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동환 기자] 꼭 일주일이 지났다.

11월 11일 오전 10시는 KBL 역사에 특별한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현대모비스와 KCC의 블록버스터 트레이드가 마침내 세상에 알려졌으니 말이다. (이대성, 라건아 <-> 김국찬, 박지훈, 김세창, 리온 윌리엄스)

트레이드 당일, D-리그 개막일 현장에서 만난 동료 기자들 중에서도 이 트레이드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이 흘렀다. 농구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현대모비스와 KCC의 트레이드는 이제 '뚜껑을 까본' 것을 넘어 양 팀에 새로운 고민을 안기기에 이르렀다.

트레이드 후 7일. 현대모비스와 KCC에는 어떤 것들이 남았을까. 첫 번째 시간은 현대모비스에 대한 이야기다.

 

유재학 감독 “탱킹은 절대 없다”

"대충한다고요?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유재학 감독은 기자들 앞에서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지도자다. 경기 전 라커룸에서 만났을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질문을 던진 사람이 무안해질 정도로 단답을 내놓을 때도 있다. 어떤 질문에도 침착하게 꼭 필요한 이야기만 꺼낸다. 경기에 영향을 미칠만한 변수나 전략에 대해서는 웬만하면 말을 아낀다. 유재학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다.

그런 유재학 감독이 이례적으로 어조를 높인 때가 있었다. 16일 울산에서 KCC와 경기를 앞두고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현대모비스 팬들은 이대성과 라건아를 한꺼번에 떠나보낸 이번 트레이드에 대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하지만 '리빌딩'이라는 방향성에 대해서만큼은 대체로 지지를 보내고 있다. 때문에 그들 사이에서 최근 '탱킹'이라는 두 글자가 언급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유재학 감독과 대화를 나누던 중 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한 기자가 "팬들 중에 현대모비스가 올시즌은 적당히 보내고 다음 시즌을 변화의 진정한 시작점으로 가져갈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라는 말을 꺼냈는데, 그 말을 들은 유재학 감독은 평소에 비해 확연히 흥분한 어투로 대답을 쏟아냈다.

"대충이요? 그런 게 어딨어요."

"시즌을 적당히, 대충 치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건 절대 없어요. 목표는 트레이드 전이나 후나 똑같습니다. 6강 진입이에요."

일부 팬들 사이에서 피어오르던 '현대모비스 탱킹설'이 제대로 반박당하는 순간이었다.

 

현대모비스는 여전히 좋은 성적을 원한다. 승리는 10년 넘게 그들이 지켜오며 체득한 DNA다. 그들은 패배하는 리빌딩을 원하지 않는다. 승리와 리빌딩을 동시에 잡는 것. 트레이드 후 현대모비스가 바라보고 있는 목표다.

그렇기에 요즘 현대모비스는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리빌딩을 진행하며 성적도 끌어올리고 싶은데, 트레이드 후 치른 첫 경기에서 함지훈이 예기치 못한 부상을 당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14일 LG전이었다. 경기 중 통증을 호소한 함지훈은 왼쪽 다리를 플로어에 딛지 못하고 부축을 받으며 코트를 떠났다.

정밀검진 결과 함지훈은 무릎 근육이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3주에서 6주 정도 휴식이 필요하다. 지난 시즌 주축선수들의 잇따른 부상에도 굳건히 코트를 지켰던 함지훈이다. 그래서 유재학 감독은 걱정이 더 많아보였다.

"지훈이는 다쳐버렸고 (양)동근이는 체력적으로 현재 상황을 힘들어하고 있어요. 정말 쉽지 않습니다. 지금 꽤 어려운 상황이긴 해요. 머리가 아픕니다." 유재학 감독이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약 2주 정도 경기 없이 쉴 수 있는 기간이 곧 찾아온다는 것.

