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정진경 칼럼니스트] 팀 순위와 상관없이 우리은행을 가장 먼저 분석하는 것은 이번에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획득한 선수 중 가장 높은 관심을 이끌 선수들이 우리은행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FA 계약은 가장 예상이 가능했고, 또 그랬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역시 별다른 자극없이 마무리되었다. 

현행 제도하에서 이적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한 박혜진의 계약은 당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최은실의 거취에는 어느 정도 변수가 있었다. 4번 포지션이 귀해진 WKBL에서 최은실의 가치는 상당했고, 이동 가능성이 있는 FA 선수들 중 최대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연봉 360프로 인상으로 최은실의 기를 살려줬고, 최은실도 모험보다는 의리와 안정을 택했다. 우리은행으로서는 바람직한 계약이었지만, 전체 시장 분위기에서는 열기를 떨어뜨린 결정이었다. 

우리은행은 이번 FA에서 선수 손실은 없었지만 영입한 선수도 없다. 따라서 백업 멤버 부족으로 인한 주전들의 과부하라는 기존의 문제는 여전히 고민 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주전들의 눈에 띄는 체력 하락으로 경기력이 떨어져 고전하는 게임이 많았던 지난 시즌의 우리은행은 결국 챔프전 진출에 실패했다. 그 때문에 코칭스텝도 운동량에 대한 부분을 꽤 신경 썼다고 들었다. 그러나 훈련량에 대한 부분이나 방법에서는 어느 정도 변화가 있겠지만, 우리은행 특유의 고유한 팀 문화는 그래도 유지될 것이다. 

우리은행의 가장 큰 숙제는 은퇴한 임영희의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임영희가 나간 자리는 '여전히 안정적'인 국내 베테랑들(김정은, 박혜진), '최고의 신인이자 유망주'인 박지현, '두드러지게 성장'한 김소니아와 박다정 등이 지킬 것이다. 

지난 시즌 임영희는 분명 노쇠화로 인해 출전 시간이 줄어들었고, 야투율과 지배력도 많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영희가 코트에 있음으로인해 팀에 가져다 주는 플러스 요인들을 현재 임영희를 대체할 젊은(혹은 어린) 선수들이 당장 채우기에는 부족함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과 경기를 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수비하기 어려운 상대가 임영희였고, 따라서 임영희에 대한 수비를 준비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센터들의 크로스 스크린을 받아 나오면서 본인 수비와 센터 수비의 위치를 읽으며 보여 주었던 컬 컷이나, 플레어 컷 후 미들 점퍼를 던지는 공격 옵션은 임영희가 코트에 있을 때 우리은행의 주공격 방법이었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찬스들은 상대에게 엄청난 부담이었다. 

또한 임영희가 2:2를 통해 픽 앤 롤(혹은 팝)에서 보여줬던 해결능력과 외국인 센터 입맛에 딱 맞게 넘겨주는 패스 능력은 단연 리그 최고였다. 직접 득점을 마무리하는 것 외에 임영희가 있어서 가능했던 우리은행의 플레이는 상당했다.

이제 임영희의 은퇴로 이런 옵션들이 우리은행에서 사라진다. 

'코치 임영희'가 비시즌 동안 이러한 부분들은 선수들에게 전수한다 해도 이는 하루아침에 이행하기 보다는 경험과 여유, 그리고 노련미에서 나오는 것들이기에 쉽게 구현하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우리은행은 ‘기존 임영희의 루트를 어떤 방법으로 변화 시킬 것인가’가 경기력에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 같다. 

긍정적으로 볼 부분도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시즌, 상대에게 큰 점수차로 앞서고 있을 때 박지현, 김소니아, 박다정 등 경험이 적은 선수들을 함께 내보냈던 경우가 두어 경기 정도 있었다. 이때 이 선수들은 기존의 우리은행과는 살짝 다른 분위기를 보여줬다.

뛰어난 운동신경과 센스도 있지만 이들은 기본적으로 젊고(혹은 어리고) 겁이 없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미국의 어린 선수들이 개인기를 앞세워 농구하는 모습이 이들의 플레이에서 엿보였다.

정확한 조직력이 가장 우선되는 우리은행과는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자유로운 모습인데, 비시즌을 통해 이들의 재능과 잠재력을 아주 억누르지 않으면서 팀플레이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일 것 같다.

우리은행에는 엄청난 기대주 박지현이 있다. 신인들에게 숙명처럼 찾아온다는 2년차 징크스를 당연하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게임을 더 많이 뛰다 보면 상대의 집중 견제를 피해 갈 수 없을 것이기에 박지현은 그에 대한 대처와 준비 또한 비시즌부터 철저하게 해야 한다. 

‘WKBL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우리은행에 대한 걱정’이라지만 전력 면에서는 분명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상황이다. 넘어야 할 산이 되어버린 KB와 점차 견고해지고 있는 삼성생명을 생각하면 우리은행의 이번 시즌은 향후 몇 시즌을 앞두고도 무척 중요한 고비가 될 것 같다.

* 크로스 스크린(Cross Screen) : 센터들이 양쪽 로우 쪽 프리드로우 라인에서 마주보고 서서 크로스 하는 외곽 플레이어들을 걸어주는 스크린.

* 컬 컷(Curl Cut) : 크로스 스크린을 받으면서 돌아 나오는 공격자의 수비가 스크린에 걸리지 않기 위해 파이트 스루, 즉 바짝 뒤를 따라 오고 있다면 스크린을 이용하는 공격자는 센터 공격자를 끼고 미드레인지 쪽으로 감고 들어가는 컷.

* 플레어 컷(Flair Cut, Flair Screen) : 수비의 등 쪽을 걸어 공격자를 완전히 골대 쪽으로 보내는 스크린을 백 컷 또는 백 스크린이라 하고, 3점 라인 또는 미드레인지 쪽으로 퍼지는 모양으로 보내는 스크린을 플레어 스크린 또는 플레어 컷이라 한다. 주로 스크린을 받는 수비가 슬라이드 스루, 즉 스크리너와 그 수비자 사이로 미리 빠져 나간다면 스크리너는 스크린을 하는 발의 위치를 살짝 틀어 공격자를 바깥쪽으로 내 보내 찬스를 만들 수 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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