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위치한 듀크 대학은 농구 명문으로 손꼽히는 학교다. 최근 NCAA 최다승 기록 보유자 마이크 슈셉스키 감독의 마지막 시즌을 보낸 듀크는 2022 드래프트 전체 1순위 파울로 반케로를 배출하는 성과를 냈다. 듀크대 출신 선수 중 NBA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얼굴은 누가 있을까?

크리스찬 레이트너(1992년 드래프트 전체 3순위)

농구 역사상 최고의 멤버, ’드림팀‘으로 불리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미국 대표팀.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등 리그를 호령하던 슈퍼스타 군단 사이에 비교적 덜 알려진 선수가 있었다. 유일한 아마추어 선수인 크리스찬 레이트너다.

211cm의 빅맨 레이트너는 듀크대에서 활약할 당시 팀의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 그는 NCAA 토너먼트 최다 득점(407점), 최다승(21승) 기록 보유자이며, 듀크대가 91년과 92년에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992년 NCAA 토너먼트 8강에서 켄터키를 상대로 터트린 극적인 버저비터 점프슛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대학 최고의 선수였던 레이트너는 1992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미네소타에 지명됐다. 당시 레이트너 앞에서 뽑힌 선수는 샤킬 오닐과 알론조 모닝. 팀버울브스의 간판 스타가 될 것으로 관심을 모았던 레이트너는 데뷔 시즌 평균 18.2점 8.7리바운드를 올리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이후 성장세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애매한 모습을 이어간 레이트너는 미네소타가 1995년 드래프트에서 고졸 신인 케빈 가넷을 지명하면서 입지가 좁아졌고, 입단 4년 차에 팀을 옮기게 된다. 애틀랜타 시절 올스타에도 선발되며 나쁘지 않았던 레이트너지만, 결과적으로 NCAA 시절 보여줬던 임팩트만큼의 활약은 나오지 않았다. 아킬레스건 부상까지 겪은 레이트너는 30대 즈음부터 평범한 선수로 전락한 뒤 마이애미에서 커리어를 마쳤다. 

그랜트 힐(1994년 드래프트 전체 3순위)

1991년부터 듀크 유니폼을 입고 활약한 그랜트 힐은 3번의 NCAA 파이널 무대를 경험했고, 2번이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힐의 공헌을 높게 평가한 듀크 대학은 그의 등번호 33번을 영구결번했다. 4학년 시즌을 끝내고 NBA 무대에 도전한 힐은 디트로이트에 전체 3순위로 지명됐다.

마이클 조던의 1차 은퇴 후 NBA는 새로운 스타 찾기에 공을 들이는 상황이었다. 젊고 재능 넘치는 힐은 준수한 외모까지 갖춰 리그를 끌어갈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았다. 입단하자마자 데뷔 첫 시즌부터 올스타 투표 1위를 차지했으며, 조던이 코트로 돌아온 1995-1996시즌에도 선두를 내주지 않은 힐이다.

디트로이트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1999-2000시즌, 힐은 평균 25.8점을 올리며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FA 자격을 얻은 그가 어느 팀으로 향할지는 이적 시장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다. 고민 끝에 힐은 올랜도와 7년 9,300만 달러라는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올랜도 이적 후 힐은 발목 부상 여파 속에 코트에 나서는 횟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기량마저 추락한 힐은 최악의 먹튀라는 시선 속에 자존심을 구겼다. 고난을 딛고 반등하며 새롭게 드라마를 쓰는 듯했으나, 상승세가 계속 이어지지는 못했다. 부상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힐은 데뷔 초의 퍼포먼스를 이어가지 못한 채 2012-2013시즌까지 뛰고 은퇴했다.

J.J. 레딕(2006년 드래프트 전체 11순위)

샤프 슈터 레딕은 듀크대 재학 시절 우승을 경험하지는 못했으나, 등번호가 영구결번될 정도로 큰 발자취를 남겼다. 역대 듀크 대학 최다 득점 및 최다 3점 성공 기록 보유자가 바로 레딕이다. 

NBA에 진출한 레딕은 벤치 멤버로 시작해 해가 지날수록 물오른 모습을 보여줬다. 올랜도에서는 양궁 부대의 일원으로 존재감을 떨쳤으며, 클리퍼스 이적 후부터는 주전 자리를 꿰차며 팀의 간판 슈터로 활약했다.

레딕은 볼 없는 움직임과 정교한 슈팅을 바탕으로 리그에서 장수했다. 그가 가진 무기는 평범한 운동 능력과 빈약한 수비력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은퇴할 때까지 14시즌 동안 1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속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레딕이다. 

카이리 어빙(2011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

호주 출신이지만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 간 어빙은 듀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선수는 아니었다. 발가락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결장한 어빙은 1학년이 끝나고 2011 드래프트에 참가했고, 전체 1순위로 클리블랜드에 선택받는 영광을 누렸다.

화려한 개인기, 폭발적인 득점 능력을 보유한 어빙은 르브론 제임스가 떠난 후 적적했던 클리블랜드 팬들의 마음을 녹였다. 신인왕은 당연히 그의 몫이었고, 2년 차부터는 올스타에 단골로 출전하는 선수가 됐다.

