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학철 기자] ①편에 이어..

미국 유학, 농구와의 첫 만남

사실 두 형제가 처음부터 농구선수의 꿈을 꾼 것은 아니었다. 허웅의 경우 농구보다는 공부에 더 재능을 보인 학생이었고, 허훈 역시 어릴 적에는 의사를 꿈꿨다. 그러나 이들의 진로는 아버지의 연수를 따라 향했던 미국에서 180도 뒤바뀌게 된다. 

웅 : 저는 공부 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꿈은 교수였어요. 그리고 미술도 곧잘 했던 것 같아요. 유학 시절 제가 그린 그림이 학교 교문에 걸려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훈 : 저는 솔직히 공부에는 재능이 없었어요.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을 좀 싫어했거든요. 그래도 미국에서 수학은 반에서 1등 했어요. 미국은 한국보다 수학 진도가 5년 정도 느리더라고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에서 수학을 했는데 문제들이 4+5, 3+10 이런 수준이었어요. 저는 신나게 다 풀었는데 다른 애들은 그런 것들을 잘 못 풀더라고요.
웅 : 훈이는 자기 말대로 공부에 재능 없었어요. 그런데 의사가 꿈이었어요. 큰일 날 뻔했죠. 정말 많은 사람이 큰일 날 뻔 했어요.(웃음)

농구선수가 아닌 다른 직업을 꿈꾸던 이들이 농구에 빠지게 된 순간이 바로 이 미국 유학 시절. 워낙 농구가 인기스포츠인 미국에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농구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두 형제가 농구로 동네 코트를 휩쓸고 다니자 알게 모르게 둘을 향했던 인종차별 역시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웅 : 그때는 농구가 행복했어요. 애들이랑 농구 덕분에 친해졌거든요. 약간 동양인들을 무시하는 그런 것들도 있었는데 운동을 잘하니까 완전히 바뀌더라고요. 
훈 : 농구를 따로 배우진 않았어요. 그냥 친구들이랑 재밌게 노는 정도였죠. 그래도 수업 시간 끝나고 쉬는 시간마다 계속해서 농구를 했었어요. 

 

역시 아버지의 DNA는 속이지 못하나 보다. 그렇게 농구에 완전히 빠지게 된 형제들 중 허웅이 먼저 정식 선수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부모님은 허웅의 결정을 만류했지만 그 고집을 끝내 꺾을 수 없었고, 마침 가족이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두 형제의 본격적인 선수 생활이 시작됐다. 

웅 : 아버지도 말리셨고 어머니도 좋아하시진 않으셨어요. 그래도 제가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니까 아버지께서 할 거면 똑바로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용산중학교로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제는 저도 발을 빼지도 못하게 된 거죠.(웃음)
훈 : 저는 형이 한다고 하니까 덩달아 하게 됐어요. 
웅 : 사실 미국에서 농구가 좋아서 한국에 와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렇게 자유로운 문화는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후회도 하고 하기 싫었던 적도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이왕 하기로 했으니 저도 끝을 보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훈 : 저도 힘들긴 했는데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훈련이 힘들면 ‘내일은 어떻게 하지?’ 이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앞서 잠시 이야기했듯 두 형제는 중학교(용산중학교)와 고등학교(용산고등학교), 대학교(연세대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나왔다. 허웅의 설명에 따르면 자신이 먼저 들어가 터(?)를 닦아 놓으면 허훈이 들어와 편하게 생활을 했다고. 허훈 역시 이 부분에는 크게 반박을 하지 않고 동의했다. 

웅 : 제가 힘든 것을 다 하고 나면 훈이가 들어와서 편하게 했어요. 제 덕을 많이 봤죠.
훈 : 원래 동생이 다 그런거야~(웃음) 그런데 사실 형이 정말 잘 챙겨줬어요. 고마운 부분이죠. 모든 생활이 편리했거든요. 제 동기들도 그 덕을 엄청 많이 봤어요.

프로에 와서 다른 팀으로 나뉘게 된 둘이지만 곧 허훈이 허웅의 뒤를 따라야 할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곳인 군대. 허웅은 이미 상무를 제대한 상태고 허훈은 다음 시즌을 마친 후 입대할 가능성이 높다. 

