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진호 기자] 올 시즌 챔피언으로 가는 길의 가장 큰 변수가 될 수 있는 2016-2017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5차전이 열린 지난 달 30일 안양 실내체육관. 일찌감치 매진이 된 팬들의 열기는 경기 내내 뜨겁게 경기장을 달궜다. 그런데 다소 의아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특정 선수에 대한 야유를 자제해 달라”는 간곡한 알림이었다.

안양 KGC인삼공사와 서울 삼성 썬더스는 지난 2차전에서 이정현(KGC)과 이관희(삼성)의 충돌로 거친 장면을 연출했고 이로 인한 징계도 내려졌다. 

이후 잠실에서 벌어진 3-4차전 내내 이정현은 공을 잡을 때마다 삼성 홈팬들의 야유를 받아야 했다. 장소를 안양으로 옮긴 5차전에서는 이관희가 공을 잡자마자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자 현장에서는 여러 차례 야유 자제를 당부했고, 심지어는 ‘선진 응원 문화’라는 부분을 강조했다. 

이상하다. 야유는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의 자연스러운 의사표현이며 응원의 한 부분이다. KBL이나 구단 측이 이를 제한할 권리는 없다.

물론 지나쳐서는 안 된다. 코트 난입이나 오물 투기, 심한 욕설과 관중간의 다툼 등은 절대 금물이다. 

하지만 선수에 대한 야유는 응원만큼이나 자유로울 수 있는 부분이다. 야유가 ‘선진 응원 문화’라는 단어까지 동원될 만큼 지적의 대상이 될 이유는 없다. 아울러 경기장 폭력 사태의 발단이 된다고도 단정할 수 없다.

NBA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케빈 듀란트는 올 시즌 이전 소속 팀이었던 오클라호마 시티 썬더와의 원정 경기에서 이전 홈 팬들에게 거센 야유를 받았다. 

선수 소개 때부터 폭발적인(?) 야유가 쏟아졌고 듀란트를 조롱하는 단어를 새긴 옷을 입고 나타난 팬들도 있었다. 듀란트는 이 원정길에 개인적으로 경호원을 추가 고용할 만큼 위기감을 느꼈지만 경기장 내의 야유를 자제하라는 ‘선진 응원’ 유도는 없었다.

다른 종목에서도 마찬가지다. 야유는 응원의 또 다른 얼굴이며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솔직한 표현이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투수의 정상적인 견제 한 번에도 양 팀 팬들이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연출하지만 유쾌한 문화로 정착된 지 오래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당시 우리나라와 스페인의 승부차기 때도 스페인 차례마다 일치단결 된 야유가 쏟아졌지만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만약 농구에서 특정 선수에 대한 야유가 문제라면 앞으로 원정 팀 선수의 자유투 때 응원단장의 유도 속에 이어지는 야유와 백보드 뒤에서의 방해동작 역시 청산해야 할 적폐로 봐야 할 것이다. 

적당한 신경전은 선수 간의, 혹은 팀 간의 라이벌 관계를 더욱 치열하게 만들고 프로 스포츠의 스토리를 제공하며 하나의 문화와 역사를 만들 기틀이 된다. 경기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팬들을 더욱 흥분시킴은 물론 스포츠의 열기를 끌어올려 인기의 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국내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에서는 오히려 라이벌, 혹은 더비의 구조를 더욱 더 강조하는 반면 농구에서는 애써 이런 분위기를 피하는 분위기다. 평정심 유지의 핵심은 관중석이 아니라 코트 위와 벤치에 있다. 

앞서 언급했던 케빈 듀란트는 이적 후 처음 방문한 친정팀 안방에서 무려 34점 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친정 격파의 선봉에 섰다. 앞으로 듀란트에 대한 체서피크 에너지 아레나의 야유와 비난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는 것도, 혹은 거기에 굴복하는 것도 선수의 몫이다.

생각해보자.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이관희를 앞에 두고 위닝 3점슛을 꽂아 넣어 홈팬들의 야유를 침묵에 빠트리는 이정현을... 그리고 같은 상황의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이정현의 슛을 블록하고 포효하는 이관희를... 

이런 모습은 양 팀 팬들의 피를 더욱 뜨겁게 만들 것이다. 이는 선동이 아니다.

KBL에서는 지난 시즌에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문태종(오리온)과 신경전을 벌이다가 과격한 모습이 잡힌 김민구(KCC)는 고양 원정에서 큰 야유에 직면했고 당시에도 이에 대한 자제를 요구했다. 과연 이러한 모습이 ‘프로 스포츠’에 합당할까?

사실 ‘야유 자제’는 의도한다고 해서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팬들의 반감만 살 뿐이다. 지나친 규제가 역효과를 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날도 여러 차례 당부가 이어졌지만 야유는 끊이지 않았다. 실효도 없는 오지랖이었다. 홈 팀은 적법한 범위 내에서 홈 어드벤티지를 최대한 이끌어 낼 방법을 고민해야지 상대 선수에 대한 배려를 위해 굳이 팬들의 반응까지 단속할 필요는 없다. 

2010년 챔피언 반지를 위해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떠나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했던 르브론 제임스는 듀란트가 이번 시즌 받았던 야유와 비난을 앞서 경험했고, 친정 팬들의 저주 속에도 원했던 우승을 두 차례나 차지했다. 그러고는 다시 클리블랜드로 돌아와 복귀 두 시즌 만에 팀을 우승시켰다.

팬들이 KBL에서 보고 싶은 것이 르브론 제임스의 사례에 버금가는 ‘스토리’일까, 아니면 전 세계 어느 리그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선진 응원 문화(?)일까? 과연 이 문제에 대해 고민이란 것 자체가 필요한 지 묻고 싶다. 

사진 :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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