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동환 기자] NBA의 전설적인 포인트가드 매직 존슨의 본명은 어빙 존슨이다. 고교 시절 그의 플레이를 본 한 지역지 기자가 그를 ‘매직’이라고 부른 것이 마치 이름처럼 굳어져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KBL에도 이름에 ‘매직’이라는 단어가 붙는 인물이 있다. 원주 DB 프로미의 이상범 감독이다.

매직 존슨이 마법 같은 플레이로 동료들을 살려내는 포인트가드였다면, 이상범 감독은 마법 같은 지도력으로 DB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다. 팬들은 그의 지도력을 일컬어 ‘상범 매직’이라고 부른다.

19일 원주에서 이상범 감독을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30분 넘게 이어진 사진 촬영이 낯설고 고됐을 법도 한데, 그는 단 한 순간도 싫은 기색 없이 미소를 머금은 채 촬영에 임했다.

“이렇게 사진을 많이 찍어본 건 KGC인삼공사에서 우승했을 때 이후로는 처음이네요.”

숙소 건물과 체육관 이곳저곳을 오가며 사진을 찍은 것이 민망했는지, 이 감독이 쑥쓰러운 표정을 지어보인다.

지도자 생활만 18년 차. 감독으로서 지휘봉을 잡은 지도 어느덧 10년. 이 감독은 자신의 지도 철학에 대해 “선수들과 더불어서 믿고 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농구의 도시 원주에 찾아온 마법 같은 존재, DB 이상범 감독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어보자.

 

DB 팬들은 감독님에 대해 ‘상범 매직’이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혹시 이 별명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이상범 감독(이): 물론이죠.(웃음). 사실 평소에 인터넷을 거의 안 봐요. 선수들이 얘기해줘서 알았어요. 그런 별명을 들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죠. 긍정적인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감독은 욕먹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지내요. 팀에 어떤 아쉬운 부분이 있거나 문제가 생기면 그것이 선수들의 잘못이든 아니듯 감독이 방패가 되어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제가 선수들을 데리고 경기를 하는 것이니 제가 욕을 먹는 게 맞는 거죠. 욕을 안 먹으면서 감독을 하겠다는 건 실현 불가능한 욕심이에요. 비판은 비판대로 감수하고, 경기에서는 선수들의 기량을 최대한 끌어내서 선수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농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게 감독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DB에 오기 전에 야인으로 지내셨던 기간이 꽤 길었습니다. 감독이라는 직함을 내려놓고 보낸 시간이 감독이라는 직책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됐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 감독은 2014년 2월 KGC인삼공사의 지휘봉을 놓은 뒤 3년 넘게 KBL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DB의 감독으로 부임한 시기는 2017년 4월. 무려 3년 2개월의 시간을 KBL 밖에서 보낸 셈이다.)

이: 맞아요. 사실 DB라는 새로운 팀으로 오면서 바뀐 부분이 있어요. 물론 지도자로서 선수들을 지도할 때 적용하는 큰 틀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아요. 다만 KGC인삼공사에 있을 때는 저 스스로가 고지식한 면이 있었던 반면에 조금 더 융퉁성 있게 팀을 끌고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달라지신 것은 단지 새로운 팀을 맡았기 때문일까요, 혹은 야인으로 지내셨던 기간에 일본에 머물면서 감독님 스스로가 바뀐 부분이 많기 때문일까요?

이: 일본에서 많이 바뀐 거라고 봐야겠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큰 틀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다만 지도자로서 선수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고 융퉁성 있게 팀을 끌고 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죠.

가장 대표적인 것이 팀 훈련 시간을 줄이고 선수들에게 개인 훈련 시간을 주려고 하는 부분입니다. 그렇게 운영되는 것이 프로 팀으로서 옳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어요. 사실 감독으로서 팀 훈련 시간을 줄이면 불안감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하지만 일본에서 여러 팀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이 감독이 자기만족 때문에 팀 훈련 시간을 과도하게 많이 가져가면서 선수들을 그르칠 수 있겠다는 것이었어요.

일본에서 달라지신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봐도 되겠군요.

