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LA 레이커스는 흔들리고 있었다. 

프랭크 보겔 감독 부임 이후 그리고 앤써니 데이비스가 입단한 뒤 처음 맞이하는 4연패. 연패가 시작된 인디애나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골든스테이트의 역대 최다 정규시즌 승수인 73승을 넘보고 있었던 레이커스호는 처음 맞이한 풍랑에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흔들리는 배에는 언제나 잡음이 생긴다. 연승을 달리며 팀이 잘 나갈 땐 대수롭지 않아 보였던 사소한 것들은 분위기가 안 좋을 때 비로소 문제가 되어 나타난다. 레이커스 역시 그랬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크리스마스였다. 올 시즌 리그 최고의 라이벌리를 자랑하는 LA 더비. 개막전 패배 이후 다시 만난 클리퍼스와 경기에서 레이커스는 106-111로 또 졌다. 에이스 르브론 제임스가 23득점 야투율 37.5%로 부진한 것이 뼈아팠다. 지난 몇 년간,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그를 꾸준히 괴롭혀 온 ‘킹슬레이어’ 카와이 레너드와 매치업에서 완패했다. 레너드는 르브론을 수비하면서 35점 57.8% 야투율을 기록했고, 더불어 르브론과 매치업에서 5연승을 달렸다.

 

더 큰 문제가 경기 후 발생했다. 카일 쿠즈마의 개인 트레이너 클린트 팍스가 자신의 SNS에 장문의 글을 게재한 것. 팍스 트레이너는 “어젯밤 카와이 레너드를 보라. 아무도 그의 스킬셋이 르브론에 비해 얼마나 날카로운지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면서 “훈련장에 누가 있고 없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라며 패배의 책임을 르브론에게 돌렸다.

팍스의 글은 삽시간에 퍼졌고, 쿠즈마는 해명에 나서야만 했다. “물론 저는 그처럼 생각하지 않지만, 제가 다른 이의 말을 통제할 수는 없어요. 모두가 알다시피, 저와 르브론의 관계는 훌륭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그냥 그대로 두기로 했어요.”

당사자 르브론도 취재진의 질문 세례를 받았다. 포틀랜드와 경기를 앞두고 몸을 풀고 있던 르브론은 사건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어요.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유명해지기 위해 제 이름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나는 그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고, 누군지도 모르지만… 그저 그가 잘 되길 바랍니다.” 

 

한 바탕 잡음이 휩쓸고 간 르브론과 쿠즈마, 그리고 4연패 중인 레이커스의 첫 번째 경기. 포틀랜드전을 앞둔 레이커스 벤치에는 경기 시작 전부터 미묘한 기류가 감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 초반, 레이커스는 포틀랜드에게 끌려갔다. 주포 앤써니 데이비스는 좀처럼 야투 기회를 잡지 못했고, 대니 그린은 오픈 기회를 연거푸 놓쳤다. 마음 급한 보겔 감독은 판정에 항의하다 테크니컬 파울을 받았다. 1쿼터 6분여, 전광판의 점수는 19-23. 예상과 다른 전개에 레이커스 선수단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이때, 르브론이 레이커스의 스위치를 켰다. 

1쿼터 중반, 데미안 릴라드에게 자유투 실점을 내주고 나서였다. 포틀랜드의 카멜로 앤써니가 몸싸움 과정에서 팔꿈치를 휘둘러 쿠즈마를 밀치자, 르브론이 테크니컬 파울을 불사하고 곧바로 심판에게 달려가 격한 항의로 동료를 보호했다. 

다소 과해 보였던 르브론의 이 액션은 레이커스를 하나로 뭉치게 했다. 소동이 벌어진 뒤, 레이커스는 완전히 달라졌다. 무려 10-0 스코어링 런을 만들며 단숨에 29-19로 경기를 뒤집었다. 르브론의 항의 전까지 2득점에 그치던 쿠즈마는 이후 13분 동안 18득점을 몰아치며 전반에만 20점을 달성했다. 

백미는 팽팽했던 4쿼터 초반이었다. 포틀랜드의 속공 상황, 레이업을 올리려는 앤퍼니 사이먼스를 르브론이 뒤따라 달려와 전매특허인 체이스 다운 블락으로 찍어 눌렀다. 쿠즈마가 곧바로 수비 리바운드를 잡았고, 그대로 상대 골대로 달려 역으로 속공 득점을 만들어냈다. 멋진 유로스텝은 덤. 

이 장면으로 단숨에 분위기를 잡은 레이커스는 128-120으로 승리하며 마침내 기나긴 연패를 끊어냈다.

르브론 제임스 21점 FG 46.7%(7/15) 7리바운드 16어시스트
카일 쿠즈마 24점 FG 52.9%(9/17) 4리바운드 0실책

 

“우린 쿠즈마가 팀의 세 번째 득점원이 되길 원해요.” 수훈 선수 르브론이 마이크를 잡고 지난 밤 뉴스메이커였던 쿠즈마에 대해 입을 열었다. 

“매일 밤 꾸준히 18점에서 20점을 올릴 수 있는 선수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의 효율성입니다. 당신이 오늘 밤 본 것처럼, 그는 3점슛과 페인트존에서 터치를 매우 효율적으로 섞어 가고 있어요. 제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죠.” 어젯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르브론은 오직 경기에 대한 얘기만 이어가며 쿠즈마를 포용했다.

트레이너 클린트 팍스의 말대로 한국나이 36세 르브론의 스킬은 29세 레너드보다 유려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16개의 어시스트를 올리며 레너드와 다른 방식으로 팀에 승리를 안겼다. 

르브론은 이날 자신이 던진 야투 15개보다 더 많은 16개 어시스트를 기록했는데, '스탯뮤즈'에 따르면, 르브론이 데뷔 후 야투 시도보다 더 많은 어시스트를 올린 경기는 총 11경기였다. 그리고 그 이타적인 11경기의 승률은 100%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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