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진호 기자] OK저축은행 읏샷 농구단이 시즌 경기 일정을 모두 끝냈다. OK저축은행은 지난 8일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시즌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13승 22패, 4위로 정규리그를 마치며 ‘OK저축은행 읏샷 농구단’으로의 일정은 마무리됐다.

WKBL 위탁 운영팀이 새로운 주인 찾기에 성공할 것으로 보여, 다음 시즌부터는 OK저축은행 농구단을 볼 수 없을 전망이다. 위탁팀이 정상적으로 인수되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고, 환영할 일이다.

이로써, OK저축은행 농구단의 기록은 1년으로 끝나겠지만, 여자프로농구 역사에서는 중요한 부분으로 새겨야 한다.

책임 없는 구단 운영 포기와 선제적인 대책 마련에 실패한 것이 얼마나 큰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지를 실감했다. 또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며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기도 했다.

정상적인 인수까지의 1년을 견디고 버텨냈던 OK저축은행으로서의 한 시즌 또한 잊지 말고 기억에 남겨야 할 것이다.

절망에서 발견한 희망
어려움 속에 한 시즌을 극복한 OK저축은행의 1년 속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장면들이 있다. 우선은 오랫동안 팀에 머물렀던 박영진 코치의 헌신이다.

박영진 코치는 2017-18시즌, 도중에 지휘봉을 놓게 된 김영주 감독을 대신해 감독 대행으로 팀을 지켰다. 최악의 외국인 선수 구성과 주축 선수들의 계속된 부상 속에 팀 성적은 곤두박질쳤지만, 기둥까지 뽑힌 KDB생명 농구단의 유일한 코칭스태프로 1,2군 운영을 혼자 도맡으며 사실상 십자가를 졌다.

KDB생명은 박영진 코치와 감독 계약을 한 후 팀 운영을 포기했지만, 인계 과정에서 박 코치를 지켜주지 못했다.

감독 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는 WKBL의 유권해석을 받고도 구단 책임자는 박 코치에게 마지막까지 모르쇠로 일관했고, 결과가 발표되자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제 살길을 찾아 떠났다. KDB생명에 몸 담았던 일부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여전히 “참 나쁜 사람들”이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구단 운영포기를 결정해놓고 시즌 도중, 김영주 감독을 자진사퇴 형태로 밀어내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던 KDB생명은 마지막 모습도 아름답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로 인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지만 박영진 코치는 감독이 아닌 코치로 팀에 남아 힘을 보탰다. 

WKBL의 새 집행부 역시 성과를 거뒀다.

바로 인수기업을 찾는 데는 실패했지만, OK저축은행의 네이밍 스폰서를 이끌어내며 구단 운영에 숨통을 틔웠다. 자칫하면 이름 없는 위탁팀으로 경기에 나설 뻔했던 팀이 OK저축은행이라는 팀 명칭을 달고 시즌을 뛰었다.

최종 인수까지 마무리 짓는다면, 이병완 총재와 새 집행부는 전임자 시절에 결론내지 못했던 어려운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능력을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네이밍 스폰서로 나선 OK저축은행의 도움도 잊어서는 안 된다.

OK저축은행이 네이밍 스폰서로 참여하지 않았다면 위탁팀의 운영은 더욱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고, 리그 운영에도 많은 난관이 있었을 것이다. OK저축은행의 관계자들도 명목상 이름만 내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경기장을 자주 찾아 선수단을 격려했다.

OK저축은행 농구단에 숙소와 연습 공간을 할애한 수원보훈교육연구원 또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WKBL의 한 시즌을 지원해 준 공로가 있다. 보훈교육연구원의 배려가 없었다면 OK저축은행 선수들의 숙소와 연습 체육관을 찾는데 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시간과 비용의 부담도 증가했을 것이다. 

시즌 막판, 관중석에서 노란색 비옷을 입고 OK저축은행을 응원했던 ‘OK저축은행 셀프 응원단’도 인상적이었다. 홈이었던 서수원칠보체육관은 물론, 원정 경기에도 모습을 보이며, OK저축은행 경기의 명물로 떠올랐다.

원정 경기에서는 직접 응원단장의 역할까지 소화했고, 조직화 된 상대팀 홈 응원단보다도 힘찬 목소리로 OK저축은행 선수들을 독려했다.