이: 사실 제가 KGC인삼공사에 있을 때 우승도 해보고 국가대표팀 감독도 해보고 대표팀에서 (유)재학이 형 밑에서 코치도 해봤었잖아요. 그런데 일본으로 나와서 보니까 제가 지도한 선수들이 모두 프로선수 혹은 국가대표선수들이더라고요. 하이 레벨의 선수들만 가르쳤던 거죠.

일본에 가서는 그때까지 하지 못했던 경험을 다양하게 했어요. 중고등학교 선수들 레슨도 해보고 대학 선수들도 가르쳐봤죠. 나중에는 일본 프로 팀의 인스트럭터나 코치로도 있었어요. 이것저것 다 해보니까 고등학생을 가르칠 때가 제일 힘들더라고요. 하나하나 다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에요. 피벗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스텝은 어떻게 밟아야 하는지, 슛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패스를 한 다음에 컷인은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일일이 다 지적하고 가르쳐줘야 하니까 되게 힘들었어요. 그때 선수들을 지도할 때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렇게 하는 방법도 알게 된 거죠.

예전에는 선수에게 기회를 줬는데 그 선수가 그 기회를 바로 못 살리면 솔직한 말로 그 선수는 그냥 제껴버렸어요. 감독으로서 앞을 보고 계속 달려가야 했으니까요.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없었어요.

하지만 DB에 와서는 뒤를 쳐다보기 시작했어요. 선수들의 상황에 맞게 눈높이도 낮출 수 있게 됐고요. 일본에서 고등학생, 대학생, 프로선수들을 모두 가르치면서 느낀 게 정말 많았어요. 물론 당연히 프로선수니까 고등학생 가르치듯이 스텝 하나, 피벗 하나 다 지적하고 가르치진 않아요. 중요한 건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죠. 예전 같았으면 그냥 제껴버리고 뒀을 선수도 이제는 함께 계속 가는 거죠.

말씀하신 부분은 구단의 확실한 지지가 없다면 실현하기 어려운 지도 방식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그럼요. 구단에서 엄청나게 많은 도움과 지지를 주고 계세요. 사실 김종규 같은 선수를 데려오는 건 감독이 원한다고 해서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김정남 구단주께서 농구에 대한 워낙 많으시고 폭넓게 팀을 지원해주세요. 거기에 단장님도 함께 전폭 지원을 해주시죠.

두 분이 저를 믿고 ‘올-인’을 해주시니까 저도 제 생각대로 선수단을 꾸리고 이적시장에서 김종규, 김태술, 김민구 같은 선수를 데려올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건 감독이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구단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정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고 계시고, 덕분에 제가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처음 DB의 감독으로 부임하셨을 때는 팀 전력에 대한 평가가 정말 좋지 않았습니다. 감독님도 기억하시겠지만 미디어데이에서도 대부분의 타팀 지도자와 선수들이 DB를 꼴찌 후보라고 지목했을 정도였는데요.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타계책을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네, 그때는 팀 전력이 정말 좋지 않았죠. 젊은 선수들 중 (두)경민이를 제외하면 전부 12인 로스터에도 제대로 못 들어갔던 선수들이었으니까요. 이럴 때일수록 선수들이 흥이 나는 농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선수들이 흥이 나고 제 기량을 드러내려면 그만큼 경기에 많이 뛰고 기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원칙 안에서 최대한 기회를 줬죠. 가능한 한 기회를 주되 기본적으로 뛰는 시간은 딱 10분. 이렇게 했던 거죠.

사실 다들 이전까지는 코트에서 실수를 하면 질책 받고 교체될까봐 벤치를 쳐다보고 눈치를 봤던 선수들이잖아요. 그러니 10분 동안 일단 뛸 수 있게 기회를 주겠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일단 약속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 나갔죠. 부상이 있는 (윤)호영이나 노장인 (김)주성이는 후반과 4쿼터에 주로 배치하고 경민이는 아예 공격에서 전권을 줬어요. 그렇게 하니 선수들이 갈수록 자신감이 생기고 신바람 나는 농구를 하더라고요. 운 좋게 로드 벤슨, 디온테 버튼 같은 뛰어난 외국선수들까지 있어서 시너지 효과까지 났습니다.

