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동환 기자]  지난 2017년 12월 19일, 미국 LA 스테이플스 센터에서는 전세계가 주목하는 행사가 열렸다. 바로 코비 브라이언트의 영구결번식이 진행된 것이다. 수많은 NBA 팬들이 스테이플스 센터를 찾아 오랜만에 코비의 이름을 환호했다. 전현직 동료 선수들은 직접 코비를 보러 오거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코비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코비 브라이언트의 영구결번식을 둘러싼 이야기를 루키더바스켓이 정리해 보았다.

*본 기사는 루키더바스켓 2018년 1월호에 코비의 영구결번 이야기를 다루며 실었던 글입니다. 이 시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었던 코비 브라이언트와 그의 둘째 딸 지지의 명복을 빕니다.

 

NBA 역사상 최초의 2개 번호 동시 영구결번

NBA는 7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리그다. NBA가 공식 출범한 시기는 1946년. 이후 수많은 스타들이 NBA 코트에 등장했으며, 그들 중 일부는 한 팀을 상징하는 전설이 됐다. 그리고 각 팀은 이런 전설들의 등번호를 훗날 다른 선수들이 쓸 수 없도록 ‘결번’했는데, 이를 일컬어 우리는 영구결번이라고 부른다.

현재 대부분의 NBA 구단은 최소 1개 이상의 영구결번을 가지고 있다. 지금 NBA에서 영구결번이 하나도 없는 팀은 LA 클리퍼스와 토론토뿐이다. 클리퍼스는 암흑기가 너무 길었던 탓에 영구결번을 할 만한 상징적인 선수가 등장하지 못했고, 토론토는 창단이 1995년으로 구단 역사 자체가 그리 길지 않다. 멤피스 역시 암흑기가 길었던 탓에 영구결번이 없었으나, 올시즌 토니 알렌의 9번을 영구결번하기로 결정했다. 클리퍼스와 토론토도 언젠가는 영구결번이 등록될 가능성이 높다.

한 선수가 다른 팀에서 쓴 2개의 등번호가 모두 영구결번된 사례도 심심찮게 있었다. ‘트리플-더블 장인’ 오스카 로버트슨은 밀워키에서 1번이, 새크라멘토에서 14번이 영구결번됐고 피트 마라비치는 애틀랜타, 유타, 뉴올리언스의 홈 구장에 모두 그의 유니폼이 걸려 있다.(마라비치는 사실 펠리컨스에서 뛴 적은 없다. 유타 재즈가 연고지를 옮기기 전에 뉴올리언스 재즈에서 뛰었을 뿐이다. 하지만 펠리컨스 구단은 마라비치가 뉴올리언스 지역 사회에 기여한 바를 기리기 위해 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했다.) 줄리어스 어빙은 브루클린과 필라델피아에서, 샤킬 오닐은 레이커스와 마이애미에서 각기 다른 번호가 영구결번됐다. 얼 먼로는 뉴욕과 워싱턴에서 15번과 10번이 영구결번된 선수였다.

하지만 이들 중 한 팀에서 2개의 등번호가 영구결번된 선수는 없었다. 모두 다른 팀에서 다른 2개의 번호가 영구결번된 사례들이다. 그런데 12월 19일 LA 스테이플스에서 한 팀에서 2개의 번호가 영구결번된 첫 번째 사례가 나왔다. 그 주인공은 바로 코비 브라이언트였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20년의 선수 생활 동안 8번과 24번을 사용했다. 데뷔 시즌부터 2005-2006 시즌까지는 8번을, 2006-2007 시즌부터 은퇴 시즌까지는 24번을 등번호로 달았다. 2개의 등번호를 정확히 10년씩 사용한 코비는 레이커스에서만 20년을 뛰며 ‘레이커스맨’으로 커리어를 마감했다. 레이커스는 코비가 20년 동안 쌓은 업적을 모두 기리길 원했고 결국 NBA 역사상 유례없는 2개 번호 영구결번이라는 선택을 내렸다.

레이커스는 찬란한 구단 역사에 비해 영구결번이 짜기로 유명한 팀이다. 보스턴이 21개의 영구결번을 가진 것에 비해 LA 레이커스는 9개에 불과했다. 양 팀의 우승 횟수가 각각 17회와 16회로 비슷한 것을 생각하면 너무 큰 격차. 하지만 레이커스는 코비에 대해서는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 19일 레이커스는 코비의 8번과 24번을 모두 영구결번했다. 이로써 레이커스는 11개의 영구결번을 가진 팀이 됐다.

“코비가 2개의 등번호를 달고 이룬 성과를 각기 구분해서 보더라도, 8번의 코비와 24번의 코비 모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만한 선수들이었다” 레이커스의 지니 버스 구단주가 19일 열린 영구결번 행사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날 코비에게 “나는 코비 당신이 퍼플앤골드(레이커스의 전통적인 컬러)를 향해 당신이 보여준 충성심과 얼마든지 팀을 떠날 수 있었을 때도 레이커스 선수로 남아준 것에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울먹이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평소 코비의 열성적인 팬이었던 매직 존슨 사장 역시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존슨은 “20년 동안 코비는 레이커스 팬들을 흥분케 했고 5개의 우승 트로피를 가져다줬다. 또 다른 코비 브라이언트는 다시는 없을 것이다”라며 코비의 영구결번을 축하하기도 했다.

