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프로스포츠의 천국을 향하는 라스베이거스, 그리고 박지수
| 인터뷰에세이 ‘단편’(斷片/短篇)
| Sin City 딛고 세계 엔터테인먼트의 수도로 올라서는 도시
| 라스베이거스에 키워가는 박지수의 'WNBA 드림'
[루키=라스베이거스, 박진호 기자] 사막 한 가운데에 들어선 환락과 유흥의 도시. 일확천금과 범죄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는 ‘도박’이라는 단어를 대신할 수 있는 고유명사 라스베이거스는 그래서 금지된 원죄를 말하듯 도시를 일컫는 별명 또한 ‘Sin City'다.
그 매력의 원천이 무엇이든, 연평균 4천만명이 관광을 위해 찾는다는 라스베이거스는 도박과 카지노로 대표되던 시대와는 조금씩 거리를 두고 있다. 실제로 카지노 수입 1위는 이미 라스베이거스가 아니라 마카오다. 도시의 상징과도 같았던 부의 원천이자 정상의 자리를 내줬지만 라스베이거스는 흔들림이 없다.
기존의 카지노와 다운타운은 물론, 인근의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과 쇼핑에 이르기까지 라스베이거스는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도시다. 오히려 카지노에 의존하던 산업 구조는 조금씩 다변화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Sin City' 보다 ’세계 엔터테인먼트의 수도‘라는 이름이 익숙하다.
라스베이거스와 프로 스포츠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이전부터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가 많이 열렸다. 전 세계 스포츠 도박사들의 관심이 쏠린 대형 이벤트는 항상 라스베이거스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복싱의 성지’라고 불리는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 역시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다.
그러나 정작 프로스포츠에서 라스베이거스를 연고로 하는 구단은 없었다. 스포츠 도박에 관한 문제와 정착민보다는 관광객과 외지에서 유입된 인구가 많아 연고팀에 대한 충성도가 높을 수 없다는 우려가 있었다. 실제로 라스베이거스 인구의 25%정도만 네바다 주 출생이라고 한다.
하지만 카지노 이외의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해가던 라스베이거스는 연고 구단을 유치하는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2016년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신생팀 베가스 골든 나이츠를 창단하게 됐다.
시장성에 대한 고민은 존재했지만, 적어도 1930년대 이후 단 한 번도 인구 성장률이 감소하지 않았던 라스베이거스는 2018년 현재 65만 명에 육박하는 네바다 주 최대 규모의 도시이며, 행정구역과 관계 없이 통상적으로 라스베이거스로 지칭하는 대도시권 인구는 200만 명이 넘는다.
그리고 신생팀 베가스 골든 나이츠는 팀 창단 첫해에 퍼시픽 디비전을 우승하고, 스탠리컵 파이널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홈 링크인 T-모바일 아레나를 찾는 관중들에게 ‘Welcome To Impossible'이라는 강렬한 문구와 함께 라스베이거스 쇼를 방불케 하는 식전행사를 선사한 골든 나이츠의 성공은 사막 한 가운데에 만든 도시에 아이스하키 팀을 프로 첫 연고 팀으로 정착시킨 선택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했다.
아후 2018년, 라스베이거스는 WNBA 샌안토니오 스타스를 인수해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로 팀명을 바꿨고, 내년부터는 NFL 오클랜드 레이더스가 라스베이거스로 새롭게 합류한다.
이들의 새로운 홈구장인 라스베이거스 스타디움은 약 2조원 가량의 비용이 투입된 개폐식 돔구장으로 라스베이거스 프리웨이 기준으로 만달레이 베이 반대편에 건설 중이다. 골든 나이츠의 홈인 T-모바일 센터와 에이시스의 홈인 만달레이 베이 이벤트 센터, 그리고 라스베이거스 스타디움 모두 반경 3Km 이내에 존재한다.
박지수의 소속팀,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는 WNBA 최초 8개 구단 중 하나인 유타 스타즈에서 이어진 팀이다. 원래 Stars가 맞지만 NBA 유타 재즈에 맞추기 위해 Starzz라는 명칭을 썼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유타에 머물던 팀은 2003년 샌안토니오로 연고지를 옮겼고, 2013년까지는 샌안토니오 실버 스타스, 이후로는 샌안토니오 스타스로 팀명을 유지했다.
