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부산, 박진호 기자] WKBL 최고령 선수인 한채진이 다시 한 번 베테랑의 품격을 자랑했다.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의 한채진은 3일 부산 BNK 센터에서 열린 하나원큐 2019-20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 1라운드 부산 BNK 썸과의 경기에서 40분을 모두 소화하며 3점슛 4개 포함 19점 5리바운드 4스틸로 맹활약했다. 한채진의 활약 속에 신한은행은 BNK를 73-68로 꺾었다.

사실, 이 경기는 한채진에게 특별했다. 

2003 WKBL 신입선수선발회에서 1라운드 전체 5순위로 신한은행의 전신인 현대 하이페리온에 지명됐던 한채진은 2008-09시즌, 금호생명으로 팀을 옮겼다. 이후 금호생명, KDB생명, 연맹 위탁 운영 상태의 OK저축은행까지 팀의 운명과 함께했다. 

팀을 대표하는 선수였고 주장도 역임했다. KDB생명이 농구단 운영을 포기했을 때, 선수단을 대표해 인터뷰에 나선 것도 한채진이었고, 모범상을 수상한 WKBL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새 구단의 인수를 눈물로 호소한 것도 한채진이었다.

OK저축은행 시기를 거친 팀은 BNK의 창단으로 봄날을 맞이했다. 하지만 한채진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새롭게 리빌딩에 나선 BNK에서 한채진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획득한 후, 사인 앤드 트레이드 형태로 팀을 떠나게 됐고, 친정인 신한은행으로 12년 만에 복귀했다. 그리고 이날 경기에서 옛 팀을 상대하게 됐다.

한채진이 자신의 전성기를 오롯이 쏟아 부었던 이들을 상대로 경기를 치렀던 것은 이적 이전의 신한은행 시절이 마지막이었다. 2008년 2월 16일 이후 4279일(만 11년 8개월 18일)만에 코트에서 적으로 만났다. 그리고 리그 최고 베테랑의 관록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한때 17점차까지 앞서던 간격이 좁혀진 4쿼터. 경기 종료 3분을 남기고 BNK가 5점차까지 추격했지만, 이어진 반격에서 한채진이 측면에서 3점슛을 성공하며 사실 상 승부를 결정지었다.

한채진은 “BNK라서가 아니라, 휴식기 이전 마지막 경기인 만큼 꼭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그런데 전날 연습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막상 코트에서 상대를 마주하니까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신한은행에서 잘 적응해서 행복하게 농구하고 있다. 동생들도 며칠 전부터 나를 위해 BNK 전을 꼭 이기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 하더라. 팀에 아픈 선수들이 많은데, 나도 ‘이 경기는 아파도 핑계대지 말고 다 뛰라’고 말했다”며 웃었다.

한채진의 으름장(?) 때문인지 몰라도, 에이스 김단비는 이번 시즌 가장 긴 시간인 36분 31초를 뛰었고, 또 다른 베테랑 김수연도 30분 가까이 활약했다. 한채진과 함께 KDB생명을 대표했던 선수 중 한 명인 이경은도 20분 이상을 소화했다.

결국 정든 팀을 상대로 12년 만에 코트 반대편에서 볼을 잡았던 한채진의 '특별한 날'은 자신의 올 시즌 최다득점은 물론, 팀의 승리와 함께 해피앤딩으로 끝을 맺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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