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염용근 기자] L.A. 레이커스는 시즌 30경기를 소화한 현재 13승 17패로 서부 컨퍼런스 13위에 머물고 있다. 상대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서부 컨퍼런스 상황을 감안한다면 플레이오프 진출은커녕 5할 승률조차 장담하기 힘든 실정이다.
 
레이커스가 어떤 구단인가? 최근 8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으며 우승 2회, 파이널에 3회 진출했다. 범위를 1976-77시즌부터로 확장할 경우 현재까지 35년이 넘는 세월동안 플레이오프에 진출에 실패한 경우는 단 2번 밖에 없었다. 같은 기간 동안 파이널 진출 16회, 우승 10회로 리그 최고 명문 지위를 유지해 왔다.
 
이번 시즌 성적은 분명 실망스럽다. 드와이트 하워드가 FA 자격을 획득해 팀을 떠난 후 간판스타 코비 브라이언트의 장기 부상, 파우 가솔의 노쇠화 진행 등으로 인해 팀 전력이 급속하게 약화되었다. 빅 마켓을 소유한 팀 사정으로 인해 전면적인 리빌딩을 추진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비록 팀 성적은 시궁창이지만 최소한 레이커스가 팬들이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재미있는 농구를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발 맞춰 팬들 역시 성적과는 별개로 매일 밤 그들이 펼치는 농구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고 있다.
 
이유는 마이크 댄토니 감독의 철학인 화끈한 공격 농구, 그리고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언더 독(under dog) 선수들의 눈에 띄는 활약을 들 수 있다. 이번 시즌의 레이커스 농구는 기존의 슈퍼스타 위주가 아닌 다양한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를 통해 그 의미를 찾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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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감독부터가 언더 독이다. 댄토니는 과거 1970년대 NBA 현역 시절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오히려 활동 무대를 옮겨 이탈리아 리그에서 잔뼈가 굵었다. 코치 생활을 시작한 장소도 이탈리아의 필립스 밀라노, 베네통 트레비소 등이었다.
 
댄토니는 오랜 변두리 생활을 청산한 후 감독 자리를 맡은 피닉스 선즈에서 혁명을 일으켰다. ‘7 Seconds or Less’로 유명한 빠른 공격과 정신없는 공수전환, 스티브 내쉬와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숀 메리언 등이 중심이 된 2:2 공격 전술은 피닉스를 리그 최고 득점력을 갖춘 팀으로 탈바꿈시켰다. 2004-05시즌 ‘올해의 감독상’ 수상을 통해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기도 했다. 이른바 공격 농구의 르네상스였다.
 
하지만 댄토니는 언제나 비주류였다. 전문가들은 “공격 농구로는 우승할 수 없다”라는 리그의 오랜 격언을 들어 그의 업적을 폄하했고, 실제로 피닉스는 늘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곤 했다. 피닉스에서 뉴욕 닉스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기존의 방식을 고수했지만 우승권과는 거리가 있었다. 제레미 린의 ‘린새니티’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댄토니라는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반면 이번 시즌의 댄토니는 성적에 부담이 없어지면서 재조명을 받고 있다. 자비어 헨리, 웨슬리 존슨, 조단 힐, 조디 믹스, 스티브 블레이크, 닉 영 등 기존의 팀에서 버림받았던 2류 선수(?)들로 꾸린 라인업으로 레이커스를 리그 열손가락 안에 드는 공격 팀으로 이끌었다.
 
자신감이 결여되었던(닉 영 제외) 선수들에게 찬스가 발생하면 주저 없이 슛을 던지라는 주문을 통해 잠재력을 이끌어냈다. 2점을 실점하면 곧바로 3점으로 응수하는 농구가 바로 댄토니의 철학이자 공격 시스템이다. 레이커스 팬들이 저조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지지를 보내고 있는 이유 역시 무기력한 패배가 아닌 언제나 최선을 다한 플레이를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는 이번 시즌 댄토니의 농구 철학을 실현시키고 있는 주축 선수들 면면을 살펴보자. 외인 구단이 따로 없을 정도로 ‘하찮은’ 커리어를 가진 선수들이다.
 
닉 영(슈팅 가드)
드래프트 1라운드 출신. 4개 팀 전전. 레이커스와 2년 계약.
자비어 헨리(스몰 포워드)
드래프트 1라운드 출신. 3개 팀 전전. 레이커스와 비보장 계약.
스티브 블레이크(포인트 가드)
드래프트 2라운드 출신. 6개 팀 전전. 레이커스와 4년 계약.

조단 힐(센터)
드래프트 1라운드 출신. 3개 팀 전전. 레이커스와 2년 계약.
웨슬리 존슨(슈팅 가드)
드래프트 1라운드 출신. 3개 팀 전전. 레이커스와 1년 계약.
숀 윌리엄스(파워 포워드)
드래프트 1라운드 출신. 5개 팀 전전. 레이커스와 1년 계약.
조디 믹스(슈팅 가드)
드래프트 2라운드 출신. 3개 팀 전전. 레이커스와 2년 계약.
 
공통점은 대부분 드래프트 1라운드 출신에 짧은 기간 동안 이 팀, 저 팀을 전전했다는 부분이다. 특히 존슨, 헨리, 윌리엄스 등은 드래프트 당시 어느 정도 기대를 받았지만 적응에 실패한 탓에 자칫 리그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던 운명이었다.
 
댄토니는 이들의 단점이 아닌 장점에 주목했다. 속공에 적합한 빠른 스피드, 외곽슛 능력, 간단한 2:2 전술을 통한 공간 창출 등이 그것이다. 애초에 수비와 복잡한 팀플레이 등은 주문하지 않았다. 어차피 댄토니 본인도 수비 전술에는 문외한이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미치 컵책 레이커스 단장이 대부분 1년 계약을 통해 해당 선수들에게 목표 의식을 심어준 것도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댄토니 시스템 하에서 기록이 개선되어 좋은 계약을 맺는 선수가 종종 발생하곤 했다. 선수들에게 이번 시즌 좋은 성적을 거두면 리그에서의 생존은 물론 향후 좋은 계약까지 맺을 수 있다는 강한 동기 부여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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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4시즌의 레이커스는 코비 또는 가솔의 팀이 결코 아니다. 물론 댄토니만의 팀도 아닐 것이다. 출전시간과 기회에 목말라 있던 선수들이 자신들에게 적합한 감독과 시스템을 만나 재미있는 농구를 펼치고 있다. 댄토니와 언더 독 선수들이 만들어낸 하모니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여부를 지켜보자.
 
사진 제공 = gettyimages/멀티비츠, NBA 미디어 센트럴
일러스트 제공 = 홍기훈 일러스트레이터(inc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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