어빙의 맹활약에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던 클리블랜드는 르브론의 복귀와 함께 어빙-르브론-케빈 러브로 이어지는 빅3를 구축하며 다시 강호로 도약했다. 슈퍼팀이 된 클리블랜드는 계속해서 파이널 무대를 두들겼고, 2015-2016시즌 1승 3패의 열세를 뒤집고 골든스테이트를 상대로 역전 우승을 차지한다.

기적과도 같은 역전 과정에서 어빙의 존재감이 컸다. 3승 3패로 맞이한 마지막 7차전, 양 팀은 89-89 동점으로 소강상태를 보였다. 침묵을 깬 것은 클리블랜드의 주득점원 중 한 명이었던 어빙. 드리블과 함께 스텝을 밟은 어빙은 스테픈 커리를 앞에 두고 3점슛을 터트리며 기세를 클리블랜드 쪽으로 가져왔다. 강심장 어빙의 외곽포가 림을 통과한 뒤 클리블랜드는 승기를 잡았고, 창단 첫 우승의 감동을 맛봤다.

이후 코트 밖 이슈로 꾸준히 구단 관계자의 머리를 아프게 하고 있지만, 경기에 뛰는 어빙은 여전히 위협적인 선수다. 지난 시즌에는 평균 27.4점을 쏟아내며 여전한 스코어링 능력을 뽐냈다. 많은 사람이 트러블메이커 어빙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브랜든 잉그램(2016년 드래프트 전체 2순위)

221cm의 긴 윙스팬에 슈팅력을 갖춘 잉그램은 일찌감치 제2의 케빈 듀란트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부분의 특급 유망주들이 그러하듯 잉그램도 대학에서 1년을 보내고 드래프트에 참가했고, 2016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레이커스에 뽑혔다.

하지만 데뷔 초 잉그램은 그다지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우려를 남겼다. 그가 데뷔 시즌 79경기에 출전해 남긴 기록은 평균 9.4점 야투율 40.2% 3점 성공률 29.4%. 2순위 지명자치고는 기대치에 매우 못 미치는 스탯이었다.

하지만 기죽지 않은 잉그램은 2년 차부터 자신의 잠재력을 터트리기 시작하더니, 뉴올리언스로 팀을 옮긴 뒤로는 올스타까지 선정됐다. 공수겸장의 면모를 뽐낸 잉그램은 2019-2020시즌 MIP를 거머쥐기도 했다.

6년 차를 맞은 지난 시즌은 잉그램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자이언 윌리엄슨의 부상 위기를 잘 극복한 뉴올리언스는 오랜만에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으며 미래 전망을 밝게 했다. 

중심에 있던 선수는 역시 잉그램. 잉그램은 플레이-인 토너먼트와 플레이오프에서 차례로 존재감을 뽐내며 큰 무대에 강한 선수임을 입증했다.

제이슨 테이텀(2017년 드래프트 전체 3순위)

2017년 드래프트 3순위로 보스턴에 입단한 테이텀의 이름이 팬들에게 제대로 알려진 것은 데뷔 시즌이었던 2017-2018시즌 플레이오프 무대였다. 당시 보스턴은 야심차게 영입한 카이리 어빙과 고든 헤이워드가 부상으로 이탈하며 심대한 타격을 입은 상황이었다.

겁 없는 영건 테이텀은 보스턴이 플레이오프에서 승승장구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테이텀이 빛난 보스턴은 만만치 않은 상대인 밀워키와 필라델피아를 차례로 누르고 컨퍼런스 파이널 무대에 합류했다. 비록 르브론 제임스가 이끄는 클리블랜드에 아쉽게 패하며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테이텀에게는 성장할 수 있는 큰 자산이 됐다. 

이후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테이텀은 제일런 브라운, 마커스 스마트와 함께 동부 컨퍼런스의 강호 보스턴을 잘 이끌고 있다. 지난 시즌에는 생애 처음으로 파이널에 올라서기도 했다.

폴 피어스와 함께 왕좌에 올랐던 보스턴 팬들은 테이텀과도 우승의 기쁨을 공유하길 원하고 있다. 지난 시즌 첫 올-NBA 퍼스트 팀에 뽑힌 테이텀의 다음 목표는 당연히 보스턴의 우승이다. 그는 파이널 패배 후 인터뷰에서 짙은 아쉬움을 드러내며 우승을 향한 열망을 드러낸 바 있다.

자이언 윌리엄슨(2019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

201cm의 빅맨치고 크지 않은 신장에도 압도적인 운동 능력과 힘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자이언은 듀크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가치를 높였다. 농구화가 터지는 사고 속에 무릎 부상을 당하기도 했으나 그의 평가가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추락한 것은 해당 농구화 브랜드의 주가였다. 이는 자이언의 엄청난 스타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날아다니는 냉장고‘, ’제2의 찰스 바클리‘ 등의 별명을 가진 자이언은 NBA 무대에서도 막기 힘든 괴인이다. 2년 차 시즌에는 평균 27.0점 7.2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상대 골밑을 초토화시켰다. 특히 야투 성공률이 61.1%에 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괴인에게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코트에 자주 나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상 악재 속에 NBA 데뷔가 늦어졌던 자이언은 하체 부상으로 계속해서 자리를 비우고 있다. 지난 시즌에는 아예 발 부상으로 이탈한 뒤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차세대 NBA 아이콘 중 하나로 활약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경기에 뛸 필요가 있는 자이언이다. 경기에 나서기만 한다면 공포의 대상으로 거듭나는 자이언이 다음 시즌에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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