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피디아] NBA의 영구결번
그냥 봐도 정말 재밌는 NBA, 경기장 밖에서 떠도는 여러 흥미로운 사실을 알고 나면 더욱더 NBA를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준비한 코너가 루키피디아다. 이번 시간은 영구결번에 대해 다룬다.
*본 기사는 루키 2024년 1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스포츠계의 큰 영광, 영구결번
영구결번은 구단에 지대하게 기여하거나 큰 의미가 있는 인물의 번호를 영구적으로 결번하는 것을 의미하며 스포츠계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명예 중 하나다. 보통 구단을 위해 큰 공을 세운 스타를 예우하는 이벤트다.
어느 스포츠에서나 선수라면 본인의 번호가 영구결번되는 상상을 한 번쯤은 할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미션이다.
구단마다 영구결번 선정의 기준이 다르다. “이 선수의 번호가 영구결번이 안 되는 게 말이 되나?”라는 불만까지 등장할 정도로 영구결번에 엄격한 구단이 있다면 “다른 팀에 비해서는 많이 후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구단도 있다.
NBA 초창기 대표 스타 빌 러셀은 역대 최초로 전 구단에서 영구결번된 레전드다. 미국 4대스포츠로 범위를 넓혀봐도 러셀을 포함해 3명밖에 없었다. NBA 사무국은 러셀이 2022년 8월 세상을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계획을 발표했다.
명문 구단 보스턴 셀틱스의 기틀을 닦은 러셀은 무려 NBA에서만 11번의 우승 반지를 획득한 선수다. 그러나 우승 반지 개수만으로 그의 커리어를 평가할 수는 없다. 코트 밖에서도 그는 후대에 널리 기억될만한 행보를 걸었다.
러셀은 1966년 보스턴의 선수 겸 감독을 맡으며 NBA 역사 최초의 흑인 감독이 됐고, 인종 차별을 없애기 위해 힘쓰는 등 인권 관련 활동에 앞장섰다. 슈퍼스타가 가질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어떤 식으로 행사하는지 제대로 보여준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공로를 인정받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재임 시기인 2011년에 대통령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러셀이 세상을 떠나자 “빌 러셀은 코트 안에서는 역사상 최고의 챔피언이었고, 코트 밖에서는 무하마드 알리,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인권의 선구자였다”며 애도를 표했다.
영구결번 리스트는 구단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영구결번을 기념하는 행사는 구단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스타의 발자취를 영원히 한 페이지의 추억으로 남기는 시간이기 때문에 많은 감동을 선사한다.
NBA 30개 구단 중 29개 구단이 영구결번 등번호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전 구단 영구결번인 빌 러셀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자체 영구결번이 없는 팀은 LA 클리퍼스가 유일하다.
그들도 영구결번이 없는 분명한 이유는 있다. 버팔로 브레이브스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무려 5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구단이지만 처음으로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한 것이 2021년일 정도로 다른 구단에 비해 성적에 있어서 아쉬움이 컸다.
성적에 대한 성과가 부족했던 만큼 타 구단에 비해 구단을 대표한다고 할 만한 스타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창단 이후 가장 강한 전력을 구축했던 랍시티의 주역 크리스 폴이 아직 은퇴하지 않았지만 그가 뛰었을 때 최대 성적이 2라운드 진출이었고 구단에서 출발한 프랜차이즈 스타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클리퍼스 영구결번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토론토 랩터스 또한 자체 영구결번이 없는 팀이었지만 지난 11월 3일 빈스 카터가 구단 역대 최초로 영구결번식을 가졌다. 카터는 2025년 1월 브루클린에서도 영구결번식을 진행할 예정으로 한 시즌에 두 팀에서 영구결번식을 진행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됐다.
백과사전 속 토막상식
뛰지도 않은 팀에서 영구결번된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은 시카고 불스의 상징이다. 6번의 파이널 우승을 이끌었고 2번의 쓰리핏을 기록했다. 그가 시카고에서 영구결번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렇지만 조던은 시카고에서만 영구결번된 것이 아니다. 그의 번호를 영구결번시킨 또다른 팀은 2차 은퇴 후 복귀할 때 소속팀이었던 워싱턴 위저즈가 아니라 마이애미 히트. 마이애미는 구단에서 한 번도 뛴 적이 없었던 조던에게 구단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을 안겼다.
