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진호 기자] 2년간 6천만원. 13개월 전 WKBL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득점상과 자유투상, 그리고 베스트5에 선정됐던 선수가 FA자격을 취득한 뒤 합의한 계약 조건이다.

WKBL은 30일, FA자격을 획득한 박하나가 원소속 구단인 삼성생명과 2년간 6천만원의 조건에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부상으로 인해 2019-20시즌 부침을 겪었지만 불과 1년 전 리그 연봉 5위(2억 2천만원)였던 선수임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삭감이다.

첫 FA자격을 획득했던 2014년, 무려 281%라는 엄청난 연봉 인상과 함께 삼성생명의 유니폼을 입었던 박하나는 그때보다 더 큰 폭의 삭감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유는 무릎 부상이었다. 

지난여름, 국가대표 훈련 중 무릎 통증을 느껴 수술 치료를 받았던 박하나의 예후는 좋지 못했고, 시즌 내내 부상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삼성생명 이적 후 처음으로 평균 득점이 10점 미만에 머물렀고, 구단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무릎 상태도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삼성생명은 박하나가 다음 시즌에 복귀하기가 쉽지 않다고 봤다. 무릎 수술 후, 치료와 재활로 한 시즌을 보내야 한다고 판단한 것. 대폭 삭감된 금액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박하나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결국 삼성생명과의 처음 협상은 결렬됐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기량만 놓고 보면, 훨씬 높은 금액을 받아야 하는 선수가 맞다”고 설명하면서도, “협상 결렬의 근본적인 이유는 금액차가 아니다. 무릎 상태에 대한 문제와 함께 향후 치료와 훈련 계획, 그리고 시즌 준비와 관련된 일련의 견해차가 이유”라고 밝혔다.

박하나에게 관심을 가진 다른 구단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도 박하나의 무릎 상태로 인해 뜻을 접었다. 건강한 몸과 함께 즉시 전력으로 활용할 수 없다면 FA 영입 자체가 부담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박하나는 FA 3차 협상 종료 하루 전인 지난 29일, 원소속구단 삼성생명과 계약을 체결했다.

FA 계약을 마친 박하나는 담담했다. 

“병원에서는 MRI를 보고 수술을 권유했는데, 저는 재활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어요. 내 몸이니까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해요. 우선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해보고 싶었어요. 저는 지금도 가능하다고 믿어요.”

박하나는 지난해 8월 무릎 수술을 했다. 당초 예상보다 빠른 복귀에 성공했지만, 꾸준히 흐름을 이어가지 못했다. 무릎이 좋지 않다는 말이 꾸준히 흘러 나왔고, 출전과 엔트리 제외를 반복했다.

“작년 8월 19일에 수술을 했어요. 큰 문제는 아니었어요. 떨어져 나간 연골만 제거하고 근력만 만들면 되는 거였죠. 그런데 개막전에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사실 개막전에 맞추는 건 조금 무리이긴 했거든요. 결과적으로 그때 서둘렀던 게 지금까지 문제가 된 것 같아요.”

시즌 중, 임근배 삼성생명 감독은 박하나의 빠른 복귀에 대해 어렵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박하나는 종종 코트를 밟았다. 부상 예후가 좋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박하나가 시즌을 마치고 FA자격을 얻기 때문에 무리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시즌 전에는 FA에 대한 마음이 있었죠. 그런데 시즌 중에 접었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 몸 상태는 제가 제일 잘 알잖아요. 많이 뛴다고 해서 몸값을 올릴 만큼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는 몸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FA에 대한 기대나 욕심은 일찌감치 내려놨어요.”

그렇다면 박하나가 시즌 중 계속 경기에 나섰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팀 상황이 안 좋았잖아요. 외국인 선수 없이 경기를 뛰고, 연패에 빠지고, 성적은 추락하고... (김)한별 언니나 (배)혜윤 언니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어요. 제가 감독님한테 찾아갔어요. 5분에서 10분 정도는 뛸 수 있으니 나가게 해달라고요. 결과만 놓고 보면 안 뛰고 쉬는 게 맞았던 거죠.”

무릎 부상 이슈가 있기는 하지만 삼성생명의 제시액은 충격적이었다. 연봉이 70% 이상 줄어들었다. 그나마 삼성생명은 최초 결렬 당시보다 제시액을 줄이지 않았다. 또한, 수술 후 한 시즌을 쉬어야 한다는 당초의 입장도 어느 정도 박하나에게 양보했다.

“바닥을 친 기분이에요. 아니, 기분이 아니라 바닥에 있는 게 맞죠. 3차 협상도 결렬되면 보상 선수 없이 다른 팀으로 갈 수 있다고도 하더라고요. 그것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에요. 그런데 감독님이 전화를 주셨어요. ‘재기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어떻게 감독님을 저버리겠어요? 감독님 믿고 가는 거죠.”

기록적인 FA 대박의 주인공이었던 박하나는 기록적인 FA 추락을 감수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즌을 앞두게 됐다. 1990년생으로 이제 서른. 부상만 떨쳐낸다면 리그 최고의 득점원 중 한 명으로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해줄 수 있는 선수다.

“계약했으니 ‘시원섭섭’하다고 해야 하는데, 솔직한 마음으로는 ‘섭섭시원’인 거 같아요. SNS에 놀러 다니는 사진을 많이 올렸더니 다른 분들은 재활도 열심히 안 하고 맘 편히 한 달을 보냈다고 생각하시는데, 아니거든요. 정말 답답하고 힘들 때 힐링하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마음고생도 많이 하고, 상처도 많이 받은 한 달이었어요. 계약조건요? 당연히 서운하죠! 하지만, 그동안 팀이 저한테 많이 신경 써주고 좋은 조건을 챙겨주기도 했잖아요. 제가 잘하면 또 그만큼 해주실 거예요. 제가 다시 스스로 증명해야죠.”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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