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자신의 분야에서 항상 잘하고 싶고, 못하면 속상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직종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그렇다. 나 역시 정말 잘하고 싶었다. 다들 KB를 우승 후보를 꼽을 때 ‘박지수가 있으니까’라고 말한다. 나는 아직 보여준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미국도 다녀오고 하다 보니 어느새 그런 자리가 올라 있더라.“
프로 데뷔 3년 만에 신인왕부터 구단 최초 통합 우승에 역대 최연소 통합 MVP까지 모두 석권하며 차세대 여왕의 대관식을 마친 박지수. 데뷔 시즌부터 꽃길만 걸어온 ‘로열로더’처럼 보이지만, 박지수의 데뷔전은 비단길이 아닌 ‘눈물길’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커리어는 다사다난했다. 데뷔 첫 8경기에서 1승 7패를 기록하며 신세계(?)를 경험했지만, 데뷔 첫 해 10.4득점 10.3리바운드로 더블더블 시즌을 보내며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이후 쓰디쓴 첫 플레이오프, 챔프전의 기억과 WNBA 도전, 아쉬움 속에 끝난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 그리고 마침내 통합 우승과 통합 MVP까지.
프로 데뷔 후 모든 순간이 도전의 연속이었던 그는 “평범하지 않은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라며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청주 KB스타즈 그리고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의 센터이자 BTS(방탄소년단)의 열렬한 팬인 스무살 박지수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데뷔전부터 범상치 않았다. 프로 데뷔전을 마치고 “내가 생각했던 데뷔전이 아니었다”며 눈물을 보였다. 본인이 꿈꾼 데뷔전은 어떤 경기였나?
-(KB에) 지명되고나서 ‘나도 잘하고, 팀도 잘해서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루빨리 뛰고 싶었는데, 청소년 대표팀에 나갔다가 부상을 당했다. 그렇게 데뷔전은 늦춰졌고, 우리은행을 만나서 처참하게 패했다(웃음). 자랑 같이 들릴 수도 있지만, 중고등학교 땐 (많이 이겨서) 이기는 것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다. 승리에 대한 소중함이 없었다고 할까. 그러다가 프로에 와서 첫 시즌에 엄청 많이 졌다. 14승(21패)으로 플레이오프를 갔으니(웃음)... 올스타 브레이크를 기점으로 반등해서 턱걸이로 어떻게 플레이오프에 갔었다. 팀에 합류하고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는 정말 뛰면서 ‘대체 언제 이기지? 이길 수는 있을까?’ 싶었다.
태어나서 프로 오기 전까지 진 경기 수보다 데뷔 시즌 한 해 동안 진 경기가 더 많았다.
-맞다. 신세계였다. 우승을 목표로 프로에 왔는데, 첫 시즌을 마치고 나서 정말로 ‘아, 힘들겠다. 불가능하겠다’ 싶었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내년에 플레이오프는 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비시즌이 되어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가게 됐다. 첫 경기 상대가 (안덕수) 감독님이 계셨던 샹송이었는데, 팬들이 찾아와 관전할 수 있는 공개 훈련으로 시합을 했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우리가 20점 차로 이겼다. 첫 스타트를 좋게 끊으니 팀 분위기가 올라왔다. 이후 (전지훈련이) 끝날 때까지 분위기가 계속 좋았다. 그러면서 ‘어, 이번 시즌은 뭔가 될 것 같은데?’하는 생각이 들더라. 언니들도 이렇게 분위기가 좋은 적은 처음이라 하고, 훈련 취재를 위해 찾아온 기자분들도 다들 분위기가 좋다고 했다. 여기에 외국인 선수도 잘 뽑으면서 참 기대를 많이 한 시즌이었는데… 결국 이 시즌(2017-18)도 결과는 아쉬웠다.
그래도 첫 번째 시즌과 달리, 두 번째 시즌은 우리은행과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때 우리은행이 시작부터 2연패를 했고, 우리는 연승을 하면서 순위표를 보면 우리가 1위에 있었다. 그 전 시즌에는 순위표를 보면 맨날 밑에 있었는데, 1위에 올라 있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매일 언니들한테 “언니, 우리가 1위에 있어요”하면서 스포츠뉴스를 한 시간에 한 번씩 들어가서 봤다(웃음). 그러다가 희망고문을 하듯 마지막까지 경쟁했다. ‘제발 한 팀만 (우리은행을) 잡아줬으면 좋겠다’하면서 지켜봤는데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게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됐는데,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챔피언 결정전에 가본 적이 없던 터라 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우리은행에게 정규시즌 상대 전적도 4승 3패로 앞섰으니까... 그런데 (플레이오프에서) 3차전에 가게 되고…
뼈 때려서 미안하지만, 당시 2차전 4쿼터 때 본인이 퇴장을 당하며 경기를 넘겨줬다. 그 때 퇴장당하지 않았더라면…
-너무하다(웃음). 맞다. 반성한다. 이번에도 삼성생명과 챔프전에서 몇 번 위기가 있었고, 정규리그 때도 내가 파울 관리를 못 하는 바람에 넘어갈 뻔한 경기가 몇 경기 있었다. 아마추어 땐 파울 관리에 굉장히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자신감이 프로에 와서 다 없어졌다. 그런 면에서 (염)윤아 언니는 정말 대단하다. 파울 관리를 정말 잘한다. 부처라는 별명처럼 평정심이 대단하다. 나와 달리 좀처럼 흥분을 안 한다. (염윤아는 2018-19시즌, 35경기 전경기에 출전해서 5반칙 퇴장이 없다.)
