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라호마 대학의 블레이크 그리핀이 압도적인 재능으로 꼽혔던 2009년 NBA 드래프트는 훗날 리그 판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10년대 최고의 가드로 활약하게 되는 스테픈 커리와 제임스 하든이 이 드래프트로 NBA에 입성했으며, 더마 드로잔과 즈루 할러데이도 2009년 드래프트를 통해 첫발을 내디딘 선수들이다.

블레이크 그리핀(전체 1순위, 클리퍼스 지명)

2009년 드래프트를 칭하는 다른 이름은 ‘블레이크 그리핀 드래프트’였다. 야수 같은 운동 능력이 돋보이는 그리핀은 대학교 2학년 시즌 6개의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했고, 1순위 지명권을 얻은 클리퍼스가 그를 외면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핀이 입단하기 전 클리퍼스의 주전 파워포워드는 잭 랜돌프였다. 당시 랜돌프는 직전 시즌 평균 20.8점 10.1리바운드를 기록했던 선수. 하지만 그리핀의 잠재력을 믿은 클리퍼스는 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랜돌프를 멤피스로 트레이드했다. 

NBA는 특급 신인 그리핀의 데뷔를 환영하며 LA 라이벌 클리퍼스와 레이커스의 경기를 개막전에 배치했다. 클리퍼스가 이전 두 시즌 동안 도합 42승에 그쳤던 것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선택. 그리핀에 대한 사무국과 팬들의 기대치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리핀은 프리시즌 도중 당한 무릎 부상 회복이 더디게 이뤄지며 데뷔 시즌을 통째로 날리고 말았다.

부상으로 날린 첫 시즌에 대한 울분을 토하듯 그리핀은 82경기에 모두 출전하며 평균 22.5점 12.1리바운드를 쏟아냈다. 신성다운 활약을 펼친 그리핀은 올스타에 선정됐고, 슬램덩크 컨테스트에서 자동차를 뛰어넘는 덩크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하이라이트 필름을 만들었다. 1년을 미뤄둔 신인왕 또한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그리핀의 재능을 확인한 클리퍼스는 승부수를 던졌다. 유망주들과 지명권을 내주고 레이커스로의 이적이 무산된 크리스 폴을 영입했다. 폴의 영입 효과를 바로 누린 클리퍼스는 2011-2012시즌 창단 첫 정규시즌 6할 승률 달성에 성공했다. 그리핀과 디안드레 조던은 수많은 하이라이트 필름을 만들며 ‘Lob city’의 면모를 과시했고, 샤프 슈터 J.J. 레딕과 최고의 식스맨 자말 크로포드 등도 힘을 보탠 클리퍼스는 서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군림했다. 

하지만 클리퍼스는 끝내 폴-그리핀 시대에서 컨퍼런스 파이널 무대를 밟지 못했다. 핵심 선수인 그리핀은 부상으로 자주 코트를 비우며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구단 스태프를 폭행하는 과정에서 손목 골절 부상을 입기도 했다. 야수다운 터프함이 많이 사라졌다는 시선이 나온 가운데, 그리핀의 리바운드 수치는 평균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데뷔 초에 비해 큰 폭으로 내려갔다.

한계를 느낀 클리퍼스는 폴을 트레이드한 뒤 그리핀까지 내보냈다. 처음으로 유니폼을 바꿔 입게 된 그리핀을 품은 팀은 디트로이트. 애매한 전력이었던 디트로이트는 그리핀을 데려오는 빅딜로 승부수를 던졌다. 그리핀은 디트로이트 이적 후 두 번째 시즌인 2018-2019시즌 평균 24.5점을 쏟아내며 올-NBA 팀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핀이 기대에 부응한 디트로이트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부상이 그리핀의 발목을 잡았다. 시즌 막판 무릎 부상을 당한 그리핀은 무리해서 복귀를 감행했으나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부상 여파는 그리핀의 기량을 큰 폭으로 떨어뜨렸고, 밸런스가 무너진 그리핀은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후 태업설까지 나돈 그리핀은 디트로이트와 찜찜하게 이별한 뒤 브루클린에서 가자미 역할을 자처했으나 우승 반지를 획득하지는 못했다. 현시점에서 그가 다시 에이스급 기량을 회복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제임스 하든(전체 3순위)

