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휴가를 더 받을 만큼 힘들지도 않았고, 저는 아직 그런 대우를 받기에 한참 모자란 선수에요.”

5, 12, 24. 

지난 2016-17시즌부터 직전 시즌까지 3년간 청주 KB스타즈 김민정의 출전 시간은 해마다 배로 늘었다. 늘어난 것은 출전 시간뿐이 아니다. 0.6점, 3.1점, 6.2점. 김민정의 평균 득점은 출전 시간보다 더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고, 그 결과 그는 지난 시즌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이룩한 KB 왕조 역사의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료(史料)가 됐다. 

그러나 해마다 곱절의 출전 시간 상승폭을 기록했음에도 김민정은 도무지 만족을 모른다. 지난 시즌 평균 24분을 뛴 그는 다가오는 시즌, 기어코 24분의 두 배인 48분을 뛰어야만 직성이 풀릴 것처럼 무서운 기세로 맹훈련 중이다.

 

“염윤아, 강아정 선수 등 베테랑을 비롯해서 지난 시즌 1군에서 많은 출전 시간을 기록했던 박지수, 심성영, 김민정 선수는 다른 선수들보다 몇 주 더 휴가를 주면서 천천히 팀에 합류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김민정 선수는 휴식을 마다하고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합류했더라고요.” KB 관계자가 무용담을 늘어놓듯 흐뭇하게 전했다.

당사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KB국민은행 천안 연수원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김민정은 “나는 지난 시즌 언니들처럼 풀타임을 뛴 것이 아니라 벤치에서 식스맨으로 나왔다. 휴가를 더 받을 만큼 힘들지도 않았고, 나는 아직 그런 대우를 받기에 한참 모자란 선수다. 하루빨리 훈련을 시작해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감독님께서는 첫날 보더니 돈 내고 훈련하라고 하시더라(웃음)”고 멋쩍게 답했다.

평균 24분 19초 6.2점 3.5리바운드. 김민정의 지난 시즌 기록이다. 출전 시간이 크게 늘어나면서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등 공격 스탯을 비롯해 스틸, 블록슛 등 각종 수비 수치 역시 모두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김민정은 지난 시즌을 “운이 좋아 기회가 오게 됐는데, 나름 (기회를) 잘 잡은 것 같다. 많이 뛸 수 있어서 행복했고, 무엇보다 꾸준히 기회를 주신 안덕수 감독님과 코치님들의 믿음에 어느 정도 보답한 것 같아 뿌듯했던 시즌”이라고 정리했다. 

 

올시즌부터 정든 유니폼을 벗고 코치로 새로 합류한 정미란 코치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정 코치는 "코치가 돼서 보니 확실히 선수들이 더 잘 보인다. 열심히 하는 선수들은 멀리서 봐도 눈에 띈다. 특히 선수 때부터 민정이는 정말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코치가 되어 한 발짝 떨어져서 보니 생각보다 더 열심히 하는 선수더라. 올시즌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엄지를 세웠다.

그러나 김민정은 여전히 자신을 채찍질한다. 그는 “데뷔 후 가장 많은 경기를 뛰었다. 선수로서 당연히 좋았지만, 그만큼 아쉬운 점도 많이 찾을 수 있었던 기회”라고 말한다.

“시즌 중반 (강)아정 언니가 부상으로 잠시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다. 평소 벤치에서 짧게 뛰다가 갑자기 오래 뛰니까 확실히 체력적인 부침이 느껴지더라. 제 몫을 다하지 못해 팀에 너무 미안했다. 농구가 마음대로 되지 않자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 겹쳐 힘든 시기가 있었다.” 김민정이 올여름 휴가를 반납하고 일찌감치 팀에 합류한 이유다.

그는 “돌아보니 체력 문제와 정신적인 스트레스 모두 슛 때문이었다. 아정 언니의 빈자리를 메우려면 내가 바깥에서 슛을 넣어줘야 하는데, 외곽슛이 좀처럼 들어가지 않다 보니 나도, 팀도 힘들었던 것 같다”며 “마침 그때 또 팀이 3연패를 당했다. 정말 힘들었는데, 3연패를 당한 날 감독님께서 선수단을 모으시고 ‘너희는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라며 오히려 다독여 주셨다. 그 이후로 팀이 달라졌다”고 회상했다.

“감독님께서 그런 것들을 굉장히 잘해주신다. 게임 중에 실수를 해도 같이 코트를 따라오면서 ‘괜찮아, 괜찮아’라고 소리쳐 주신다. 워낙에 인상을 쓰고 말씀하셔서 그게 선수들에게 화내는 것인 줄 아는 팬들이 많은데, 다 격려해 주시는 거다(웃음). 정말 큰 힘이 된다.” 김민정이 말했다. 

 

지난 시즌 슬럼프의 기억은 김민정을 더 독하게 만들었다. 그는 “올시즌에는 지난 시즌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하루 종일 슛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아직도 그때 슛 찬스에서 우물쭈물 주저하던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있다”고 말했다.

눈뜨고 일어나 오전 훈련부터 잠들기 전 야간 훈련까지 오직 농구만 생각하고 있는 김민정의 올시즌 목표는 소박하다 못해 겸손하다. “우리는 우승 팀이다. 주전 5명이 모두 리그 최고의 선수들이다. 나는 지난 시즌처럼 벤치에서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 비록 지난 시즌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리그 최고의 식스맨’하면 사람들이 김민정을 떠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김민정의 올시즌 활약을 지켜보자.

사진 = 루키 사진팀,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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