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정진경 칼럼니스트] 삼성생명의 ‘자선’ 은 계속됐다. 

‘자선’이라 말했는데, 딱히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선수 수급이 중요한 프로 무대에서 ‘자선’이라는 말이 마냥 좋게만 들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FA 자격을 획득해도 이동이 쉽지 않고, 구단 간의 선수 트레이드도 적극적이지 않은 WKBL에서 최근 계속되는 삼성생명의 행보는 매우 인상적이다.

우선 선수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어진 마음이 느껴진다.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또는 무상으로 보내 준 전례들을 보면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이 많았다.

선수 욕심이 없는 지도자는 없다. 즉시전력감이 아니라 해도 기본적으로 다다익선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혹시라도 그렇게 내보낸 선수들이 다른 팀에 가서 갑자기 좋은 모습을 보이거나 우리 팀과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 역풍을 맞기도 한다.

그러나 삼성생명은 이 부분에 대해서 결국은 ‘윈윈’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임근배 삼성생명 감독은 “떠난 선수들이 다른 팀에 가서 잘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선수들이 자신에게 맞는 팀에 가서 조금이라도 기회를 더 얻고, 선수로서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당연한 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이해손실관계를 따져볼 때, 이번에도 삼성이 이익을 봤다고 보이는 트레이드나 FA 영입은 없었다.

삼성은 이번 시즌 최희진을 KB로 보내고 김한비를 보상선수로 받았다. 재일교포 출신 황미우는 선수 부족에 신음하던 신한은행에 무상으로 보내줬다. 지난 시즌 강계리를 신한은행에 내주며 임의탈퇴 처리된 박혜미가 복귀할 경우 팀에 합류하기로 했지만, 박혜미는 임의탈퇴 선수 규정에 따라 빨라도 2019-20시즌 도중에 복귀가 가능하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삼성생명은 엘리사 토마스에게 의존만 하던 플레이에서 어떻게 벗어날지에 대한 걱정이 컸던 팀이었는데, 임근배 감독은 자신이 공언한 것처럼 국내 선수들이 큰 성장을 이루며 중심이 되는 농구를 보여줬다. 임 감독 부임 이후 꾸준히 철학으로 강조하던 ‘선수 스스로 하는 농구’, ‘생각하는 농구’가 정착되어 가는 것 같다.

물론 김한별, 배혜윤, 박하나 등 전·현 국가대표 3인방은 경험이나 경력으로 볼 때, 충분히 스스로의 가치를 보여 줄 때가 된 것도 사실이다. 

거친 플레이와 강한 제스처로 논란도 있지만 김한별의 강한 승부욕과 적극성, 경기에 임하는 프로다운 마인드는 팀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고, 배혜윤의 여유 있고 물오른 4번 포지션으로서의 역할은 이제 WKBL에서 최고 수준이라 말해도 손색이 없다. 아직 약간의 기복이 있기는 하지만, 박하나의 에이스 기질도 점차 안정감을 더 해 가고 있다. 

여기에 잠재력과 가능성이 좋은 장신가드 윤예빈과 겁없는 공격수, 그래서 큰 게임에 더 강한 모습을 보이는 이주연의 성장으로 삼성생명은 탄탄한 국내 라인업을 구축했다. 또한 베테랑 김보미는 감초역할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팀이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어수선한 분위기에 놓였을 때, 금세 바로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이번에도 핵심 전력에서 큰 변화가 없는 만큼 삼성생명은 어떤 외국인 선수를 선발하든지 지난 시즌부터 구성한 국내 선수들의 중심축을 그대로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우선의 고민은 김한별의 몸 상태다.

지난 시즌 김한별은 정규리그 32경기에서 평균 32분 55초를,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에서는 6경기, 평균 38분 11초를 뛰었다. WKBL 데뷔 이후 김한별이 한 시즌 정규리그에 총 1,000분 이상을 뛴 건 지난 시즌이 처음이다.

무릎에 고질적인 부상이 있어, 몸 상태에 고민이 있는 김한별은 지난 시즌, 그야말로 투혼을 보여줬다. 하지만 완쾌되는 문제가 아닌만큼 김한별의 부상에 대한 우려는 시즌 내내 가져갈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고민은 배혜윤의 백업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컨디션이 좋아도 풀 타임을 뛰기에는 나이와 체력에서 무리가 있는 배혜윤의 백업이 양인영 외에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배혜윤도 무리할 경우 고질적으로 허리가 좋지 않아 적절한 출장시간의 안배가 필요한데, 양인영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시즌에는 프로 입단 후 3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김나연과 KB에서 데려 온 김한비가 백업 경쟁에 합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신장이나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는다. 3번과 4번을 오가며 플레이가 가능하고, 수비에서도 스피드나 파워가 밀리지 않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자리의 경쟁은 기본적으로 양인영의 성장이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이다.

삼성생명은 리그에서 시즌 중 가장 장기적인 시선으로 선수를 기용하는 팀이다. 주전들이 작은 부상이나 컨디션 저하에 발목을 잡히면 결코 무리시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오히려 시즌 중반에 주요 기용 선수 폭의 변화가 생기며 팀 성적에 부침을 겪기도 했다.

바꿔 말해 아프면 쉬면 되고, 이는 곧 경기에 뛰지 못한다는 말로 연결된다. 훈련을 싫어하는 선수는 있어도 경기에 뛰는 것을 싫어하는 선수는 없다. 경기에 나서기 위해서는 선수 스스로 몸 관리가 되어야 한다. 부상과 컨디션 저하인 선수에 대해 절대적으로 무리를 시키지 않는 삼성생명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팀 색깔을 갖고 있는 만큼 삼성생명은 어린 선수들, 또는 백업 선수들도 몸만 준비가 되어 있다면 생각보다 빨리 리그에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고, 기회에서 자신을 증명할 경우 더 많은 출장시간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노장부터 어린 선수들까지 항상 자신의 몸 상태를 베스트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그 어느 팀보다 치열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지난 시즌, 기대 이상의 성과를 달성한 삼성생명의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 경쟁하는 법을 배우고 익히면 더 빠른 발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팀의 ‘자선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 또한 가장 프로다운 팀 문화가 아닐까 한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박진호 기자 ck17@rooki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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