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1989년 개봉한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남자 주인공 해리 번스는 성격도, 취향도, 환경도 모든 것이 달라도 너무 다른 여자 주인공 샐리 앨브라이트에게 말한다.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없어!”라고.

그리고 여기 청주 KB스타즈에도 친구가 되기에는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있다. 포워드 최희진과 가드 허예은은 포지션도, 신장도, 나이도, 플레이스타일도 어디 하나 겹치는 게 없다. 

최희진은 1987년생으로 염윤아와 함께 팀 내 최고참이다. 허예은은 2001년생으로 이제 막 성인이 된 팀의 막내둥이다. 신장도 최희진은 180cm, 허예은은 165cm로 간격이 반 척이다.

그러나 무엇 하나 통하는 것 하나 없는 이들은 태백산에서 친구가 됐다. 최희진과 허예은은 지난 7월 27일부터 8월 5일까지 열흘간 진행된 KB의 태백 전지훈련에서 서로의 러닝메이트가 됐다.

 

KB는 이번 전지훈련에서 총 네 번의 오래달리기 훈련을 했다. 첫째 날 8km, 5일 차에 8.4km, 8일 차에 7.7km 그리고 마지막 날 12km. 해발 1,330m의 함백산 만항재를 끼고 도는 KB의 오래달리기 훈련은 워낙 고지대에서 진행될뿐더러 코스 또한 가파른 오르막이 많아 기자 같은 일반인은 그저 뛰는 시늉만 해도 숨이 차오른다.

최희진과 허예은은 3일과 5일 진행된 마지막 두 번의 오래달리기 훈련에서 모두 공동 1위를 기록했다. 출발선부터 나란히 섰던 이들은 마지막 결승선까지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때론 당겨주고, 때론 밀어주며 함께 달렸다. 

“흔한 장면은 아니죠.” KB 코치진이 팀 내 최고참과 막내가 동시에 1위로 들어오는 광경을 보며 말했다. 

이유가 있다. 허예은 같은 신인의 경우, 아마추어 때 아무리 체력이 좋았던 선수라 하더라도 근력과 지구력 훈련이 덜 된 탓에 프로에서 맞는 첫해 체력훈련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가 여간 쉽지 않다. 

물론 87년생 최희진이 이렇게 뛰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KB 진경석 코치는 “(최)희진이는 장거리뿐만 아니라 단거리도 기록이 최상위권이다. 나이도 나이지만, 그보다 먼저 키가 180cm인데 저런 장신으로 이렇게 뛴다는 게 놀랍다”라고 칭찬했다.

 

허예은은 “희진 언니는 진짜 신기하다. 평지를 뛸 때와 오르막을 뛸 때 속도의 변함이 없다”고 혀를 내두르면서 “정말 도저히 못 뛸 것 같아 걷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언니는 오히려 앞에서 차고 나가더라. 나보다 훨씬 힘들 텐데도 그렇게 뛰는 걸 보면서 후배인 내가 뒤처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희진 언니가 없었다면 이 기록도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희진은 이를 듣고 웃는다. “처음 뛸 땐 (허)예은이랑 (이)윤미가 저보다 앞에 있었다. 그런데 오르막을 지나고 나니 애들이 페이스가 조금씩 처지는 게 눈에 보였다.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같이 가자고 차고 나갔는데, 그 뒤로는 끝까지 잘 따라오더라. 만약 제가 더 찼다면 그대로 더 따라왔을 것이다. 한창 뛸 나이니까.(웃음)” 

이어 “태백에 오기 직전에 코 수술을 하면서 이번에는 체력이 좀 늦게 올라왔다. 첫 번째 뛸 땐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꾀를 부리거나 나 자신과 타협하는 건 더 싫다. 차라리 힘든 게 낫다. 앞으로도 체력이 되는 한 계속 이렇게 최선을 다해 뛸 것”이라고 전했다.

돌아오는 길, 프로에서 첫 전지훈련을 마친 허예은은 “체력도 많이 늘어 돌아가지만, 그 외적으로도 배운 게 많았던 훈련”이라고 태백을 곱씹었다.

KB가 12km 달리기 훈련으로 곧 다가올 정규리그라는 마라톤의 귀중한 워밍업을 했다.

 

사진 =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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