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환의 앤드원] 포제션 쪼개기: GSW 버틀러-그린의 특별한 공존법
농구 경기는 수많은 포제션의 반복으로 이뤄져 있다. 결국 경기력이란 지속적으로 쌓이는 포제션의 결과물이다.
때로는 하나의 포제션 안에 그 팀의 경기력을 알 수 있는 요소가 오롯이 담기기도 한다. 포제션을 제대로 보면 경기를 제대로 볼 수 있고, 결국 농구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포제션 쪼개기'를 통해 농구를 더 세밀하게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이번 시간의 주인공은 지미 버틀러다.
지난 2월 초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마이애미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지미 버틀러를 영입, 승부수를 던졌다.
시즌 중반 심각한 부진에 빠졌던 골든스테이트는 버틀러 영입 후 치른 4경기에서 3승 1패를 기록, 후반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버틀러는 트레이드 당시만 해도 노쇠화, 멘탈 이슈 등으로 우려를 샀다. 골든스테이트 내부적으로도 이 문제를 걱정하며 트레이드를 주저했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트레이드 이후 버틀러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팀에 녹아들며 신뢰를 받고 있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미 버틀러와 드레이먼드 그린의 시너지 효과다.
골든스테이트 합류 후 버틀러는 스크린, 컷, 페인트존 어택, 패싱을 통해 스코어러 역할은 물론 공격의 허브 역할까지 함께 수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버틀러는 기존의 팀내 컨트롤 타워였던 드레이먼드 그린과도 성공적으로 공존,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최근 댈러스전 2쿼터에 있었던 한 포제션을 보면 버틀러와 그린의 시너지 효과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미리 예고를 하자면, 이 공격 포제션에서 골든스테이트는 무려 두 번의 포스트 스플릿 공격을 펼친다.
포스트 스플릿(post split)이란 로우 포스트에 볼을 넣고, 스트롱사이드(볼이 있는 사이드) 3점 라인에 있는 2명의 선수가 교차하며 컷, 팝 아웃해 득점 기회를 노리는 전술이다.
1990년대에 시카고, 2000년대 레이커스를 이끌며 90년대와 2000년대를 풍미했던 필 잭슨 전 감독의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 파생된 움직임으로, 2010년대 중반 골든스테이트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전세계적으로 퍼졌다.
그러면 직접 해당 장면을 함께 살펴도록 하자. 2쿼터 후반 스테픈 커리가 볼을 운반하며 골든스테이트의 공격이 시작된다.
윙의 버디 힐드에게 볼이 연결되고, 지미 버틀러(초록색 원)가 카이리 어빙을 상대로 빠르게 포스트에 자리를 잡는다.
이 장면에서 골든스테이트는 단 4초 만에 볼 운반, 버틀러의 씰링(등으로 수비수를 밀어내며 자리를 잡는 것)을 진행한다.
공격 템포를 높여 버틀러와 어빙의 미스매치를 유발하고, 이를 공략하는 것이다.(최근 NBA에서는 이처럼 빠른 공격을 통해 미스매치를 유발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미스매치를 유발하면 굳이 스크린이나 약속된 움직임을 통해 공격 시간을 써가며 복잡하게 스위치를 유도하지 않아도 된다. 매치업 헌팅이 대세인 NBA이기에 이 같은 템포 푸쉬를 통한 미스매치 유발은 더 횡행할 수밖에 없다.)
버틀러에게 볼이 투입됐다.
반대 사이드의 골든스테이트 선수 2명은 밖으로 빠져나가며 공간을 넓혀준다.
그리고 이때 스트롱사이드(볼이 있는 사이드)의 골든스테이트 2명을 주목하자. 커리와 힐드다.
커리가 버틀러를 쳐다보며 림으로 컷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윙에 있던 힐드는 탑으로 반원을 그리며 이동(리프팅)한다.
이 과정에서 커리는 힐드를 막고 있던 맥스 크리스티에게 스크린을 거는 듯한 동작 이후에 슬립으로 컷해도 되고, 혹은 그냥 컷해도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힐드와 커리가 서로 좁은 공간에서 제각기 다른 움직임(컷, 리프팅)을 가져가며 교차, 수비에 혼란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바로 포스트 스플릿이다. 포스트에 볼을 투입한 뒤 2명의 선수가 서로 스크린, 컷, 리프팅을 통해 수비를 뒤흔드는 것이다.
자, 그런데 이때 댈러스의 대응이 매우 좋다.
커리가 컷인하며 림으로 이동하자, 버디 힐드를 막고 있던 수비수(맥스 크리스티)가 힐드를 잠시 내버려두고 컷인하는 커리를 먼저 견제한다.
버틀러를 등지고 커리를 마주보면서 왼팔을 길게 뻗는 크리스티의 이 수비 동작(노란색 원)으로 인해 버틀러는 컷하는 커리에게 패스를 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크리스티가 버틀러와 커리 사이의 공간에 침범해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패스 동선이 가로막힌 상태다.
