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한채진 그리고 김수연. 이름만 들어도 유니폼 색깔이 절로 떠오르는 리그 터줏대감들. 그러나 사시사철 곧고 푸른 자태로 제 집을 지킬 것만 같았던 소나무들은 이제 인천 도원체육관으로 터를 옮겨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프로 생활하면서 운동이 안 힘든 적은 없었어요. 지금도 힘들고요. 그런데 이렇게 재밌는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저마다 사연을 품은 채 이곳 신한은행에 정착한 이들. 이제는 닷새 만에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됐단다. 이들이 꿈꾸는 선수 생활 마무리는 어떤 색깔일까?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9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우리 같이해도 되죠?”

인터뷰가 진행된 날은 5월의 어느 저녁날이었다. 도원 체육관에서 선수단의 오후 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린 뒤, 오후 7시 30분에 먼저 한채진 그리고 한 시간 뒤인 8시 30분에 김수연과 인터뷰가 차례대로 예정돼 있었다. 1984년생 한채진과 1986년생 김수연은 신한은행 뿐만 아니라 어느 팀을 가도 최고참의 위치. 또한 올 봄 나란히 이적해 최근 들어 팀에 합류한 이들은 이전 팀에서 10년을 넘게 뛴 사실상 ‘원클럽맨’이나 다름없는 선수들. 딱히 접점이 없을 것이라 판단, 같은 지면에 실리는 기사임에도 두 선수의 혹시 모를 어색함을 배려하기 위해 인터뷰를 따로 잡은 상태였다. 

그렇게 7시 30분. 인터뷰 장소였던 휴게실 문이 열리는데 사람이 두 명이다. “우리 같이해도 되죠?” 한채진이 김수연과 함께 들어오며 묻는다. “비슷한 처지끼리 얘기 좀 같이 하고 가려고요.” 김수연이 거든다. 10년간 정든 팀을 떠나 새 팀에 합류해 한솥밥을 먹은 지 고작 5일. 한창 정신도 없고 민감할 시기에 흔쾌히 인터뷰에 응한 것도 고마운데, 서로에게 또 기자에게 권위 의식이나 어색함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의 털털함이 반가우면서도 놀랍다.

준비했던 질문지를 접어두고, 그보다 둘이 원래부터 이렇게 친했냐고 물었더니 언니가 답한다.

“서로 마음을 잘 알잖아요.” 

 

200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신한은행의 전신 현대에 지명, 현대와 신한은행에서 뛴 한채진은 2008년 FA를 통해 금호생명으로 적을 옮겼다. 그 뒤 팀이 KDB생명으로 바뀌고, 다시 OK저축은행으로 바뀌기까지 무려 11년을 한 팀에서 뛰었다. 김수연 역시 마찬가지. 2005년 KB스타즈에서 데뷔한 김수연은 지난 시즌까지 쭉 오직 KB 유니폼을 입고 뛴 프랜차이즈 스타다. 그러나 2019년 봄, 강산이 변하도록 이들이 걸어온 외길의 끝이 보였다. 한채진과 김수연은 소속팀과 재계약에 실패했다.

한채진 : “섭섭한 감정이 없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죠. 힘든 시기였어요. 화가 나기도 하고. 그런데 어쩌겠어요. 팀에서 리빌딩을 하겠다는데 생각해보면 그게 또 잘못된 게 아닌 거에요. 그래도 정말 감사하게도 여러 팀에서 관심을 보여주셨고, 저도 고민을 했어요. 그때 직장을 다니는 동생이 그러더라고요. ‘언니, 직장 생활도 똑같아. 마음 맞는 사람끼리 일하면 힘든 일도 안 힘든 법이야. 지금까지 운동 많이 했잖아? 이제는 동료들이랑 마음 맞는 곳으로 가.’ 또 마침 그 시기에 수연이한테 전화가 왔어요. 같이 하자고. 그 뒤로 또 (이)경은이, (김)단비한테도 전화가 오고…’아, 이런 사람들과 함께라면 좋겠다’ 싶어서 결정했죠.”

김수연 : “똑같은 것 같아요. 한 팀에서 10년을 넘게 뛰었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19살 때 KB에 입단해서 지금 34살에 이적했어요. KB에서 마무리했으면 당연히 가장 좋았겠죠.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것 같아요. 어쨌든 여러 과정을 거쳐 이곳 신한은행에 오게 됐는데, 와서 보니 저 같은 선수들이 많더라고요. 채진 언니도 그렇고 이번에 새로 온 어린 친구들도 그렇고…그러니 서로 보기만 해도 마음을 아는, 이심전심인거죠.”
 

늦깎이 이적생

한채진은 무려 11년간 정든 유니폼을 두고 이적을 택했다. 11년간 그곳에서 뛴 경기 수만 무려 368경기. 김수연 역시 KB 유니폼을 입고 총 292장의 기록지를 작성했다. 이름만 들어도 유니폼 색깔이 떠오를 정도로 리그를 대표하는 이들은 이제 같은 유니폼을 입는다. 젊은 나이에도 쉽지 않은 이적을 선수 생활 황혼기에 결정한 두 베테랑. 특히 11년 전, 금호생명으로 이적하기 전까지 신한은행에서 뛰었던 한채진은 더욱더 묘한 감정이 들었을 터. 

“사실 걱정을 좀 많이 했는데, (김)단비를 포함해 (이)경은이 그리고 여기 (김)수연이까지 워낙 크게 환영해줘서 온 지 하루 만에 내 집 같이 편하게 느껴졌어요. 구단은 많이 달라졌던데요? 그때 계셨던 구단 직원들은 하나도 없어요, 선수단은 단비 하나 남아있네요.”

김수연 또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언니나 저나 둘 다 어린 나이에 온 게 아니잖아요. 기존 신한은행에 있던 어린 선수들 입장에서는 나이 먹은 언니들이 자기가 있던 팀에 새로 온 거예요. 그래서 채진 언니가 처음 온 날 둘이 함께 얘기했어요. ‘게임을 뛰고, 안 뛰고 그런 거 욕심부리지 말고, 의기투합해서 팀 성적에 욕심 내보자’고요. 언니나 저나 이제 운동할 날이 얼마 안 남았어요. 여기서 조금 더 뛰어서 개인 성적 몇 개 더 쌓는다고 뭐 달라지는 것도 없고요. 그런데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 달라지는 게 있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런 마음이에요. 내 성적보다도, 어린 선수들과 함께 팀 성적을 내서 선수 생활 마지막을 예쁜 그림으로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

②편에서 계속...

사진 = 루키 사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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