멤피스의 흑역사로 남은 2순위 빅맨 하심 타빗을 뒤로 하고, 3순위 제임스 하든은 훗날 최고의 슈팅 가드 계보에 합류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데뷔 초 식스맨으로 출발한 하든은 해가 갈수록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고, 3년 차 시즌에는 최고의 식스맨으로 우뚝 선 뒤 케빈 듀란트, 러셀 웨스트브룩과 함께 파이널 무대에 진출했다.

하지만 듀란트, 웨스트브룩, 하든이 모두 같은 팀에서 뛴 기간은 길지 않았다. 오클라호마시티는 샐러리 캡 문제로 하든에게 큰 계약을 안기기 꺼렸고, 파이널에 올랐던 2011-2012시즌이 끝난 후 그를 휴스턴으로 트레이드했다.

휴스턴으로 이적한 하든은 자신이 중심이 된 팀에서 제대로 잠재력을 터트렸다. 이적 첫해부터 올-NBA 퍼스트 팀에 선정된 하든은 MVP를 경쟁하는 수준의 선수로 빠르게 도약했다. 휴스턴 또한 하든을 중심으로 매년 플레이오프에 나가는 강팀이 됐다.

하든의 기량이 절정에 오른 것은 마이크 댄토니 감독이 부임한 2016-2017시즌부터였다. 댄토니의 첫해 휴스턴은 하락세였던 드와이트 하워드를 내보내면서 개편을 단행했다. 런앤건 농구의 달인 댄토니는 하든에게 메인 볼 핸들러를 맡기며 전권을 부여했고, 하든은 물 만난 고기처럼 날아다녔다.

우승에 목말랐던 휴스턴은 2017-2018시즌을 앞두고 크리스 폴을 영입하며 폴-하든이라는 최고 수준의 백코트 콤비를 완성했다. 생애 최초로 평균 30점을 넘긴 하든은 마침내 MVP를 차지하는 영광까지 누렸다. MVP 하든을 앞세운 휴스턴은 리그 최고의 공격력을 바탕으로 정규시즌에 65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승의 길은 너무 험난했다. 햄튼 5가 버틴 골든스테이트와 2년 연속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격돌한 휴스턴은 끝내 벽을 넘지 못했고, 폴을 웨스트브룩으로 바꾸는 트레이드에도 우승에 실패했다. 웨스트브룩과의 재결합에도 목표를 이루지 못한 하든은 결국 휴스턴과 작별을 고했다.

휴스턴을 떠난 하든은 브루클린에서 케빈 듀란트-카이리 어빙과 빅3를 결성하며 우승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역대급 화력을 자랑했던 브루클린 빅3가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는 일은 없었다. 어빙의 백신 문제로 지난 시즌 내내 브루클린이 어수선한 시간을 보낸 가운데, 팀에 애정이 식어버린 하든은 트레이드 마감일에 필라델피아로 팀을 옮겼다.

필라델피아에서 치른 첫 시즌, 하든은 햄스트링 부상 후유증 속에 부진이 이어졌고, 필라델피아는 조엘 엠비드의 부상까지 겹치며 2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에이징커브가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은 하든은 비시즌 명예 회복을 다짐하며 몸 상태를 끌어올리고 있다. 

스테픈 커리(전체 7순위)

데이비슨 대학을 NCAA 토너먼트 8강까지 올려놓는 신화를 쓴 커리는 2009년 드래프트 7순위로 골든스테이트에 지명됐다. 이 과정에서 피닉스가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와 지명권을 골자로 커리 영입을 노렸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커리어 초반 커리는 지속적으로 발목 부상을 당하며 우려를 샀다. 유리 발목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커리의 부상은 잦았고, 그의 트레이드설이 계속해서 나돌았다. 크리스 폴 트레이드에 포함돼 뉴올리언스로 향할 수도 있었던 커리다.