현대모비스는 11월 22일 SK전을 치른 후 12월 6일 KGC인삼공사전까지 약 2주 정도 경기 없이 휴식기를 가지는데, 이 기간을 함지훈의 회복 기간과 이적생들이 손발을 맞추는 시기로 잡겠다는 계획이다.

“지훈이의 회복이 빠르게 진행되면 12월 6일 경기부터 곧바로 복귀할 수도 있습니다. 좀 늦어지면 그것보다 일주일 정도는 더 늦어질 것 같아요.”

“트레이드를 했으니 휴식기 후에 팀 컬러는 당연히 바뀔 예정입니다. 팀 컬러 변화와 세대교체를 굳이 시즌이 다 끝나고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리빌딩의 중심은 김국찬: 유재학 감독이 눈여겨본 보배

지난 주말 KBL 팬들 사이에서 가장 핫(hot)했던 팀은 서울 삼성이었다. 주말 2연전에서 선두권의 전자랜드, KCC를 잇따라 격파한 삼성은 어느덧 시즌 승률을 5할 위로 끌어올리며(8승 7패) 리그 5위에 안착했다.

주말동안 가장 이목을 끈 팀이 삼성이었다면, 가장 화제성이 높았던 선수는 현대모비스의 이적생 김국찬이었다.

사실 현대모비스와 KCC의 트레이드가 처음 알려졌을 때, 많은 이들이 이 트레이드의 균형이 맞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럴 만 했다. KCC가 내준 김국찬, 박지훈, 김세창, 리온 윌리엄스가 한계가 확실해보이거나 아직은 기량의 여물지 못한 미완의 대기에 속하는 선수들이었다. 반면 현대모비스가 내준 이대성과 라건아는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국가대표 선수들이었다.

사실 누가 봐도 균형이 전혀 맞지 않아 보였던 이 트레이드에 대한 평가를 바꿀 수 있는 선수는 김국찬이었다.

2017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5순위로 KCC 유니폼을 입은 김국찬은 사실 유재학 감독이 지난 시즌부터 눈독을 들여온 선수였다는 후문이다.

“사실 감독님은 김국찬 선수를 지난 시즌부터 눈여겨보셨어요.”

KCC전을 현장에서 함께 지켜보던 현대모비스 관계자가 귀띔했다.

“볼 없이 가져가는 움직임이 너무 좋은 친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죠. 슛 터치가 너무 좋아서 무게 중심을 잃어도 어떤 상황에서든 슛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도 얘기하셨었어요. 실제로 우리 팀에 와서 하는 걸 보니 정말 새로운 에이스가 탄생한 느낌이네요.”

실제로 요즘 유재학 감독은 김국찬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라며 김국찬을 팍팍 밀어주고 있다.

“김국찬은 앞으로 더 키워가고 싶은 선수입니다. 더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플레이했으면 좋겠어요.”

유재학 감독이 김국찬에게 요구하는 것은 슈터의 역할이 아니다. 그는 김국찬이 현대모비스의 공격을 이끌어가는 에이스가 되길 바라고 있다. 요컨대 김국찬은 앞으로 현대모비스에서 ‘자유이용권’을 부여받을 선수인 셈이다.

“슛만 던지는 슈터 혹은 포워드 타입의 선수보다는 2대2 플레이까지 아우르는 타입의 선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국찬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기량이 되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국찬이가 공격에서 많은 옵션을 적극적으로 가져갔으면 좋겠습니다.” 유재학 감독의 말이다.

그리고 17일 열린 오리온과의 경기에서 김국찬은 유재학 감독의 기대에 보란 듯이 보답했다. 전날 KCC전에서 20득점을 올리며 세간을 놀라게 햇던 김국찬은 이 경기에서는 3점슛 4개 포함 22점을 쏟아 부으며 트레이드 후 현대모비스의 첫 승을 이끌었다. 야투는 16개 던져서 8개 성공. 실책은 2개에 불과했다. 효율도 무척 높았다.

 

현대모비스는 향후 서명진, 김세창을 김국찬과 함께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삼을 계획이다.