샌안토니오에 머문 15년 동안 플레이오프에 7번 진출했고, 2008년에는 서부 컨퍼런스 1위와 함께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LA 스팍스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디트로이트 쇼크에게 스윕으로 무너졌는데, 당시 디트로이트를 이끌던 사령탑이 현재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를 이끌고 있는 빌 레임비어 감독이다. 디트로이트 쇼크는 2010년 털사를 거쳐 2016년부터는 댈러스(댈러스 윙스)에 정착했다.
샌안토니오는 2014년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미네소타에게 패한 것을 마지막으로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했는데 2015년부터 3년간은 리그 최하위에 머물며 부진했고, 결국 2017년 10월 17일 라스베이거스로의 팀 이전을 결정했다.
팀을 인수한 MGM 리조트 인터내셔널은 2017년 12월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팀명을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로 공식 발표했다. MGM리조트 인터네셔널은 호텔-카지노 브랜드이자 유흥과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기업이다. 일부에게는 도박도시의 대표적 기업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2017년 포춘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샌안토니오 시절 마지막의 성적 추락으로 연이어 상위 신인 지명권을 획득했던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는 2017년 켈시 플럼을 시작으로 에이자 윌슨, 재키 영에 이르기까지 3년 연속으로 1순위 선수를 선발했고, 이번 시즌을 앞두고는 지난 시즌 득점왕이자 MVP 투표 2위에 빛나는 WNBA 정상급 센터 리즈 캠베이지를 영입했다.
경기력에 기복을 보이고는 있지만 6월 27일 현재, 선두권을 위협하는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번 시즌에는 플레이오프 진출이 유력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5일간의 라스베이거스 취재기
WNBA의 취재를 허가받는 과정이 무척 까다로웠다. 연락 창구는 공식적으로 이메일이었지만 그 절차가 우리나라처럼 신속하지 않았다. NBA 취재를 위해 미국을 여러 차례 방문한 바 있는 손대범 점프볼 편집장의 도움으로 다양한 연락처를 수소문할 수 있었고, 출국이 임박해서 취재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 구단을 소유하고 있는 MGM 리조트 인터내셔널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그룹이다. 21살의 박지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금융그룹 KB국민은행과 세계적인 호텔-카지노 그룹 MGM 그랜드 인터내셔널 소속이다. 일단, 성공한 사회인이다.
MGM 그랜드 인터내셔널은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만 수많은 호텔을 보유하고 있다. 벨라지오, 만달레이 베이, MGM그랜드, 미라지, 뉴욕 뉴욕, 파크 MGM, 룩소, 엑스칼리버 등 라스베이거스를 대표하는 호텔 중 대부분이 이들의 소유다.
이 때문에 수많은 관광객들과 인파가 몰린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의 호텔들이 내건 대형 광고판에서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를 확인하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홈 경기장인 이벤트 센터가 있는 만달레이 베이에는 이곳이 에이시스의 홈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문구와 현수막, 광고 등을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프로 스포츠의 천국’인 미국이지만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의 차이는 확연하다. 라스베이거스에 머무는 동안 이용했던 우버의 기사들은 물론, 이벤트 센터가 있는 만달레이 베이 컨벤션 센터에서도 여자 농구팀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벤트 센터를 찾는 관중 수는 결코 적지 않다. 라스베이거스는 지난 해 경기당 5200명 정도의 팬들이 홈 경기장을 찾아 WNBA 전체에서 9위의 관중수입을 기록했다. 여전히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는 점, 그리고 팀 성적이 지난해보다 훨씬 기대할 부분이 많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팬들의 관심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창단 첫 해에 파이널까지 올라섰던 NHL 베가스 골든 나이츠의 플레이오프 경기에는 17500석의 T-모바일 아레나가 가득 들어찼다. 에이시스가 WNBA 파이널에 올라선다면 지금의 위상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자본에 부족함이 없는 라스베이거스의 거대한 경기장과 훌륭한 시설은 팬들이나 관광객들을 끌어당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12000석의 만달레이 베이 이벤트 센터의 시설과 위용은 WNBA 전체를 통틀어도 최고 수준이다.
이벤트 센터로 가기위해 지나야 했던 쇼핑센터와 컨벤션 센터, 카지노 등에는 팀의 최고 스타라 할 수 있는 윌슨의 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었고, 여러 샵에서 에이시스의 응원용품을 구매할 수 있다.
