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환의 앤드원] 작전판: 이현중의 공격은 무엇이 다른가? 농구 IQ+활동량 드러난 장면 3가지

2025-07-15     이동환 기자

 

남자농구 대표팀이 본격적인 실전 테스트에 들어갔다.

대한민국 남자농구 대표팀은 지난 11일과 13일 일본 대표팀을 상대로 두 차례의 평가전을 치렀다.

결과는 2전 전승. 일본 대표팀이 에이스급 선수들을 다수 배제한 2군으로 경기를 치렀다는 점을 감안해도, 우리 대표팀의 경기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현중-여준석-이정현을 중심으로 한 오펜스 세팅은 기대 이상으로 파괴적이었고 동시에 유기적이었다. 유기상, 이승현 같은 자원들의 보이지 않는 공헌도 돋보였다.

8월 초 아시아컵까지 남은 2-3주의 시간 동안 호흡 맞춘다면 더 무서운 공격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특히 이번 대표팀에서 가장 빛나고 있는 선수는 단연 이현중이다.

호주리그에서는 역할의 제한으로 인해 보여주지 못했던 2대2 핸들러, 아이솔레이션 공격수로서의 능력까지 마음껏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현중의 볼 없는 움직임, 오프 볼 무브는 여전히 인상적이다. 상대 수비의 스탠스, 의도 혹은 동선을 공략하는 부지런한 오프 볼 무브로 득점을 창출해내고 있다.

한일 평가전 2경기에서 나온 인상적인 오펜스 장면 4가지만 짚어보자.

 

 

장면 1. 이현중의 하이 IQ 플레이+여준석의 웨이드 컷

첫 번째 장면을 살펴보자. 안영준이 탑의 이승현에게 볼을 넘기고 이현중을 위해 핀다운 스크린을 세팅하려고 한다.

 

 

그러자 이를 예상한 일본 수비수들이 스위치 수비를 하자는 제스처를 취한다.

이때 이현중이 대응이 매우 영리하다. 상대의 스위치 수비를 예상한 이현중이 핀다운 스크린을 받아 올라가는 대신, 윙에 그대로 머물며 이승현에게 패스를 달라고 제스처를 취한다.

 

 

이번 대표팀의 컨트럴 타워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이승현이 지체없이 이현중에게 패스한다.

그러자 스위치 수비를 하려고 했던 일본의 윙쪽 수비수 2명이 모두 이현중과 순간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는 균열 상황이 발생한다.

 

이를 그냥 둘 이현중이 아니다. 펌프 페이크 후 왼쪽 돌파로 클로즈아웃 수비를 공략, 일본 수비 진형이 무너진다.

 

 

이때 반대 코너의 여준석의 움직임을 보자. 이현중의 페인트존 진입 타이밍에 맞춰 베이스라인을 따라 림으로 컷한다.

여준석처럼 코너 공격수가 베이스라인을 따라 컷하는 동작을 웨이드 컷(wade cut)이라고 부른다. NBA 드웨인 웨이드가 잘 활용했던 컷 동작이라 그렇게 불리고 있다. 이번 평가전 2경기에서 여준석은 이 웨이드 컷을 활용해 림을 직접 어택하거나, 공격 리바운드에 적극 가담하며 일본 수비를 뒤흔들었다.

 

 

이현중이 웨이드 컷하는 여준석에게 패스를 연결한다. 여준석을 마크하고 있던 일본 수비수가 이현중의 돌파에 신경쓰느라 여준석을 전혀 체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일본 수비도 끈질기게 대응한다. 여준석이 볼을 잡자 안영준을 막던 수비수와 여준석의 기존 수비수가 페인트존을 둘러싸면서 여준석의 이지 득점 기회를 차단한다.

 

 

여기서 이현중의 부지런한 움직임이 또 다시 빛난다.

돌파 후 여준석에게 드랍 오프 패스(컷하는 선수에게 떨궈주는 패스)를 연결했던 이현중은 반대 윙으로 뒷걸음질 치면서 공간을 벌려준다.

 

 

여준석이 수비수들을 이겨내고 볼을 키핑해내며 드리블로 빠져나왔고, 밖으로 빠져나온 이현중에게 패스를 연결한다.

이현중의 드리블 돌파, 여준석의 웨이드컷을 막느라 페인트존으로 좁혀졌던 일본 수비 그물망이 뒤늦게 다시 펼쳐진다.

그러나 슛 레인지가 긴 이현중의 딥쓰리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이현중의 딥 쓰리가 터진다.

 

 

장면 2. 이현중의 리프트 무브

또 다른 장면 하나를 더 살펴보자.

이번 장면에서는 이현중의 적절한 리프트 동작이 빛을 발한다.

