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이승기 기자 =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MVP 레이스?"

2016-17시즌 NBA 정규리그 MVP 레이스는 사상 유래가 없을 만큼 치열한 전개를 보이고 있다.

사상 2번째 '시즌 평균' 트리플-더블을 눈앞에 둔 러셀 웨스트브룩, 마이크 댄토니 감독과 함께 휴스턴 로케츠의 성공신화를 쓰고 있는 제임스 하든이 팽팽한 각축전을 벌이는 중이다.

그런데 역사상 최초로 '시즌 평균' 트리플-더블을 달성했던 '빅 O' 오스카 로버트슨은 정규리그 MVP를 수상하지 못했다.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자.

 

1961-62시즌 평균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던 오스카 로버트슨(가운데)과 해당 시즌 MVP 수상자 빌 러셀(사진상 오른쪽) ⓒ Gettyimages/이매진스

 

★ 충격과 공포의 1962년

과거의 농구는 페이스가 매우 빨랐다. 수비 전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에 극단적인 공격 중심의 농구를 펼쳤다. 이에 따라 각종 기록도 풍성하게 나왔다.

그중 1961-62시즌은 유독 놀라운 기록이 대거 쏟아졌다. 이 시즌 MVP 후보들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개인기록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다음은 해당시즌 MVP 투표 1위부터 6위를 차지한 선수들의 기록을 정리한 것이다.

☞ 1961-62시즌 MVP 레이스

MVP 빌 러셀 
18.9점 23.6리바운드 4.5어시스트 출전시간 45.2분

2위 윌트 체임벌린 
50.4점 25.7리바운드 2.4어시스트 출전시간 48.5분

3위 오스카 로버트슨
30.8점 12.5리바운드 11.4어시스트 출전시간 44.3분

4위 엘진 베일러
38.3점 18.6리바운드 4.6어시스트 출전시간 44.4분

5위 제리 웨스트 
30.8점 7.9리바운드 5.4어시스트 출전시간 41.2분

6위 밥 페팃
31.1점 18.7리바운드 3.7어시스트 출전시간 42.1분

1961-62시즌 로버트슨은 역대 최초로 시즌 평균 트리플-더블을 달성했으나 MVP 투표 3위에 그치고 말았다. 위 기록들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빌 러셀은 총 85표 중 51표를 싹쓸이하며 압도적으로 MVP에 올랐다. 엽기적인 기록을 쌓은 윌트 체임벌린이 2위를 차지했고, 로버트슨은 3위에 그쳤다.

★ 빌 러셀이 MVP가 된 이유

그런데 의아한 것은 왜 MVP가 체임벌린이 아니라 러셀이었나 하는 지점이다. 당시 체임벌린은 평균 득점과 리바운드, 평균 출전시간 부문에서 모두 1위에 올랐고, 그중 득점과 출전시간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역대 최고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냉정히 말해 러셀의 기록은 엘진 베일러나 밥 페팃보다도 떨어진다. 평균 기록만 놓고 본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러셀은 대체 어떻게 MVP를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일까.

설명하기 가장 편한 이유를 찾자면 역시 팀 성적을 들 수 있다. 해당 시즌 러셀이 이끌던 보스턴 셀틱스는 60승 20패를 기록하며 전체 1위에 올랐고, 체임벌린의 필라델피아 워리어스(現 골든스테이트)는 49승 31패로 전체 3위를 기록했기 때문.

베일러는 평균 38.3점 18.6리바운드 4.6어시스트라는 초인적인 성적을 냈고, 소속팀 LA 레이커스를 서부 컨퍼런스 1위이자 전체 2위로 올려놨다. 개인기록은 러셀을 압도하고, 팀 성적도 러셀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MVP 투표 결과는 고작 4위에 그쳤다. 그 이유는 출장경기 수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베일러는 평일에는 군복무를 하고, 주말에만 경기를 치렀는데, 이로 인해 48경기 출전에 그쳤다. 생각해보면 48경기만 뛰고도 MVP 투표 4위에 오른 것 자체가 대단하다.

로버트슨의 경우는 팀 성적이 아쉬웠다. 신시내티 로얄스(現 새크라멘토 킹스)는 41승 39패로 전체 5위에 그쳤다. 당시 리그에는 고작 9팀밖에 없었다. 따라서 전체 5위라고 해도 실제로는 중위권이었던 것이다.

