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정진경 칼럼니스트] 세계 여자농구 최고의 리그인 미국 WNBA 시즌이 종료됐다.

박지수가 한국인 최초로 WNBA 플레이오프 무대에 올라 예년보다 더 관심을 가졌던 이번 시즌은 워싱턴 미스틱스가 준우승을 차지했던 지난해의 아픔을 딛고 정상에 오르며 막을 내렸다. 9월 11일부터 10월 10일까지 정확히 한 달을 채웠던 WNBA 2010시즌을 돌아봤다.

창단 첫 우승, 워싱턴 미스틱스
정규리그 우승팀 워싱턴 미스틱스가 챔피언에 올랐다. 현지시간 지난 10월 10일 치러진 WNBA 파이널 5차전에서 워싱턴은 코네티컷 선에 89-78로 승리를 거두고, 3승 2패로 챔피언에 올랐다.

1998년 팀을 창단한 후 처음으로 차지한 정상이다. 지난 해 창단 후 처음으로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시애틀의 벽에 막혀 준우승에 그쳤던 워싱턴은 파이널 2회 진출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위싱턴의 수장, 69세의 할아버지 감독 마이크 티보(Mike Thibault) 역시 처음으로 우승컵을 안았다.

WNBA에서만 17시즌 째 지휘봉을 잡고 있는 티보 감독은 작년까지 무려 13번이나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지만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는데, 파이널에 4번 도전한 끝에 정상에 섰다. 공교롭게도 워싱턴이 파이널에서 꺾은 팀은 티보 감독이 워싱턴에 부임하기 전, 10년(2003~2012년)간 이끌었던 코네티컷이었다.

티보 감독의 워싱턴은 시즌 내내 탄탄한 공, 수 조직력과 주전과 벤치멤버의 확실한 역할 분담, 백업 선수가 누가 나와도 빈틈없는 활약을 만들어 내며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파이널 MVP는 엠마 미세먼(Emma Meesseman)에게 돌아갔다. NBA 파이널에서 미국인이 아닌 선수가 MVP를 받은 것은 2010년 로렌 잭슨(Lauren Elizabeth Jackson) 이후 9년 만이며, 역대 2번째다.

WNBA 역사를 통틀어 미국인이 아닌 선수가 정규리그나 파이널에서 MVP를 받은 것은 미세먼 이전까지 로렌 잭슨(정규리그 3회, 파이널 1회)이 유일했다. 잭슨은 WKBL 2007겨울리그 당시 삼성생명 소속으로 활약하며 외국인선수상, 베스트5, 득점상, 블록상 등을 수상했고, WKBL 역대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56점, 금호생명 전)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신한은행에 막혀 우승에는 실패했다.

미세먼은 시즌 초반 벨기에 국가대표 일정을 소화하느라 뒤늦게 워싱턴에 합류해 정규리그는 총 23경기를 출장했고, 조금씩 플레이 타임을 늘려가며 자리를 잡았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총 9경기를 뛰며 평균 28.2분, 19.3득점, 5.6리바운드, 2.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특히 파이널 5차전에서 그의 활약은 MVP를 차지하기에 손색없었다. 팀 내 최다인 22점을 득점한 미세먼은 코네티컷에 끌려가던 팀이 경기를 뒤집는 순간에 결정적인 득점을 연달아 성공하며 흐름을 주도했다.

플레이오프에서 미세먼이 빛났지만 워싱턴의 중심을 잡았던 흔들림 없는 리더는 엘레나 델레던(Elena Delle Donne)이었다.

델레던은 시즌 초반부터 무릎 부상, 코뼈 부상, 허리 디스크 등으로 부상과 싸우며 무릎, 얼굴, 허리에 모두 보호대를 하고 경기를 치렀다. 하지만, 부상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트에 서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감을 보여줬다. 

델레던은 196cm의 장신으로 포워드와 센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만, 경기 운영 능력도 뛰어나다. 실제로 WNBA에 델레던의 포지션은 포워드 겸 가드로 등록되어 있다. 현역 WNBA선수이면서 NBA 워싱턴 위저즈의 코치인 가드 크리스티 톨리버(Kristi Toliver)까지 보유한 워싱턴의 경기 운영 능력이 다른 팀을 압도할 수 있는 이유다.

이번 시즌 정규리그에서 2점슛 51.5%, 3점슛 43.0%, 자유투 97.4%라는 놀라운 성공률을 기록하며 새로운 역사를 쓴 델레던은 2015년에 이어 두 번째로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도 평균 30.2분을 뛰며 16.9점, 6.6리바운드, 2.0어시스트의 기록을 남겼다. 

단판제의 긴장감, 플레이오프 1-2라운드
WNBA는 4강 플레이오프 이전까지 두 번의 플레이오프 라운드가 모두 단판제로 치러져 더욱 긴장감이 높았다. 