선수들의 저지는 경기 당일, 이벤트 센터에서 판매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박지수의 이름이 새겨진 것은 없었다. 판매중인 저지는 베스트 5의 것뿐이었다. 경기장 입구에 돌아가고 있는 주요 선수들의 사진도 베스트 5의 몫이었다. 몇 년 뒤, 이 곳 한 가운데에 박지수의 사진과 저지도 걸릴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6월 20일 워싱턴 미스틱스, 22일 댈러스 윙스와의 경기를 취재했다.
에이시스는 워싱턴에게 72-95로 대패를 당했고, 댈러스에게는 86-68로 이겼다. 두 경기 모두 박지수는 승패가 결정된 경기 막판 출전해 5분 정도를 뛰었고, 눈에 띌만한 기록을 남기지는 못했다.
박지수 In ACES
박지수는 이번 시즌 팀이 치른 10경기 중 8경기에 출전했고 평균 출장시간은 7.3분이다. 지난 시즌보다 기회가 줄어들었다. 때문에 국내에서는 정체된 기량이라고 지적하며, 의미 없이 벤치만 달구는 현실은 선수 본인과 한국 농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 문턱에서 좌절했던 라스베이거스는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단장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우승 후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캠베이지의 영입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시즌 초반의 모습은 그대에 못 미친다. 현재 6승 4패로 3위를 달리고 있지만, 경기력의 기복이 심하다. 출전 라인업도 안정적이지 못하다.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의 빌 레임비어 감독은 “다른 팀들은 오랫동안 손발을 맞췄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전체적인 전력이 제대로 구성 된지 얼마 안됐다. 하지만 이기기 위해 노력중이고, 아직 시즌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라스베이거스는 캠베이지와 재키 영이 이번 시즌 새롭게 합류했다. 선발 라인업 5명 중 2명이 뉴 페이스. 특히 캠베이지는 개막 직전에 이적이 성사됐고, 몸 상태가 완전치 않아 개막전은 결장했다. 주전 가드인 플럼도 터키 리그를 마치고 WNBA 개막이 임박한 상황에서야 팀에 합류했다. 결국 주축 선수 3명이 제대로 손발을 맞추지 못한 상황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이 때문인지 라스베이거스는 다른 팀에 비해 선수들의 교체 폭이 상당하다. 캠베이지와 윌슨을 기본으로 하는 빅맨 라인업에는 데리카 햄비, 캐롤린 스워즈가 박지수와 함께 경쟁중이다. 플럼, 재키 영, 케일라 맥브라이드가 선발로 나서는 앞선 역시 시드니 콜슨, 타메라 영, 슈가 로져스가 수시로 교체되어 투입된다. 여전히 감독으로서는 최선의 조합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라스베이거스의 기본 전력을 볼 때, 박지수의 경기 출전 경쟁이 녹록한 것은 분명 아니다.
캠베이지와 윌슨은 WNBA 전체를 놓고 볼 때도 가장 강력한 라인업 중 하나다. 세계에서 가장 농구를 잘하는 선수들이 모인 WNBA지만, 캠베이지와 윌슨의 조합은 그 중에서도 최강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 기량면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팀 플레이에서는 다소 아쉬움을 보였던 이들의 움직임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나아지고 있다. 게다가 WKBL에서 뛰던 시절보다 훨씬 나아진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햄비는 빅맨 중 교체 1순위의 자리를 굳혔다. 박지수의 주전 경쟁이 힘든 이유다.
낯설음과 싸우고 있는 박지수
“우선 박지수는 무척 영리한 선수다. 스마트하고, 재능이 있다. 아직은 어리지만, 몸도 키우고 있고 계속 발전하고 있다. 미국에서 배우는 것도 상당히 빨리 습득한다. 성장 속도가 빠른 선수다. 4번과 5번을 모두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우리 팀에서 리즈나 캐롤린 스워즈는 모두 센터고, 지수는 포워드에 가까운 센터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상황에서의 슛 연습을 많이 하고 있는데, 정말 열심히 하고 있고, 잘하고 있다. 꾸준히 늘고 있는 선수다. 지금 당장은 어려워하는 부분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선수다.”
