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비시즌 KBL FA 시장의 주인공은 전주 KCC였다. 그간 리그를 대표하는 큰 손이었던 KCC는 수준급 FA들이 대거 쏟아진 이번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빅6(허웅-이승현-전성현-김선형-두경민-이정현) 중 허웅과 이승현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두 선수를 영입한 KCC가 어떤 시즌을 보내게 될지 예상해보자.

실망스러웠던 지난 시즌, 그래도 희망 찾은 비시즌 행보 

2020-2021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했던 KCC는 지난 시즌에도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강팀 중 하나로 꼽혔다. 탄탄한 외국 선수진 구축에 도움을 줬던 타일러 데이비스가 떠난 점은 아쉬웠지만, 국내 선수 라인이 나쁘지 않고 전창진 감독의 지도력 또한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러나 KCC의 지난 시즌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주축 선수들의 컨디션 난조로 어려움을 겪었고, 설상가상으로 송교창이 손가락 부상으로 장기 이탈하는 초대형 악재까지 맞았다. 직전 시즌 MVP를 차지했던 송교창은 가드진과 외국 선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절대적 존재였다.

라건아와 이정현을 중심으로 의지를 불태웠으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부상 악재가 이어진 가운데, KCC는 활약을 기대했던 선수들이 좀처럼 부진에서 탈출하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라건아의 뒤를 받쳐줘야 할 2옵션 라타비우스 윌리엄스의 존재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좀처럼 반등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 KCC는 9위(21승 33패)로 정규리그를 마무리했다. 6강과 멀어지면서 시즌 막판은 미래에 대비해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가 돌아갔다. KCC가 플레이오프를 치르지 못한 시즌(조기 종료 시즌 제외)은 2016-2017시즌 이후 처음이었다.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낸 KCC는 비시즌에 큰 변화를 맞이했다. 수준급 기량의 선수들이 쏟아지는 이번 FA 시장은 개장 전부터 역대급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리그 대표 큰 손인 KCC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오랜 기간 백코트 에이스로 활약했던 이정현과 작별한 KCC는 FA 최대어라 불리는 허웅, 이승현과 계약하는 대박을 터트렸다. 송교창이 상무 입대로 잠시 자리를 비우지만,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은 KCC는 충분히 이번 시즌 대권을 노려볼만한 전력을 갖추게 됐다. 이제는 KCC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누비게 될 허웅과 이승현에게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인기와 실력을 모두 잡은 남자, 허웅 

현재 KBL에서 허웅이 선보이고 있는 인기몰이는 가히 독보적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시즌 올스타 투표에서 이상민 전 감독의 최다 득표 기록을 깼던 허웅은 역대 최초로 3년 연속 인기상을 받은 선수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마케팅이나 흥행적인 측면으로만 보더라도 KCC 입장에서 허웅 영입은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 지난 시즌 허웅의 소속팀 원주 DB는 원정에서도 홈 경기를 생각나게 하는 팬들의 열띤 응원을 받았다. 그 중심에는 KBL 아이돌 허웅이 가진 티켓파워의 힘이 있었다. 여기에 KBL 대표 인기 구단 중 하나인 KCC의 힘까지 합쳐진다면 큰 파급력을 가져올 전망이다. 

허웅의 합류로 KCC는 벌써 엄청난 흥행 효과를 누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허웅과 이승현의 이적이 발표되고 약 3달이 지난 시점에서 KCC는 구단 공식 SNS 팔로워와 동영상 채널 구독자 수가 2배 이상 늘었다. 팬미팅, 연습 경기 등 구단 일정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태다.

주목할 점은 허웅이 단순 인기뿐만 아니라 실력까지 잡은 슈퍼스타라는 것이다.

연세대 출신의 허웅은 2014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5순위로 DB에 지명된 뒤 빠르게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았다. 허웅이 좋은 활약을 펼치자 드래프트 당시 4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던 KCC 팬들은 그를 지나친 것에 대해 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허웅의 농구 재능은 지난 시즌에 완벽하게 꽃을 피웠다. 같이 백코트를 이루던 두경민의 트레이드로 인해 팀 내 비중이 커진 허웅은 부담이 될 법한 상황에도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스텝업에 성공했다.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낸 허웅은 생애 처음으로 베스트5에 선정되는 기쁨까지 누렸다.

허웅 최근 2시즌 성적 비교
2020-2021시즌 : 54경기 평균 11.2점 2.8리바운드 2.9어시스트 야투율 41.8% 
2021-2022시즌 : 54경기 평균 16.7점 2.7리바운드 4.2어시스트 야투율 46.2%

허웅의 지난 시즌이 놀라웠던 점은 공격 분야에서 매우 유의미한 발전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가드가 갖춰야 핸들링 능력이나 시야 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허웅을 저평가하는 시선도 꽤 있었는데, 지난 시즌을 치르면서 상당수가 사라졌다. 

