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루키 시즌을 겪지 않은 선수는 없다. 리그를 호령하고 있는 박혜진 언니, 박지수 언니에게도 신인 시절이 었었고, 심지어 호랑이 같은 감독님도 이등병 같은 루키 시즌을 보냈다. 코트 뒤편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WKBL의 미래 스타를 직접 찾아가는 ‘루키더바스켓’의 <루키, 루키를 만나다>, 첫 번째 주인공 신한은행의 루키 김하나·이재원·최지선을 21일 도원 체육관에서 만났다.

# 신한은행 2018-2019 WKBL 신입선수 선발회 결과 

1라운드 5순위 최지선(온양여고/포워드/178cm)
2라운드 2순위 김하나(분당경영고/센터/179cm)
수련 선수 이재원(숙명여고/가드/171cm)

아프니까 청춘이다

프로까지 올라오면서 인생사에 곡절 하나 없는 선수 어디 있겠냐만, 신한은행의 신입생 3인방은 유난히 사연이 많다. 1라운드에서 뽑힌 최지선은 다행스럽게도 지난 시즌 건강하게 퓨처스리그를 소화하고 1군 무대 경험도 해봤지만, 김하나와 이재원에게 지난 시즌은 눈물 젖은 시즌이었다.

특히 지난 1월 8일은 이재원에게 영원히 잊고 싶은 날이다. 부푼 맘을 안고 신입선수 선발회장을 찾았지만, 1순위 박지현부터 마지막 13순위 유현희까지, 이날 호명된 13명의 이름 중 이재원의 이름은 없었다. 

 

“그날 떨어지고 하루종일 펑펑 울었다. 원래 프로에 못 가면 농구는 그만둘 생각이었다. 실컷 울면서 ‘이제 농구 안 해, 공부할 거야’라고 마음먹은 순간, 신한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다음날부터 같이 하자고 하시더라. 방지윤 선생님(숙명여고)부터 박대남 선생님(스킬 팩토리)까지 주위에서 좋게 평가해주신 덕분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 이재원의 말이다.

이재원이 실의에 빠져 있던 그날, 최지선과 김하나는 신한은행의 부름을 받았다. 전체 5순위로 뽑힌 최지선은 “솔직히 드래프트장에 가기 전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안 떨릴 줄 알았는데 막상 도착하니 무척 떨리더라. 그러다가 앞에 뽑힌 친구들이 갑자기 눈물을 보이니 당황했다. ‘어떡하지, 앞에서 뽑힌 친구들도 우는데 뒤에서 뽑힌 나는 더 울어야 하는 건가’ 싶었다(웃음)”라며 이날을 추억했다.

전체 8순위에 지명된 김하나는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고. “고등학교 때부터 부상이 있었다. 정말로 안 뽑힐 줄 알고 체념한 상태로 갔는데 이름이 불리더라. 얼떨떨하게 나갔다.”

김하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부상과 싸웠다. 어린 나이에 벌써 십자인대와 반월판 두 번의 큰 수술을 겪었다. 그러나 프로처럼 전문적인 관리를 받을 수 없던 고등학생 김하나는 무릎이 완치되지 않은 상태로 경기에 나섰고, 부상은 더욱 악화됐다. 

김하나는 “그땐 다 나은 줄 알고 뛰었는데, 다시 무릎이 아파 왔다. 입단 후 프로에서도 계속 재활만 했다. 동기들이나 언니들과 같이 운동도 하고 팀에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재활만 하고 있으니 마음이 안 좋았다”고 지난 시즌을 정리했다. 

그렇게 힘들게 프로 첫 시즌을 흘려보낸 김하나는 비시즌 휴가도 없었다. “시즌을 마치고도 꾸준히 재활만 했다. 친구들이 놀러 가는 것을 보면 부러웠다. 그런데 놀러 가는 것보다 더 부러웠던 것은 건강하게 경기에 뛰는 모습이었다. 오직 복귀만을 바라보며 재활에 집중했다.” 그에게 코트는 그만큼 간절했다.

 

어서와, 비시즌은 처음이지?

그렇게 흘러간 첫 시즌. 한 여름밤 꿀 같던 휴가도 눈 깜짝할 새 끝나고 이들은 다음 시즌 담금질을 위해 다시 인천 도원 체육관에 모였다. 모든 것이 생소한 루키들에게 프로에서 처음 맞는 비시즌 훈련은 어떤 느낌일까?