마이애미의 팻 라일리 사장은 “마이클 조던은 그럴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였고, 리그의 모든 팀이 위대함이 무엇인지 상기시키기 위해 그의 번호를 영구결번하는 게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남겼다. 조던의 위대했던 행보가 타 구단의 마음을 움직인 셈이다.
영구결번에 얽힌 재밌는 스토리
영구결번은 보통 하나의 번호당 한 명만 지정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하나의 번호로 2명 이상이 영구결번된 사례들도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뉴욕 닉스의 얼 먼로와 딕 맥과이어다.
1971년부터 1980년까지 뉴욕에서 활약한 먼로는 1973년 우승의 주역이었다. 그 외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긴 먼로는 1986년 뉴욕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6년 뒤인 1992년엔 먼로 이전에 15번을 달았던 맥과이어가 영구결번의 영예를 안았는데, 그는 1949년부터 8시즌 동안 뉴욕에서 뛰면서 3번의 파이널 진출을 이끌고 5번 올스타에 선정된 이력이 있다.
포틀랜드의 30번 또한 두 명의 영구결번 주인을 보유하고 있다. 포틀랜드는 테리 포터의 30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한지 불과 이틀 뒤에 밥 그로스의 30번 또한 영구결번시켰다.
보스턴의 18번은 앞서 소개한 두 번호보다 더 특이한 운명이었다. 1960년대 셀틱스의 스타인 짐 로스커토프가 영구결번에도 후대 선수들이 그의 등번호를 사용하길 원했는데, 그의 뒤를 이어 나중에 18번을 단 데이브 코웬스가 뛰어난 발자취를 남기며 영구결번의 영예를 안았다.
보스턴 구단은 로스커토프의 뜻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니폼에는 등번호 없이 이름만 새겨 홈 구장 천장에 안착시켰다. 보스턴은 리그 최다 우승 구단답게 영구결번 또한 19명이나 배출했다.
LA 레이커스의 대표 스타 중 한 명인 코비 브라이언트는 한 구단에서 2개 이상의 번호로 영구결번된 케이스다. 2020년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그가 남긴 맘바 멘탈리티의 여운을 잊지 못하는 이가 많다.
코비는 명문 구단인 레이커스 한 구단에서만 커리어 내내 활약하며 5번의 우승을 이끌었다. 마이클 조던 이후 당대 최고의 상징으로 떠올랐던 코비는 레이커스에서 20년 동안 선수로서 발자취를 남겼다.
코비는 선수 생활 동안 8번과 24번, 2개의 등번호를 사용했다. 2006-2007시즌부터 8번에서 24번으로 등번호를 변경했는데, 24시간의 하루와 24초의 샷클락에서 영감을 받은 번호이다. 레이커스는 코비가 은퇴한 이후 8번과 24번을 모두 영구결번했다.
레이커스에서만 뛰었지만 코비는 타 구단에서도 영구결번됐다. 2020년 1월 코비가 헬기 추락 사고로 불운하게 사망한 이후 댈러스 매버릭스의 마크 큐반 구단주가 댈러스에서 24번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큐반 구단주는 “코비 브라이언트는 농구 홍보대사였고, 전설이자 세계적 아이콘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사랑스럽고 헌신적인 아버지였다. 코비의 유산은 농구를 넘어선 것이며, 댈러스 매버릭스가 다시는 24번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결정했다”고 이야기했다.
코비 키즈로 불릴 정도로 코비를 롤모델로 삼고 농구 선수의 꿈을 키워온 선수도 많다. 조엘 엠비드 또한 대표적인 NBA의 코비 키즈.
본래 필라델피아의 24번은 바비 존스의 영구결번 번호였지만 코비 사망 이후 치러진 첫 경기에 엠비드가 24번과 함께 출전하길 원했고, 존스가 이를 허락했다. 엠비드는 2020년 1월 29일 골든스테이트와의 경기에 24번 유니폼을 입고 의도대로 24점을 기록한 채 경기를 마무리하며 우상인 코비를 기렸다.
휴스턴에서 뛰었던 ‘만리장성’ 야오밍은 동양인 최초로 NBA에서 영구결번된 선수다. 드래프트 1순위 지명 이후 NBA에서 큰 임팩트를 남긴 야오밍은 영구결번 이전에 네이스미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