16일 KCC전에서 막판 황당한 슛 미스를 쏟아냈던 서명진은 17일 오리온전에서는 3점슛 3개 포함 15점을 기록하며 김국찬과 함께 팀 승리를 이끌었다. 유재학 감독은 KCC전을 아쉬운 역전패로 마무리한 후 “막판에 명진이가 쉬운 슛을 놓치고 자유투도 못 넣은 것이 아쉽지만 어린 선수니 괜찮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며 서명진을 격려하기도 했다. 190cm의 신장에 이제 데뷔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한 고졸 신인.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트레이드로 합류한 신인 가드 김세창에 대해 유재학 감독은 좀 더 지켜보고 싶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입장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역시 기대감이다. 김세창은 함지훈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16일 KCC전부터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고 경기에도 조금씩 나서고 있다. 17일 오리온전에서는 데뷔 득점도 올렸다.

“사실 김세창이라는 선수에 대해 더 완벽하게 파악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훈련하는 걸 보니 센스가 좋은 선수라는 건 확실히 알 것 같아요. 김세창의 출전 시간이 늘어날 경우 (양)동근이가 출전 시간을 관리받을 것입니다.” 유재학 감독의 말이다.

 

저무는 양동근-함지훈의 시대, 그리고 이종현

“(김)시래 이후에 이런 큰 트레이드는 처음이네요.”

기자들의 질문에 유재학 감독이 2013년의 일을 떠올렸다.

현대모비스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트레이드를 단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특히 2003-2004시즌 중 단행한 트레이드는 현대모비스의 미래를 바꾼 트레이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하위권에 머물고 있던 현대모비스(당시 모비스)는 외국선수 R.F. 바셋과 2004년 드래프트 7순위 지명권을 KCC에 넘기고, 무스타파 호프와 2004년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받아오는 빅딜에 합의했다.

바셋은 당시 리그 최고급 센터로 군림했던 외국선수. 그런 바셋을 포기하면서 현대모비스는 향후 10년 넘게 팀을 이끌 초대형 유망주를 얻어왔다. 이제 그 선수는 현대모비스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며, KBL 역대 최고의 선수라는 평도 듣고 있다. 양동근이다.

2012-2013시즌 중에는 9년 전과 완전히 반대의 목적을 가지고 깜짝 딜을 단행했다.

당시 양동근, 함지훈을 앞세워 우승에 도전하던 현대모비스는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던 외국선수 로드 벤슨을 트레이드로 LG에서 영입했다.

이목을 끈 것은 벤슨을 영입한 대가였다. 트레이드가 처음 공개된 당시(2013년 1월 28일)만 해도 현대모비스가 벤슨의 대가로 LG에 내준 것은 외국선수 위더스와 향후 3년간의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중 1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현대모비스가 그해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직후 트레이드의 진짜 내용이 비로소 세상에 공개됐다. 현대모비스가 벤슨의 대가로 LG에 넘겨주기로 한 카드에 2012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신인 김시래가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LG는 현대모비스의 향후 3년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중 1장과 김시래 중 하나를 선택해 가져올 수 있었다. LG의 선택은 그해 챔피언결정전에서 인상 깊은 활약을 펼친 유망주 김시래였다. 지난 5월 LG와 재계약에 합의한 김시래는 아직도 LG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로 꾸준히 활약하고 있다.

앞선 두 건의 트레이드도 리그에 상당한 충격을 안겨줬지만, KCC와 단행한 이번 트레이드도 그 여파가 더 크면 컸지 결코 작지 않았다.

특히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이대성과 현대모비스에서 상징성이 큰 선수였던 라건아를 동시에 떠나보낸 구단의 결정에 놀라고 분노한 현대모비스 팬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후문이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트레이드가 발표된 후 구단 사무실로 정말 많은 연락이 왔었다고 전했다.

“트레이드와 관련해서 구단에 전화를 주신 울산 팬분들이 정말 많았어요. 화가 나실 수밖에 없죠. 충분히 이해가 돼요.”