웅 : 군대 생활 정말 쉽지 않아요. 모든 남자들이 한 번씩 겪어야 하는 거지만 쉽지 않습니다. 물론 훈이가 적응은 잘 하겠지만 쉽지는 않더라고요.
훈 : 그런데 저는 빨리 가고 싶어요. 얼른 군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루더바 : 형이 군대 가 있을 때는 어땠어요?
훈 : 저는 집에 혼자 있어서 너~무 편했어요! (웃음) 형이 고생한다는 생각도 전혀 없고 좋았어요.

삐빅! 이들은 형제가 맞습니다.. 역시 진정한 형제에게 서로를 향한 걱정 같은 것은 사치다. 

아버지의 그림자

이미 수 차례 언급했듯, 허웅과 허훈 형제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역대 최고의 농구선수를 언급할 때 첫 손에 꼽히는 허재다. 허재의 플레이를 직접 보지 못한 현재 세대들을 위해 그의 커리어를 잠시 살펴보자.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처음으로 농구공을 잡은 허재는 용산중학교와 용산고등학교를 거치며 초특급 선수로 성장해갔다. 대학 무대에서는 중앙대학교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는데, 허재를 앞세운 중앙대는 당시 국가대표급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던 현대전자, 삼성전자와도 대등한 승부를 펼치며 저력을 보였다. 

중앙대 졸업 후에는 이제 막 창단한 기아에 입단하며 기아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허재와 함께 한 기아는 농구대잔치 시절 8년 동안 7차례나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프로농구가 출범한 뒤에도 꾸준히 활약하던 허재는 2004년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하며 전설적인 행보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두 형제다. 그러나 아버지의 전성기 시절에는 이들 역시 너무나 어린 꼬마에 불과했다. 어릴 때는 아버지의 위대함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훈 : 어릴 때는 아버지의 그런 부분을 전혀 몰랐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부터 조금씩 
‘아 우리 아버지가 이런 분이셨구나’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웅 :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면서 아버지가 뛰시던 비디오도 보고 하니까 알게 됐죠. 고등학교 당시에는 동료 선수들이 부러워하는 시선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아요.

둘은 잘 몰랐지만 어쨌든 허재의 아들들이 농구를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농구계의 스포트라이트는 두 형제에게 쏠렸다. 그간 선수 생활을 하는 내내,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허재’라는 이름의 꼬리표는 이들에게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훈 : 물론 단점도 있지만 아버지의 아들이라서 훨씬 행복한 것이 많아요. 농구를 잘했을 때 더 주목을 받을 수 있고, 아버지가 용품 같은 것도 쉽게 구해주시니까 편하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웅 : 옛날에는 스트레스도 받고 그랬는데 크면서 익숙해지니까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가끔 힘들 때도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이겨내는 법을 깨달았던 것 같아요.
 

대표팀 발탁 논란 같은 부분 역시 두 형제가 감내해야 할 부분 중 하나다. 허재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있을 당시 허웅과 허훈은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186cm의 신장인 허웅이 포워드로 뽑혔고 허훈 역시 기량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표팀에 뽑혔다는 지적이 일어나며 ‘특혜 논란’이 있었다. 

웅 : 그때 아버지는 저를 슈터로 뽑으신 건데 포워드로 체크가 되었어요. 그래도 저는 대표팀에서 좋은 경험을 했고 국가대표라는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정말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그런 논란 같은 부분도 저희가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훈 : 저는 대표팀에 뽑힌 것 자체가 영광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보여주지 못한 것도 맞죠. 논란이 발생하고 나서는 오히려 오기가 더 생겼던 것 같아요. 제가 더 열심히 해서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루더바 : 당시 가족들끼리 특별히 나눴던 이야기가 있어요?
훈 : 그런 것들은 오글거려서 서로 이야기를 잘 못해요.(웃음)

대표팀과 프로에서의 ‘감독’ 허재는 상당히 엄한 호랑이 선생님으로 통했다. 경기 중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선수의 모습이 보이면 가차 없는 질책이 뒤따랐고, 심판들에게도 상당히 거칠게 항의를 하던 모습이 잦았던 허재 감독이다. 그렇다면 두 아들이 느끼는 집에서의 아버지와 농구계의 아버지는 어떤 부분이 다를까?

웅 : 집에서는 가정적인 분이세요. 그런데 농구 쪽에서는 굉장히 냉정하신 것 같아요.
훈 : 맞아요. 아버지가 집에서는 무덤덤하세요. 대표팀에서도 그런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예능을 하시면서 달라지신 것 같아요. 예능하실 때는 재밌는 모습도 많이 보여주시더라고요.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20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③편에서 계속...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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