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165cm와 165cm.

청주 KB스타즈의 핵심은 198cm 박지수다. 리그에 연착륙한 17-18시즌 이후 4시즌 연속 팀 내 국내 선수 득점 1위를 도맡아 왔으니 이런 평가는 당연하다.

그런데 지난 시즌, 에이스 박지수가 단 8점을 넣고도 KB가 16점 차 대승을 거둔 경기가 있었다. 2월 22일 인천 신한은행과 원정 경기로, 박지수는 이날 지난 시즌 단일 경기 최소 득점(퇴장 경기 제외)인 8점을 올렸음에도 팀은 77-60으로 대승을 거뒀다. 심성영 16점, 허예은 9점, 염윤아 4점, 김현아 1점. 가드진에서만 무려 30점이 쏟아진 까닭이다. 

그 중심에는 심성영과 허예은으로 이어지는 단신 듀오가 있었다. 공식 프로필 신장은 나란히 165cm. 리그에서 코트 바닥과 가장 가까운 이 작은 거인들은 이날 25점을 합작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허예은이 1번 자리에서 9점 5어시스트, 심성영이 2번 자리에서 3점슛 2개 포함 16점을 올렸다.

심성영과 허예은, KB의 투 가드 라인업은 하는 수 없이 쓰는 고육지책이나 충동적인 기용이 아니다. 안덕수 KB 감독이 허예은을 지명할 때부터 계획했던 구상이다. 우승시즌 앞선을 책임졌던 염윤아-심성영에 비해 ‘높이가 너무 낮다’ 혹은 ‘수비에서 약점을 보일 것’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앞서 말한 신한은행전처럼 제대로 적중하는 날에는 박지수가 8점만 넣고도 쉽게 승리할 수 있는 요긴한 카드가 된다.

 

KB는 지난 2일과 3일 열린 부천 하나원큐와 연습경기에도 투 가드 실험에 열중했다. 염윤아가 컨디션 문제로 로스터에서 빠지면서, KB의 앞선은 이틀 내내 허예은과 심성영이 책임졌다. 이들이 함께 뛸 때 1번은 정통 포인트가드인 허예은의 몫이다. 심성영은 2번 자리에서 뛴다. 

이때 어려운 건 심성영이다. 허예은은 누구와 함께 뛰든 원래 자신이 하던 농구를 하면 되지만, 심성영은 파트너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달리해야 한다. 가드가 혼자일 땐 1번, 염윤아와 함께 있을 땐 1.5번, 허예은과 뛸 땐 2번. 한 경기 안에서도 그의 역할은 수십 번 바뀐다. 

데이터도 말해준다. 지난 시즌 데뷔한 허예은이 정규리그에서 10분 이상 뛴 경기는 총 4경기였는데, 심성영은 이 4경기에서 평균 1.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나머지 24경기에서 심성영의 어시스트는 3.6개. 허예은과 함께 뛴 경기에서는 확실히 리딩의 비중을 줄이고 직접 득점하는 데 신경을 쏟았다.

당사자 심성영은 어떤 생각일까?

“(허)예은이랑 같이 있으면 제가 무조건 2번이 되거든요. 볼 운반이나 리딩 생각 안 하고 공격에만 집중하면 되기 때문에 팀에 득점이 필요할 때 페이스를 끌어올릴 수 있는 게 장점이고요."

"(염)윤아 언니랑 뛸 땐 1, 2번 할 것 없이 자리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뛰는 편이에요. 예은이와 투 가드의 장점이 공격이라면, 반대로 윤아 언니와 조합에서 장점은 수비죠. 언니는 가드부터 빅맨까지 모두 스위치 수비가 되기 때문에 제가 큰 선수랑 매치가 되면 빨리 스위치를 해주러 오거든요. 그래서 아직은 윤아 언니랑 뛰는 게 아무래도 마음이 편해요.(웃음)”

 

심성영의 말대로 염윤아는 전 포지션 수비가 가능한 리그 최고의 수비 스페셜리스트다. 지난 시즌 염윤아의 평균 출전 시간은 30분 57초였는데, 1위팀 아산 우리은행 위비와 맞대결 5경기에서는 평균 35분 40초를 뛰었다. 반대로 지난 시즌 경기당 10분 52초를 뛴 허예은은 우리은행전에서는 단 4분 18초밖에 못 나왔다. 염윤아는 수비가 중요한 큰 경기일수록 더 중용 받는 '빅게임 메이커'다.

그렇다고 심성영이 허예은과 투 가드로 뛰는 것을 꺼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허예은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넨 것은 심성영이었다.

“하루는 (심)성영 언니가 와서 그러는 거예요. ‘예은아. 넌 나랑 뛰면 힘들지?’라고. 윤아 언니랑 뛰면 수비도 그렇고, 리바운드도 그렇고 편한 부분이 많은데, 자기랑 뛰면 힘들지 않냐고. 그러면서 ‘내가 어떻게 맞추면 더 좋을까? 언니가 좀 더 공을 치고 나와 줄까? 아니면 올라올 때 스크린을 걸어볼까?’라고 하더라고요.” 허예은이 말했다.

까마득한 선배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루키는 뭐라고 답했을까?

“너무 감사하잖아요. 이미 제가 없을 때도 주전으로 우승했던 언니가 이제 갓 들어온 신인인 저한테 그렇게 얘기를 해준다는 게. 저는 언니한테 그랬어요. 저랑 뛸 땐 볼 운반이나 리딩은 제가 더 열심히 해볼 테니 언니는 슛이나 돌파처럼 공격적인 부분에 더 집중해서 시너지를 내보자고. 상대가 제게 압박 수비로 붙으면, 제가 혼자 이겨 내 볼 테니 언니는 스크린 오지 말고 오픈 찬스에서 슛을 넣어 달라고요.”

 

아직 완벽하진 않다. 2일과 3일 열린 하나은행과 연습경기의 기록지만 봐도 그렇다. 첫날이었던 2일, 허예은은 17점으로 맹활약했지만 심성영은 5점에 그쳤다. 둘째 날이었던 3일 경기에서는 심성영이 15점으로 분전했으나, 허예은은 존재감이 없었다. 이들의 모든 경기가 지난 2월 신한은행전 같지는 않다. 

하지만 어느덧 9년 차 베테랑이 된 심성영은 급하지 않다. 

그는 “이 시기에 게임을 졌다고 해서 불안하고 그런 건 이제 없다. 지난 몇 년간 합을 맞춘 팀원들에 대한 믿음도 있고, 설령 지금 모자란 게 있다 해도 남은 기간 더 보완하면 된다는 뜻이니까. 이제 연습경기도 막 시작이다. 차라리 지금 흔들리는 게 좋다. 개막까지 고쳐가겠다”라고 말한다.

개막전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석 달. 청주 KB스타즈의 야심 찬 프로젝트는 얼마나 완성된 모습으로 공개될까?

사진 = 이현수 기자, 청주 KB스타즈 농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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