개인 득점은 물론 동료와의 호흡도 나쁘지 않았던 것이 허웅의 위력이 더 커졌던 이유였다. 지난 시즌 허웅은 경기당 4.2개로 커리어 중 가장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눈에 띄게 좋아진 2대2 게임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괴롭혔다. KCC의 라건아, 이승현 또한 2대2 게임에 능한 빅맨이다.  

허웅은 KCC에서 이전까지 팀 공격의 핵심으로 활약했던 이정현(삼성)의 자리에서 뛰게 될 전망이다. 허웅이 지난 시즌에 보여준 활약상을 이어간다면, 이정현이 해냈던 역할의 많은 부분을 훌륭히 메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리그를 대표하는 타짜 이정현과 마찬가지로 허웅 또한 승부사 기질이 강한 선수다. 지난 시즌 국내 선수 중 가장 많은 4쿼터 득점을 올린 선수가 허웅(평균 5.5점)이며, 승부처 결정적인 득점 또한 자주 터트린 바 있다. 

승리에 목마른 두목 호랑이, 이승현

용산고와 고려대를 거쳐 2014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KBL에 입성한 이승현은 이기는 법을 잘 아는 선수다. 그가 이끌던 시절의 고려대는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보냈다. 

이승현이 뛸 때 오리온은 한 시즌(2019-2020시즌)을 제외하고 모두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다. 데뷔 초부터 당찼던 이승현은 2년 차 시즌에 우승을 차지한 뒤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거머쥐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챔피언결정전 상대는 새로운 소속팀이 된 KCC다.

코트에서 누구보다 승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 이승현은 흔히 말하는 ‘감독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선수’ 유형이다. 끈질긴 투지와 리더십이 돋보이고, 멘탈적으로 흠잡을 곳이 없다. 오히려 부상을 당하더라도 출전 의지를 불태우는 상황에 감독이 기분 좋은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팀에 대한 헌신이 돋보이는 이승현은 지난 시즌 34분 21초로 KBL 전체 평균 출전 시간 1위를 기록했다. 2위 그룹과 무려 2분 가까이 차이가 났다. 출전 시간 순위에서 국내 빅맨 중 이승현을 제외하고 20위 안에 있었던 선수는 오세근(20위)밖에 없었다. 

이에 혹사 논란이 일자 이승현은 인터뷰에서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내 성격 자체가 책임지더라도 직접 뛰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벤치에 앉아서 지켜보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힘들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동료가 이탈해서 느끼는 책임감도 컸고 코트에서 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단체 스포츠인 농구에서 팀에 이승현과 같은 선수가 존재한다면, 분위기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승리 바이러스의 전파는 젊은 선수들의 성장에도 매우 긍정적인 요소다.

빅맨치고 작은 197cm의 신장은 이승현이 프로에 데뷔하기 전 우려를 샀던 요소다. 프로에 온다면 3번으로 포지션을 전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이승현은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신장에 대한 걱정을 말끔하게 지워버렸다. 이승현은 현시점에서 어떤 국내 선수와 매치업이 되더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빅맨이다. 

5번의 수비 5걸과 2번의 최우수 수비상을 차지한 이승현이 수비에서 끼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왕성한 활동량과 높은 팀 수비 이해도를 바탕으로 상대를 숨 막히게 한다. 여기에 일시적으로 외국 선수와 매치업도 가능해 전술적 활용도가 매우 높다. 

지난 시즌까지 KCC에서 주전 파워포워드로 뛰었던 송교창 또한 뛰어난 수비수지만, 빅맨 유형이 아니기에 이승현만큼 골밑에서 무게감이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이승현의 가세는 수비에서 엄청난 플러스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그리고 송교창이 상무에서 돌아온다면 더 물 샐 틈 없는 수비진을 구성할 수 있다.

이승현은 이전까지 리그 최고라고 평가받는 수비에 비해 공격에서는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던 선수였다. 줄곧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으나, 이름값에 비해 공격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따라왔다.

하지만 이승현은 지난 시즌 공격에서도 제대로 물이 오른 모습을 보였다. 경기당 13.5점은 그의 데뷔 후 최다 평균 득점 기록. 여기에 3점 성공률(37.1%)을 10% 이상 끌어올리며 수비 입장에서 더욱 까다로운 선수가 됐다.