★ 투표 방식의 차이

그런데 단순히 팀 성적만으로 MVP 투표 결과를 설명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보스턴은 해당 시즌 네 명의 올스타를 배출하는 등 초호화 멤버를 자랑했다. 필라델피아는 두 명의 올스타(체임벌린, 폴 애리진)뿐이었다. (물론 두 명의 올스타도 적은 것은 아니지만, 나머지 멤버들의 수준이 분명 차이가 났다.)

최고의 팀, 최고의 선수가 MVP를 수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딘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당시 러셀의 기록은 체임벌린이나 베일러, 로버트슨, 밥 페팃 등을 압도하진 못했지만, MVP 투표 결과는 실로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투표 방식의 차이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MVP 투표 방식이 바뀐 것은 1980-81시즌이었다. 이때부터 MVP 투표가 '기자단 투표'로 이루어졌다. 이전에는 '선수단 투표'로 행해졌다. 코트에서 몸을 부대끼며 맞대결하는 선수들이 직접 투표에 참여했다는 얘기다.

1961-62시즌 MVP 투표도 그랬다. 선수들이 직접 MVP를 뽑았다. 그렇다면 러셀이 압도적인 득표수를 기록하며 MVP에 오른 것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당시만 하더라도 스포츠 내에서의 인종차별이 매우 심하던 시기였다. 이때 러셀은 흑인 선수들의 리더 역할을 했다. 탁월한 리더십, 두터운 인망과 타고난 성품, 카리스마 등을 바탕으로 동료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다.

이러한 선수가 농구까지 기똥차게 잘했다. 수비력은 역대 최고였고, 팀 성적은 매번 우승이었다. 득점력은 조금 떨어졌지만, 그건 팀에 올스타 동료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러셀은 수비와 리바운드, 패스, 스크린 등 궂은일에 집중하며 언제나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때문에 당시 선수들은 러셀에게 존경심은 물론, 일종의 경외감마저 느꼈다. 

반면, 체임벌린은 '독불장군' 이미지가 강했다. 농구 실력은 독보적이었지만, 그만큼 동료들을 믿지 않았고 자존심도 셌다. 항상 "내가 최고"라고 떠들고 다녔다. 리그 내 동료들이 그에게 질투심과 반감을 가진 것도 이해가 간다.

커리어를 통틀어 러셀은 5회 MVP를 수상했다. 체임벌린은 4회였다. 만약 기자들이 직접 투표하는 현대농구였다면, 이들의 수상 결과가 달려졌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BONUS | 제2의 오스카 로버트슨?

웨스트브룩은 어쩌면 '제2의 오스카 로버트슨'이 될지도 모르겠다. 평균 트리플-더블을 기록하고도 MVP를 수상하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다. 본인이 MVP 수상에 실패한 아쉬움 때문일까. 로버트슨은 최근 "웨스트브룩이 MVP가 되어야 한다. 이제는 수상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현재 웨스트브룩의 소속팀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승률은 30개 팀 중 전체 10위에 해당한다. 중상위권이지만 MVP를 수상하기에는 분명 아쉬운 것이 사실.

선수단이 투표하던 시절을 살펴보자. 가장 낮은 승률을 올리고 MVP를 수상했던 선수는 1975-76시즌의 카림 압둘-자바로, 당시 LA 레이커스는 40승 42패로 48.8%의 승률을 기록했다.

기자단 투표로 바뀐 1980-81시즌 이후에는 MVP 배출 팀 중 1987-88시즌 시카고 불스의 승률이 가장 낮았다. 당시 시카고는 50승 32패로 승률 61.0%를 기록했다. 당시 시카고를 이끌던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 MVP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오클라호마시티는 이제 6경기 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들이 전승을 거두면 49승 33패로, 승률 59.8%가 된다. 과연 웨스트브룩은 MVP를 수상할 수 있을까? 기자단 투표가 행해진 후만 놓고 본다면, 50승 미만 팀에서 MVP가 나온 적은 없었다. 역사는 "하든이 MVP가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사진 제공 = Gettyimages/이매진스

일러스트 제공 = 홍기훈 일러스트레이터(inc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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