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그날 경기에서는 팟츠가 유난히 짜증을 많이 냈다. 그래서 경기를 마치고 라커룸에서 크게 한 번 화를 냈다. 그동안 외국선수에게 쓴소리를 한 적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선수들이 있는 앞에서 그렇게 화를 낸 적은 처음이었다."

사상 첫 챔피언 결정전에 오르며 '감동랜드'로 시즌을 마무리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는 4일 인천 부평호텔 웨딩컨벤션센터에서 2019 팬 미팅 ‘드디어 때가 왔다! 지금이 같이 놀때!’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전자랜드 코치진 및 선수단 전원이 참석해 300여명의 팬과 잊지 못할 시간을 보냈다. 작전시간과 외국선수 인터뷰 통역을 통해 팬들에게 선수만큼이나 친근한 전자랜드의 변영재 국제업무 팀장 또한 행사에 참석해 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변영재 팀장에게 올 시즌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시즌이었다. 팀의 첫 챔프전 진출은 물론 경사, 그러나 시즌 초반부터 마지막 챔피언 결정전까지 중요한 순간마다 외국선수들이 부상으로 낙마하는 바람에 변 팀장은 하루도 편히 잠을 자본 적이 없다고.

이날 팬 미팅 행사로 전자랜드의 2018-2019 공식 일정은 모두 마무리됐지만, 변 팀장은 새 외국선수를 물색하기 위해 곧바로 비행기에 오른다.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그래도 올 시즌 외국선수들은 모두 정도 많고, 의리도 있고, 인성도 좋은 친구들이었다. 뜻깊은 시즌이었다”고 웃으며 답했다.

그가 생각하는 전자랜드의 팀컬러와 시즌 중에는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외국선수들의 라커룸 뒷이야기까지. 지금부터 변영재 팀장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다음은 변 팀장과 일문일답.

챔프전 이후 어떻게 지냈나?
-바로 다음 시즌 외국선수를 구상하기 위해 유도훈 감독님과 회의를 하고 출장 계획을 세웠다. 올 시즌에는 챔프전까지 가서 다른 팀보다 늦었다. (휴가도 없었나?) 그렇다. 업무 특성상 외국선수 계약을 모두 마친 뒤에야 쉴 수 있다.

어느 때보다 바쁜 시즌이었을 것 같다.
-맞다. 시즌 초부터 마지막까지 외국선수 부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챔프전에 올라가서 시즌이 길기도 했고. 그래도 외국선수들이 모두 정도 많고, 의리도 있고, 인성도 좋은 친구들이었다. 확실히 뜻깊은 시즌이었다.

챔프전 2차전 당시 기디 팟츠의 대체 선수를 구하기 위해 한 편의 첩보물을 찍기도 했다고. 

(팟츠는 지난 현대모비스와 챔프전 2차전 도중 어깨 부상으로 시즌 아웃됐다. 그러나 전자랜드는 재빠른 조치로 단 3일 만에 대체 외국선수 투 할로웨이를 공수해 왔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팟츠가 다쳤을 때, 표정을 보자마자 알았다. 한 시즌을 함께 지내면서 팟츠가 진짜 아플 때와 아닐 때의 액션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어깨를 다쳤을 땐 ‘저건 진짜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점수가 벌어졌고, 나는 그날 경기장에서부터 대체 선수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날 밤 확진이 나지 않았지만, 안 될 것이라는 '촉'이 왔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기존 외국선수 리스트를 체크하고 컨택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멀리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 선수들은 시차 문제도 있고, 물리적으로 오는 시간도 길기 때문에 일본,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권 선수들로 좁혀서 봤다. 그러나 후보들과 연락은 됐지만 계약에는 실패했다. 다시 차선이었던 미국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연락이 닿은 선수가 바로 투 할로웨이였다. 그러나 서류 작업보다도 할로웨이의 마음을 돌리는 게 일이었다. 당시 할로웨이는 이스라엘 구단과 협상 중이었는데 계약이 거의 성사되기 직전이었다. 할로웨이를 설득하기 위해 본인에게도 꾸준히 구애를 보냈고, 에이전트와도 대화하고, 함께 뛴 적이 있는 머피 할로웨이에게도 전화를 걸어 설득을 부탁했다. 마음을 돌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투 할로웨이, 기디 팟츠, 찰스 로드, 머피 할로웨이. 비록 완주에는 실패했지만, 네 명 모두 정상급 외국선수였다. 헤어지기가 무척 아쉬웠을 것 같은데.
-그렇다. 그중에서도 특히 머피 할로웨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머피는 헤어지는 날에도 내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람’이라고 말하며 떠났다. 사연이 있다. 지난 여름 영입을 위해 머피를 처음 만났을 때, 머피는 유럽 생활에 안주하던 시기였다. 흔히 말하는 ‘용병 생활’을 시작하는 외국선수들은 보통 유럽으로 가서 유로리그나 유로컵 등의 좋은 팀에 가기 위해 처음에는 열심히 한다. 그러다 한계를 깨닫고 도전보다는 하위 리그에 안주하는 삶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머피가 마침 그런 때였다. 