결과적으로 잘 되긴 했지만, 사실은 리스크도 클 수밖에 없었던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맞아요. 그게 잘 안됐다면 타격이 정말 컸을 거예요. 사실 저도 선수에게 10분의 기회를 줘놓고도 마음은 조마조마할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래도 약속은 무조건 지키려고 했습니다. 선수를 빼지 않고 그대로 끌고 가려고 했죠. 그래서 제 첫 시즌을 보면 우리 팀이 초반에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가 후반에 치고 올라와서 4쿼터에 역전하는 경기가 많았습니다. 기본적으로는 호영이, 주성이 같은 베테랑들이 후반에 투입된 효과가 있었지만, 그 전에 어리고 젊은 선수들이 경기 분위기와 팀 분위기를 확실히 만들어간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죠.

팀 분위기를 잘 만드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시즌이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경기가 다 끝난 뒤에도 선수들이 12시까지 남아서 슈팅 훈련을 하더라고요. 팀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진 거죠. 경기장 내에서 팀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경기장 밖에서 드러나는 팀 분위기는 더 중요해요. 팀 스스로 먼저 흔들리지 않고 좋은 분위기를 잘 만들어간다면, 경기장에서는 어떤 팀과 맞붙어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저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일본에서 깨달으신 부분을 실천에 옮기고 좋은 결과물을 얻었으니, 감독님 스스로도 자신감과 확신을 많이 얻으셨을 것 같습니다.

이: 네, 그 시즌을 치르면서 저 스스로도 제가 그동안 잘못 생각해왔던 부분을 많이 확인하고 깨달았어요. 가장 확신을 가지게 된 부분이 선수를 쓸 때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고 써야겠다는 부분입니다. 선수의 단점을 먼저 생각하고 코트에 세우면 결국은 선수의 단점만 자꾸 보이고 그 선수를 교체시킬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장점을 보고 선수를 활용하면 단점이 있어도 그 장점을 바라보면서 계속 쓰게 되죠.

물론 모든 상황에서 선수에 대해 인내할 수는 없어요. 선수가 정말 터무니없는 실수를 2개, 3개씩 연달아서 하면 그 선수는 경기에서 빼주는 게 맞습니다. 그 선수 스스로도 주눅이 들뿐더러 그게 다른 선수들까지 영향을 끼쳐서 팀 전체 분위기를 처지게 만들거든요. 그런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프로에 온 정도의 선수라면 웬만하면 기회는 몇 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점을 보면서요. 

그 기회도 어설프게 줘서는 안 돼요. 선수 스스로도 확실하게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줘야 해요. 그래야 나중에 그 선수의 플레이에 대해서 평가할 때 지도자들도 잘못된 부분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고, 선수 스스로도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선수가 스스로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고 열심히 농구를 한다면, 감독도 그 선수가 받을 기회를 책임져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기회를 주는 과정에서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고요. 물론 어떤 선수에게 기회를 줄 때 이것이 경기 전체를 그르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기회는 기회대로 확실히 줘야 해요. 물론 기회를 주는 원칙과 방식은 정확해야겠죠.

선수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는 것과 경기 내용을 충실히 가져가는 것. 감독으로서 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다는 게 정말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이: 그럼요. 그게 제일 힘들어요. 사실 그런 상황에서는 저도 항상 머리가 복잡해요.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래요. 하지만 정해진 원칙과 약속이 있으니 일단 그냥 가는 겁니다. 무엇보다 구단에서 제 방식에 대해 확실한 지지를 주시니까 과감하게 할 수 있는 것이고요. 심리적으로 쫓기고 초조함을 느끼면서 팀을 끌고 가야 한다면 사실 감독이라는 일은 정말 못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서 감독은 정말 쉽지 않은 직업인 것 같습니다. 한 팀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중간에서 많은 것들을 조율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자리가 감독이라는 자리 같거든요. 위로든 아래로든 말이죠.

