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영화계에 텐트폴(tent pole)이라는 용어가 있다. 텐트를 세우는 지지대를 뜻하는 말로, 영화사의 한 해 수익을 지지해줄 거대 상업 영화를 일컫는다. 당연히 이 텐트폴 영화는 관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성수기에 맞춰 개봉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명절 연휴와 연말이 바로 텐트폴 시즌이다.

그런데 가을부터 봄까지 총 82경기를 치르는 이곳 NBA 정규시즌에도 텐트폴이 있다. 바로 개막전과 크리스마스매치다. 사무국은 30개 팀의 리그 일정을 발표하기 전, 개막전과 크리스마스매치만큼은 미리 발표해 팬들의 흥미를 돋운다. 

그중에서도 대목은 크리스마스매치다. 전 세계 팬들의 이목이 쏠리는 날이지만, 크리스마스매치는 하루 5경기 밖에 열리지 않는다. 단 10팀밖에 초대되지 않는 영광의 자리. 경기는 현지 시간 기준 정오부터 시작해 2시간 30분 간격으로 한 경기씩 차례대로 열리게끔 특별 편성된다.

하지만 2019년 크리스마스매치는 다소 김 빠진 상태에서 열렸다. 대부분 팀이 부상으로 인해 주축 선수 없이 경기를 치러야 했기 때문. 토론토는 1옵션 파스칼 시아캄이 결장했고,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스테픈 커리가 없었다. 신인 자이언 윌리엄슨의 후광으로 초대받은 뉴올리언스는 자이언 없는 자이언 팀 신세. 

그러나 기우와 달리 결과적으로 크리스마스 텐트폴 매치는 완벽한 흥행으로 마무리됐다. 5경기 중 보스턴과 토론토의 경기를 제외하고 4경기가 모두 하위팀이 상위팀을 잡는 업셋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영화계에는 슬리퍼히트(sleeper hit)라는 용어도 있다. 흥행을 예상하고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는 텐트폴과 달리 흥행을 예상치 못한 영화가 히트를 친 경우다. 이날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밀워키 벅스의 경기는 결과와 과정 모두 전혀 예상치 못한 슬리퍼히트였다. 

올 시즌 밀워키는 리그에서 가장 높은 승률을 자랑하고 있는 팀이다.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27승 4패로 승률이 무려 87%에 달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를 상대로 밀워키는 참패했다. 109-121로 무려 12점 차 대패. 올 시즌 밀워키가 진 경기 중 가장 큰 점수 차 패배였다. 

MVP 야니스 아데토쿤보의 부진이 뼈아팠다. 아데토쿤보의 필라델피아전 부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다. 아데토쿤보는 지난 시즌 필라델피아를 상대로 3경기에서 32점-52점-45점을 기록한 완벽한 필라델피아의 천적이었다. 3점슛을 많이 던지지 않던 지난 시즌, 그가 가장 많이 3점슛을 성공(6개)한 팀도 바로 필라델피아였다.

그러나 아데토쿤보는 이날 경기, 30분 19초를 뛰며 18점 14리바운드 7어시스트에 그쳤다. 야투는 27개를 던져 8개 성공에 그치며 29.6% 성공률을 기록했는데, 한 경기에서 19개 야투 실패는 데뷔 후 처음이며, 3점슛도 7개를 던져 모두 실패하면서 23경기 연속 이어오던 3점슛 성공 기록도 깨졌다.

 

그 중심에는 조엘 엠비드가 있었다. 엠비드는 이날 철저히 골밑을 사수하며 아데토쿤보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엠비드와 아데토쿤보가 1대1로 상대한 포제션은 총 11차례였는데, 엠비드는 그중 단 2번의 야투만 내줬다. 

“조엘 엠비드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는 지구에서 가장 훌륭한 선수가 될 겁니다.” 필라델피아와 밀워키의 크리스마스매치를 본 ‘폭스스포츠’의 칼럼니스트 스킵 베이리스가 말했다. 

“그는 7피트(213cm)의 키로 3점슛을 쏠 수 있어요. 올 시즌 3점슛 성공률은 33%고요. 자유투 성공률은 83%에 달하는 슈터입니다. 그리고 아데토쿤보를 상대로 홈에서 치른 어제 경기가 바로 그가 마음먹고 뛴 경기죠.”

수비 코트에서 아데토쿤보를 완벽히 제어한 엠비드는 공격에서도 31점 11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3점슛은 6개를 던져 3개 성공(50%), 자유투는 6개 모두 적중하며 100% 성공률. 그가 뛴 시간은 단 28분 26초에 불과했다.

지난 시즌 아데토쿤보에게 쩔쩔매던 엠비드에게 대체 무슨 변화가 생긴 걸까?

 

엠비드를 바꾼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보름 전으로 거슬러 올라 한국시간으로 11일 발생했다. 당시 필라델피아는 서부의 강호 덴버를 상대로 97-92로 승리했다. 엠비드는 22점 10리바운드 6어시스트로 ‘좋은’ 기록. 

그러나 경기를 마친 뒤 NBA 주관방송사 TNT의 분석 프로 ‘인사이드 NBA(Inside the NBA)'의 패널로 활동 중인 찰스 바클리와 샤킬 오닐은 엠비드의 경기력을 혹평했다. 

먼저 바클리가 “그는 리그에서 가장 터프한 선수지만, 우리는 그를 루카 돈치치나 야니스 아데토쿤보, 앤써니 데이비스, 제임스 하든과 같이 엮지 않는다”라고 운을 떼자 옆에 있던 오닐이 거들었다.

“엠비드, 넌 충분히 위대한 선수가 될 수 있어. 하지만 지금 넌 열심히 안 뛰고 있어. 위대한 선수가 되고 싶은 거야? 아니면 그냥 ‘좋은’ 선수가 되고 싶은 거야? 그저 좋은 선수가 되고 싶다면, 계속 22점을 넣어. 그게 아니라 위대한 선수가 되고 싶다면, 내게 28점, 30점을 보여줘. 야니스를 봐. 그는 위대한 선수가 되고 싶어 하잖아.”

대선배들의 혹독한 비판. 리그에서 가장 소문난 악동인 엠비드는 이들의 말에 어떻게 응수했을까? 

그는 곧바로 샤킬 오닐에게 전화를 걸었고, 엠비드와 오닐은 긴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다음 경기였던 보스턴전, 그는 오닐이 보여 달라 주문했던 30점을 훌쩍 뛰어 넘는 38점을 기록한 뒤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의 말이 맞아요. 난 비판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나에게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잠재력이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들은 이미 최고였던 사람들이죠. 올 시즌 나는 내려가고 있었고, 샤크와 얘기를 좀 하고 싶었어요. 그는 내게 더 공격적으로 뛰라고 얘기해줬습니다. 그리고 그건 내게 아주 훌륭한 조언이었어요.”

오닐과 바클리의 비판 이후 엠비드의 경기력은 180도 달라졌다. 그리고 보름 뒤, 전 세계 팬들이 지켜보는 크리스마스에 오닐이 그와 직접 비교했던 아데토쿤보와 맞대결. 엠비드는 보란 듯이 아데토쿤보를 찍어 눌렀다. 아데토쿤보의 이날 코트 마진은 -18. 엠비드의 마진은 +15.

“난 올해의 수비수가 되고 싶어요.” 엠비드가 경기 후 ‘야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오늘은 그 모습을 좀 보여준 것 같네요.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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