정규리그 5위 시카고 스카이는 8위 피닉스 머큐리를 제압했고, 7위로 플레이오프에 오른 디팬딩 챔피언 시애틀 스톰은 6위 미네소타 링스를 넘어섰다. 이들은 각각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 LA 스팍스와 역시 단판제의 플레이오프 2라운드를 치렀다.

LA 스팍스와 시애틀의 경기는 다소 싱거웠다. 지난 시즌 통합 MVP인 브리아나 스튜어트(Breanna Stewart)의 시즌 아웃과 ‘살아있는 전설’ 수 버드(Sue Bird)의 공백은 컸다. LA는 시애틀을 92-69로 이겼다.

LA가 손쉬운 승리를 거둔 반면 라스베이거스는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고 천신만고 끝에 플레이오프 3라운드로 진출했다. 93-92, 1점차의 역전승이었다.

시즌 전 ‘GM 서베이’에서 당당히 강력한 우승후보 1순위라는 평가를 받은 라스베이거스는 정규리그 때도 들쑥날쑥한 경기력과 부실한 조직력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시즌 초반, 상위권에 오르며 조금 더 나아지기를 기대했지만 아이자 윌슨(A'ja Wilson)과 리즈 캠베이지(Liz Cambage)라는 최강의 4-5번 조합을 끝내 살리지 못했다.

경기력 기복과 가드 라인의 불안한 운영 능력, 올해의 감독상 2회 수상자다운 해결책을 좀처럼 제시하지 못한 빌 레임비어(Bill Laimbeer) 감독의 지도력 등의 문제로 인해 라스베이거스는 오히려 시즌 막바지에 정규리그 1위 싸움에서 미끄러져 4위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내몰리기도 했다. 때문에 플레이오프에서도 언더독 반란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확실한 해결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중위권 팀들 중 가장 좋은 조직력을 갖추고 있던 시카고는 스테파니 돌슨(Stefanie Dolson)과 샤이엔 파커(Cheyenne Parker)가 오히려 라스베이거스의 최대 강점인 골밑에서 맹활약했고, 공수에서 팽팽한 승부를 이끌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분명 우위에 있었던 라스베이거스는 내외곽 조화를 이룬 시카고의 저력에 흔들렸고, 경기 종료 직전까지 2점차로 뒤진 채 공격권까지 내줘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 경기당 9.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한 코트니 밴더슬룻(Courtney Vandersloot)의 패스를 가로챈 데리카 햄비(Dearica Hamby)가 하프라인 부근에서 결정적인 역전 3점슛을 성공해 승부를 뒤집었다.

사실, 이 경기는 라스베이거스에게 운이 따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선, 햄비가 밴더슬룻의 패스를 가로챈 후 드리블 과정에서 사이드라인을 밟았다. 시카고의 볼이 선언되어야 했지만 심판은 이를 놓쳤다.

여기서 시도한 햄비의 3점슛도 정상적인 플레이는 아니었다.

햄비가 슛을 시도하던 시점에 시간은 5초 정도가 남아있었고, 골밑에는 노마크 찬스의 라스베이거스 선수가 위치하고 있었다. 당연히 패스를 통해 동점을 만들고 연장을 가는 게 정상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자신이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정신이 없었던 햄비는 이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볼을 뺏은 후 바로 슛을 시도했고, 이 슛이 림을 통과하며 자신의 인생경기를 만들었다.

정규리그 1-2위 팀의 무난한 승리 / 세미 파이널 

단판제로 진행되는 WNBA 플레이오프는 3라운드인 세미 파이널부터 5판 3승제로 바뀐다. 그리고 이 승부에서 이변은 없었다. 정규리그 1-2위를 차지한 워싱턴과 코네티컷이 LA와 라스베이거스를 격파하고 파이널에 올랐다. 코네티컷은 3연승, 워싱턴은 3승 1패로 시리즈를 정리했다.

코네티컷은 특유의 화끈한 공격력을 보여줬다. 

WKBL 경력자들인 엘리사 토마스(Alyssa Thomas), 존쿠엘 존스(Jonquel Jones), 쉐키나 스트릭렌(Shekinna Strickren)이 내외곽을 휘저었고, 공격형 가드 코트니 윌리엄스(Courtney Williams)의 감초같은 득점과 활약은 LA를 무장 해제시켰다.

LA는 올 시즌 목표가 리빌딩이었던 만큼 4강에 오른 결과에 대해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정말로 은퇴가 초읽기에 들어간 알라나 비어드(Alana Beard)의 대체자나 팀의 상징적인 존재인 캔디스 파커(Candace Parker)를 도울 수 있는 선수들을 찾아야 한다. 