박지수에 대한 빌 레임비어 감독의 평가다. 이런 내용이 보도되면, 일부에서는 ‘립 서비스’라고 주장하며 ‘국뽕에 취한 기자가 박지수에 대해 쓸데없는 희망만 키우고 있다’고 비난한다.
일단 비난은 접어두자. 박지수에 대한 희망이 적어도 비난이 취미인 이들이 가질 수 있는 희망보다 수만배는 높으니까.
현장에서의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멘트 뿐 아니라 표정과 분위기, 눈짓 하나까지 모두 담고 감안해야한다. 그러지 않을 거라면 굳이 현장을 왜 가겠는가?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서면 인터뷰’라는 손쉬운 과정도 있는데 말이다. 15년 정도 기자로 먹고 살고 있는 필자가 노련한 감독의 립 서비스와 인터뷰 연기에 속았다고 해도, 적어도 컴퓨터 앞에 앉아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소설을 적는 이들보다는 객관적이지 않을까?
박지수가 WNBA에서 센터가 약한 팀에서 뛴다면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답은 당연히 Yes다.
당장 22일 맞대결을 펼쳤던 댈러스 윙스의 경우 어떤 빅맨도 박지수보다 나은 경쟁력을 보이지 못했다. 본지 컬럼니스트인 정진경 전 하나은행 코치는 “댈러스의 라인업과 경기를 보면 박지수가 센터 포지션에서 주전경쟁을 펼치는 데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KB스타즈의 안덕수 감독은 물론 우리은행의 위성우 감독도 외국인 선수를 보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박지수의 경기를 본 적이 있다. 이들은 모두 “박지수가 이적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출전 기회때문이다. 출전시간을 훨씬 더 가져갈 수 있는 팀이 많다는 게 공통된 평가다.
“처음 캠베이지의 이적 얘기가 있을 때, 에이전트님한테 제가 트레이드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아무래도 출전기회는 그게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정말 좋은 선수들이 같은 포지션에 있어서 경기에 많이 뛰지 못하는 게 힘들기는 하지만, 윌슨이나 캠베이지 같은 선수들이랑 항상 같이 훈련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팀이 아니면 한 시즌에 많아 봐야 2-3번 밖에 볼 수 없는 선수들이잖아요. 저는 라스베이거스에서 계속 뛸 수 있어서 좋아요.”
최근 박지수의 투입 시기는 경기 막판으로 고정되는 경우가 많다. 투입과 동시에 전속력으로 달려 코트에 들어서는 박지수는 상기된 모습이고 무척 분주하다. 예년과 달리 공격 때는 적극적으로 자리를 잡고, 수비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다.
하지만 자리를 잡아도 좀처럼 패스가 들어오지 않고, 수비에서도 스위치가 걸리면 동료들의 움직임이 유기적이지 않다. 이미 승부가 갈린 이후라 수비에서의 적극성이 다른 선수들에게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박지수가 다른 상황에서 투입됐을 때는 수비에서 이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안덕수 감독은 현재 박지수의 상황에 대해 “쉽지 않은 경쟁 속에서 자신이 잘 버텨내고 있다”고 평가했고, 임근배 삼성생명 감독은 “아시아권 선수가 그런 경기에서 동료들의 패스를 받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잘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박지수가 팀원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1일 팀 훈련 중, 박지수는 두 팀으로 나뉘어 펼쳐진 슛 대결에서 안정적으로 3점슛을 성공했고, 같은 팀에 있던 선수들은 “코리아~”를 외치며 함께 세리머니를 펼치고 환호했다. 모든 선수들이 똑같이 잘 대해준다고 말하는 박지수는 원정 룸메이트인 켈시 플럼이 특히 많은 신경을 써준다고 한다. 박지수의 팬이라면 켈시 플럼에게도 한국 과자 선물을 보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팀의 주전 가드인 만큼 더 좋은 패스로 응답하지 않을까?
라스베이거스는 캠베이지를 영입하는 1대4 트레이드를 댈러스와 진행하면서 센터 자원으로 이사벨 해리슨을 내주면서도 박지수를 지켰다.
