패했다.
이 경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돈치치를 봉쇄한 클리퍼스의 수비법이었다. 클리퍼스는 ‘돈치치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몇 가지 수비 약속을 가지고 왔고, 실제로 경기 중에 그 약속을 매우 잘 실행했다. 지금부터 클리퍼스가 루카 돈치치를 봉쇄한 방법을 확인해보도록 하자.
노 미들(No Middle), 노 오버헤드 패스(No Overhead Pass)
루카 돈치치에 대한 수비는 곧 그의 픽앤롤 공격을 막는 것을 의미한다.
올 시즌 돈치치는 전체 공격 중 38.8%를 픽앤롤 공격의 드리블러로 전개하고 있는데, 이는 아이솔레이션(14.7%), 트랜지션(13.1%), 핸드오프(7.1%) 같은 다른 공격 방식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돈치치는 픽앤롤 드리블러로 공격할 경우 1회당 평균 1.139점을 직접 득점 혹은 패스를 통해 생산한다. 이는 리그 전체 상위 10%에 해당하는 효율이다.
심지어 픽앤롤 상황에서 트랩 수비를 만났을 때도 돈치치는 평균 1.182점을 창출해낸다. 이 역시 리그 상위 10%에 해당하는 수치다. 트랩 수비 없이 수비수 1명만 돈치치를 막는다면? 이때 돈치치는 평균 1.305점을 만들어낸다. 리그 상위 5%다.
워낙 효율이 좋다보니 댈러스를 만나는 모든 팀이 돈치치의 픽앤롤 공격을 막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요즘 돈치치의 픽앤롤 공격은 알고도 못 막는 수준이다. 자신의 수비수가 스크린에 걸리거나(into pick), 스크린 밑으로 지나갈 경우(under pick) 돈치치는 가볍게 스텝백 3점을 꽂아버린다.수비수가 스크린 위로 넘어와(over pick) 압박할 경우에는 3점슛 라인 안쪽으로 돌파해 다른 수비수들의 움직임에 맞춰 직접 가볍게 득점을 올리거나 킥아웃 패스를 통해 동료들의 득점을 돕는다.
돈치치의 픽앤롤 공격은 절묘함 그 자체다. 어떤 플레이를 펼칠지 판단하고 그 플레이를 실행에 옮기는 타이밍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반 박자 빠르다. 그리고 판단 자체도 절묘하다 보니 수비 입장에서는 정말 막기 곤욕스럽다.
그렇다면 27일 경기에서 클리퍼스는 돈치치의 픽앤롤 공격을 어떻게 제어했을까?
클리퍼스가 가져온 첫 번째 방법은 돈치치의 코트 중앙 지역 진입을 최소화하는 ‘노 미들(No Middle)’ 전략이었다.
똑같이 픽앤롤 공격을 펼쳐도 선수마다 자신의 장점이 극대화되는 지점이 있다.
돌파 후 림으로 도달하는 순간 속도가 빠르거나 베이스라인 앞에서 던지는 미드레인지 점프슛이 정확한 선수는 코트 중앙보다는 사이드라인 쪽이 자신의 ‘핫 스팟’이 된다.
반면 자유투 라인 부근에서 던지는 미드레인지 점프슛이 더 안정적이거나, 이 지점에서 나가는 킥아웃 패스의 질이 좋은 선수는 코트 가운데 지역이 주 무대가 된다.
돈치치는 후자에 해당하는 선수다. 특히 돈치치는 코트 중앙에서 뿌리는 킥아웃 패스가 리그최고 수준이다. 이에 맞춰 돈치치를 막는 클리퍼스의 수비수들은 그의 코트 중앙 진입을 최소화하는 수비를 펼쳤다. 특히 돈치치가 사이드라인과 가까운 곳에서 볼을 잡을 경우에는 처음부터 아예 코트 중앙 지역을 등지고 돈치치의 몸과 볼을 압박했다.
위 그림은 어제 경기에서 1쿼터 시작 2분 30여초 만에 나온 장면을 나타낸 것이다.