 

8번과 24번에 담긴 이야기들

공교롭게도 코비 브라이언트는 2개의 등번호로 같은 시간을 보냈다. 8번으로 10년을, 24번으로 10년을 뛰고 은퇴했다.

재밌는 사실은 코비가 두 번호를 달고 쌓은 통산 기록도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코비는 8번을 달고 총 707경기를 출전해 16,866점 3,634리바운드 3,14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4번을 달고는 총 638경기에 출전해 16,717점 3,409리바운드 3,154어시스트를 쌓았다. 같은 10년을 보냈다지만 신기할 정도로 흡사한 누적 기록이다.

사실 데뷔 당시 코비는 8번을 우선 순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24번 혹은 33번을 달고 NBA에 데뷔하려고 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레이커스는 33번이 이미 영구결번된 상태였다.(무려 카림 압둘-자바의 번호였다.) 그리고 24번은 다른 선배 선수가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패기 넘치는 코비라도 선배의 번호를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던 모양.

결국 코비는 8번을 자신의 등번호로 골랐다. 그런데 8번을 고른 이유가 독특했다. 숫자 8은 그가 고교 시절 참가한 NBA 유망주 캠프에서 입은 등번호 143번의 각 숫자를 모두 더한 합이었다.(1+4+3=8) 게다가 코비는 이탈리아에 살던 유년기에 8번을 달고 뛴 적이 있었다. 코비의 NBA 첫 등번호 8번은 그렇게 탄생했다.

8번을 달고 코비는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갔다. 시작은 식스맨이었다. 하지만 고졸 NBA 리거의 재능에 특유의 근성과 훈련량이 더해지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소포모어 시즌이었던 1997-98 시즌에는 올해의 식스맨상 투표 2위에 올랐으며, 이 시즌에 NBA 역사상 가장 어린 올스타 선발 선수가 됐다. 필 잭슨이 부임한 1999-00 시즌부터는 올스타, 올-NBA 팀, 올-NBA 디펜시브 팀에 모두 선정되면서 리그를 대표하는 슈팅가드로 올라섰다. 샤킬 오닐과 함께 레이커스의 리그 3연패도 이끌었다. 불화설에도 불구하고 코비와 오닐이 이끄는 레이커스를 막을 팀은 리그에 없었다.

NBA 역사상 단일 경기 최다 득점 2위 기록인 81득점 역시 8번을 달고 만든 기록이었다. 오닐이 팀을 떠난 뒤 홀로서기에 도전한 코비는 2005-06 시즌에 평균 35.4득점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다. NBA 역사상 단일 시즌 평균 35득점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코비가 5번째였다. 코비가 던지는 슛은 림을 갈랐고, 누구도 코비를 제어할 수 없었다. 8번으로 절정의 기량을 과시한 시즌이었다.

 

하지만 코비는 변화를 택했다. 2006-07 시즌을 앞두고 코비는 8번을 포기하고 24번을 새로운 등번호로 골랐다. ESPN의 데런 로벨 기자에 따르면 당시 코비가 등번호를 교체한 이유는 아무리 취재를 해도 알아내기 힘들었다고 한다. 어떤 취재원에게 물어봐도 “그냥 코비가 24번으로 바꾸고 싶어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때문에 코비의 새로운 등번호 24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떠돌았다고 한다. 첫 번째는 코비가 과거에 24번을 단 적이 있었다는 것. 실제로 코비는 중학교 시절과 고등학교 1학년 때 24번을 뛰고 선수 생활을 했다. 어린 시절의 마음가짐으로 되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등번호 교체를 통해 드러냈다고 보는 시각이었다.

24번이 하루의 24시간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었다. 이는 필라델피아 지역 기자 앤써니 길버트에 의해 나온 스토리로, 당시 그는 코비의 누나이자 배구 선수였던 샤리아 브라이언트를 만나 이 같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24번은 하루의 24시간을 모두 보람차게 활용하고, 단 1초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나온 등번호다” 길버트가 전한 말이다.

비즈니스를 위해 등번호를 교체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코비는 2003년에 아디다스를 떠나 나이키와 4년 4000만 달러의 새로운 시그니처 슈즈 계약을 맺었는데, 등번호 8번을 계속 쓰는 것은 나이키에서의 시그니처 농구화 판매에 악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8번은 아디다스에서 발매한 농구화를 상징하는 숫자로 남아야 하고, 나이키에서 발매하는 농구화에는 새로운 상징적인 숫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당시 업계에 떠돌던 소문이었다.

한편 당시 코비와 뛰었던 NBA 선수들 사이에서는 코비가 24번으로 등번호를 바꾼 것이 마이클 조던 때문이라는 인식도 존재했다고 한다.

