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은 이번 시즌 아시아쿼터 제도의 범위를 기존의 일본에서 필리핀까지 확대했다.

화려한 개인기를 앞세워 우리나라와 다른 농구를 하는 필리핀 선수들의 등장으로 팬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국내 선수들에게도 새로운 동기부여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마케팅 측면에서의 기대도 있었다.

동아시아 슈퍼리그 출범으로 농구 시장 확대의 기회가 마련됨에 따라 우리나라 선수들을 해외에 알림은 물론 아시아쿼터 선수들의 활약으로 해당 국가에 KBL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 있다는 부분이다.

실제로 KBL의 유튜브 채널인 <KBL TV>에는 해외 방문자 수가 증가했고, KBL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 영문 자막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필리핀은 농구가 국기라고 할 만큼 남자 농구의 인기가 높다.

지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필리핀 팬들은 농구가 열린 경기장을 찾아 자국 농구팀을 목청 높여 응원했다. 우리나라와의 경기에서도 필리핀 팬들의 함성은 우리나라 팬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당시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은 “필리핀 팬들이 인천 삼산월드체육관과 화성종합경기타운 체육관을 마닐라로 만들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농구에 열정적인 필리핀 팬들이 KBL 경기 관람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필리핀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는 소식은 찾기 힘들었다.

일부에서는 “필리핀 관중 유입 효과는 실패”라고 단정 짓기도 했고, 또 한편에서는 “드와이트 라모스 같은 선수들이 왔다면 구름 관중이 몰렸을 것이다. 지금 온 선수들은 필리핀에서 그 정도의 인지도는 아니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시즌 초반 돌풍을 일으켰던 울산 현대모비스의 론제이 아바리엔토스는 “필리핀에서 나는 일반인”이라며, “거리를 다녀도 아무도 못 알아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KBL이 기대하는 효과가 조금씩 긍정적인 신호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안양 KGC인삼공사와 서울 SK 나이츠의 경기가 펼쳐진 지난 27일 안양체육관. 30여명의 필리핀 관중들이 단체로 경기장을 찾았다.

필리핀 서포터즈였다. KGC의 필리핀 선수 렌즈 아반도를 보기 위해 수원, 안산 지역의 필리핀 근로자들 중 일부가 직접 응원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경기 내내 축제 분위기였다. 아반도가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 선발로 출전해 30분 56초를 뛰며 3점슛 3개 포함 21점 5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아반도는 내외곽을 오가며 득점을 올렸다. 화려한 스핀 무브와 멋진 덩크슛을 터뜨렸고, 엄청난 체공 능력으로 리바운드를 잡아냈으며, 날카로운 패스로 팬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안양체육관을 방문한 국내 팬들도 열광했으니 아반도와 같은 필리핀 출신의 관중에게는 더욱 의미가 남달랐을 것이다.

아반도는 이날 자신을 열광적으로 응원해 준 필리핀 팬들에게 “굉장히 어렵게 오신 걸로 알고 있다. 정말 힘이 됐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반도는 개막 직전 입은 부상으로 시즌 초반에 결장했다. 1라운드에는 아바리엔토스와 이선 알바노(DB)가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필리핀 아시아 쿼터 선수들의 돌풍을 이끌었다.

이날 최고의 활약을 펼친 아반도는 “필리핀 선수들의 좋은 경기력을 보며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이들의 맞대결은 필리핀 팬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가 될 수 있다.

KGC 구단 측은 필리핀 팬들의 문의가 최근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기장을 찾은 필리핀 팬들도 아반도가 자랑스럽다며 KBL에 대해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2018년 기준, 한국 내 필리핀 국민의 수는 6만 명이 넘는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한국을 찾는 필리핀인의 수는 연간 51만 6천여 명에 이르렀다. 국내 다문화 가정의 수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전체적인 시장의 규모를 확대하며 한국 농구의 가능성을 더 넓히고자 하는 KBL의 시도가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일단, 불씨는 지폈다.

사진 =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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