“비시즌 훈련은 처음이라 훈련이 다 이런 건지 아니면 우리 팀만 이런 건지 모르겠는데, 분위기가 정말 좋다. 정상일 감독님과 코치님들 모두 적극적이시다.” 최지선의 소감이다.

이재원도 한마디 거들었다. “웨이트를 이렇게 체계적으로 하는 것이 처음이다. 하루하루 몸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코치님, 트레이너님이 내가 이전까지 한 번도 쓴 적 없었던 근육을 잡아 주시면서 밸런스를 맞춰 주신다. 프로는 역시 다르다.”

재밌는 비화도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4월 초, 새 사령탑 자리에 지난 시즌 OK저축은행의 성공적인 리빌딩을 이끌었던 정상일 감독을 선임했다. 

이에 김하나는 “OK저축은행에 친구 (임)예솔이가 있다. 정상일 감독님이 새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예솔이한테 ‘감독님은 어떤 분이냐’고 물어봤다(웃음).” 임예솔은 어떻게 답했을까. “예솔이도 지난 시즌 나처럼 재활을 하느라 감독님을 많이 보진 못했지만, 좋은 분이라고 하더라. 무엇보다 보기와 달리 선수들을 잘 웃겨 주신다고 들었다”며 소심한 뒷담화(?)를 공개했다. 

 

셋이라서 행복해요

지난 신입선수 선발회, 27명의 참가자 중 구단의 공식 지명을 받은 선수는 단 13명. 취업률은 48.1%에 그쳤다. 6개 구단 중 세 명의 신입선수를 맞은 것은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이 유일하다. 프로는 냉혹한 곳.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경쟁자가 한 명 더 있는 것이 싫을 법도 한데, 이들은 "하나보다는 둘이 좋고, 둘보다는 셋이 좋다"고 입을 모은다.

김하나는 “다행히도 셋 다 고등학교 때부터 아는 사이였다. 셋 중 둘만 친했거나, 셋 다 모르는 상태로 입단했다면 이렇게 의지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입단하자마자 단톡방을 만들어서 지금도 매일 얘기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단톡방에서는 주로 어떤 내용의 대화가 오갈까? 최지선이 답한다. “별 얘기 안 한다. ‘언제 내려갈래?’, ‘응, 10분 뒤’, ‘반찬 뭐야?’ 이런 내용밖에 없다. 생각하시는 것처럼 농구 얘기나 진지한 얘기 이런 건 한 마디도 없다(웃음).”

지극히 스무살스러운 답변. 그래도 마지막 질문인 ‘프로에서 목표’에 대해 묻자 셋 모두 사뭇 진지해진다. 

셋 중 유일하게 지난 시즌 1군 무대 경험이 있는 최지선은 “지난 시즌 1군 경기에 덜컥 들어갔는데, 정말 아무것도 안 보였다. 공을 잡았는데 수비 발 밖에 안 보이고 다리가 후들거리더라. 내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몰랐다. 얼른 프로 무대에 적응해서 언젠가 (김)단비 언니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 언니는 코트 위에서 플레이도 플레이지만, 팬들이나 우리 같은 동생들을 대하는 태도도 최고다. 단비 언니 같은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답했다.

 

오랜 재활을 거친 김하나의 목표는 소박하다. “지난 시즌, 동기들이 뛰는 것을 먼발치서 보기만 했다. 그래도 열심히 한 덕분에 재활이 순조롭게 잘 됐다. 이제 팀 훈련도 같이한다. 하루빨리 건강하게 몸을 만들어 박신자컵이든 퓨처스리그든 경기에 나가고 싶다. 가족들이 아직 내가 프로에서 뛰는 것을 한 번도 못 봤다. 가족들에게 딸이 당당히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는 모습을 얼른 보여드리고 싶다.” 

이재원은 “나는 수련 선수다. 시합이 없는 비시즌도 내겐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박신자컵 전까지 열심히 몸을 만들어서 시합 때 기회가 오거든 좋은 경기를 하고 싶다. 부모님이 그동안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내가 정식 선수가 아닌 수련 선수로 프로에 가면서 나보다 더 마음고생이 많으셨다. 얼른 정식 계약을 해서 처음 들어오는 돈으로 부모님께 용돈을 드려보고 싶다”고 전했다. 

(이재원은 인터뷰 당일 구단과 계약 협상을 했으나, 이번에도 정식 선수가 아닌 다시 한번 수련 선수 신분으로 재계약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인 비시즌 훈련도 이재원에게는 하루하루가 서바이벌 오디션인 셈이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농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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