머피를 보고 굉장히 직설적으로, 어쩌면 (영입에) 독이 될 수도 있는 말을 했다. “이 생활에 만족하나? 그렇게 커리어를 끝내도 괜찮은가? 안주하지 말고 네 인생에 전환점을 가져보자. NBA를 갈 것도 아니고, 유로리그를 노릴 것도 아니라면 새로운 환경에서 함께 도전해 보자. 그러나 지금 몸으로는 안 된다. 우리 제안에 관심이 있다면, 치열하게 살았던 대학 시절 몸을 다시 만들어서 연락해라.”

그리고 3일 뒤 머피에게 연락이 왔다. “한 달 안에 20kg을 감량해서 가겠다.” 머피와 전자랜드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나중에 머피가 그러더라. ‘너 정말 잘한다, 최고다’라며 치켜주는 스카우트는 셀 수 없이 많이 봤지만, 자신의 인생에 대해 충고해주는 스카우트는 처음이었다고. 전자랜드에 온 머피는 코트 안팎에서는 물론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도 프로페셔널 그 자체였다. 세상 어떤 외국선수가 그렇게 떠날 수 있겠나. 아직도 기억에 남는 친구다.

 

유도훈 감독은 시즌 중 ‘변영재 통역이 팟츠의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팟츠와도 특별한 사연이 있었나?
-큰 사건이 한 번 있었다. 잠실에서 열렸던 SK와 경기에서 우리가 졌을 때다. 그때 SK는 외국선수 한 명이 없었고, 우리는 두 명이 뛰었는데 졌다(11월 7일 경기). 시즌 초반에는 팟츠가 감독님 말씀도 잘 듣고 팀을 위해 헌신적인 플레이도 곧잘 했다. 그런데 머피가 부상으로 다치면서 팟츠도 혼자 뛰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아무래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좀 지쳤던 것 같다. 그래도 팀원들과 코치진이 이해를 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그날 경기에서는 팟츠가 유난히 짜증을 많이 냈다. 그래서 경기를 마치고 라커룸에서 크게 한 번 화를 냈다. 그동안 외국선수에게 쓴소리를 한 적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선수들이 있는 앞에서 그렇게 화를 낸 적은 처음이었다. ‘왜 자꾸 네 얘기만 들어 달라고 하냐. 우리가 진 것은 팀으로 진 것이지,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너는 지금 내가 알던 기디 팟츠가 아니다’라며 한바탕 했다. 

그 사건이 있고 나서 팟츠가 달라졌다. 그 전까지는 통역인 내게만 얘기하고 의지하는 모습이었는데, 그 뒤로부터 감독님에게 직접 대화를 요청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정말 팀원으로서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때 아마 내가 화내는 모습을 보고 국내선수들도 많이 놀랐을 것이다(웃음). 

(7일 ‘라커룸 사건’이 있기 전까지 11경기에서 20.4점 FG% 40.5% 3PT% 28.7%를 기록 중이었던 팟츠는 이날 이후 18.5점 FG% 45.5% 3PT% 36.8%를 기록했다. 욕심을 버리면서 득점이 줄었지만, 효율이 크게 올랐다.)

듣고 나니 정말 다사다난했던 시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전자랜드는 숙원이었던 챔프전 진출을 이뤄냈다. 다음 시즌에도 전자랜드는 올 시즌처럼 강팀 같은 모습을 이어갈 수 있을까?
-글쎄. 그것은 감독님과 코치님들의 영역이다. 나는 팀에 도움이 되기 위해 내 자리에서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다음 시즌, 외국선수는 바뀔지언정 우리 전자랜드의 팀컬러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역을 하다 보면 다른 팀 외국선수들과도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된다. 그때마다 타 팀 선수들이 하는 말이 있다. ‘전자랜드는 절대로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한 번쯤은 꼭 뛰어보고 싶은 팀이다.’ 다음 시즌에도 전자랜드의 팀컬러는 계속될 것이다.

사진 =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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