그러나 골든스테이트는 커리 대신 역할이 겹치는 몬타 엘리스와 이별했다. 그리고 이것은 구단 역사상 최고의 결단이 됐다. 엘리스가 밀워키로 트레이드된 시즌부터 부상 악몽에서 벗어난 커리는 팀의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반면 엘리스는 훗날 커리가 보여주게 되는 활약상에 견줄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재건 작업을 성공적으로 끝낸 골든스테이트는 2014-2015시즌부터 리그 최정상급 팀이 됐다. 이미 간판으로 자리 잡은 커리는 신바람을 냈고 팀은 연일 승승장구했다. 경기 조율이 가능한 드레이먼드 그린과 안드레 이궈달라가 그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커리는 더 득점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3점슛 시대의 막을 올린 커리는 생애 첫 MVP를 차지했다.

2015 파이널에서 생애 첫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커리의 질주는 이어졌다. 리핏을 노리는 골든스테이트는 전반기부터 압도적인 레이스를 펼쳤고, 더 무서워진 커리가 중심이 됐다. 경이적인 시간을 보낸 골든스테이트가 73승 9패로 역대 정규시즌 최다승 기록을 달성한 가운데 득점왕에 오른 커리는 만장일치로 MVP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클리블랜드에 막히며 2년 연속 우승이 좌절된 골든스테이트는 오클라호마시티에서 FA로 풀린 케빈 듀란트를 영입, 슈퍼팀을 결성했다. 커리와 듀란트가 원투펀치로 나선 골든스테이트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커리-탐슨-그린-이궈달라-듀란트의 스몰 라인업으로 리그를 제패했다.

하지만 커리에게 영광의 시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8-2019시즌 아쉽게 부상 여파로 쓰리핏이 좌절된 뒤 골든스테이트는 탐슨의 부상과 듀란트의 이적으로 위기를 맞았고,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했다. 그들은 엄청난 사치세를 내고도 플레이오프도 나서지 못하는 팀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황금 전사 군단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2021-2022시즌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반등한 골든스테이트는 많은 이의 예상을 깨고 순항을 이어갔다. 플레이오프에서는 그들이 가진 경험의 힘이 그대로 드러났고, 결국 3번 시드로 봄 농구를 시작한 골든스테이트는 보스턴까지 물리치고 4년 만에 왕좌를 탈환했다.

2년 동안의 한을 푼 커리는 우승이 확정되자 감동의 눈물을 쏟았다. 투표단은 파이널에서 특출난 존재감을 뽐낸 커리에게 만장일치로 파이널 MVP를 안겼다. 생애 첫 파이널 MVP를 추가하며 수상 내역을 더욱 빼곡하게 채운 커리다.

다소 물음표가 있었던 커리와 끝까지 함께한 골든스테이트는 다시 오기 힘든 황금시대를 열었다. 커리를 두고 6순위에서 자니 플린을 지명했던 미네소타는 구단 드래프트 역사에 오점을 남긴 셈이 됐다.

더마 드로잔(전체 9순위)

9순위로 토론토에 지명된 더마 드로잔도 2009년 드래프트가 낳은 스타 중 한 명이다. 앞서 소개했던 하든과 커리, 그리고 드로잔과 즈루 할러데이, 제프 티그 등 유능한 가드들을 대거 배출했던 2009 드래프트다.

토론토에 입단한 드로잔은 간판스타 크리스 보쉬가 떠난 후인 2년 차 시즌부터 많은 기회를 받았다. 팀의 주득점이 된 드로잔은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으나, 낮은 효율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드로잔이 제대로 팀의 에이스로 발돋움한 것은 마사이 유지리 단장이 부임한 2013-2014시즌이었다. 유지리 단장은 팀의 핵심으로 활약하던 안드레아 바그냐니와 루디 게이를 과감하게 트레이드해버렸고, 카일 라우리와 드로잔 백코트 듀오가 제대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유지리 단장의 결단이 빛난 토론토는 6년 만에 플레이오프 무대에 복귀했다.