이: 맞아요. 그래서 저는 코치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많이 해달라고 늘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많은 코치들에게 많은 권한을 주고요. 저는 과거처럼 코치들이 감독 옆에서 뒷짐 지고 있는 상황을 싫어해요. 그래서 우리 팀은 코치들이 자신이 맡은 부분에서 선수들을 알아서 지도하고 저는 5대5 농구에 대해서만 코칭을 해줘요. 5대5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전적으로 코치들의 몫인 거죠.

훈련장과 코트에서 감독이 하나하나 선수들에게 다 시키고 코치들은 그걸 보고만 있으면 코치들도 지도자로서 실력이 늘기 힘들어요. 코치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더 적극적으로 경기에 관여하고 감독과 소통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확실한 권한을 줘야 하죠. 코치들에게도 힘과 권한이 생겨야 선수들도 코치를 따르는 게 당연하고요.

그렇게 하고 나면 나머지 부분은 또 선수들의 몫인 겁니다. 우리 팀은 선수들에게 개인 연습시간을 최대한 많이 주려고 하니까요. 자유 뒤에 칼이 있다는 것, 자유를 얻으면 그만큼의 책임도 따른다는 것만 선수들이 인지하고 있으면 돼요. 프로선수라면 스스로 운동하고 경기할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게 당연한 것이고고 지도자들이 선수들의 몸 관리에 대해 하나하나 지적하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프로가 아니라 중고교, 대학교 같은 아마추어 레벨에서나 이뤄질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수들의 자기 관리하니까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최근 현장에 가면 지도자들이 요즘 선수들은 독종이 많지 않다는 얘기를 종종 하시더라고요. 이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세대나 선수들이 살아가는 시대의 분위기가 달라져서 그런 걸까요?

이: 세대가 다른 거죠. 지금 선수들한테 ‘우리 때는 그랬어’라고 말하면서 운동을 시키고 요즘 선수들은 다들 게으르고 독한 선수들이 없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봐요. 그에 앞서 지도자라면 자신이 20대일 때의 사고 방식과 요즘 20대 선수들의 사고 방식을 비교해보고 그 차이를 고민해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만약 독한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는 당연히 성공하겠죠.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닌 선수라면 감독이 요즘 선수들의 달라진 사고 방식에 맞춰가는 게 옳다고 봐요. 환율이나 금리도 예전이랑 너무 다른데 선수라고 같을까요. 지도자들도 선수들의 달라진 생각에 맞추면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영리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전체적으로 봤을 때 예전 선수들에 비해서 요즘 선수들이 훈련량이 적은 것은 사실이에요. 그건 인정해야겠죠. 하지만 그만큼 요즘 선수들은 코트 안에서든 밖에서든 개성이 강하고 사고 방식이 자유롭고 자기 표현을 잘하잖아요. 그러면 지도자도 거기에 맞춰서 같이 움직여줘야 합니다. 물론 선수가 자기 개성을 드러내고 표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도를 지나쳐서 팀에 민폐를 끼칠 정도라고 하면 자제를 시켜야겠죠.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선을 넘지 않는다는 한 안에서 지도자들이 선수들의 개성을 인정해주고 잘 끌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시 DB 이야기를 좀 더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DB에 온 뒤 맞이한 첫 두 시즌과 올 시즌은 상황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름값이 있는 선수들이 오면서 팀 성적에 대한 팬들과 주변의 기대가 많이 커졌는데요, 감독 입장에서는 시즌을 준비하고 구상하는 과정도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저는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어요. 김종규라는 선수를 데려왔다고 해서 지금 우리 팀이 마냥 좋아하면서 배가 부를 수는 없는 상황이에요. 벤치가 많이 약해졌잖아요. 지난 두 시즌 동안 모든 팀들이 우리를 상대하기 까다로워했어요. 매 경기에 10명씩 나가서 뛰어다니니 다들 우리 팀을 힘들어했죠. 지금은 그런 식으로 팀을 운영하기 어려워요. 가뜩이나 벤치가 약해졌는데 (허)웅이, (김)현호, (윤)호영이가 부상으로 빠지니까 더 힘들어졌죠.(21일 KT전에서는 김민구마저 무릎 부상을 당했다.)

사실 지금에 와서는 김민구와 김태술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름값 있었던 선수들이니 역시 잘한다고 말하지만, 처음에는 둘을 영입한 것에 대해 주변에서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선수로서 다 끝난 친구들을 왜 데려오냐고 했었거든요.

