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프로 되고 나서 가장 행복한 비시즌이에요.”

부천 KEB하나은행은 리그 내 고정 팬층이 두터운 팀이다. 앞선에서는 저마다 매력을 뽐내는 각양각색의 가드진이 있고 그 옆에는 리그 최고의 3점 슈터가 버티고 있다. 골밑을 지키는 외국인 선수 농사도 매년 나쁘지 않았다. 선수들의 평균 연령도 낮은 데다가 전도유망한 선수들이 많아 언제든 플레이오프 컨텐더로 꼽힌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국내 빅맨 자리에 확실한 선수가 없다. 특히 2쿼터 외국인 선수 출전이 제한된 지난 시즌, 하나은행 국내 선수의 높이 열세는 더욱더 눈에 띄었다. 

하나은행은 지난 시즌 경기당 70.3점을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공격력을 선보였는데, 이 중 2쿼터 득점은 15.8점에 불과했다. 하나은행의 쿼터별 평균 득점을 살펴 보자. 1쿼터부터 4쿼터까지 순서대로 17.6점, 15.8점, 17.6점, 18.9점으로, 2쿼터에 특히 부진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쿼터 평균 득점 1위 삼성생명 19.3점)

백지은, 김단비, 이수연 등이 4번 자리에서 분전했지만 타고난 신장 차를 극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가오는 시즌은 다를지도 모른다. 하나은행 코치진은 센터 유망주 이하은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이)하은이가 데뷔하고 나서 체력 훈련 때 이렇게 잘 뛴 적이 없었다. 항상 뒤쳐졌는데, 올시즌은 다른 선수가 된 것처럼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몸도 잘 만들고 있고 본인 스스로 자신감이 붙은 모습이다.” 6월 삼천포 전지훈련 당시 하나은행 코치진의 말이다.

 

185cm의 장신 이하은은 지난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농구 선수에게 흔치 않은 병인 신장 질환을 치료하느라 한 시즌을 거의 병원에서 지냈다. 신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얼마 되지 않았다.

“2년 전 비시즌 때 지금처럼 훈련하면서 몸을 만들고 있었다. 남들보다 항상 피로를 많이 느껴서 그때도 주말에 집에 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잠을 자고 있었다. 자는데 갑자기 옆구리가 아파지더라. ‘괜찮아지겠지’하고 다시 잤는데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응급실에 가서 곧바로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어려서부터 신장이 계속해서 망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 그나마 빨리 알게 돼 운이 좋았던 케이스라고 하셨다.”

수술을 받았지만, 완치는 아니다. 이미 한 쪽 신장이 망가진 상태로 앞으로 부위가 더 악화되지 않는 수술을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하은은 긍정적이다. 그는 “많이 좋아졌다. 가장 좋아진 부분은 일단 운동하고 나서 그 알 수 없던 피로감이 사라졌다. 또한 병치레를 하면서 내 몸에 대해 잘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라고 말한다. 이어 “이제는 무엇을 먹으면 아픈지, 어떻게 자면 아픈지를 안다. 체력 훈련을 잘 마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년, 병실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본 이하은은 절치부심했다. 특히 외국인 선수 없이 국내 선수만 뛰는 2쿼터를 보며 느끼는 것이 많았다. 

“두 가지다. 첫 번째로 국내 센터가 없어서 팀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는데 보탬이 되지 못해 아쉬웠고, 두 번째로 OK저축은행의 진안이나 신한은행 (김)연희처럼 동갑내기 빅맨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첫 번째로 언급한 팀의 높이 문제는 이하은을 가장 자극하는 부분이라고. 그는 “하나은행은 국내 빅맨진이 약하다는 말을 내가 입단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들었다. 내가 그 포지션인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게다가 그런 소라를 들으면서도 부진에, 부상까지 겹치면서 경기에 나서지 못해 더 속상했다”고 전했다. 

이하은을 가장 속상하게 만든 것은 역시 체력. 이하은은 “아무리 슛을 잘 넣고 리바운드를 잘 잡아도 코트에서 뛰어다니지 못하면 그건 선수가 아니다. 내가 그랬다”고 고백했다.  

그는 “예전에는 생각하는 대로 몸이 안 움직였다. 머리는 패스하라고 하는데 몸이 늦게 반응했다. 체력이 안 따라줬으니까. 그런데 수술을 받고 돌아온 지금은 그렇지 않다. 최근 체력 훈련도 잘 마쳤고, 연습 경기도 세 차례 정도 했는데, 이제는 머리가 시키는 대로 몸이 따라주니 농구가 정말 재밌다. 프로가 되고 나서 가장 행복한 비시즌”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코트로 화려한 복귀를 꿈꾸고 있는 이하은의 올시즌 목표는 단순하다. 선입견을 깨는 것. 

“나는 그동안 팬들에게, 코치진에게 그저 아픈 선수였다.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몸은 괜찮냐’는 말을 먼저 하셨다. 이제는 그런 선입견을 깨고 싶다. 코트 위에서 맘껏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여드려서 이제 ‘아픈 선수’ 이하은 말고, ‘잘하는 선수’ 이하은으로 불리고 싶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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