이후 토론토는 꾸준히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동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의 단골손님이 됐다. 올스타에도 자주 선정된 드로잔은 정상급 슈팅 가드 중 하나로 도약했다.

하지만 드로잔-라우리 중심의 토론토는 플레이오프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르브론 제임스가 이끄는 클리블랜드가 계속해서 토론토의 앞길을 막았다. 에이스 싸움에서 계속 밀린 드로잔도 큰 경기에 약하다는 비판의 화살을 받았다. 결국 토론토는 드로잔을 보내고 카와이 레너드를 영입하는 빅딜을 단행했다. 우울증 증세를 고백하기도 했던 드로잔은 프랜차이즈 스타를 팔아버린 구단에 큰 실망감을 표출했다.

드로잔은 샌안토니오에서도 꾸준한 스코어러의 면모를 선보이며 에이스로 활약했다. 하지만 샌안토니오 로스터 구성이 젊은 선수들 위주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드로잔은 FA로 팀을 떠나게 됐다. 그를 품은 팀은 시카고.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발자취가 있는 팀에 합류한 드로잔은 지난 시즌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며 시카고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 드로잔이 봉황 모드를 가동한 시카고는 오랜만에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으며 청신호를 켰다. 드로잔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도 무너졌다.

특히 드로잔은 1월 1일 인디애나전과 2일 워싱턴전에서 이틀 연속 끝내기 버저비터를 성공하는 명장면을 만들었다. 리그 역사상 백투백 경기에서 모두 게임 엔딩 버저비터를 터트린 선수는 드로잔이 최초. 지난 시즌 유독 승부처에 강한 모습을 보인 드로잔은 리그 전체 4쿼터 평균 득점 1위, 야투율 2위를 차지했다.

즈루 할러데이(전체 17순위)

현재 밀워키에서 뛰고 있는 즈루 할러데이는 리그 대표 공수겸장 가드 중 한 명이다. 공수겸장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할러데이는 가드치고 큰 신장과 뛰어난 힘, 스피드를 바탕으로 상대를 괴롭힌다. 가드는 물론, 상대 에이스 포워드를 막는 경우가 많다.

UCLA 대학에서 대런 콜리슨과 뛴 듀얼 가드 할러데이는 1학년을 마치고 드래프트에 참가, 1라운드 17순위로 필라델피아에 지명됐다. 포인트가드진이 빈약했던 필라델피아는 데뷔 시즌부터 할러데이를 주전 가드로 기용했다.

착실하게 성장세를 이어간 할러데이는 2012-2013시즌에는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극단적 탱킹에 돌입한 필라델피아는 할러데이 대신 유망주를 원했고, 결국 할러데이는 2013년 여름 너렌스 노엘과 미래 1라운드 지명권을 받는 조건으로 뉴올리언스로 트레이드됐다.

뉴올리언스 이적 후 할러데이는 부상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년 연속으로 시즌의 절반도 뛰지 못하는 할러데이를 두고 뉴올리언스가 트레이드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할러데이가 확실하게 달라진 것은 2017-2018시즌부터였다. 시즌 전 팀과 5년 1억 2,600만 달러의 초대형 계약을 체결한 할러데이는 데뷔 후 가장 인상적인 시즌을 보내며 트윈타워(앤써니 데이비스-드마커스 커즌스)와 더불어 팀을 플레이오프 무대에 올려놨다.

불의의 부상으로 커즌스가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하게 됐지만, 뉴올리언스는 1라운드에서 만난 상위 시드 포틀랜드를 4전 전승으로 격파했다. 포틀랜드와 시리즈에서 가장 활약이 두드러졌던 선수는 할러데이였다. 시리즈 내내 상대 에이스 데미안 릴라드를 꽁꽁 묶은 할러데이는 공격에서도 만점 활약을 펼쳤다. 특히 4차전에서는 41점을 몰아치며 릴라드를 빠르게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뉴올리언스는 이어진 시즌에 할러데이가 좋은 모습을 이어갔지만 좀처럼 날갯짓을 펴지 못했다. 2019년 여름 데이비스와 작별한 뉴올리언스는 2020년 이적 시장에서는 할러데이와도 작별을 고했다. 할러데이를 영입한 팀은 우승에 목말랐던 밀워키.