이들은 자칫 소외될 수 있었던 OK저축은행 선수들이 시즌을 외롭지 않게 소화할 수 있도록 함께 걸었고, OK저축은행이 다음 시즌 어떤 이름을 달고 어느 곳으로 가던, 계속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정상일 감독
어려운 상황에서도 OK저축은행이 꿋꿋하게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결국 팀을 이끌었던 정상일 감독의 공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정상일 감독은 KDB생명 시절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새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OK저축은행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지난 시즌 KB스타즈에서 뛰었던 다미리스 단타스를 지명했다. 그러나 단타스는 수술과 재활을 이유로 팀에 합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 시즌 개막에 맞춰 팀에 합류하기 힘들다는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정 감독은 단타스를 고수했다. 단타스의 상태를 확인한 후, 어설픈 대체 선수보다는 단타스를 믿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적중했다.

완벽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단타스는 개막전에 나서 좋은 모습을 보였고, 시즌 내내 팀의 중심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정 감독은 단타스의 3점슛이 흔들릴때도 묵묵히 기다렸고, 슈팅 연습을 보완하며 결국은 회복시켰다. 단타스는 KB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 카일라 쏜튼과 더불어 올 시즌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가운데, 어린 선수들의 성장도 두드러졌다. 자라지 않던 유망주들이 코트를 누비며 성장의 증거를 보여줬다.

안혜지가 주전 가드로 올라섰고, 구슬 역시 주득점원으로 확실한 성장을 보였다. 전체 2순위로 선발한 신인 이소희는 코트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유망주의 무덤’으로 악명이 높던 KDB생명 시절을 지나 비로소 숨겨뒀던 보물 상자의 문이 열렸다.

선수들은 하나같이 정상일 감독의 믿음과 지도를 성장의 이유로 꼽았다. 

“감독님이 믿어주신다는 게 느껴지니까 부족해도 한 발 더 뛰려고 노력하게 된다”는 구슬은 “가끔 경기를 너무 못하거나 졌을 때, 감독님한테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며 정 감독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했다. 

단타스 또한 “팀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감독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팀을 이끌어주셨다. 고맙게 생각한다. 훈련을 포함해 감독님과 함께한 시간 모두가 정말 좋았다”고 돌아봤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상황에서 출발한 시즌이었지만 OK저축은행은 개막전을 승리했고, 우리은행 전 32연패의 사슬도 끊어냈다.

7라운드에서 삼성생명과 KB를 잡으며 전구단 상대 승리도 달성했다. 두 팀이 순위가 확정된 뒤라는 점에서 빛이 바랄 수 있지만, KDB생명 시절에는 같은 상황에서도 2014-15시즌부터 4년간 이루지 못했던 기록이었다.

플레이오프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지난 시즌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정규리그 4위로 시즌을 마쳤다. 5위 이하의 성적에서 벗어난 것은 2011-12시즌 이후 7년 만이다.

정상일 감독의 지도와 믿음에 선수들이 화답했다. 선수들은 “이전보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KDB생명 시절보다 OK저축은행으로 뛴 1년이 더 좋았고, 행복했다”고 입을 모았다. 

어두웠던 팀 분위기도 밝아졌고, 선수들의 적극성도 달라졌다. 안혜지는 “어느 감독님이나 훈련 때는 엄하시다. 정상일 감독님은 생활면에서는 소통도 많이 하시고, 선수들 이야기도 많이 들어주셨다”고 말했다.

가장 암울했던 팀이 1년을 보내며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팀으로 변신했고, 본격적인 도약의 기회를 맞이했다. 기틀을 마련한 정상일 감독의 노력을 간과할 수 없다. 한 선수는 “모두가 함께 노력했지만, 힘든 상황에서도 팀 분위기가 이렇게 좋아질 수 있었던 데에는 감독님의 역할이 정말 컸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상일 감독은 KDB생명 시절, 패배의식과 어두운 분위기에 침전되어 있던 선수들의 가능성을 코트 위로 끄집어냈고, 표류하던 WKBL 위탁팀에 팀컬러를 만들었다. 포기하고 주저 앉을 수 있던 상황에서 희망을 부여하며, 사라진 가치를 새롭게 입혔다.

이로 인해 OK저축은행은 리그의 천덕꾸러기가 아닌 당당한 구성원으로 확실한 경쟁력을 보여줬다. 위기에서 팀을 살려낸 정 감독의 공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여자프로농구는 정상일 감독에게 큰 빚을 졌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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