“24가 23보다 한 단계 높은 숫자라서 코비가 24를 새 등번호로 선택했다고 다들 생각했다” 워싱턴, 뉴욕 등에서 뛰었던 자레드 제프리스가 한 말이다.

갖가지 소문이 있었지만, 어쨌든 등번호 24번을 달고 코비가 쌓은 커리어 역시 매우 성공적이었다. 생애 첫 정규시즌 MVP(2008년)과 두 차례의 우승(2009, 2010)은 모두 24번의 코비가 이룬 업적이었다. 24번을 달고 통산 3만 득점을 돌파했으며, NBA 역사상 최초로 한 팀에서 20년을 뛴 선수로도 등록됐다. 2016년 4월 14일에 있었던 유타 재즈와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에서는 무려 60점을 쏟아 부으며 레이커스의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었다. 이 경기를 통해 코비는 NBA 역사상 60득점 이상을 기록한 최고령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그의 나이 만 37세 234일이었다. 그리고 코비는 레이커스 팬들의 격렬한 환영을 받고 “Mamba Out”을 외치며 코트를 떠났다.

 

전설의 마지막을 축하한 동료들

코비 브라이언트는 20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하며 많은 말들을 남겼다. 그 중 “친구란 왔다가도 사라지는 존재이지만, 우승 배너는 영원하다.(Friends come and go, but banners hang forever.)”는 말은 특히 유명하다.

코비는 루키 시즌부터 동료들과의 화합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기본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친근하게 지내는 성격이 아니었고, 이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샤킬 오닐과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코비와 함께 5차례의 우승을 합작한 필 잭슨 감독 역시 훗날 그의 자서전 ‘일레븐 링즈(Eleven Rings)’를 통해 “코비는 조던에 비해 리더십이라는 측면에서는 부족한 선수였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때문에 “친구란 왔다가도 사라지는 존재이지만, 우승 배너는 영원하다.”는 코비의 말은 명언이라기보다는, 동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던 코비가 자신의 단점을 합리화하기 위해 한 말 같이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은퇴를 앞두고 CNBC와의 인터뷰에서 코비 브라이언트는 자신의 말을 번복하는 코멘트를 남겼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 와서 보면, 우승이야 말로 찾아왔다가도 사라지는 것이다. 앞으로도 우승을 차지하는 팀이 나올 것이고 MVP를 수상하는 선수가 등장할 것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 무언가를 정말 만들고 싶다면, (우승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가 영감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면 영감을 받은 그 세대는 무언가를 창조해낼 것이고 다시 그 다음 세대에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영원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닌가 싶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도 하다.”)

코비의 두 등번호가 영구결번되던 날, 스테이플스 센터에는 수많은 전 동료 선수들과 후배 선수들이 그를 축하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2000년대 초반 코비와 자웅을 겨루었던 슈팅가드이자, 2001년 NBA 파이널에서 코비와 맞붙었던 앨런 아이버슨은 이날 스테이플스 센터를 찾아 영구결번 행사를 모두 지켜보고 코비와 진한 포옹을 나누었다. 데릭 피셔, 샤킬 오닐 등 코비와 함께 레이커스에서 뛰었던 선수들 역시 코비의 영구결번을 직접 축하했다.

이날 레이커스와 경기를 치렀던 골든스테이트 선수들과 스티브 커 감독도 하프타임에 열린 영구결번식을 지켜봤다. 특히 마이클 조던과 함께 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던 스티브 커 감독은 코비에 대해 인상적인 말을 남기기도 했다.

“코비는 마이클 조던과 가장 흡사한 선수였다. 많은 선수들이 조던과 비교됐다. 르브론 제임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르브론과 조던은 전혀 다른 부류의 선수라고 생각한다. 플레이 스타일과 생각하는 방식, 마인드가 매우 다르다. 반면 코비는 조던과 생각하는 방식, 마인드가 정말 닮아 있다. ‘내가 페이드어웨이 점프슛과 풋워크로 득점을 올려서 너의 목을 쳐버리겠어’라는 식의 암살범 같은 마인드가 정말 비슷하다” 스티브 커의 말이다.

코비와 한 때 갈등 관계에 있었으나 멋지게 화해한 샤킬 오닐도 재밌는 인터뷰를 남겼다. 오닐은 코비에 대해 “레이커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임이 분명하다”라면서 “나와 코비는 레이커스 역사상 최고의 듀오로 남을 것이다. 물론 매직 존슨, 카림 압둘-자바 듀오와도 비교해서다. 그들에게 이 말을 전해도 된다”라며 능청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선수 시절, 플레이스타일과 성격 때문에 동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일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던 코비 브라이언트.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코비는 그를 좋아했던 이들과 싫어했던 이들 모두에게 존중받는 전설이 되어 있었다. 이쯤에서 코비의 말 하나를 더 언급해볼까 한다.

“인생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신경 쓰며 살아가기엔 너무 짧다. 그런 행위는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진 제공 =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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