밀워키는 할러데이를 데려오기 위해 1라운드 지명권 3장을 비롯해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었다. 이를 두고 너무 과한 투자라는 지적이 다수 등장했다. 이후 할러데이가 4년 1억 6,000만 달러에 맺은 연장 계약을 두고도 우려의 시선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할러데이는 밀워키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었다. 2020-2021시즌 플레이오프에 돌입한 할러데이는 야니스 아데토쿤보-크리스 미들턴과 삼각편대를 이루며 밀워키의 고공행진을 이끌었다. 공격에서는 다소 기복이 있었지만, 수비에서의 존재감이 절대적이었다. 

할러데이가 우승청부사 역할을 해낸 밀워키는 50년 만에 왕좌에 오르며 그간의 한을 풀었다. 대도 할러데이는 피닉스와의 파이널 5차전에서 결정적인 스틸로 시리즈 승기를 가져왔다. 이 스틸 하나로 그를 영입하기 위해 쏟아낸 지명권 값을 다 해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알토란 같은 2라운드 지명자들

드래프트에 뽑힌 선수 중 1라운드 상위 지명자들만 리그에서 장수하는 것은 아니다. 빨리 뽑혔음에도 NBA에서 길게 뛰지 못하고 떠나는 선수들도 있고, 조금 늦게 이름이 불렸음에도 오랜 기간 NBA 코트를 밟는 선수들도 많다.

2009년 드래프트에서는 2라운드 중반이라고 할 수 있는 40순위 이후부터도 리그에서 빛을 보는 선수들이 많이 나왔다. 패트릭 베벌리(41순위), 대니 그린(46순위), 패티 밀스(55순위)가 대표적이다.

41순위로 레이커스에 뽑힌 베벌리는 지명 직후 바로 트레이드를 경험했고, NBA 팀에게 외면받으며 계약을 맺지 못했다. NBA에서 소속팀을 찾지 못한 베벌리는 유럽 무대로 건너가 기회가 오길 기다렸다.

굶주린 베벌리는 2012-2013시즌 휴스턴과 계약을 맺은 뒤 꿈에 그리던 NBA 입성에 성공했다.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만큼 간절함이 컸던 베벌리는 휴스턴에서 악착같은 수비, 허슬 플레이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과한 더티 플레이로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많지만, 베벌리는 같은 팀일 때 매우 든든한 선수.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로 팀이 리듬을 탈 수 있도록 돕는 선수가 베벌리다. 지난 시즌에는 미네소타 소속으로 또다시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다.

대학 4년을 모두 마친 뒤 드래프트에 참가한 대니 그린은 클리블랜드에서 1년만 뛰고 방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샌안토니오로 이적해 벤치워머부터 시작한 그린은 가드 포지션에 생긴 빈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스퍼스 합류 2년 차인 2011-2012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했다.

대표적인 3&D 플레이어인 그린은 3개 팀에서 우승 반지를 차지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커리어의 절반 이상을 보낸 샌안토니오에서 먼저 우승을 거머쥐었고, 토론토와 레이커스를 거치며 반지 1개씩을 추가했다. 우승 과정에서 공헌도가 적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3개의 우승 반지는 그가 강팀의 훌륭한 조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징표다.

그린과 샌안토니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패티 밀스는 드래프트의 거의 끝자락인 55순위에 뽑혔다. 단신 가드임에도 폭발적인 공격력으로 자신만의 입지를 구축한 밀스는 주로 벤치에서 활약하며 리그에서 오래 살아남았다.

별명이 ‘호주 조던’인 밀스의 발자취는 NBA 무대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호주 대표팀의 에이스인 밀스는 지난 도쿄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42점을 몰아치며 루카 돈치치의 슬로베니아를 격파하는 데 앞장선 바 있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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