오구미케 자매를 비롯해 첼시 그레이(Chelsea Gray) 등이 있지만, 정상에 다시 서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것이 더 필요해 보인다. 대형 포스트 플레이어를 보강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가 될 것 같고, 비슷한 사이즈의 선수들이 조금 더 스피드를 올려줘야 한다.

워싱턴 역시 1경기를 내줬지만 라스베이거스를 제압했다. 

정규리그와 비교해 본다면 오히려 경기 내용과 결과에서 라스베이거스가 나름 저력을 발휘한 시리즈였다. 그러나 올 시즌 워싱턴의 우승을 이끈 ‘MVP 듀오’ 델레던과 미세먼의 위력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포스트 플레이어의 신체조건에 가드의 기술과 스피드를 가지고 있는 델레던을 견제하기 위해 라스베이거스는 거의 모든 선수들이 트랩과 로테이션을 펼쳤다. 하지만 델레던은 이러한 상대의 수비를 잘 견디며 공격을 주도했고, 델레던에 대한 수비로 발생하는 빈 공간은 미세먼이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라스베이거스는 창단 2년 만에 세미 파이널에 진출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라스베이거스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결국 박지수를 향할 수 밖에 없다. 

박지수는 워싱턴과의 세미 파이널에 짧게 코트를 밟았고, 1차전에서 득점을 기록했다. 모두 한국인 최초의 WNBA 플레이오프 기록이다. 여전히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인만큼 발전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여전히 힘겨운 경쟁이 불가피하다.

햄비가 WNBA 최고의 식스맨으로 공인된 만큼, 박지수는 베테랑인 캐롤린 스워즈(Carolyn Swords)와 함께 켐베이지나 윌슨의 백업 포지션을 경쟁해야 한다.

다소 의외지만 레임비어 감독은 올 시즌 박지수보다 스워즈를 더 중용했다. 나는 물론, 라스베이거스의 경기를 지켜 본 국내의 모든 관계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박지수가 WNBA에서 많은 것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스워즈와의 경쟁에서 밀릴 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이번 시즌 WKBL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도 나타난다. 장신 선수가 절실했던 이번 드래프트에서 그 어느 팀도 스워즈를 선택하지 않았다. 스워즈는 198cm의 장신 센터다. 심지어 부상 선수가 나왔지만 대체 선수로도 스워즈는 선택되지 않았다. 

국내 지도자들은 팀에서 여러 역할을 해줘야 하는 외국인 선수의 가치를 떠나, 박지수를 상대로 한 일대일에서도 스워즈가 큰 강점이 없고, 오히려 열세일 것이라는 데에 대부분 의견을 같이 했다.

한 해외 칼럼니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레임비어 감독은 박지수의 가능성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나타내며 “박지수가 WNBA의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고 부딪히며 현재 경험을 계속 쌓으면서 25세~26세 시기가 되면 아주 좋은 선수로 성장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수는 다음 시즌에도 라스베이거스에 잔류할 경우 올 시즌과 비슷한 경쟁을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창단 첫 우승 경쟁에서 한 걸음 모자랐던 코네티컷
‘창단 후 첫 우승’이라는 워싱턴과의 공통과제를 안고 있던 코네티컷은 정규리그와 파이널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치열했던 정규리그 2위 싸움에서 LA와 라스베이거스를 밀어내며 저력을 보여줬고, 빠른 스피드의 화끈한 공격력은 그들의 자랑스러운 팀 컬러로 남았다. 

존스와 토마스, 그리고 윌리엄스가 확실하게 중심을 잡아줬다. 

장신이지만 달릴 줄 알고, 가늘어 보이지만 힘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존쿠엘 존스는 이번 시즌 리바운드 1위를 기록했다. WKBL에서도 폭주 기관차처럼 돌진했던 토마스는 WNBA에서도 무서운 폭발력을 보여줬다. 백 코트에서 볼을 잡고 달리기 시작하면 좀처럼 제어할 방법이 없었다. 

외곽에서 탄탄한 공격력을 보여준 윌리엄스는 1대1 뿐 아니라 2대2에서도 볼 핸들러 득점이 가능한 모습을 보여주며, 코네티컷이 파이널에 어울리는 팀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정규리그에서 1번 포지션에서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화끈한 공격에 비해 팀 수비의 조직력이 약점으로 나타났던 코네티컷은 플레이오프에서 자신들의 단점을 스피드로 보완했다.

수비에서도 상대의 트랜지션을 더 빠르게 저지했고, 존스의 블록슛, 그리고 리바운드 후 엄청난 스피드로 달려 나가는 토마스의 속공으로 상대의 플레이를 흔들었다. 확실한 공격농구의 매력을 보여준 만큼 코네티컷의 다음 시즌도 기대가 된다.

사진 = 박진호 기자 ck17@rookie.co.kr, 로이터/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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