‘한국에서는 박지수가 WNBA에서 뛸 수준이 안 된다는 평가와 WNBA에 계속 있는 것이 선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는 말을 전했을 때, 레임비어 감독의 표정을 그대로 그려서 전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빌 레임비어 감독에게 박지수가 현재 전력으로 구분되지 않은 건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확실한 미래 전력으로의 입지는 굳히고 있다. 레임비어 감독이 박지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이”라고 말한 것도 이를 증명한다.
당장 박지수가 출장 기회를 얻고 20점을 득점한다고 해도 자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2일 댈러스 전에서 21분을 뛰며 27점을 득점한 햄비는 자신의 프로 최고 기록을 세웠지만 이어진 25일 시애틀 전도 여전히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고 전경기와 큰 차이 없이 19분을 출전했다.
박지수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리그에서 가장 젊은 팀인 라스베이거스에서도 박지수는 가장 어린 선수이기에 맞춰진 포커스는 현재보다 미래다. 박지수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에이전트님도 저한테 그런 말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그렇게 되지 않잖아요. 경기에 나가서 뭔가 보여주고 싶고, 출전 시간이 적은 만큼 뭔가 임팩트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까 마음도 급해지고, 하던 것도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급할 거 없이 연습대로만 하자고 생각을 해도, 경기에 나서면 많이 쫓기는 것 같기도 해요.”
박지수는 지금 낯설음과 경쟁을 펼치고 있다. 농구를 시작한 이래로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낯설음이다. 이토록 벤치에 오래 앉아있는 것도 처음이고, 팀 전술의 중심에 자신이 없었던 것도 처음이다. 경기 내내 벤치에 앉아 있다가 식은 몸을 이끌고 코트에 투입되는 것도 이전에는 없었던 경험이다.
“WNBA에서 2년째 뛰면서 많은 걸 느끼고 배우죠. ‘벤치 멤버가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라는 것도 정말 크게 느꼈어요. 그래서 KB에서 벤치 멤버로 있었던 동료들한테도 고마움을 많이 느껴요. 벤치에 앉아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게 이렇게 힘든데, 시즌 내내 내색 한 번 안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도와줬거든요.”
박지수는 WNBA 드래프트를 통과했고, 2년 연속으로 트레이닝캠프에서 살아남았다. WNBA에서 두 시즌을 보내고 있는 유일한 한국 선수다. 현재 WNBA 로스터에 등록된 선수는 총 151명. 세계 최고 무대에 뛸 자격을 부여받는 이들 중에 박지수는 당당히 뽑힌 선수다. 이들 중,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출신은 총 13개국으로 24명이다.
유럽 축구처럼 ‘유니폼 판매 수익’이라는 특수 효과도 기대하기 힘든 박지수를 굳이 라스베이거스가 데려와서 보유하고 있는 것은 경쟁력과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컵 MVP를 수상한 켈시 그리핀은 2019 WKBL 외국인 선수 선발회에 지원할 때까지는 미네소타 소속이었지만 WNBA를 떠나야 했고, 중국 국가대표 포워드로 오랫동안 활약한 샤오팅은 이번 시즌 2경기에 총 4분을 뛴 것이 전부다.
중국의 또 다른 국가대표 센터, 206cm의 한쉬는 박지수보다 평균 출전 시간에서는 조금 앞서지만 팀이 치른 경기 중 절반을 결장했고, 박지수와의 맞대결에서 확실한 실력 차이를 보였다.
아시아 선수 중 가장 확실한 활약을 펼쳤던 일본의 도카시키 라무는 지난해부터 WNBA를 뛰지 않고 있다. 도카시키가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그가 24살이었던 2015년 루키 시즌이었다. WNBA 두 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는 박지수는 21살. 미국에 적응하고 꾸준히 성장하며 대한민국의 어떤 슈퍼스타도 내딛지 못했던 길을 걷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취재한 2경기에서 박지수의 기록은 비록 인상적이지 못했지만, 박지수는 분명 팀의 계획 안에 있는 선수였고, 코치들 역시 훈련은 물론 경기 때도 쉼 없이 지시 사항을 전달하며 역할에 대한 완성도를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여자농구에서의 박지수는 대체불가의 절대 자원이다. 박지수 없는 국가대표팀은 대만에게 허물어 질 만큼 높이의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한다. 가만히 머물러도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좁은 틀을 벗어나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당당히 도전을 펼치고 있는 박지수에게 당장의 비판보다는 꾸준한 응원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사진 = 박진호 기자 ck17@rooki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