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호] 숨막히는 빗장수비... 클리퍼스의 대반란

2025-01-25     이동환 기자

 

LA 클리퍼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1월 26일 기준 클리퍼스의 성적은 25승 19패. 서부 6위인데 4위 덴버와 승차는 4경기에 불과하고 플레이오프 직행권에 위치해 있다.

폴 조지 이탈, 카와이 레너드 부상으로 고전이 예상됐던 것을 생각하면 큰 반전이다. 클리퍼스는 어떻게 선전을 펼치고 있는 걸까.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자.

*본 기사는 루키 2025년 1월호에 게재됐으며, 기록과 내용이 시점에 맞게 일부 수정됐습니다.

 

 

숨막히는 수비 농구

올 시즌 클리퍼스의 가장 큰 힘은 수비에서 나온다. 

현재 클리퍼스는 카와이 레너드, 폴 조지가 처음 함께 뛰었던 2019-2020시즌 이후 5년 만에 가장 좋은 수비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시즌은 둘 모두 이적과 부상으로 단 한 경기도 클리퍼스와 함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반전이다.

수치를 통해 살펴보자.

올 시즌 클리퍼스는 실점(3위), 야투 허용(3위), 2점 허용(2위), 3점 허용(6위), 어시스트 허용(6위) 등 대부분의 수비 지표에서 리그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올 시즌 클리퍼스의 NBA.com 기준 수비효율지수는 107.1로 리그 전체 5위다.

서부 선두에 올라 있는 오클라호마시티(103.7)만이 클리퍼스보다 더 나은 수치를 기록 중이다.

특히 페인트존 보호 능력이 압도적이다.

올 시즌 클리퍼스는 페인트존 실점이 리그에서 6번째로 적고(45.8점) 압도적인 공격 리바운드 저지 능력(리그 4위)을 바탕으로 세컨드 찬스 실점도 올랜도에 이어 리그에서 두 번째로 적다.

경기당 평균 디플렉션(9위), 턴오버 유발(6위)도 탑10 안에 이름을 올리고있고, 덕분에 많은 상대 턴오버 기반 득점을 만들어낸다.

올 시즌 클리퍼스의 상대 턴오버 이후 득점은 20.2점으로 리그 전체 2위다.

 

 

롤 플레이어+JVG

수비 얘기를 계속해보자. 클리퍼스는 지난 오프시즌의 패자로 꼽혔다.

폴 조지가 팀을 떠났는데 그 자리를 만회할 만한 슈퍼스타 영입은 없었다. 대신 롤 플레이어 혹은 시장에서 저평가돼 있던 선수 영입에 집중했다.

데릭 존스 주니어(3년 3,000만 달러), 크리스 던(3년 1,628만 달러), 케빈 포터 주니어(2년 478만 달러), 모 밤바(1년 251만 달러)와 계약했고 니콜라 바툼(2년 960만 달러)을 다시 불러들였다.

당시만 해도 뎁스 강화에만 초점을 둔, 실질적인 전력을 업그레이드하지는 못한 무브라는 평가가 많았으나 현재로서는 이 같은 선택이 신의 한수가 되고 있다.

오펜스의 초점은 일단 제임스 하든, 노먼 파웰, 이비카 주바치에게 두고 나머지 선수들은 엄청난 에너지 레벨과 대인 수비로 상대 공격을 틀어막는다.

데릭 존스 주니어, 크리스 던이 선봉에 서고 아미르 코피, 데렌스 맨, 니콜라 바툼도 높은 수비 기여도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클리퍼스의 경이로운 수비 강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인물은 사실 따로 있다. 바로 제프 밴 건디 코치다.

90년대 뉴욕 닉스를 코치와 감독으로 이끌었던 지도자였던 밴 건디는 2007년 휴스턴 감독직을 내려놓은 뒤 해설자로 활동해왔다. 지난 시즌 보스턴에서 고문을 맡았고 올 시즌을 앞두고 클리퍼스에 수석 코치로 복귀했다.

올 시즌 밴 건디는 터런 루 감독과 환상의 시너지를 내며 클리퍼스의 질주를 이끄는 중이다.

지난해 7월 제프 밴 건디 코치의 합류 후 클리퍼스의 로렌스 프랭크 사장은 "(터런 루 감독과 제프 밴 건디 코치는) 서로에 대한 엄청난 존중이 있다. 우리는 루 감독이 최고의 코칭 능력을 지닌 감독이라고 생각하고, 제프 밴 건디 역시 터런 루 감독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아마 제프 밴 건디 코치는 우리 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가 바뀌기 전에 프랭크 사장의 말은 사실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시즌 마지막 20경기 구간에서 수비효율지수가 22위에 머물렀고, 시즌 전체로 봐도 17위에 머물렀던 클리퍼스는 올 시즌 리그 2위에 올라 있다.

터런 루 감독에 따르면 밴 건디는 지난 시즌 클리퍼스가 소화한 정규시즌, 플레이오프 88경기를 일일이 다 보며 이번 시즌을 준비했다고 한다.

올 시즌 클리퍼스의 '수비 요정'으로 거듭나고 있는 제임스 하든은 밴 건디의 수비 원칙과 디테일이 팀을 크게 바꿔놓았다고 설명한다.