스위치를 통해 폴 조지가 돈치치를 막는 상황이 나왔는데, 이 장면에서 폴 조지는 돈치치가 패스를 받는 순간부터 스틸을 노리는 강한 압박 수비를 펼쳤다. 이때 폴 조지의 등 각도는 사이드라인과 거의 평행을 이뤘다. 코트 중앙 돌파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드러나는 스탠스였다.
위는 댈러스의 3쿼터 첫 공격에서 벌어진 상황이다. 돈치치의 마크맨인 모 하클리스가 사이드라인 쪽은 열어두되 코트 가운데는 등지고 돈치치를 마크하는 것이 보인다.
클리퍼스 수비수들이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돈치치를 막은 탓에 댈러스는 돈치치가 주도하는 픽앤롤 공격을 효과적으로 전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돈치치의 마크맨이 사이드라인과 평행을 이루며 서 있다 보니 댈러스의 스크리너가 돈치치가 코트 중앙으로 돌파할 수 있도록 스크린을 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클리퍼스가 사이드라인 쪽을 열어주는 블루(Blue) 혹은 다운(Down)에 가까운 수비 상황이 만들어졌다.
전반에는 돈치치가 이 같은 클리퍼스의 수비에 사이드라인 쪽 돌파를 기습적으로 감행하는 장면이 몇 차례 나왔다. 그리고 이것이 파울과 자유투 유도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돈치치 본인은 자유투 득점을 올릴지언정 댈러스 동료들이 킥아웃 패스를 받아 3점을 펑펑 터트리는 장면은 자주 나오지 못했다. 혹여나 돈치치가 중앙 지역으로 볼을 몰고 가는 상황이 생기면 리스크가 있더라도 트랩 수비를 통해 돌파를 깊게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클리퍼스의 로테이션 수비가 탄탄하기도 했지만 클리퍼스가 가져간 수비 콘셉트 자체가 워낙 좋았다. 픽앤롤 공격 시에 드리블러가 사이드라인 쪽을 돌파할 경우 코트 중앙 쪽을 돌파할 때보다 킥아웃 패스의 거리가 길어지고 킥아웃 패스의 각도도 제한된다. 때문에 ‘노 미들(No Middle)’ 전략은 돈치치처럼 시야가 넓고 다양한 방향으로 킥아웃 패스를 잘 뿌리는 선수를 상대로 시도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클리퍼스가 가지고 온 또 다른 수비법은 돈치치의 오버헤드 패스를 최대한 어렵게 만드는 ‘노 오버헤드패스(No Overhead Pass)’였다.(이건 굳이 이름을 붙여보았다.)
어떤 농구선수든 저마다 선호하고 잘하는 종류의 패스가 있다.
예를 들어 제임스 하든은 픽앤롤 공격 시에 롤맨 혹은 쇼트 코너에 서 있는 빅맨에게 위로 높게 띄워주는 랍 패스를 무척 효율적으로 연결한다. 러셀 웨스트브룩은 픽앤롤 공격에서 바운스 패스로 빅맨의 페인트존 득점을 돕는 것에 재능이 있다. 르브론 제임스는 강한 손목 힘을 활용해 원핸드 패스를 빠른 타이밍에 코트 곳곳으로 뿌린다. 아웃렛 패스의 대가 케빈 러브는 어깨를 이용해 던지는 베이스볼 패스에 재능이 있다.
돈치치가 가장 잘하는 패스는 오버헤드 패스다. 말 그대로 머리 위에서 양손으로 뿌리는 패스를 통해 동료들의 캐치앤슛 득점을 돕는다. 특히 픽앤롤 공격 시에 3점슛 라인 바깥에서 페인트존의 롤맨 혹은 반대 사이드의 슈터로 향하는 돈치치의 패스는 상당수가 오버헤드 패스다.
클리퍼스는 이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때문에 돈치치가 드리블을 하다가 볼을 잡는 순간이 오면, 돈치치의 수비수든 스크리너의 수비수든 적극적으로 점프 동작을 가져가며 돈치치가 오버헤드 패스를 시도할 수 있는 각도를 줄여버렸다.