하지만 영입 당시에 저는 민구와 태술이는 우리 팀에 오면 제가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기본적으로는 태술이와 민구의 시장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으니 가능했던 영입이지만, 저 스스로는 둘 모두 저와 함께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죠. 저는 둘이 어떤 스타일의 농구를 하고, 어떤 플레이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제가 둘의 약점을 어떻게 막아주고 보완해주면 되는지 어느 정도 생각해둔 부분이 있었거든요.

태술이는 KGC인삼공사부터 같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민구도 대표팀에서 지도를 해봤기 때문에 어떤 선수인지 이미 잘 파악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또 잘하니까 밖에서는 이름값 있는 친구들이었으니 잘하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보는 시선도 있더라고요. 밖에서는 좋은 얘기를 절대 안 해주는 것 같습니다.(웃음)

어찌됐든 DB는 지금 상위권에 랭크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DB는 당초 감독님 스스로 구상하셨던 것보다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봐도 될까요?

이: 그럼요. 지금은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잘 하고 있어요. 사실 우승에 대한 이야기를 저나 선수들이나 몇 번 언급했지만 그건 정말 질문이 나오니까 형식적으로 하는 답변이에요. 저희가 개막 초반에 연승하면서 1위 달리고 그랬잖아요. 사실 우리 스스로는 보너스라고 생각했어요. 그 정도 페이스는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여전히 불안요소가 많아요. 일단 선수층이 얕아서 좋은 분위기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 종규를 포함해 모든 선수가 다 모여서 운동한 시기가 다른 팀에 비해 늦었기 때문에 특히 수비적으로 손발을 맞춰가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어요. 저희가 모든 선수들이 다 모여서 운동을 했던 시점이 개막을 앞두고 대만 전지훈련을 했을 때였는데, 사실 저는 그때 올 시즌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감독은 누구보다 자신이 맡고 있는 팀의 불안요소와 약점을 잘 알아요. 그걸 밖으로 얘기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저는 정규리그는 초반에 5할 승률 이상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히 같아요. 3라운드 정도가 되면 선수들의 호흡이 맞아가고 (두)경민이가 복귀하니 좀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죠. 그런데 개막 초반에 예상 외로 오누아쿠가 만들어내는 수비 효과가 컸고 종규가 골밑에서 리바운드까지 워낙 잘 잡아주니 경기력이 좋았어요. 물론 그게 결국 오버페이스로 이어져서 지금 호영이는 물론이고 (허)웅이, (김)현호가 이탈해 있고 종규도 뒤꿈치 부상을 안고 있죠. 그래도 지금 몇 경기 째 선수들이 위기를 잘 넘겨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확실히 높게 가고 있어요.

지금은 또 걱정되는 게 무엇이냐면 선수들이 다들 돌아왔을 때에요. 선수들이 돌아오면 돌아오는 대로 다시 또 호흡을 맞춰야하거든요. 사람들은 선수들이 복귀한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기대를 가져요. 호영이나 웅이가 복귀하면 그만큼 팀이 더 강해질 거라고 생각하죠. 그게 당연해요. 하지만 실제로는 또 그렇지 않아요. 손발을 다시 맞춰야 하니까요. 그래서 지금 승수를 벌 수 있을 때 더 벌어야 하는 거예요. 부상자들이 돌아왔을 때 어떤 호흡이 나올지는 또 알 수 없거든요.

시즌 중에 경기를 치르면서 손발을 맞추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사실 제일 어려운 일이에요.

그런데 올 시즌부터 프로농구 일정의 형태가 좀 바뀌었습니다. 주중 경기가 줄어들고 주말 경기가 늘어나면서 팀마다 5-6일씩 쉬는 상황이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정규리그 일정의 변화가 손발을 맞출 시간이 필요한 DB 입장에서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감독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이: 분명 도움이 되죠. 달라진 일정 덕분에 팀 훈련을 할 시간이 있고 선수들이 충분히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어요. 그리고 경기는 몰아서 연속으로 하고요. 다만 이런 형태의 일정은 장단점이 있어요.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오래 쉬고 경기를 치르면 그 경기 내용이 정말 안 좋더라고요. 쉬는 동안 경기 감각이 떨어진 거죠. 대학리그가 끝난 상황에서 대학 팀들과 연습경기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고민이 많아요.