트레이드 후 공개된 인터뷰를 통해서 이미 잘 알려졌지만, 사실 유재학 감독은 시즌 초부터 양동근-함지훈의 노쇠화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둘의 뒤를 이어줄 만한 젊은 자원은 너무 부족했다. 미래는 불투명한데 당장의 경기력은 경기력대로 불안했다. 이런 상황에서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동근이, 지훈이는 요즘 보면 1년마다 몸 상태나 움직임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게 확연히 보여요. 어쩔 수 없는 거죠. 정말 눈에 보이게 확 내려가더라고요.”

지난 10월 13일 삼성전을 앞두고 유재학 감독이 꺼냈던 말이다.

현대모비스 입장에서는 올시즌이 리빌딩을 추진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었다. 시즌이 끝나고 이대성이 FA가 되면 그를 트레이드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라건아는 2020-2021시즌이 끝나면 추첨을 통해 다른 팀으로 갈 수도 있다. 카드의 균형이 안 맞아보였던 트레이드를 현대모비스가 팬들의 반발을 감수해가며 단행했던 이유다.

 

앞으로 현대모비스 리빌딩의 키가 되어줄 선수가 하나 더 있다. 이종현이다.

201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현대모비스에 지명된 이종현은 한국 농구의 빅맨 계보를 이어갈 초대형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계속된 부상으로 아직 프로 무대에서는 날개를 펴지 못하고 있다. 드래프트 동기이자 절친한 사이인 최준용(SK), 강상재(전자랜드)가 KBL를 대표하는 스타로 올라선 것을 생각하면 더 아쉽다.

2018-2019시즌 중에는 왼쪽 다리의 전방십자인대와 슬개건이 동시에 파열되며 일찍 시즌을 마감했다. 부상 후 약 1년. 지금 이종현은 복귀만을 바라며 재활에 매진 중이다.

이종현의 복귀 시점은 올시즌 중이 될 수도 있다. 혹은 아예 다음 시즌을 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은 그 ‘때’가 올해가 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게 유재학 감독의 생각이다.

“급하게 돌아왔다가 또 다치면 종현이는 이제 커리어가 위험해질 수 있어요.” 유재학 감독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종현은 힘든 재활 기간을 무척 의욕적으로 보내고 있다는 후문이다. 유재학 감독도 “정말 열심히 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 비시즌 중에는 현대모비스의 연습경기 현장을 찾아 동료들의 플레이를 지켜보기도 했다. 그때도 이종현의 양 무릎에는 아이싱이 돼 있었다. 재활 훈련을 진행하며 무릎 강화 운동에 힘을 쏟고 있다는 증거였다.

“종현이 본인이 복귀 의지가 워낙 강해요. 그래서 아직은 섣불리 운동을 격하게 하면 안 된다고 얘기해줬죠. 하지만 본인이 워낙 간절한 상태라 의사 소견을 받아보니, 이제 2군에서 운동 정도는 해보라고 얘기했다더라고요. 하지만 지금 시점에 운동을 제대로 하려는 건 본인 욕심에 불과한 거죠.”

“십자인대와 슬개건을 동시에 다쳤잖아요. 십자인대부터 완벽하게 회복해야 슬개건도 건강하게 회복이 돼요. 이런 걸 보면 아직 어리긴 어린 것 같아요.”

“D-리그요? 절대 못 뛰죠. 아직 좌우 움직임도 함부로 못 가져가는 상태인 걸요.” 유재학 감독의 설명이다.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이종현에게는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 1994년생인 그는 아직도 만 25살의 젊은 선수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군문제도 해결했다.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그에겐 남은 시간이 많다.

이종현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빠른 복귀가 아닌 완벽한 복귀일 것이다. 지난주 현대모비스가 블록버스터 트레이드를 단행하면서 이종현이 복귀를 서두를 이유는 더더욱 없어졌다.

=> ②편에서 계속됩니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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