이승현 최근 2시즌 성적 비교
2020-2021시즌 : 52경기 평균 11.8점 5.6리바운드 야투율 47.1% 3점 성공률 27.1%
2021-2022시즌 : 48경기 평균 13.5점 5.6리바운드 야투율 47.4% 3점 성공률 37.1%

오리온은 지난 시즌 집요할 정도로 많이 이승현과 가드들의 2대2 공격을 주요 공격 옵션으로 활용했다. 그만큼 이승현의 스크린이 견고하고 2대2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스크린 후 점퍼를 노리는 픽앤팝 공격은 알고도 막기 힘들다.

이승현의 2대2 게임 능력은 KCC에서도 많이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전창진 감독은 조직력을 바탕으로 나오는 유기적인 공격을 선호하는 스타일의 사령탑. KCC는 허웅을 비롯해 김지완, 정창영 등 이승현과 2대2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선수들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재정비 성공한 KCC, 이번 시즌은 어떨까?

허웅과 이승현의 영입 외에도 비시즌 중 KCC 팬들을 웃게 한 소식은 또 있었다. 소금 같은 존재였던 정창영과 재계약을 맺으며 내부 FA 단속에도 성공한 것이다. 

LG 시절 큰 빛을 보지 못했던 정창영은 KCC 이적 후 전창진 감독을 만나면서 완전히 환골탈태했다. 공격에서는 정확한 슈팅력과 돌파를 바탕으로 답답할 때마다 실마리를 찾아줬고, 간간이 리딩 능력으로 힘을 보탰다. 

무엇보다 농구에 눈을 뜨면서 수비를 통해 팀에 기여하는 바가 컸던 정창영이다. 구단의 믿음을 얻은 정창영은 이번 시즌 주장을 맡아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코트를 누비게 됐다.

타일러 데이비스의 컴백은 불발됐지만, 국가대표 센터 라건아의 존재감은 여전히 크다. 라건아는 지난 시즌 초반 다소 부진한 출발을 보이며 우려를 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본연의 모습을 되찾았다. 54경기에 모두 출전하며 철인다운 모습을 과시했던 라건아다. 다가오는 시즌에도 1옵션 외국선수급 활약을 기대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라건아와 함께 뛴다는 사실은 이승현에게도 매우 고무적이다. 이승현은 데뷔 후 자주 포워드형 외국 선수의 수비 약점을 메우는 역할을 맡아왔다. 센터 스타일의 장신 선수가 들어오더라도 여러 문제로 인해 고생하는 일이 많았다. 시작부터 라건아와 호흡을 맞추는 이번 시즌은 이전보다 부담을 내려놓고 임할 수 있을 전망이다. 

지난 시즌 송교창이 빠졌을 때 알토란 같은 역할을 해줬던 김상규의 존재도 이승현을 반긴다. 오리온 시절 이승현의 출전 시간이 길었던 이유는 그를 받쳐주는 백업 선수들의 활용도가 크지 않았기 때문도 컸다. 김상규를 제외하고도 지난 시즌 막판 잠재력을 어필한 유망주 서정현도 충분히 백업으로 제 몫을 해줄 여지가 있다.

많은 사람이 다가오는 시즌 KCC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으로 꼽는 요소는 포인트가드 부재다. 지난 시즌까지 뛰었던 유현준이 팀을 떠난 KCC는 믿을 수 있는 포인트가드 자원이 부족한 상태다. 허웅, 김지완, 박경상, 정창영 등이 있지만 완벽한 1번을 맡기에는 어려운 선수들이다. 

허웅이나 김지완, 정창영이 돌아가며 리딩을 맡아야 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전창진 감독이 모션 오펜스를 강조하는 지도자라는 사실은 호재다. 

전 감독은 KT 시절에도 정상급 포인트가드 없이 조직적인 농구를 바탕으로 큰 성과를 만들어낸 바 있다. 부임 첫해에 선수 생활 막바지로 달려가던 신기성이 있었으나, 한 시즌만 동행한 뒤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 충분히 이번 시즌의 KCC도 좋은 성적을 낼 만한 가능성이 있다.

전준범, 이근휘와 같은 외곽 슈터들이 분발해준다면 금상첨화다. 이적 첫해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전준범은 한때 국가대표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던 선수. 이근휘 또한 슈팅력 하나만큼은 리그에서 손에 꼽을 정도라고 인정받고 있는 유망주다.

KBL은 지난 시즌 상위권에 있었던 팀들이 주축 선수들의 이탈로 전력 약화가 예상되는 형국이다. FA 시장을 성공적으로 보낸 KCC로선 명예 회복에 성공할 기회다.

명가의 자존심을 되찾고 싶은 KCC가 허웅, 이승현의 기대 효과를 잘 활용해 다시 도약할 수 있을까? 그들의 행보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 = KBL 제공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