다시 2017-18시즌 우리은행과의 챔프전 얘기를 해보자. 그 때 3차전에서 패한 뒤, 우리은행 선수들과 웃으면서 악수를 하고 고개를 돌리자마자 울었다. 무엇이 박지수를 눈물짓게 했나?
-첫 번째로 정규리그 때 분명히 상대 전적에서 앞섰었는데 졌다는 것이 분했다. 두 번째는 청주에서 진 것이 너무 속상했다. 청주는 우리의 홈이지 않나. 홈에서는 정말 지고 싶지 않았다. 많은 청주 팬들이 우리를 보기 위해 경기장에 찾아와 주셨는데, 그 분들께 우리은행이 우승 트로피를 가져가는 것을 보여드린 것이니까… 그게 가장 속상했다.
그렇게 맞이한 올 시즌, 미디어데이에서 모든 팀이 KB의 우승을 예측했다. 어떤 느낌이었나?
-부담이 됐다. 솔직히 말해 ‘일부러 견제하시는 건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기쁘고 감사한 일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우승을 한 번도 못 해봤고, 직전 시즌 챔프전에서도 우리은행에게 크게 졌던 팀이다. 당연히 비시즌 동안 우리은행이 독보적인 우승 후보라고 생각하면서 거기에 포커스를 두고 준비했다. 그런데 미디어데이에 와보니 다들 우리를 지목하시더라.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미디어데이뿐만 아니라 시즌 내내 상대 사령탑들은 ‘KB와의 경기에서 첫 번째 고민은 박지수를 어떻게 상대하느냐’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 부분 역시 부담스러웠을까?
-당연히 부담스러웠다. 나에게 과분한 평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공격과 수비를 모두 잘 해야 하는데, 나는 아직 공격에서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다.
통합 MVP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해피엔드로 시즌을 마감했지만,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경기력에 대한 비난 여론도 많았다. 속상한 적은 없었나?
-자신의 분야에서 항상 잘하고 싶고, 못하면 속상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직종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나? 나 역시 정말 잘하고 싶었다. 다들 KB를 우승 후보를 꼽을 때 ‘박지수가 있으니까’라고 말한다. 나는 아직 보여준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미국도 다녀오고 하다 보니 어느새 그런 자리가 올라 있더라.
속상했다. 미국에 있을 때, 공격을 너무 하고 싶었다. 공격을 그렇게 하고 싶은 적은 처음이었다. 공도 잘 못 잡았으니까... 그런데 어쩌다 공을 잡고 공격을 하려고 하는데 몸이 안 만들어져 있는 것이 느껴졌다. 공격을 해도 미스가 나고, 그러다 보니 더 움츠러들었다. 뛰면서 ‘대체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하는 생각도 들고…
한국에 와서도 처음에는 (염)윤아 언니랑 참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윤아 언니랑은 같이 뛴 적이 없었다. 처음 손발을 맞춘 게 개막 2주 전이었으니… 언니도 답답한 부분이 있었고, 나도 답답했다. 훈련의 중요성을 그때 깨달았다. 그땐 참 속상했는데, 결국 참고 하다 보니 몸이 올라오면서 나도, 팀도 거짓말처럼 상승세를 탔다. 그러면서 그런 평가도 줄어든 것 같다.
일각에서는 WNBA에서 시즌을 치르느라 비시즌 훈련이 부족해 몸 상태가 준비가 안됐다며, 다음 시즌에는 비시즌때 미국 진출 대신 훈련에 매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자존심이 상할만한 지적이기도 하다.
-정규리그 때 인터뷰실에 들어가면 많이들 물어보시더라. 그런데 그런 질문을 받기 전부터 ‘내가 미국을 간 것이 잘못한 일이었을까? 안 가는 것이 맞았을까?’하며 스스로 많이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시즌 끝날 때까지 생각했던 것 같다. 초반에 너무 못했으니까...
그런데 민감할 수도 있는 대답이지만, (초반 부진이) 단지 미국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는 그래도 혼자서 대표팀 경기를 위해 몸을 좀 만들었다. 그 뒤 아시안게임에 갔다 와서 바로 또 세계선수권에 갔는데, 그 때 2주 동안 웨이트를 거의 안 했다. 오전 오후 종일 농구만 했다. 정말 민감한 부분이지만, (부진이) 오롯이 다 미국에 다녀온 탓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첫 시즌 이렇게 경험을 했으니, 다음 시즌에도 이번처럼 똑같이 못하면 그건 내 문제일 것이다.
WNBA는 어떤 곳이었나? 박지수처럼 WNBA 진출을 꿈꾸는 선수들을 위해 조언해줄 말이 있다면?
-선생님들이 시합은 전쟁터라는 비유를 많이 한다. 그런데 진짜 전쟁터는 미국이었다. 사이즈가 비슷해도 기량이나 피지컬이 월등한 선수들이 많다. 경기뿐만 아니라 엔트리 안에 들기 위해 훈련도 정말 치열하게 한다. 그런 것들을 다 견딜 수 있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나는 첫 시즌을 뛰면서 공격보다도 수비적인 부분에서 성장한 것 같다. 빠른 선수들을 상대하다 보니 아무래도 수비 폭이 넓어졌다.
중국의 한쉬와 리유에루가 이번 드래프트에서 지명됐다. 작년 아시안게임 결승에서는 이들을 상대로 더 좋은 활약을 펼쳤다. 이들의 WNBA 입성이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까?
-크게 의식은 안 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같은 아시아 선수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교가 많이 될 것 같다. 지고 싶지 않다. WNBA든 대표팀이든 그 선수들보다 낫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싶다.
②편에서 계속...
사진 = 박진호,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