크리스티의 멋진 수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커리의 컷인이 무산되자마자 자신의 본래 마크맨인 버디 힐드 쪽으로 오른팔을 뻗으며 클로즈아웃하듯이 달려가는 수비를 보여준다.
커리의 컷인을 막고, 힐드의 3점 기회 가능성을 차단한 크리스티의 이 수비는 팀 수비의 정석과도 같은 수비라고 할 수 있다.(루카 돈치치 트레이드로 댈러스 유니폼을 입은 맥스 크리스티의 경기력에 대해서는 향후에 조명해보자.)
결국 버틀러는 커리와 힐드 어느 쪽에도 패스하지 못한다. 첫 번째 포스트 스플릿 공격이 무산된 것이다.
포스트 스플릿이 무산되자 버틀러는 다음 옵션을 실행한다. 림으로 컷했던 커리는 반대 코너로 빠르게 빠져나가고, 다른 3명의 골든스테이트 선수들은 반대 사이드 3점 라인에 넓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왼쪽 사이드의 공간을 활용해 버틀러가 어빙을 상대로 포스트업에 나선다.
하지만 댈러스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근래 들어 수비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카이리 어빙이 강한 몸싸움을 통해 버틀러의 포스트업을 막아낸다.
다른 댈러스 4명의 수비수들은 더블 팀은 가지 않되 버틀러 쪽으로 접근해 적당한 거리에서 페인트존을 감싸는 지역방어 형태의 수비를 가져간다.
이때 힐드를 막고 있는 크리스티는 버틀러와 힐드의 중간 지점에 위치, 긴 팔을 통해 버틀러와 힐드를 모두 체크하는 공간 점유 능력을 보여준다.
어빙, 크리스티를 비롯한 댈러스 수비수들의 강한 대응으로 결국 버틀러가 포스트업 공격을 실패하고 밖으로 볼을 뺴준다.
그러나 골든스테이트의 공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공격 시작부터 왼쪽 사이드 코너 부근에 머물던 드레이먼드 그린이 로우 포스트에 자리를 잡으며 골든스테이트의 다음 공격이 시작된다. 두 번째 포스트 스플릿이다.
첫 포스트 스플릿 공격 세팅이 단 4-5초 만에 이뤄졌었기 때문에 공격 제한 시간은 아직 10초나 남아 있다. 세트 오펜스에서 속도감 있는 공격 세팅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드레이먼드 그린(초록색 원)에게 볼이 투입된다.
첫 포스트 스플릿에서 포스트업을 했던 버틀러가 3점 라인으로 빠져나가 커리에게 스크린을 걸고, 커리는 이 스크린을 할용해 페인트존으로 컷을 시작한다.
여기서도 댈러스의 대응이 좋다. 버틀러를 마크하던 어빙이 스위치하면서 커리의 컷인 동선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버틀러와 커리가 상대의 스위치 수비에 영리하게 대응한다. 이번엔 버틀러가 컷인을 노린다.
커리의 컷을 막기 위해 댈러스가 스위치 수비를 가져가면서, 기존에 커리를 막던 수비수가 버틀러보다 뒤에 위치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그림을 보면 버틀러의 스크린, 댈러스의 스위치로 인해 순간적으로 그린과 버틀러 사이에 수비수가 없는 무주공산 상황이 벌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버틀러가 컷하고, 그린이 이를 놓치지 않고 바운스 패스한다.
스위치로 버틀러를 마크하게 된 수비수는 아직 버틀러의 뒤에 있고, 버틀러와 그린 사이의 공간이 결국 열려버린다.
이때 먼저 컷을 노렸던 커리는 공간을 벌려주기 위해 곧바로 반대 사이드로 움직인다. 어빙이 다시 버틀러를 쫓아가 헬프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버틀러, 그린, 커리의 엄청난 '리드 앤드 리액트'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결국 버틀러가 바운스 패스를 받아 덩크를 만들어낸다.
위 포제션을 통해 우리는 한 포제션에서 두 번의 포스트 스플릿 공격을 펼쳐 득점하는 골든스테이트의 모습을 확인했다.
직접 살펴보았듯 댈러스의 대응과 수비 역시 매우 좋았다. 하지만 골든스테이트는 버틀러와 그린이 차례로 포스트 스플릿 공격의 포스트맨 역할을 수행, 댈러스의 단단한 수비를 무너뜨렸다.
올 시즌 골든스테이트의 가장 큰 문제는 메인 핸들러이자 클러치 타임 스코어러인 스테픈 커리, 공격의 허브인 드레이먼드 그린이 상대의 집중 견제로 고립되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농구 IQ가 뛰어나고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버틀러의 합류로 골든스테이트는 고민을 단숨에 해결하고 있다.
특히 버틀러는 그린과 함께 공격 허브 역할을 번갈아가며 수행, 골든스테이트의 공격에 숨통을 틔워주는 중이다.
단 한 번의 포제션에도 버틀러의 위력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