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①편에 이어..

두 사람은 인터뷰 내내 ‘마무리’ 또는 ‘황혼기’라는 단어를 입버릇처럼 꺼냈지만, 이들을 영입한 사령탑 정상일 감독의 속내는 다르다. 

“최고참 선수인 만큼 언니 역할을 기대하는 것도 있지만, 둘 다 언니이기 전에 선수다. 나는 절대 주전 라인업에 이름을 써놓고 시작하지 않는다. 경기는 훈련 열심히 하고, 잘하는 선수가 나가는 것이다. 어린 선수라고 무시하는 일 없고 나이 많은 선수라고 배척하지 않는다. 채진이, 수연이, 경은이 같은 고참부터 신입생까지 열외는 없다. 준비된 사람이 경기에 나갈 것이다.” 

지난 시즌 신한은행의 기록을 놓고 보면 정 감독의 말은 허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신한은행은 지난 시즌 3점슛 성공률(23.7%)과 리바운드(33.2개)에서 모두 압도적인 꼴찌를 기록했다. 3점슛 성공률은 1위 우리은행(34.4%)과 10%가 넘는 차이를 보였고, 리바운드 또한 1위 우리은행(40.5개)과 경기당 7개 차이가 났다. 통산 3점슛 성공률이 33.2%에 달하는 한채진과 통산 1651개의 리바운드를 솎아낸 김수연이 언제든 주전으로 나서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4월, 지난 시즌 주축으로 뛰었던 곽주영, 윤미지, 양지영, 김규희, 김형경이 줄줄이 은퇴를 택했다. 가뜩이나 습자지 같은 선수층의 두께가 더 얇아진 것이다. 충분히 주전 자리에 대한 욕심이 날 만도 한 상황. 그런데도 이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이제 그들에게 출전 시간은 ‘아무런 의미 없다’고. 

한채진 : “선수들이 흔히 ‘팀 성적이 안 좋으면, 개인 성적이 좋아 봐야 소용없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이전 팀에 있으면서 그걸 정말 많이 느껴봤거든요. 개인 성적, 출전 시간은 이제 정말 의미 없어요. 예전처럼 35경기 전부 30분, 40분을 뛸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요. 물론 11년 전 처음 FA로 팀을 옮길 땐 저도 출전 시간에 대한 욕심이 컸어요. 그때 신한은행은 지금과 달리 ‘레알 신한’ 시절이었거든요. 엄청난 대선배들이 많아 도저히 제가 뛸 자리가 안 보였어요. 그땐 새 팀과 계약할 때 ‘저 20분씩은 뛰고 싶어요’라고 대놓고 욕심을 내기도 했어요. 이젠 그럴 땐 아니죠.”

김수연 : “언니와 같은 마음이에요.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중간에 한 번 나갔다 돌아왔어요. 자리를 비웠던 만큼 복귀 후 준비를 더 열심히 했는데, 지난 시즌 팀 상황상 그런 모습을 코트 위에서 보여줄 기회가 전혀 없었어요. 저도 출전 시간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하지만 비시즌 열심히 준비해서 몸이 된다면, 짧든 길든 코트에서 ‘기회’를 받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이건 선수로서 당연한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팀 신한은행

6승 29패. 6위. 신한은행의 지난 시즌 기록이다. 신한은행이 최하위에 그친 것은 리그가 단일 시즌으로 바뀐 뒤로 처음으로, 신한은행에게 지난 시즌은 그야말로 치욕스러운 시즌이었다. 치욕. 다른 팀도 아니고 6년 연속 통합 우승을 기록하며 국내 프로농구 최초로 ‘왕조’라 불렸던 명가 신한은행이었기에 이러한 평가는 정당하다. 그렇다면 지난 시즌 김수연이 우승팀 벤치에 앉아 바라본 최하위 신한은행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김수연은 “여자농구선수에게 신한은행은 언제나 강팀의 이미지다. 그런데 지난 시즌 신한은행은 정말 맥없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더라. ‘저렇게 질 팀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우승 팀에서 최하위 팀으로 오게 됐는데, 우승 팀은 우승하는 이유가 다 있더라. 그런 분위기나 문화를 조금씩 팀에 이식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정리했다.

한채진은 “하나씩 영입 소식이 들릴 땐 잘 몰랐는데, 팬들이 댓글로 달아준 라인업을 보니 우리 팀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더라(웃음). 워낙 많은 선수가 한꺼번에 팀에 합류해 걱정의 눈초리가 있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소집된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팀 분위기가 정말 좋다. 왜냐면 새롭게 팀에 온 선수들은 저마다 사연 있는 선수들 아닌가. 다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같은 마음으로 훈련한다. 농구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다들 사연을 가슴에 품고 열심히 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비시즌 잘 준비해서 좋은 몸으로 개막전 맞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

 

책임감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신한은행은 김수연과 한채진을 영입하기 위해 KB와 BNK에 각각 2019-2020시즌과 2020-2021시즌의 1라운드 지명권 스왑 권리를 내줬다. 신한은행은 지난 시즌 꼴찌를 기록한 덕(?)에 다가오는 드래프트, 선순위 지명권을 따낼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이런 신한은행이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베테랑을 영입하기 위해 지명권을 내준 것은 언 발에 오줌을 누는 운영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트레이드의 당사자 또한 이런 말들을 모를 리 없다. 그리고 김수연은 이렇게 말한다.

“감독님께서 지명권 순위를 내주면서 저를 트레이드해 오셨어요. 팀의 미래를 양보하고 저를 데려온 거잖아요. 그래서 더 잘해야 해요. 처음에 말한 것처럼, 제가 잘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저도 잘하면서 결국 팀도 잘해야 저도, 감독님도, 구단도 웃을 수 있어요. 언니 말처럼 저희 팀은 감독님부터 시작해서 채진 언니도, 저도 (김)이슬이도, (황)미우도 (임)주리도 저마다 사연을 품고 이곳에 모였잖아요? 6개 구단 중 그 어떤 팀보다도 가장 간절함을 갖고 뛰는 팀이 우리 팀이에요. 서로를 생각하며 한 발씩 더 뛰면 팀 성적도 자연스레 나오지 않을까요?” 신한은행의 시즌은 이미 시작됐다. 

사진= 루키 사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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