리프트(lift)란, 코너에 있는 슈터가 윙으로 올라오는 움직임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코너에서 윙으로 올라오는 동작은 리프트(lift), 윙에서 코너로 내려가는 동작은 드리프트(drift)라고 부른다.

막상 경기를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단순한 움직임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 움직임이 수비 동선을 더 늘리고, 결과적으로 더 질 좋은 슛 찬스를 얻게 만든다.

때문에 많은 지도자들이 유소년 선수들에게 리프트, 드리프트 동작을 강조하고 가르친다. 지도자들이 흔히 말하는 '볼 없는 선수들이 움직여줘야 한다'라고 말할 때 지칭하는 것이 바로 이 리프트&드리프트 동작이다.

데이비슨 대학, 호주리그를 거치며 슈터로 활약해온 이현중은 이번 일본전부터 자신이 왜 탈아시아급 슈터인지 보여줬다. 단순한 리프트 동작을 통해서다.

 

 

혼 대형에서 시작하는 오펜스다. 엘보우 라인에 여준석과 이승현이 서 있고, 이현중은 왼쪽 코너에서 서서 공간을 벌려주고 있다.

 

여준석이 이정현에게 스크린을 세팅한 후, 이승현의 스크린을 받아 반대 윙으로 이동한다.

전형적인 혼 플레어 패턴이다.(혼 오펜스에서 플레어 스크린을 이용하는 오펜스 패턴)

 

 

이승현이 여준석에게 플레어스크린을 건 후, 다시 이정현에게 스크린을 건다. 이에 대해 일본이 스위치 수비로 맞대응, 이승현 쪽에서 미스매치가 발생한다.

이때 이현중의 움직임을 보자. 자신을 마크하는 수비수가 스크램 스위치(두 번 스위치하며 미스매치를 무력화하는 것)로 이승현을 체크하기 위해 처질 것을 알고, 코너에서 윙으로 올라온다. 리프트 동작이다.

실제로 위 장면을 자세히 보면 이현중을 마크하던 수비수가 이승현에게 붙어 있는 수비수에게 손짓(이현중을 스위치로 체크하라는 뜻)을 하는 것이 보인다.

 

 

일본의 스크램 스위치 수비가 이현중의 리프트 동작에 의해 흔들리면서 이현중이 순간적으로 오픈 상태가 됐다.

이를 읽은 이정현이 곧바로 이현중에게 패스를 연결한다. 스크램 스위치를 한 일본이 급하게 컨테스트 수비를 시도하지만, 이현중이 딥 쓰리 지점에서 볼을 잡고 있어 이미 클로즈아웃 동선이 너무 길다.

이현중이 3점을 터트린다. 코너에 가만히 서서 쉬지 않고, 리프트라는 기본기를 충실히 이행한 이현중이 만들어낸 멋진 3점이다.

 

 

장면 3. 이현중의 백도어 컷이 만드는 효과

이 장면에서는 이현중이 직접 득점을 올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시 부지런한 오프 볼 무브로 찬스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성우가 볼을 몰고 넘어와 윙의 안영준에게 볼을 건넨다.

이승현이 업 스크린을 걸어주고, 정성우가 그 스크린을 받아 림으로 컷하면서 공간을 비운다. UCLA 컷이다.

 

 

스크린을 걸었던 이승현이 탑으로 멀리 빠져주고, 정성우는 베이스라인까지 깊게 컷하면서 순간적으로 오른쪽 윙의 공간이 넓어진다. 안영준의 아이솔레이션을 위한 세팅이다.

 

 

 

이에 안영준이 드리블 돌파를 하고, 이승현을 막던 수비수가 안영준의 돌파 동선으로 깊게 헬프를 들어간다.

 

 

이때 왼쪽 윙에 서 있던 이현중을 주목하자.

안영준이 페인트존 한가운데에서 멈추는 타이밍에 맞춰 백도어 컷을 시도한다.

이승현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이현중이 45도 백도어컷을 하면서, 이승현이 더욱 자유로워진다.

 

안영준이 이를 읽고 이승현에게 패스하고, 이 순간 일본 수비수 3명이 안영준과 이현중에게 몰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승현이 오픈 3점을 터트린다.

이번에도 이현중이 적절한 타이밍에 공간을 비우는 백도어컷으로 이승현의 슛 찬스 퀄리티를 더 높여주는 역할을 했다.

만약 상대가 이현중의 백도어컷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했다면, 이현중이 직접 림 어택 득점을 올렸을 것이다. 이 장면에서도 쉴새 없이 움직이는 이현중의 모습이 돋보인다.

이번 대표팀에서 이현중은 단순히 자신의 슈팅 뿐만 아니라, 볼 없는 움직임을 부지런히 가져가면서 상대 수비를 뒤흔들고 있다.