다른 팀 감독님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시는 걸 자주 들었습니다. 긴 휴식일이 주어졌을 때 가져가야 하는 훈련 방식이나 훈련 내용에 대해서 다들 고민이 정말 많으시더라고요.

이: 저뿐만 아니라 모든 감독들이 고민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다음 시즌에도 올 시즌 같은 일정이 유지된다고 봤을 때 좀 다르게 팀을 운영할 생각이긴 해요. 지금은 일단 이런 저런 방식으로 휴식기를 보내보면서 제일 나은 걸 찾아가는 거죠. 우리 팀을 포함해서 각 팀에서 다양한 아이디어와 시도가 있을 것이고 거기서 괜찮은 팀 훈련 방식이 분명 나올 거예요. 사실 우리도 고민이 정말 커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긴 휴식일을 보내고 있는데 어떻게 제일 좋은 건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지금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고 봐야죠.

 

이번 시즌이 계약 마지막 시즌이기도 합니다. 성적에 대한 압박감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이: 당연히 있죠. 솔직히 첫 두 시즌보다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예요. 스스로 느끼는 압박감이 전에 비해 두 배, 세 배 정도는 심한 것 같아요. 주변의 지인들은 전에도 감독 그만두고 쉬어봤는데 무섭냐고 말하기도 하는데, 쉬어봤고 그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기 때문에 압박감이 더 심한 것 같기도 해요.

야인으로 계실 때 어떤 기분을 느끼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 감독을 그만두고 처음에는 지인들의 영향을 받아서 일본으로 건너갔어요. 그때만 해도 ‘언젠가 한국 무대로 돌아갈 수 있겠지’하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갈수록 반신반의하게 되더라고요.

일본 프로농구의 도시바라는 팀에서 3개월 동안 인스트럭터로 있었고 이후에도 일본에서 시간을 정신없이 보냈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도 한국에서 별다른 연락이 없더라고요. 대표팀 감독을 하고 싶어서 공모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기도 했는데, 그때부터는 제가 어떤 팀에도 못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심적으로 두려움이 많이 커졌었어요. 특히 대표팀 감독직에 공모했을 때는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다른 나라 대표팀 경기를 많이 관전하고 유로바스켓 코칭 스쿨 캠프도 다녀오면서 준비도 많이 했었기 때문에 타격이 많이 컸었죠.

여자 농구대표팀 감독직 제안도 왔었는데, 자신이 없었어요. 사람들은 어차피 같은 농구인데 그냥 하면 되지 않냐고 했지만 남자 농구와 여자 농구를 지도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렇게 고사하면서 다른 연락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데, 그러다가 DB로 오게 된 거죠.

그래서 DB로 올 때는 걱정 반, 두려움 반이었어요. 거의 2년 반을 KBL에서 떠나 있었던 거잖아요. 그 기간 동안 또 저는 프로 팀이 아니라 국가대표 팀 지도자를 하려고 준비를 했었고요. 일본에 있는 동안 KBL 경기는 거의 못 봤기 때문에 리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국가대표 팀을 준비하다가 프로로 오는 바람에 그때는 그때대로 두려움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올 시즌 DB의 목표 성적은 어느 정도라고 봐야 할까요?

이: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정규리그는 일단 6강만 가는 거예요. 정규리그 목표는 6강 진입입니다. 딱 6강에만 들어가자. 그 정도예요. 승부는 그 다음에 보자는 생각이에요. 우리 팀은 높이가 있고 어떤 팀이든 상대할 힘이 있고 플레이오프에서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여건이 되는 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솔직히 어디까지 갈지는 저조차도 아직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정규리그의 첫 번째 목표는 6강 진입이라는 거예요. 그 다음은 사실 어느 팀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아요. 선수들도 그럴 것이고 저 역시도 그 다음은 두렵지 않아요.