사실 이 같은 수비법은 리스크가 있다. 수비 동작 자체가 크기 때문에 공격수가 적절히 대응할 경우 팀 수비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돈치치가 오버헤드 패스를 하는 척 페이크를 해 수비수의 점프 동작을 유도한 직후, 가까이 있는 동료와 재빨리 기브 앤 고(give and go) 공격을 펼칠 수도 있다. 하지만 댈러스는 이 같은 기브 앤 고 형태의 공격이 익숙한 팀은 아니다. 게다가 클리퍼스 수비수들이 워낙 재빠르게 점프 동작과 이후 동작을 가져가다 보니 소위 카운터 공격을 펼칠 타이밍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이날 경기 후반에는 모 하클리스가 돈치치를 자주 마크했는데, 하클리스는 적극적인 점프 동작을 통해 돈치치의 오버헤드 패스를 방해했다. 픽앤롤 수비 상황에서는 스크리너 수비수였던 이비카 쥬바치가 돈치치 앞에서 핸즈 업(hands up) 동작을 시도해 오버헤드 패스의 각을 줄이는 모습도 나왔다.
코트 중앙 돌파와 오버헤드 패스를 최대한 저지하는 클리퍼스의 수비법으로 인해 돈치치로부터 파생되는 공격의 위력은 자연스럽게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선택적 스위치 그리고 쇼(show) 수비
돈치치처럼 픽앤롤 공격에서 풀업 점프슛을 자유자재로 꽂는 선수를 막을 때는 스크리너 수비수가 3점슛 라인 안쪽에 처져 있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3점슛 라인 너머까지 적극적으로 올라와 드리블러를 압박하는 헷지(hedge) 수비나 스크리너 수비수와 드리블러 수비수가 함께 드리블러에게 더블 팀을 가는 블리츠(blitz) 수비는 돈치치를 상대로 쓰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래서 이날 클리퍼스는 스크리너 수비수가 너무 높은 지점까지 올라와 돈치치를 강하게 압박하는 것은 자제하되, 3점슛 라인 부근에서 돈치치의 앞에 나타나 그의 풀업 점프슛 시도는 견제하는 쇼(show) 수비법을 주로 가져갔다.
예를 들어 돈치치의 픽앤롤을 막을 때 쥬바치가 스크리너 수비수라고 가정해보자. 이때 쥬바치는 돈치치의 앞에 잠시 나타나(show) 점프슛 시도와 돌파를 먼저 견제한 뒤, 돈치치를 본래 막던 수비수가 스크린을 빠져나와 돌아오는 타이밍에 맞춰 자신의 마크맨을 찾아 되돌아간다.
사실 이때 스크리너가 슈팅력이 뛰어난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 같은 선수라면 기습적인 픽앤팝에 오픈 3점을 내줄 수도 있다. 그러나 돈치치에게 풀업 3점을 내주거나 그에게 중앙 구역 돌파를 허용하는 것보다는 낫기에 쇼 수비법을 가져가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선택이다.
위 그림은 3쿼터 시작 1분 40여초가 지났을 때 실제 경기 장면을 나타낸 것이다. 돈치치와 드와이트 파웰이 왼쪽 코너를 비운 채 픽앤롤 공격을 펼치는데 이때 쥬바치는 쇼 수비법을 통해 돈치치 앞에 나타난 뒤 팔을 적극적으로 위로 뻗어 앞서 언급한 ‘노 오버헤드 패스’ 수비까지 충실히 이행해냈다. 그림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후에 돈치치의 뒤를 따라온 하클리스도 이후 오버헤드 패스를 막기 위해 점프 동작을 취하기도 했다.
물론 클리퍼스가 돈치치의 픽앤롤 공격을 막는 모든 상황에서 쇼 수비법을 가져간 것은 아니다.
스크리너 수비수가 폴 조지, 카와이 레너드처럼 뛰어난 외곽 수비수일 경우에는 과감하게 스위치를 해버렸다. 실제로 이날 전반에는 레너드 혹은 폴 조지가 스위치 수비로 돈치치를 막는 장면이 종종 나왔다. 돈치치가 레너드와 조지의 수비를 영리하게 뚫어내며 득점을 올리는 장면도 있었지만 반대로 둘의 강한 압박에 공격 리듬이 흔들리는 장면도 많았다.