"지난 시즌에는 선수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해야 하는 수비가 많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올 시즌엔 선수들이 모두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어요. 결국 코트에 나가서 그걸 하면 되는 셈이에요."

수비 컨셉도 다르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클리퍼스의 수비 컬러는 '노 미들'이었다. 2대2 수비, 1대1 수비에서 코트의 가운데 레인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수비를 했던 셈이다.

코트의 가운데로 들어오면 양방향 윙과 코너로 패스를 빼줄 각이 너무 넓어지기 때문에 펼쳤던 수비였다.

하지만 올 시즌은 다르다. 더 이상 '노 미들' 전략은 없다.

오히려 미들 레인으로 공격수를 몰아넣고, 이비카 주바치의 림 프로텍팅을 최대한 활용한다. 그리고 외곽 수비수들의 강한 헬프와 손질, 많은 움직임으로 턴오버를 유발하고 상대 공격을 혼란에 빠뜨린다. 이른바 '함정' 전략이다.

제프 밴 건디 코치의 부임, '함정' 수비를 수행할 수 있는 롤 플레이어들의 대거 합류가 올 시즌 클리퍼스를 리그 최고의 수비 팀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셈이다.

 

 

클래식 하든, 그리고 카와이

지난 시즌 클리퍼스에 합류한 제임스 하든은 사실상 포인트가드 역할에 집중했다. 직전 소속 팀이었던 필라델피아에서부터 이어져온 색깔이었다.

폭발적인 직접 득점 능력을 활용하기보다는 패싱 게임에 집중했다. 2대2 게임으로 동료를 살리고, 카와이 레너드와 폴 조지를 위한 하프코트 오펜스 세팅에 집중했다. 효율적인 공존을 위해서였다.

그 결과 지난 시즌 하든은 클리퍼스에서 평균 16.6점을 기록하며 소포모어 시즌이었던 2010-2011시즌 이후 무려 13년 만에 평균 득점 최저 기록을 새로 썼다.

폭발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에 하든은 "나는 이제 다른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30대 중반에 접어든 하든은 누가 봐도 '에이징 커브'를 겪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올 시즌은 어떨까?

일단 과거의 폭발력을 되찾고 있다. 41경기에서 221.2점 8.2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평균 득점은 2년 만에 20점대를 회복했고, 경기당 3점슛 성공도 3.4개로 2019-2020시즌 이후 처음으로 3개 이상이다. 야투 시도는 15.7개로 브루클린에서 뛰었던 2020-2021시즌 이후 가장 많다.

폴 조지, 러셀 웨스트브룩이 팀을 떠나고 카와이 레너드가 부상 여파로 시즌 초반 자리를 비우면서 하든은 자연스럽게 '클래식 하든'으로 회귀하고 있다. 올 시즌 30+득점 경기만 세 차례나 해냈다.

하든의 폭발력 증가는 곧 노먼 파웰, 이비카 주바치 같은 2-3옵션 공격수들의 활약으로 이어진다.

상대 핵심 수비수들이 하든을 하프라인에서부터 압박하면서 상대적으로 코트가 넓어지고, 이 공간을 노먼 파웰이 오프 더 볼 무브 기반의 다채로운 공격으로 공략하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 벤치 에이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던 파웰은 올 시즌 36경기에서 23.7점, 야투율 49.0%, 3점슛 성공률 43.3%를 기록 중이다. 경기당 무려 3.5개의 3점을 터트리며 상대 수비를 폭격하고 있다.

올 시즌 공수 양면에서 팀의 키를 쥐고 있는 주바치는 14.9점 12.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득점, 리바운드 모두 커리어-하이 페이스를 보이고 있다.

주바치의 경우 하든과의 픽앤롤, 포스트업을 통해 페인트존을 공략하는데 숏 미드레인지에서의 슛 터치가 환상적이다. 올 시즌 주바치의 훅슛은 이미 알고도 못 막는 수준의 무기로 거듭나고 있다.

향후 클리퍼스가 더 기대되는 점은 카와이 레너드가 복귀한지 얼마되지 않았고 벌써 대단한 폼을 보여주는 경기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무릎 부상 여파로 올 시즌 단 한 경기도 뛰지 않았던 레너드는 충분한 재활을 거친 후 지난 1월 5일 복귀전을 치렀다.

20분 안팎의 지극히 제한된 출전시간을 소화하고 있지만 레너드 특유의 수비력, 아이솔레이션 해결 능력을 생각하면 그의 복귀는 클리퍼스에 무조건 이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레너드는 지난 1월 16일 브루클린전에서 23점, 1월 20일 레이커스전에서 19점을 폭격하며 상대 수비를 무너뜨렸다. 알고도 못 막는 미드레인지 게임, 영리한 패싱 게임으로 경기를 지배했다.

레너드가 꾸준히 건강하게 뛰기 시작할 경우, 클리퍼스는 다른 서부 강호를 위협할 다크호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했든 이미 클리퍼스는 서부 상위권을 질주하고 있었고 지금도 4위 덴버에 단 3경기 뒤져 있다.

압도적인 수비력과 새로운 공격 시스템을 바탕으로 클리퍼스가 시즌 초반의 질주를 그대로 이어갈 수 있을지 지켜보자.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