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슨의 이현중이 ‘3월의 광란’으로 불리는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디비전Ⅰ 68강 토너먼트에 출전한다. 그러나 한국인 최초는 아니다.

이현중이 이끄는 데이비슨은 14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 캐피탈 원 아레나에서 열린 애틀랜틱 10 컨퍼런스 토너먼트 2022 결승에서 리치먼드에 62-64로 패했다. 마지막 문턱에서 무너진 탓에 NCAA 68강 토너먼트 자동 출전권을 얻지는 못했지만 NCAA 토너먼트 선발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결국 3월의 광란에 나서게 됐다.

많은 이들이 이현중의 NCAA 68강 토너먼트 출전에 대해 한국인 최초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전에 무려 2명이나 존재하며 그중에서 진정한 한국인 최초의 NCAA 토너먼트 출전으로 기억되어야 할 이은정은 파이널 포까지 올라섰다.

이은정은 1982년 숭의여고 졸업 후 NCAA 디비전Ⅰ 소속 노스이스트 루이지애나(현 루이지애나 몬로로 불리며 신재영 역시 이 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에 입학했다. 당시 이은정은 노스이스트 루이지애나의 특급 선수로 모교의 황금기를 이끈 에이스였지만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기 이전 시대인 만큼 현지 소식이 전해지지 못했다.

이은정은 1984-1985시즌에는 노스이스트 루이지애나를 NCAA 토너먼트 파이널 포까지 진출시켰다. 이는 현재까지도 이 학교의 NCAA 토너먼트 역대 최고 성적이다. 4년간 2,208점, 878어시스트 297스틸을 기록했다. 이은정의 등번호 5번은 영구결번됐으며 모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이후 긴 시간이 흘러 최진수(당시 김진수)가 메릴랜드에 입학하며 한국인 NCAA 역사를 이어갔다. NCAA 강호 메릴랜드에 입학, 한국인 남자선수 최초라는 기록을 세웠다. 당시 최진수를 밀착 취재했던 서정환 오센 기자는 “당시 최진수는 NCAA 디비전Ⅰ 상위권 팀들이 지켜봤던 유망주였다. 그가 입학한 메릴랜드는 2000년대 초반 NCAA 토너먼트 정상에 섰을 정도로 강팀이었는데 학교를 방문한 최진수를 위해 1만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체육관이 가득 찼고 미리 제작한 유니폼도 있었다. 그때만 보면 최진수의 성공 가능성을 의심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NCAA 토너먼트에도 출전한 바 있다. 2009년 3월, 미국 캔자스시티 스프린트센터에서 열린 멤피스와의 경기에 3분여 동안 출전했다. 파울 1개 외 다른 기록은 없었으며 메릴랜드는 70-89로 패했다.

이후 이현중이 한국인으로는 3번째로 NCAA 토너먼트에 출전하게 됐다. 상대는 미시건 주립으로 NCAA 명장 톰 이조 감독이 이끌고 있다. 토너먼트에 강한 톰 이조 감독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만큼 다음 스테이지로 올라설 가능성은 사실 많지 않다. 특히 미시건 주립은 올해까지 23년 연속 3월의 광란에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이현중의 NBA 진출이 예상에서 현실이 되려면 NCAA 토너먼트에서의 활약이 중요하다. 데이비슨 역사상 가장 성공한 사례인 스테판 커리 역시 2008년 NCAA 토너먼트에서 데이비슨을 8강까지 이끌며 주목받았고 이후 NBA 무대에 올라섰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 무대에서 이현중이 ‘언더 독’으로서 ‘탑 독’을 잡아낸다면 하승진 이후 2번째 NBA 리거가 되는 지름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진 : 로이터/뉴스1, 메릴랜드, 루이지애나 몬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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