후반에는 수비가 약한 루 윌리엄스가 스위치로 돈치치를 막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며 클리퍼스에 잠깐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댈러스는 돈치치가 더블 스크린의 스크리너, 혹은 업 스크린의 스크리너로 먼저 역할한 뒤 볼을 받도록 유도해 이 같은 상황을 연출했다. 하지만 이미 점수 차가 상당히 벌어져 있었던 데다 다른 클리퍼스 동료들의 도움 수비까지 좋았던 덕분에, 돈치치와 윌리엄스의 미스매치가 경기 흐름을 통째로 바꾸는 변수가 되지는 않았다.
리듬을 무너뜨려라
이날 클리퍼스는 프레스 수비와 지역방어로 댈러스 전체의 공격 리듬을 무너뜨리는 장면도 종종 연출했다.
위는 1쿼터 3분 50여초를 남기고 나온 장면이다. 댈러스가 인바운드 패스로 공격을 시작하는데, 클리퍼스가 하프라인 전부터 2-1-2 형태로 자리를 잡고 프레스 수비를 시도했다. 클리퍼스의 기습적인 프레스에 당황한 돈치치가 무리한 공격을 시도하다가 턴오버를 범했고, 이후 폴 조지의 멋진 원 핸드 덩크가 나왔다.
3쿼터 시작 후 2분 15초가 지난 시점에서는 댈러스의 작전 타임 직후 기습적으로 2-3 지역방어를 시도하기도 했다. 모두 댈러스의 공격 리듬을 흔들기 위한 작전이었다.
이날 몇 차례 나온 클리퍼스의 변칙적인 수비로 인해 댈러스는 공격에서 좀처럼 안정적인 흐름을 만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클리퍼스는 1쿼터 중반 이후 꾸준히 리드를 유지하며 무난한 승리를 챙길 수 있었다.
BONUS. 향후 댈러스의 과제
사실 클리퍼스처럼 돈치치를 효과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팀은 리그에 거의 없다. 수비 전략이 좋았던 것은 맞지만 클리퍼스 수비수들의 역량 자체가 워낙 좋다보니 돈치치가 고전한 것도 있었다. 많은 팀들이 알면서도 시도하지 못하거나, 알고 시도했음에도 실패하는 수비 전략을 클리퍼스가 유독 안정적으로 이행해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돈치치의 효율이 떨어지는 경기에서도 공격을 안정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장기적 대안이 댈러스에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클리퍼스전에서 댈러스는 베테랑 J.J. 바레아를 메인 볼 핸들러로 활용하고 돈치치는 45도와 코너에서 스팟업 공격(코트 특정 지역에 서 있다가 동료의 패스를 받으며 시작하는 공격)을 시도하는 형태의 공격을 후반에 적극 활용했고 그 효과가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돈치치가 볼을 거의 만지지 않고 공격을 펼치는 상황 자체가 돈치치 본인은 물론 댈러스 선수들 모두에게 어색하기도 했고, 바레아를 앞세운 공격이 결국엔 한계를 보인 탓에 이 전략이 경기 분위기를 완전히 바꿀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댈러스에 볼 핸들러 타입의 선수들이 많다는 점이다. 바레아는 물론이고 델론 라이트, 제일런 브런슨, 팀 하더웨이 주니어의 공격 효율을 끌어올려 돈치치에 집중되는 공격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필요가 있다.
혹은 돈치치를 활용하는 방법을 조금 더 다양하게 가져가는 것도 좋다. 클리퍼스전에서 돈치치는 스위치 수비로 루 윌리엄스가 자신을 막는 상황이 나오자 포스트업 공격으로 가볍게 득점을 올리기 했다. 돈치치가 픽앤롤 드리블러가 아닌 포스트업‧ 스팟업 공격수 혹은 스크리너 역할을 하는 공격이 조금씩 늘어날 수 있다면, 앞으로 댈러스의 공격은 더욱 막기 힘들어질 것이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그림 = 이동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