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이제 우리는 FA가 아닌 선수들도 FA와 다름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미 중남부에 위치한 한적한 도시, 서울과 인천의 면적을 합친 것만큼 넓은 땅덩어리를 자랑하지만, 인구수는 서울 송파구의 인구보다 적은 65만 명 남짓에 불과한 곳. 넓은 면적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인구 밀도 탓에, 프로스포츠 구단들에게 철저히 외면받았던 슬픈 도시 오클라호마시티. 

때문에 이곳에 거주하는 65만 명 시민들에게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라는 프랜차이즈는 매우 특별하다. 2008년 창단된 신생팀으로 역사는 짧지만, 오클라호마시티에 위치한 유일한 미 4대 스포츠(NBA, MLB, NFL, NHL) 팀인 썬더는 창단 이후 한 번도 지역 TV 시청률 부문에서 5위권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으며, 2012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무려 8년 연속 100% 좌석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호쾌한 덩크슛 혹은 역점 3점슛을 성공한 뒤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만원 관중을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짜릿할까? 그것도 정규리그 열리는 41번의 홈 경기가 모두 만석이라면? 오클라호마시티 팬들의 열렬한 충성심은 트레이드를 통해 인디애나에서 이적해 온 폴 조지를 매료시켰다. 

“제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들은 저를 두 팔 벌려 환영해줬습니다. 이제는 내가 그들에게 보여줄 차례입니다.” 

2018년 7월, 폴 조지는 4년 1억 3,700만 달러에 썬더와 재계약했다.

 

매년 플레이오프에 오르는 꾸준한 강팀이지만, 오클라호마시티의 역대 외부 FA 최고 금액은 2017년 패트릭 패터슨의 3년 1600만 달러에 불과하다. 오클라호마시티가 얼마나 선수들에게 외면 받는 스몰마켓인지 알 수 있는 대목.

그만큼 폴 조지의 4년 계약은 썬더 프랜차이즈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로 봐도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오클라호마시티의 젊은 시장 데이비드 홀트는 공식적으로 조지가 계약을 체결한 2018년 7월 7일(현지 시간)을 도시 전체 기념일인 ‘폴 조지의 날’로 공식 지정했다.

시민들과 미디어는 열광했다. ‘ESPN’은 조지가 오클라호마시티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촬영했다. 다큐멘터리 <My Journey(나의 여정)>에서 조지는 러셀 웨스트브룩과 어깨동무를 한 채 이렇게 말한다.

“행복해요. 저는 지금 정말로 행복합니다. 이 도시는 제가 선택한 곳입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펼쳐질 제 여정에 벌써부터 흥분됩니다.”

오클라호마시티는 조지와 연장 계약을 체결하며 NBA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막대한 사치세를 물게 됐다. 그러나 클레이 베넷을 필두로 한 오클라호마시티 구단주 그룹은 매일 밤 경기장에서 열렬한 응원을 보내주는 팬들을 위해 오직 ‘윈나우’를 외쳤다. 오클라호마시티 시민들과 썬더. 그들은 서로의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조지와 오클라호마시티의 여정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들의 동행을 방해한 것은 놀랍게도 2019년 파이널 MVP 카와이 레너드였다. 'HoopsHype'의 알렉스 케네디 기자는 조지의 LA 클리퍼스행이 발표된 직후, 레너드와 클리퍼스와 대화를 일부 공개했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다.

먼저 레너드의 이적 과정을 차근차근 살펴보자. 토론토에서 우승을 차지한 레너드는 자신의 고향인 LA로 돌아가고 싶었다. 선택지는 두 가지, 레이커스와 클리퍼스가 손을 내밀었다. 

‘ESPN’에 따르면 레너드의 최초 계획은 클리퍼스에 케빈 듀란트와 함께 합류하는 것이었지만, 듀란트는 공교롭게도 레너드와 파이널 맞대결에서 안타까운 부상을 당했고, 결국 재활 기간 1년을 기다려 줄 수 있는 브루클린과 계약했다. 

듀란트를 놓친 레너드는 타겟을 폴 조지로 돌렸다. 레너드와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 출신이었던 조지는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레너드의 제안에 솔깃했고, 그는 결국 단 한 시즌 만에 샘 프레스티 오클라호마시티 단장에게 트레이드를 요청한다. 조지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한 레너드는 다시 클리퍼스 프런트와 협상 테이블에 앉아 이렇게 통보했다.

“내게 폴 조지를 데려와, 그가 재계약을 했든 말든 그건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클리퍼스는 결국 폴 조지를 데려왔다. 조지의 대가는 유망주 샤이 길저스 알렉산더와 다닐로 갈리나리, 그리고 7장의 1라운드 지명권(비보호 4장+보호 1장+스왑 권리 2장). 대가가 적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들은 리그 최고의 공수겸장 레너드와 폴 조지를 손에 넣으며 창단 이후 가장 완벽한 라인업을 꾸리는 데 성공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레너드와 조지 역시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행복한 여름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오클라호마시티는 아직도 바쁜 여름을 보내고 있다. 폴 조지가 떠나고 이틀 뒤, 추가 트레이드가 터졌다. 오클라호마시티는 가성비 대비 최고의 3&D 자원인 제라미 그랜트를 덴버로 넘겼다. 대가는 선수가 아닌 1라운드 지명권 한 장. 

곧바로 또 다른 뉴스가 쏟아졌다. 프레스티 단장이 폴 조지를 보내기 전 우승 도전을 위해 영입했던 마이크 무스칼라와 알렉 벅스에게 계약을 다시 생각해봐도 좋다고 알렸다는 소식. 벅스는 오클라호마시티에게 고맙다는 의사를 전하며 골든스테이트와 계약했다. 

레너드의 작은 낼갯짓. 그것은 최근 10시즌 중 9차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오직 ‘윈나우’만을 외치던 오클라호마시티를 하루아침에 서부의 평범한 리빌딩 팀으로 전락시켰다. 다가오는 시즌, 서부 라이벌 팀들의 전력을 살피며 혹시 모를 달콤한 꿈을 꾸고 있던 오클라호마시티 팬들은 이제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의 선수였던 러셀 웨스트브룩과도 작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 ‘폴 조지의 날’을 지정했던 데이비드 홀트 오클라호마시티 시장 역시 그중 하나다. 홀트 시장은 지난 6일 ‘폴 조지 없는 폴 조지의 날’을 기념해 씁쓸한 성명문을 발표했다. 

“가장 먼저, 이제 우리는 작금의 NBA는 FA가 아닌 선수들도 FA와 다름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한 명의 시민으로서, 폴 조지는 우리의 도시에 많은 것들을 선물했습니다. 그는 브루클린을 상대로 47점을 넣기도 했고, 유타전에서 25점 차 역전승을 거두고, 필라델피아를 상대로는 환상적인 4점 플레이를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앞으로도 좋은 활약을 이어 가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썬더는 이제 새로운 장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죽는 날까지 이 팀과 함께 할 것입니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데이비드 홀트 SNS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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