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봉의초등학교, 봉의중학교, 춘천여고등학교, 한림성심대학교,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그리고 마침내 부천 KEB하나은행까지. 대학을 거쳐 프로 무대를 밟은 것으로 모자라 벌써 세 장의 유니폼을 모은 만 25세 강계리의 이력서는 꽉 차 있다. 고교 시절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이름이 호명되지 않았을 때 심정과 두 번째 드래프트에서 꿈을 이뤘을 때 말 못 할 속사정. 그리고 3개월간 두 번이나 짐을 싸면서 그가 느꼈던 각오들. 지금 여기서 들어볼 수 있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9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재수생
2011년 10월, 서울 중구 태평로에 위치한 행사장. 입구에는 ‘2012 WKBL 신입선수 선발회’라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었다. 드래프트에 참가한 19명의 간단한 선수 소개가 끝난 뒤, 당시 삼성생명 지휘봉을 잡고 있었던 이호근 감독이 숭의여고 박다정과 숙명여고 양지영의 이름을 차례대로 불렀다. 이어 선수들이 하나씩 호명되며 제 유니폼을 찾아갔지만, 춘천여고 164cm 단신 가드의 이름은 끝내 불리지 않았다. 강계리는 그렇게 쓸쓸히 드래프트 행사장을 걸어 나왔다.

그가 행사장을 나와 가장 먼저 찾은 이는 아버지였다. 결과를 전하자 그의 아버지는 “수고했다”고 답했다. 춘천여고 김영민 코치에게도 연락했다. 춘천에서 모든 학창시절을 보낸 강계리에게 김 코치는 엄마와 같은 은사다. “선생님, 저 농구 그만할래요.” 낙심한 강계리가 말하자 김 코치는 “한 번 더 도전해보자”고 다독이며 그에게 대학을 추천했다. 강계리는 집에서 멀지 않은 춘천의 한림성심대에 진학했다.

“처음 대학에 갈 때만 해도 1학년까지만 농구하고 그냥 졸업하려고 했어요. 드래프트 때 상처가 워낙 커서 정말 운동을 관두려고 했거든요. 그때 김영민 선생님께서 계속 끝까지 해서 다시 프로에 가보자고 격려해 주셨죠.”

 

그로부터 꼭 2년 뒤. 다시 드래프트에 참가한 강계리는 6번째로 삼성생명에 이름이 불리며 당당히 프로 입단에 성공했다. 축하 박수와 스포트라이트. 2년 전과 사뭇 다른 느낌으로 선발회장을 나온 강계리는 이번에도 역시 아버지에게 가장 먼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드래프트를 3~4개월 남겨뒀을 때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돌아가셨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프로 가서 첫 월급은 꼭 다 아빠 준다고 했는데, 약속을 못 지켰죠. 나오면서 아빠 번호로 ‘아빠, 딸 잘 됐으니 이제 걱정 마세요’하고 문자를 보냈어요.” 그렇게 강계리는 돌아오지 않을 문자와 함께 자신의 프로 첫 번째 팀 삼성생명에 입단했다.

삼성생명
어렵게 발을 디딘 프로무대.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던 그곳의 실상은 전쟁터였다. 지금은 코치가 된 이미선부터 정아름, 박태은, 박소영 등 넘어야 할 허들이 산더미였다. 그렇게 뒤에서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맞이한 프로 3년 차. 강계리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임근배 감독이 새로 부임했고, 이미선이 은퇴 후 코치가 되면서 자연스레 가드 자리를 두고 경합이 벌어진 것. 

“기회였죠. 이때 열심히 하면 뭔가 되겠구나 싶어서 정말 열심히 했었어요. 결국 주전 자리를 따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1군에서 많이 뛸 수 있어 만족했던 시즌이었죠.”

그러나 그의 만족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8년 11월 4일, 청주에서 열린 2018-19시즌 KB스타즈와 개막전에서 강계리는 벤치를 지켰다.

“그날 개막전이 제 생일이었어요. 그래도 다친 곳 없이 비시즌 훈련 열심히 했으니 조금이라도 뛸 줄 알았는데 아예 출전을 못 했어요. 생일이라 더 속상했던 것 같아요. 사실 비시즌 때부터 어렴풋이 ‘올시즌은 어렵겠구나’ 생각하고 있긴 했어요. 연습 경기 때 뛰어도 많아 봐야 10분 정도 나왔거든요. 아쉽지만, 밀린 거죠.”

 

그의 말대로 지난 시즌 삼성생명에 강계리의 자리는 없었다. 삼성생명은 외국인 선수에게 한 자리를 주고 김한별-박하나-배혜윤으로 이어지는 ‘빅 3’를 굳건히 유지했다. 나머지 한 자리는 윤예빈, 이주연 등 젊은 가드와 베테랑 김보미가 돌아가며 자리를 메웠다.

그러나 임근배 감독은 시즌 중 강계리에게 계속해서 ‘낙심 말고 꾸준히 몸을 만들고 있으라’고 주문했다. 강계리는 “감독님께서 준비하고 있으면 언젠가 뛸 기회가 올 것이라 말씀하셨다. 알고 보면 힌트였던 셈”이라고 회상했다. 임 감독의 말을 들은 강계리는 포기 않고 꾸준히 몸을 유지했다. 그리고 1월 24일. 마침내 전격 트레이드가 발표됐다. 강계리는 포워드 박혜미와 1:1 트레이드가 되어 신한은행으로 갔다.

“기사가 나기 며칠 전, 감독님께서 따로 부르셨어요. ‘신한은행에서 요청이 먼저 왔는데 어떻게 하고 싶냐’고 말씀하시는데 고민도 없이 바로 ‘가겠다’ 했죠. 그렇게 다시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는데 너무 신나는 거에요. 팀이 시즌 중이다 보니 가기 전까지 비밀로 해야 해서 룸메이트 (김)민정이한테도 말을 못 하고 있다가 가기 전날 밤, 선수단과 스태프가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트레이드됐다고 말씀드렸어요. 잘 됐다고 축하한다고 하는 언니들도 있었고, 방에 찾아와 우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강계리의 첫 번째 팀 삼성생명에서 마지막 밤이 저물었다.

②편에서 계속...

사진 = 박진호 기자,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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