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임영희가 떠난다. 그러나 우리은행의 다음 시즌은 밝다.

아산 우리은행 위비는 18일 아산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은행 2018-2019 여자프로농구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와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68-75로 졌다. 우리은행은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1승 2패를 기록, 챔피언 결정전 진출에 실패했다.

경기 후 공식 인터뷰 자리,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저 이제 양치기 소년 아니에요”라며 웃어 보였다. 그러나 미소도 잠시, 임영희의 이름이 나오자 눈을 붉힌 위 감독은 이내 북받친 감정을 주체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임영희는 이번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은퇴를 예고한 바 있다.

“임영희라는 선수를 만나 정말 고마웠다.”

 

 

‘임브론’ OUT

‘임브론’. 1980년생으로 한국 나이 40세의 임영희는 임브론이라 불린다. 

임영희의 주무기는 원드리블 후 중거리슛이다. 플레이 스타일만 놓고 본다면, 골밑 돌파와 킥아웃패스를 즐겨하는 르브론 제임스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임브론’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가 리그에서 갖는 영향력 때문이다. 르브론은 지난 7일, ‘황제’ 마이클 조던의 통산 득점(3만 2,292점)을 뛰어넘으며 NBA 득점 부문 역대 4위로 올라섰다. 현역 선수 중에서는 단연 최고 득점. 르브론은 2010년대 NBA의 절대자였다.

르브론이 기록을 세우고 하루 뒤, 여자프로농구에도 대기록이 세워졌다. 임영희가 자신의 600번째 경기에 나선 것이다. 리그에서 600경기를 소화한 것은 그가 처음으로 2위 기록은 신정자(은퇴, 586경기)가 갖고 있으며, 현역 중에서는 신한은행의 곽주영이 516경기로 뒤를 잇고 있다. 임영희는 WKBL의 절대자다.

임영희의 600경기는 당분간 깨지기 어려운 전인미답의 기록이다. 그러나 그의 출전 시간은 15,765분으로 역대 6위로 평범(?)한 수준이다. 물론 현역 중에서는 1위지만, 545경기 출전에 그쳤던 변연하가 18,476분으로 역대 가장 많은 시간을 뛰었고, 그 뒤 신정자, 박정은, 이미선, 김지윤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 다음이 임영희다. 

현역 2위 김정은(14,867분)의 기록과 비교해봐도 얼마 차이 나지 않는다. 2005년 신세계에 입단해 곧바로 신인왕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김정은은 임영희에 164경기나 모자라는 436경기에 출전했다. 임영희의 무명 시절이 얼마나 길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데뷔 시즌이었던 1999년, 평균 1.9점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년 뒤인 2018-19시즌, 10.5점의 평균 득점을 올리고 마침내 코트를 떠난다.

 

젊은 피 있기에

통합 6연패를 달성했던 2017-18시즌, 우리은행은 무려 4명의 선수가 정규리그에서 1,000분 이상을 소화했다. 박혜진(1,339분), 김정은(1,149분), 임영희(1,102분), 나탈리 어천와(1,000분) 등 주전 4인방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그러나 올 시즌은 달랐다. 

우리은행 선수 중 정규리그 35경기를 모두 소화한 선수는 4명. 김정은과 최은실, 박다정, 김소니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중 최은실과 박다정, 김소니아는 모두 27세 이하의 젊은 피다.

 

지난해 대비 득점이 4.4점에서 8.9점으로 두 배가 넘게 뛴 최은실은 올 시즌 56.4%의 2점 야투 성공률을 기록,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2점야투상’을 거머쥐었다. 득점뿐만 아니라 리바운드와 어시스트 모두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지난 여름, 팀에 새롭게 합류한 박다정은 올 시즌 40.2%의 높은 3점슛 성공률을 자랑하며 35경기에서 182득점을 기록했다. 2011년 데뷔한 박다정의 지난 시즌까지 통산 득점은 104점. 7년 동안 올린 점수보다 올 시즌 우리은행에서 넣은 점수가 더 많았다. 

김소니아는 한 시즌만에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김소니아는 올 시즌 경기당 6.7개의 리바운드를 솎아냈는데, 특히 국내 선수만 나설 수 있는 2쿼터 무려 3.7개의 리바운드를 기록, 김한별과 박지수를 제치고 이 부문 리그 전체 1위에 올랐다.

리빌딩의 화룡점정은 ‘신인왕’ 박지현이었다. 

우리은행이 드래프트에서 박지현을 뽑을 확률은 4.8%.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은행이 4.8%의 확률을 뚫고 박지현을 품에 안았다. 위성우 감독은 박지현의 재능을 인정, 곧바로 야전에 투입했다. 그 결과 박지현은 15경기에서 19분 6초간 8.0득점 3.7리바운드 1.7어시스트를 기록, 기자단 투표 101표 중 96표를 몰아받으며 신인상을 수상했다. 위성우 감독의 첫 신인왕이 탄생하는 순간. 

챔프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우리은행은 이미 천천히 리빌딩 작업을 마쳐가고 있었다.

 

'우리'의 해는 지지 않는다

우리은행 전주원 코치는 플레이오프 출전을 앞둔 박지현에게 말했다. 

“오늘, 네가 뛰는 이 경기는 정규리그 10경기짜리 경기다.”

앞서 언급한 최은실, 박다정, 김소니아, 박지현은 모두 플레이오프 3차전에 나섰다. 최은실을 제외하고 박다정과 김소니아는 풀타임 시즌이 올 해가 처음이었던 선수들. 박지현은 이제 프로에 데뷔한 지 3개월된 신인이다.  전 코치의 말대로 정규리그 10경기에 해당하는 소중한 경험치를 터득한 이들은 다음 시즌 더 성장해서 돌아올 것이다. 지난 7년간 정규리그 245경기에서 194승 51패로 79%의 승률을 자랑한 위성우·전주원 역시 건재하다. 

임영희의 은퇴를 언급하며 눈물지은 위성우 감독은 이내 마음을 다잡고 “이제는 박지현 등 새로운 선수들이 있다”면서 “다음 시즌, 임영희 없이도 강팀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며 인터뷰를 정리했다. 

작별은 슬프지만, 젊은 피 있기에 우리은행의 해는 여전히 밝다. 몇 년 뒤, ‘선수’ 임영희의 은퇴 경기를 함께 했던 젊은 피들이 주역으로 떠올라 우승을 차지하고 ‘코치’ 임영희를 헹가래 치는 그림은 어떨까.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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