위 세 가지 장면 모두 1차전 1쿼터부터 나왔는데 이현중의 농구 IQ, 기본기, 활동량이 빛을 발하는 장면들이다.

 

 

앤드원①: 대표팀의 또 다른 시도 '얼리 고스트 액션'

이번 대표팀에서 돋보이는 것 하나는 빠른 고스트 액션의 활용이다.

스크린을 거는 척 빠지는 동작을 고스트 스크린(ghost screen, 유령 스크린)이라고 부르는데, 이번 대표팀은 이현중, 여준석 같은 스피드 있는 장신 자원들에게 이 동작을 빠른 타이밍에 가져가길 요구하면서 흥미로운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위 장면에서는 이현중이 볼을 운반한 문정현에게 다가가 고스트 액션을 시도한 후 탑에서 볼을 잡는다. 스크린을 거는 척 하다가 빠져나가는 이현중의 모습이 보인다.

 

 

이후에 이현중은 탑에서 볼 스크린의 역방향으로 돌파하면서 직접 득점을 만들어낸다. 이현중의 고스트 액션에 이은 하이 픽앤롤이 득점으로 이어진 장면이다.

 

 

위 장면에서도 여준석이 볼을 몰고 오는 이현중에게 다가가 고스트 액션으로 탑으로 빠져나간 후, 탑에서 아이솔레이션을 시도한다.

이현중, 여준석 같은 주요 공격수의 핸들링 게임을 세팅할 때 고스트 액션을 가미하는 이유가 뭘까?

첫 번째는 경기 템포를 올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스크리너의 빠른 고스트 액션에 신경쓸 경우 순간적으로 볼을 운반한 선수의 빠른 돌파 공간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 스크리너가 고스트 액션 대신 진짜로 스크린을 걸어버리는 변칙을 가할 수도 있다.

2차전에서 나온 이정현의 기습적인 돌파 득점이 바로 비슷한 맥락에서 나왔다.

또 하나는 상대 스위치 수비를 뒤흔드는 효과다. 이번 일본 대표팀처럼 스위치 수비를 콘셉트로 가져가는 팀일수록, 고스트 액션의 효과는 더 커진다.

스위치가 이뤄지는 타이밍보다 이현중, 여준석이 탑으로 빠지는 타이밍이 더 빠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이현중, 여준석에게 공간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 무대에서 스위치 수비에 고전했던 우리 대표팀이 이 고스트 액션으로 어떤 재미를 볼지 지켜보면 재밌을 것이다.

 

앤드원②: 대표팀의 '포스트 더블 지퍼' 패턴

이번 평가전에서 보였던 흥미로운 공격 패턴 중 하나는 바로 포스트에 볼을 투입한 후 플렉스 형태로 지퍼 스크린 2개를 동시에 세팅하면서 기회를 엿보는 패턴이다.

이름을 붙인다면 포스트 더블 지퍼(post double zipper) 정도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패턴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것이 수신호인 듯 하다. 위 장면을 보면 이승현이 엄지손가락을 지켜들며 패턴이 시작되는 것이 보인다. 때문에 대표팀 내에서는 떰브(thumb)라는 이름으로 불릴 가능성이 있다.

 

 

화면상에 다 잡히지 않았지만, 이 패턴의 첫 액션은 베이스라인에서 이뤄지는 크로스 스크린이다.

위 장면에서 이현중이 여준석을 위해 크로스 스크린을 걸고, 여준석이 숏 코너로 이동, 포스트에서 볼을 잡는다.

 

 

이제 다음 동작이 이뤄진다. 볼을 운반했던 정성우와 이승현이 이현중을 위해 베이스라인을 보며 나란히 지퍼 스크린을 건다. 이현중이 스크린을 받아 탑으로 돌아나온다.

이때 볼을 가진 여준석의 선택지는 두 가지. 이현중을 보면서 패스를 적절하게 하거나, 더블 지퍼 스크린에 신경 쓰고 있는 상대 수비를 본인이 1대1로 공략하는 것이다.

 

 

여준석이 스핀무브로 베이스라인을 돌파하며 림을 어택한다. 아쉽게 슛이 실패했지만 매우 좋은 공격이 이뤄졌다.

대표팀은 이 패턴을 다른 라인업에서, 다른 역할로 시도하기도 했다.

 

위 장면에서는 문정현이 크로스 스크린을 받아 볼을 잡고, 유기상이 더블 지퍼 스크린을 받아 탑으로 튀어나가는 역할을 맡았다. 이현중은 반대 윙과 코너에서 공간을 벌려줬는데, 결과적으로 이현중에게 볼이 향하며 이현중이 점퍼를 터트렸다.

카타르와의 평가전에서도 이 패턴이 활용되는지를 지켜보면 재밌게 경기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 대한민국농구협회 제공, KBSN, KBS 중계화면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