그 말씀을 우승 도전에 대한 자신감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이: 우승에 대한 자신이라고 말하기는 힘들고, 그냥 자신감이 있다는 정도로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아요.(웃음) 저희가 플레이오프에서 어디까지 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 생각해요. 호영이가 돌아오고 저희 팀의 모든 멤버가 다 모였을 때 팀 성적이 6강 안에만 들어가 있으면 플레이오프에서는 어떤 팀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아요.

KGC인삼공사 시절에 우승을 경험해보셨으니, 이번에 그 경험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실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감독들이 그래요. 우승에 대해 생각하고 꿈꾸죠. 자신이 감독으로서 정상에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은 모든 감독들이 하는 것이고 저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그런 생각을 항상 하고 그런 목표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그 목표를 이룰 방법을 찾으면서 꿈을 쫓아가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동시에 지금이 참 행복하다는 생각도 해요. 코트에서 수트를 입고 선수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해요. 전에 감독을 그만 두고 한창 쉴 때 코트에서 선수들을 지휘하는 상상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아마 지금 감독을 하지 않는 분들께 물어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실 거예요.

올해로 감독 10년 차가 되셨습니다. 앞으로 20년 차까지 감독 생활을 해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이: 어휴, 아니요. 이 자리는 오래 못하는 자리예요. 오래하면 병 나요. 감독이라는 건 짧고 굵게 해야 하는 직업인 것 같아요. 물론 지금 시점에서 감독을 더 오래하고는 싶지만 너무 오래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유)재학이 형이 대단한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앞서 언급하셨지만 두 분은 농구대표팀에서 감독과 코치로 한솥밥을 먹기도 했었습니다. 평소 친분이 있으시기도 하고요. 감독님이 보시는 유재학 감독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이: 재학이 형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형이자 멘토예요. 비시즌 때 만나서 같이 술도 마시고 농구에 대한 조언도 구하죠. 농구 얘기는 재학이 형과 제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대표팀에 코치로 갔던 것도 재학이 형이 가진 것들을 배우고 싶어서였어요.

유재학 감독님은 ‘만수’라는 별명도 있으시잖아요.

이: 그것도 제가 지어준 별명이예요.(웃음) 재학이 형은 별명 그대로인 사람이에요. 농구에 대해 아는 것도 많고 수도 많죠. 특히 상황 판단이나 임기응변이 정말 빨라요. 경기 상황에 따른 판단과 태세 전환이 정말 빠르고 저도 그런 부분을 재학이 형과 함께 대표팀에 있으면서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사실 재학이 형뿐만 아니라 김인건 선생님, 김동광 감독님, 정덕화 감독님, 유도훈 감독님한테서도 많이 배웠죠. 저는 코치 생활을 정말 오래했으니까요. 코치를 오래하다 보니 여러 감독님들을 곁에서 지켜보고 그들의 장점을 배우고 제 것으로 만드는 기회가 많았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코치 때 밑에서 배우고 경험하고 제 것으로 만들어뒀던 걸로 먹고 사는 것 같기도 해요.

지도자 생활을 오래하시면서 만들어진 감독님만의 지도 철학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이: 선수들과 더불어서 믿고 가는 것이죠. 그게 가장 중요해요. 물론 감독과 선수 사이에 신뢰를 쌓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죠. 하지만 감독이 선수에게 먼저 다가가 믿음을 준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감독과 선수가 서로를 믿고 가지 못한다면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해요. 서로 간에 신뢰가 있어야 서로에게 원하는 바를 확실하게 이야기하면서 함께 갈 수 있다고 봅니다.

먼 훗날 감독을 그만두셨을 때 어떤 지도자로 남고 싶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이: 특별히 어떤 지도자로 남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없어요. 스스로가 어떤 감독으로 기억될지는 감독이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감독에 대한 기억과 평가는 그 당시 함께 했던 관계자들이나 한 팀에 있었던 선수들이 해야 할 몫이에요.

다만 굳이 꼽자면 선수들이 DB에서 저와 함께 했을 때가 농구가 정말 재밌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딱 그 정도면 돼요. DB에서 이상범 감독과 농구할 때 즐겁게 농구했었다는 말 정도만 들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